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쑨리쥔사건의 핵심이슈: "후계자"문제

중은우시 2022. 1. 19. 18:41

글: 왕혁(王赫)

 

1월 13일 중국당국은 쑨리쥔이 기소되었다고 공표했다. 죄명은 뇌물수수, 증권시장조종, 불법총기소지이다. 이는 2021년 9월 30일 쑨리쥔이 '쌍개(雙開, 당적과 공직을 박탈당하는 것)'당할 때, 입건조사할 때의 통보에 나온 죄명과 차이가 아주 크다.

 

그때의 통보는 모두 700여자로, 합계 45가지의 죄명을 나열했었다. 내용도 아주 엄중했다. 예를 들어, 쑨리쥔은 정치적 야심이 극도로 팽창하여 정치적 유언비어를 퍼트렸다; 개인의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거 소집단을 만들어, 이익집단을 형성했으며, 그 세력으로 핵심부서를 장악했다; 사적으로 대량의 기밀자료를 보관하고 누설했다등등.

 

당시 어떤 논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죄명은 모두 모반에 해당하는 유형이다. 이런 것을 한 사람에게 씌우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이는 상황이 아주 심각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런 죄명은 정치국상위정도 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죄명이지, 쑨리쥔처럼 일개 부부장급 관리에게 씌워질만한 것은 아니다. 쑨리쥔은 도대체 어떤 역량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쑨리쥔이 2020년 4월 19일 낙마한 후, 이런 정식수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모두 1년반이 걸렸다. 이처럼 긴 시간동안 수사한 것도 심상치 않다. 비교해서 말하자면, 저우용캉은 조사부터 정식으로 당적을 박탈당하는데 겨우 1년의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여기에서 두 가지 문제가 나온다: 첫째, 쑨리쥔의 기소된 죄명와 입건통보때의 내용은 왜 이렇게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둘째, 쑨리쥔사건의 심상치 않은 핵심은 무엇인가? 

 

모두 알고 있다시피, 중공은 금년에 20대를 개최한다. 시진핑이 '삼연임'할 수 있을지를 놓고 시진핑과 반시진핑세력간에 힘겨루기가 진행되고 있다. 반시진핑세력의 계산은 만일 시진핑의 '삼연임'을 저지하지 못한다면, 권력분배구조(주로 정치국상위와 정치국위원의 층면에서)와 '후계자'국면(주로 중앙위원회와 성장, 부장급 층면)에서 보상을 받아야 한다.

 

시진핑에 있어서, 반시진핑세력을 타격하는데 절대로 강도를 늦출 수 없다. 그렇다고 판을 깰 수도 없다. 효과적으로 '투쟁'의 진전과 강도를 통제해야 한다. 그리하여 '20대'를 '단결의 대회' '승리의 대회'로 개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쑨리쥔사건은 시진핑의 독주(獨奏)이다. 혼자서 북을 크게 울리면서 사방을 겁주는 것이다. 다만 실제로 처리할 때는 각측과의 관계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하므로, 적절한 선에서 멈추어야 한다. 막다른 골목까지 밀어부치거나 공개적으로 결렬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쑨리쥔사건을 수사할 때의 45개 죄명은 왜 기소때는 3개로 줄었을까? 이것이 아마도 주요한 원인일 것이다.

 

다만, 시진핑당국은 왜 쑨리쥔사건을 크게 내세우는 것일까? 공안이라는 부서가 아주 중요하기는 하지만, 쑨리쥔의 나이도 아마 관건적인 요소일 것이다. 쑨리쥔은 47세(2016년)에 공안부 당위위원이 되고, 공안부 1국 국장, 26국 국장, 610판공실 부주임, 홍콩마카오타이완판공실주임이라는 4개의 민감한 직위를 겸직한다. 이는 공안부와 정법위의 '후계자'의 모습이고, 정치스타로 떠오른 것이다.

