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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시련취화

관작루(鸛雀樓)의 누구 시가 가장 좋은가?

by 중은우시 2013. 11. 23.

글: 정계진(丁啓陣)

 

 

 

산서 포주(蒲州, 지금의 산서 영제현)의 관작루는 높이 3층에 멀리 중조산(中條山)이 보이고, 황하(黃河)를 내려다 보고 있었으며, 당나라때의 명루(名樓)이다. 일찌기 많은 시인들이 올라가서 시를 읊었다. 지금 남아있는 당시(唐詩)중에서 최소한 다음의 9수는 관작루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왕지환(王之渙)의 <등관작루(登鸛雀樓)>(일설에는 주빈(朱斌)의 작품)

경위(耿)의 <등관작루(登鸛雀樓)>

이익(李益)의 <동최빈등관작루(同崔登鸛雀樓)>

창당(暢當)의 <등관작루(登鸛雀樓)>

은요번(殷堯藩)의 <화조상공등관작루(和趙相公登鸛雀樓)>

마대(馬戴)의 <관작루청망(鸛雀樓晴望)>

사마찰(司馬)의 <등하중관작루(登河中鸛雀樓)>

장교(張喬)의 <제하중관작루(題河中鸛雀樓)>

오융(吳融)의 <등관작루(登鸛雀樓)>

 

이들 시는 혹은 관작루에서 보이는 경물을 묘사하고, 혹은 사고유정(思古幽情)을 읊고, 혹은 타향을 떠도는 나그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얘기하고, 혹은 인생에 대한 감탄을 얘기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모두 좋다.

 

이들 시편은 당연히 고하우열의 구분은 있다. 송나라사람 심괄(沈括)의 품평의견에 대하여 나는 비교적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말했다. "관작루.....당나라사람들이 시를 남긴 경우가 아주 많았다. 오직 이익, 왕지환, 창당의 3편이 그 광경을 그려낼 수 있었다."

 

당연히, 진지하게 말하자면, "그 광경을 그려내다"는 말을 정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3수의 시중에서 왕지환, 창당의 시는 경치를 쓰는 것이 위주이지만, 이익의 시는 경치를 쓰는 것을 능사로 한 것이 아니라, 회고상금(懷古傷今)이 주제이다.

 

전파학의 각도에서 보자면, 왕지환의 <등관작루>가 가장 유명하다.

 

백일의산진(白日依山盡)

황하입해류(黃河入海流)

욕궁천리목(欲窮千里目)

갱상일층루(更上一層樓)

 

그 원인을 따져보면, 첫째는 시어가 통속적이고 이해하기 쉽다. 둘째는 내용에 철리(哲理)가 담겨 있다. 셋째는 청소년들에게 뜻을 가지라고 격려하는 교육적 의미가 있다. 결론적으로 아동교육, 암송에 아주 적합하다.

 

단순히 경치를 쓰는 각도에서 보자면, 창당의 <등관작루>가 가장 순수한 관작루시이다. 왕지환의 <등관작루>는 기실 '관작루 위에서의 경치를 보고 느낀 점을 쓴 것'이다. 창당의 <등관작루>는 "관작루 및 그 주변의 경치를 쓴 것"이다.

 

형림비조상(迥臨飛鳥上)

고출세진간(高出世塵間)

천세위평야(天勢圍平野)

하류입단산(河流入斷山)

 

왕지환의 시를 읽은 사람은 관작루가 어떤 모양인지는 알 수가 없다. 창당의 시를 읽어보면 높이 솟아서 구름 속으로 뚫고 들어간 누각이 머리에 떠오를 것이다.

 

만일 왕지환의 관작루시가 천진하고 순진하기가 백지같은 소년아동이 읽기에 적합하다면, 이익의 관작루시는 시사에 관심있고 천하를 우려하는 마음이 있으며 일정한 인생경험이 있는 중년인이 읽기에 적합하다.

 

관작루서백척장(鸛雀樓西百尺檣)

정주운수공망망(汀洲雲樹共茫茫)

한가소고공류수(漢家蕭鼓空流水)

위국산하반석양(魏國山河半夕陽)

사거천년유한속(事去千年猶恨速)

수래일일즉위장(愁來一日卽爲長)

풍연병기사귀망(風煙幷起思歸望)

원목비춘역자상(遠目非春亦自傷)

 

이익이 처한 시개는 안사의 난에 타격을 받은 이당왕조때이다. 힘을 더 이상 쓰지 못하고 이미 흥성에서 쇠망으로 바뀌어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이익과 같은 정치적 지향과 애국충정을 지닌 시인은 과거를 그리워하고, 시사를 탄식하는 내용이다. 비슷한 감정을 지니고, 유사한 경지에 처한 후세의 독자는 쉽게 흔들리고 공명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시에서 "사거천년유한속, 수래일일즉위장'은 감정이 깊고, 경구라 할 만하다.

 

만일, 왕지환의 관작루시가 몽상에 충만한 소년아동이 읽기에 적합하다면, 이익의 관작루시는 뜻과 이상을 지녔지만, 현실환경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중년인이 읽기에 적합하다. 그렇다면, 경위, 사마찰, 오융의 관작루시는 기구한 인생을 겪고 앞날이 불투명하게 느껴지며 마음이 죽은 실의인사가 읽기에 적합하다.

 

"종년부득의(終年不得意), 공각부동계(空覺負東溪) (경위시)

"흥망유백일(興亡留白日), 금고공홍진(今古共紅塵), 관작비하처(鸛雀飛何處) 성우초자춘(城隅草自春)"(사마찰시)

"시위일명포고국(始爲一名抛故國), 근인다난파장안(近因多難長安), 조편도절도위이(祖鞭掉折徒爲爾), 영득운계부조간(得雲溪負釣竿)"(오융시)

 

상감(傷感)중에 스스로를 위안했고 스스로를 달랬으며 재난의 일생에서 하나의 출로였다.

 

상술한 관작루에 관한 시가를 이어보면, 화려한 꿈으로부터 고뇌와 갈등, 그리고 다시 실망 내지 절망까지. 아마도 인생의 축영인 것같다. 하나의 필연적인 규율이며 생로병사와 같고 누구도 항거하거나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계속 번식하는 인류는 반드시 이렇게 대대로 중복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순서를 바꾸어보자. 소년아동으로 하여금 실망을 느끼게 하고 혹은 인생의 창상을 겪은 절망인사에게 뜻을 세우도록 격려하고...그 결과는 두려울 것이고, 웃길 것이다. 일종의 비유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간세상은 소년아동의 오락장이다. 중청년의 전쟁터이다. 노년인의 무덤이다. 3개의 계단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안된다. 순서가 어지러워지면 역시 상상하기 어렵다.

 

이렇게 보면 당나라사람들의 몇 수의 관작루시는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읽어도 괜찮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