중국과 문학/시련취화

천고제일기시(千古第一奇詩): <양상사(兩相思)>

중은우시 2023. 3. 28. 16:04

글: 고운기담(古韵琦談)

 

고안망요산격수(枯眼望遙山隔水)

왕래증견기심지(往來曾見幾心知)

호공파작일배주(壺空怕酌一杯酒)

필하난성화운시(筆下難成和韵詩)

도로조인이별구(途路阻人離別久)

신음무안기회지(訊音無雁寄回遲)

고등야수장요적(孤燈夜守長寥寂)

부억처혜부억아(夫憶妻兮父憶兒)

 

안녕하세요. 오늘은 여러분들과 시를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감상할 시는 회문시(回文詩)이며, 송나라때 이옹(李禺)의 <양상사(兩相思)>입니다. 

 

중국문학사상 위대한 시인과 유명한 시편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모든 시인들이 찬란하게 빛나고 이름을 떨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시인들은 아는 사람이 없이 역사에 의해 잊혀집니다. 예를 들면, 오늘 얘기하는 이옹과 같은 경우입니다.

 

같은 발음의 이름으로 여러분들이 아는 사람은 아마도 두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李禺의 중국어 발음은 Li Yu로 뒤의 이욱, 이어도 마찬가지임). 바로 남당후주 이욱(李煜), 그리고 명말청초의 희곡대가 이어(李漁). 그러나, 이옹은? What? Who are you? 심지어 각종 검색사이트에서도 소나라때 시인 이옹에 관한 그 어떤 언급도 찾아볼 수가 없다. 죄송하다. 필자도 그저 그의 이름이 이옹이라는 것만 안다. 송나라때 사람이고, 회문시 <양상사>가 전해지고 있다는 정도이다.

 

알지 못하면 떠들지 않겠다는 지도사상에 따라, 작자에 대한 소개는 이렇게 넘어가기로 한다. 먼저 회문시라는 것에 대하여 얘기해보자. 회문시는 '애정시(愛情詩)' "회환시(回環詩)'라고도 부른다. 그것은 한자 특유의 일종의 사용하는 한자의 순서를 앞으로 읽고, 뒤로 읽는 수사방법이다. 문체상으로는 "회문체(回文體)"라고 한다. 중국고대시가중에서 비교적 독특한 유형이라 할 수 있다. 

 

당나라때 오긍(吳兢)은 <악부고제요해(樂府古題要解)>의 설명에 따르면, "회문시라는 것은 거꾸로 읽어도 시가 성립된다." 당나라때 상관의(上官儀)는 '시유팔대(詩有八對)'라고 하면서, 그중 일곱번째를 '회문대(回文對)'라고 하였다. "정신인의득(情新因意得), 의득수정신(意得遂情新)“이 바로 그런 방법이다(앞으로 읽어도 말이 되고, 거꾸로 읽어도 말이 된다).

 

한자가 단음절어소를 위주로 되어 있고, 한자의 순서를 중요한 어법수단으로 쓴다는 두 가지 특징을 활용하여, 앞으로 읽거나 뒤로 돌려 읽어도 될 수 있도록 싯구를 만드는 것이다. 회문의 형식은 진(晋)나라때부터 성행했고, 여러 문체에서 채용된다. 사람들은 이 수법으로 구를 만들고, 시를 짓고, 사를 짓고, 곡을 만들었다. 이를 각각 회문시, 회문사, 회문곡이라고 부른다. 비록 장난끼가 있는 작품이지만, 그래도 문구를 만드는데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이런 형식이 가장 먼저 출현한 것은 전진(前秦)시기이다. 나중에 점차 각지역의 문인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문인들은 이런 형식을 그저 오락으로 여겼다. 정식의 시로 쓰는 경우는 많지 않다. 왜냐하면 형식과 압운의 각도에서 제한을 받기 때문에 이를 시로 지어서 이름을 남기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좋다. 이제 이 시를 보기로 하자. 앞으로 읽으면 "사처시(思妻詩, 남편이 처를 그리워하는 시)"이고, 거꾸로 읽으면 "사부시(思夫詩, 처가 남편을 그리워하는 시)"가 된다. 그리하여 '천고제일기시'라고 일컬어지고, 이 시의 명칭은 그리하여 <양상사>로 불린다.  

 

고안망요산격수(枯眼望遙山隔水)  메마른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니 산과 강이 가로놓여 있구나.