 

쑨리쥔이 공안부에서 당시 가장 젊은 부부장급 관리였다. 그리고 그는 선명한 '상하이방'의 배경을 지니고 있다. 쑨리쥔의 이력은 아주 괴이한 점이 있다. 1969년 출생인데, 1988년 9월에 업무를 시작한다. 나이 겨우 19살이다. 그리고 1997년 12월이 되어서야 뒤늦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한다. 1999년-2003년 호주 뉴사우스웨일즈대학에 유학가서 공공위생관리 석사학위를 받는다. 30여세에 이미 상하이시 위생국의 부국장급 관리가 되었다. 얼마 후에는 상하이시 외사판공실 부주임으로 옮겨간다. 2010년경, 쑨리쥔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이한다. 공안부 판공청으로 가서 부주임이 된다. 당시 중공정법위서기이던 멍젠주의 비서실차장이 된 셈이다. 2013년 44세의 쑨리쥔은 공안부 1국 국장이 된다. 쑨리쥔의 이력중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아주 강력한 힘이 그를 밀어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명확하게 기획되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동시에, 이는 두 가지를 보여준다: (1) 시진핑의 공안부에 대한 장악력은 한계가 있었다; (2) 시진핑은 당시 쑨리쥔을 신임했고, 그에게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공안부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같은 2016년 시진핑은 심복이자 당시 북경시 부시장 겸 북경시 공안국장으로 있던 왕샤오홍도 공안부 부부장에 임명한다. 그리고 2017년 5월 왕샤오홍은 명확하게 정부장급(장관급)이 되고, 2018년 3월 공안부 당위 부서기, 일상업무를 관장하는 부부장이 되어 점차 공안부의 실권을 장악한다.

 

쑨리쥔이 장악한 부서는 공안부 내부에서도 상대적으로 독립되어 있어 외부인이 간여하기 어렵다. 암중으로 발호하는 쑨리쥔은 시진핑을 대표하여 공안부를 장악하고자 하는 왕샤오홍과 부딛칠 수 밖에 없었다. 2018년 3월, 쑨리쥔은 공안부 당위위원, 부부장이 된다. 그러나 얼마 후 업무범위가 '치안'을 담당하는 것으로 조정된다. 이는 쑨리쥔이 이미 더 이상 신임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주변으로 밀려나기 시작한 것이다. 대체로 2019년 쑨리쥔에 대한 비밀조사가 개시된 것으로 보인다.

 

쑨리쥔을 처리한 것은 절대로 단순하게 왕샤오홍과 쑨리쥔 두 사람의 갈등때문으로만 볼 수는 없다. 두 사람의 배후에 있는 세력간의 힘겨루기이다. 시진핑이 쑨리쥔을 낙마시킨 것은 바로 '상하이방'의 인사배치를 깨트리는 것이다. 그들이 장기간 배양해온 후계자를 제거함으로써 인사에서 단층이 나타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수법은 날카롭다. 그리고 선례도 있다. 예를 들어, 저우용캉은 광동성 공안청 부청장으로 있던 정샤오둥(鄭少東)을 '후계자'로 길렀다. 바닥부터 한걸음 한걸음 올라온 정샤오둥은 47세에 공안부당위에 들어간다; 다만 2009년 1월 낙마하고 사형집행유예의 형을 받는다. 외부에서는 보편적으로 이를 후진타오와 장쩌민간의 내부투쟁결과라고 본다.

 

사실상 중국의 내부투쟁에서 촛점중 하나는 바로 상대방의 인사구상을 깨트리는 것이다. 상대방이 길러온 후계자를 제거하는 것이다. 시진핑이 18대에서 순조롭게 취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2012년에 상하이방이 암중으로 준비해온 후계자 보시라이를 끌어내렸기 때문이고, 19대직전에도 시진핑은 다시 '상하이방'이 암중으로 준비해온 또 다른 후계자 쑨정차이를 끌어내린다.

 

현재 20대가 곧 개최될 것이니, 시진핑의 동작은 당연히 많아질 수밖에 없다. 1969년생인 쑨리쥔을 끌어내린 것은 시진핑이 이런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후계자와 관련하여 다른 사람이 관여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겠다. 시진핑은 정국을 완전히 장악하고 싶어한다. 반시진핑파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의 내부투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결과는 어떠할까? 우리 모두 눈을 씻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