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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후계자후보는 이들 7명인가?

중은우시 2022. 9. 8. 00:34

글: 영해종(寧海鐘)

 

중공20대가 다음 달에 개최된다. 20대의 인사와 관련한 열띤 분석중에는 시진핑의 '후계자' 이슈도 있다. 만일 65후(1965년에서 1969년사이에 태어난 사람)중에 정치국위원이 나온다면, 그가 바로 후계자후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조건을 갖춘 사람은 모두 7명이다. 그러나, 어떤 관찰가들은 시진핑이 3연임에 그치지 않을 것이며, 65후가 승계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중공20대가 10월 16일에 개최된다. <명보>는 9월 7일자 보도를 통해, 20대에 두 가지 내용은 확실히 발생하지 않을 것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첫째, 시진핑은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삼위일체(당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주석)중 여하한 직책도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둘째, 정치국상위를 9명으로 늘이지 않을 것이다.

 

글에서는 현재 성장급, 장관급의 책임자들 중에서 60후(1960년이후 출생자)가 이미 주류를 형성했지만, 65후의 장관급고관은 거의 없다. 현재 인력및사회보장부장 저우주이(周祖翼), 국무원발전연구센터 주임 루하오(陸昊), 공청단중앙제1서기 허쥔커(賀軍科), 샨시성장(陝西省長) 자오이더(趙一德), 랴오닝성장 리러청(李樂成), 장쑤성장 쉬쿤린(許昆林), 푸젠성장 자오룽(趙龍)의 7명이 이 조건에 부합한다. 

 

글에서는 통상적인 규칙대로라면 이들 7명은 이번 20기에 정치국위원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지 않다. 만일 그 중 누군가가 파격적으로 정치국위원에 발탁된다면 후계자후보가 은연중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중앙사의 보도에 따르면, 타이완의 정치학자이자 국립정치대학 국제관계연구소장인 츄젠원(寇健文)도 9월 4일 유사한 예측을 했다. 그는 시진핑의 후계자는 아마도 1960년대 중반이후에 출생한 관리들 중에서 나타날 것이고, 20대에 아마도 정치국위원으로 진입할 것이다. 다만 상위로 직접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진핑의 특성이 권력을 나누려고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츄젠원은 현재 정치국위원중 가장 젊은 사람은 1963년생인 국무원 부총리 후춘화이다. 그는 상위가 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시진핑의 후계자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등소평시기에 정해진 중공당내규칙이 따르면, 지도자종신제를 폐지하고, 중공최고지도자의 임기는 매기 5년으로 최대 2기까지 연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전인대가 2018년 헌법을 수정하여, 국가주석, 부주석의 임기제한을 삭제했다. 이는 시진핑이 중공'방규'를 타파하고, 자신의 세번째 임기 내지 종신임기를 위해 길을 닦은 것이라고 본다.

 

시사관찰가 왕허(王赫)는 9월 7일 이렇게 분석했다: 시진핑은 3연임을 위하여 오래전부터 길을 닦아왔다. 2017년 시진핑사상을 당장에 넣고, 그후 헌법을 수정하여 임기제한을 삭제한다. 현재까지, 모두 그의 장기집권을 위한 준비였다. 아마도 3연임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진핑이 20대에 후계자를 두지 않을 것이고, 21대가 되어서 아마도 두게 될 것이다. 현재 후계자를 정해두면 시진핑이 어떻게 장기집권할 수 있겠는가. 시진핑이 원치 않을 것이다.

 

왕허는 아마도 20대때 정치국위원으로 들어가는 것은 기본적으로 60후일 것이라고 본다. 70후의 성장급은 너무 적다. 고위간부에서 연령단층이 나타났다. 31개 성시의 당위는 교체가 완료되었는데, 70후중에서 성급당위상위는 겨우 69명으로 늘어났다. 그는 시진핑이 고의로 이렇게 한다고 본다. 21대가 되어서야 그는 대거 발탁할 것이다.

 

그러나, 왕허는 현재 중공은 내정, 외교에서 문제가 너무 많다. 아마 21대가 되더라도 소위 후계자문제는 고려되지 않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중공정치는 너무 비정상적이 되었고, 스스로 문제를 일으켜 무너지고 있다."

 

중공역사상, 후계자는 항상 권력투쟁을 수반했다. 심지어 정권위기를 맞기도 했다.

 

모택동이 마음에 두었던 후계자들 중에는 고강, 유소기, 임표, 팽진, 등소평, 장춘교, 왕홍문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모택동 본인과 당내투쟁에 의해 축출된다. 그중 임표의 후계자지위는 당장에까지 기재되었다. 다만 임표는 1971년 9월 13일 비행기를 타고 도망쳐야 했고, 몽골 원두르칸에서 추락사한다. 모택동은 죽기 전에 권력을 화국봉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화국봉은 등소평의 제3차 복귀이후 신속히 집정위기에 빠지고, 실제권력을 5년이 되기 전에 수중의 권력을 내놓아야 했다.

 

화국봉이후 등소평이 실제로 권력을 장악했던 시기에, 두 차례의 총서기 호요방과 조자양은 전후로 비정상적으로 퇴임한다. 장쩌민은 64학생의 선혈을 딛고 총서기에 오른다. 장쩌민이후의 후진타오는 오랫동안 장쩌민의 그늘아래서 지내야 했다.

 

시진핑의 후계자로 중공19대때 핫하게 떠오른 인물은 쑨정차이와 후춘화였다. 그러나 쑨정차이는 19대전에 낙마한다. 그리고 야심가로 규정된다. 후춘화는 후진타오가 격대지정한 공청단파에서 내놓은 인선이라고 한다. 그런데 결국 부총리를 맡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후 소문에 따르면 시진핑의 미래 후계자후보로 상하이시위서기 리창(1959년생)과 충칭시위서기 천민얼(1960년생)이 있다고 했다.

 

과거 30년의 관례대로라면 후계자후보는 모두 현임총서기가 두번째 임기를 시작할 때 정치국상위로 승진해야 한다. 그는 통상적으로 가장 젊고, 전체국면을 주도할 수 있는 직위가 부여된다. 시진핑과 그의 전임자 후진타오는 모두 국가부주석을 맡으면서, 정치국상위에 들어간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9월 5일 미국 Bucknell University의 정치학 및 국제관계학교수인 주즈췬(朱志群)의 말을 인용하여, 후계자를 선정하는 것이 시진핑과 중공이 직면한 권력승계의 진정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그가 단지 5년만 할 것인지 아니면 내려올 생각이 없는지이다....다만 현재로서는 누가 후계자일지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