왕래증견기심지(往來曾見幾心知)  오가면서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얼마나 만났는가.

호공파작일배주(壺空怕酌一杯酒)  술잔이 비어도 다시 한잔을 따르기 겁나고,

필하난성화운시(筆下難成和韵詩)  붓아래 운에 맞게 시를 짓기도 힘들구나

도로조인이별구(途路阻人離別久)  이별한지 오래되었고, 돌아가는 길은 막혀있다

신음무안기회지(訊音無雁寄回遲)  소식도 없고 편지회신도 오지 않는다.

고등야수장요적(孤燈夜守長寥寂)  외로운등아래 긴 밤은 적막한데

부억처혜부억아(夫憶妻兮父憶兒)  남편으로서 아내를 그리워하고, 애비로서 아들을 그리워한다.

 

<사처시>는 남자의 각도에서 읽으면 된다. 그는 고개를 들어 가을의 강물을 바라본다. 눈도 이미 말랐다. 그러나 자신과 처는 서로 떨어져 있다. 설사 술병이 비더라도 다시 한잔을 마시지 못한다. 왜냐하면 지금 그리워하는 정때문에 그는 붓을 들어 쓸 수가 없다. 정신을 집중하여 시를 짓지 못하는 것이다. 길은 너무 멀고 울퉁불퉁하여, 남편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막고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헤어져 있는데, 소식이 없다. 편지를 부쳐도 회신이 돌아오지 않는다. 외로운 등 아래에서 이렇게 적막한 긴 밤을 보내니, 남편은 그저 아내를 그리워하고, 애비는 그저 아들을 그리워할 뿐이다.

 

이 시는 아주 애절하다. 비록 화려한 수사는 없지만, 객지에 나가 있는 남편이 아내를 그리워하는 정을 아주 잘 써내려갔다. 일찌기 처와 떨어져 살아본 사람이라면 모두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시는 거꾸로도 읽을 수 있어, 혼자만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게 된다.

 

아억부혜처억부(兒憶父兮妻憶夫) 아들은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아내는 남편을 그리워한다

적요장수야등고(寂寥長守夜燈孤) 적적하게 보내는 기나긴 밤 등불도 외롭다.

지회기안무음신(遲回寄雁無音訊) 편지에 회신도 늦고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는다

구별이인조로도(久別離人阻路途) 오래 떨어져 살다보니 오는 길이 막혔는가

시운화성난하필(詩韵和成難下筆) 시를 짓지는 했지만, 차마 붓을 들어 쓰질 못하고

주배일작파공호(酒杯一酌怕空壺) 술을 한잔 따르지만 외로움을 달래줄 술병이 비었을까 겁난다.

지심기견증왕래(知心幾見曾往來) 서로 마음을 알지만 몇번이나 만났는가.

수격산요망안고(水隔山遙望眼枯) 산과 강으로 가로막혀 있으니 바라보는 눈이 메말랐구나.

 

이렇게 읽으면 시의 공간과 인물역할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고향에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처의 마음을 드러낸다: 아들은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처도 남편을 그리워한다. 적막한 기나긴 밤에 그림자도 외롭다. 남편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고, 보낸 편지에 회신도 없다. 이렇게 오래 헤어져 있으니 설마 오는 길이 막혔단 말인가. 비록 시를 이미 잘 만들어놓긴 했지만, 붓을 들어 써내려가진 못한다. 그저 술 한잔을 마시고, 술병이 비어 외로움을 달랠 술이 없어질까 두렵다. 나는 그대의 진심을 알고 있지만, 산과 강으로 가로막혀 있구나, 보고 싶지만 눈이 메말라 보이지 않는구나. 

 

앞에서 읽으면 아내를 그리워하는 시이고 거꾸로 읽으면 남편을 그리워하는 시가 된다. 그래서 합쳐서 <양상사>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건 천고의 기시(奇詩)이다. 이걸 어느 하나만 내놓더라도, 규원시 혹은 사향시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정도이다. 또한 합쳐서 보면 천고의 일절이다. 바로 이청조(李淸照)의 사에 나오는 "일종상사(一種相思), 양처한수(兩處閑愁)"이다. 

 

좋다. 이 <양상사>에 대하여는 여기까지 얘기하기로 하자. 부족한 점에 대하여는 여러분들이 댓글로 보충해 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