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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관료

전선전시위서기 리여우웨이(厲有爲): "길은 어디에 있는가(路在何方)"

by 중은우시 2020. 10. 10.

글: 리여우웨이(厲有爲)

 

선전개혁개방 40주년을 맞이하여, '길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는 것은 마치 시의적절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다만, 실사구시적으로 말하자면 이 문제는 정말 존재하고 있다.

개혁개방초기, 이전의 실천에 근거하여, 누군가 계급투쟁을 강(綱)으로 하는 것을 취소하고,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하는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다른 누군가는 크게 소리쳤다. 이는 모택동사상을 임의로 고치는 것이고, 이는 깃발을 자르는 것이니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고.

 

길은 어디에 있는가?

 

당의 11기3중전회에 방향을 내놓았고,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하는 총방침을 정했다.

어떤 사람은 경제특구를 몇개 만들어 사회주의시장경제실험을 진행해야한다고 말했고, 다른 어떤 사람은 결사 반대했다. 특구를 두는 것은 조계를 두는 것이다. 이것은 매국이니, 해서는 안된다.

 

길은 어디에 있는가?

 

후야오방 동지는 명확히 대답했다. 주권은 우리에게 있으니, 조계가 아니다. 경제특구는 할 수 있다. 특별한 일은 특별한 방식으로 해야 한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선전이 있게 된다.

어떤 사람은 사회주의도 시장경제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생산력의 대발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어떤 사람은 결사 반대한다. 계획경제야말로 사회주의의 기본특징이다. 시장경제는 성(姓)이 자(資)이다(자본주의방식이다), 계획경제야 말로 성이 사(社)이다.(사회주의방식이다). 시장경제를 하자는 것은 자본주의로 가자는 것이다. 할 수 없다!

 

길은 어디에 있는가?

 

등소평은 1992년 남방강화때 이 문제에 대하여 대답했다. 그는 말했다. 자본주의에도 계획이 있고, 사회주의에도 시장이 있다. 이는 경제발전의 수단이다. 사회주의도 시장경제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중국은 계속 사회주의시장경제를 했고,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국민생산총량은 12조달러에 달한다. 미국 바로 다음가고, 세계3위의 일본보다 3배나 많다.

전국개혁개방40주년이후의 오늘, 생산력이 해방되고, 많은 기업은 두각을 나타내서, 민영경제가 크게 발전하여, 이미 국민경제의 절반을 차지한다. 대외무역에서는 45%를 차지하고, 세수의 50%를 차지하며, GDP의 60%를 차지하고, 과학기술혁신의 70%를 차지하며, 직공취업의 80%를 차지하며, 기업수량의 90%를 차지한다. 이들 숫자는 무엇을 설명하는가? 사회주의가 40년의 개혁개방을 통하여, 경제기초에 거대한 변화가 발생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획경제시대의 거의 100% 국유에서, 이렇게 큰 비율의 민유로 발전한 것은 경제기초에 이미 거대한 변화가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정치경제학의 중국에서의 새로운 탐색이고, 새로운 실천이고, 새로운 경지이다.

이러한 때, 우리는 앞에 세 가지 길이 놓여 있다: 첫째 길은 상부구조를 개혁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현실에서 이미 변화한 경제기초에 맞추는 것이다, 둘째, 현재의 경제기초를 변경하여, 거꾸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상부구조에 맞추는 것이다. 셋째, 아무 것도 바꾸지 않고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다. 쌍궤제(雙軌制)를 운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세 거리에 도착했다.

 

길은 어디에 있는가?

 

혼합소유제개혁을 시행하는데,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의 길은 시장경제법칙에 따라 운영하는 것으로 시장을 위주로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다. 민영과 국유가 상호 장점을 보완하며, 강강연합하고, 장점은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며, 자발적으로 합쳐서 공동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길은 정부가 주도하여, 행정수단으로 자원을 배분하고, 국유기업에 지표를 내리고, 우수한 민영기업을 먹어치우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십자로에 서 있다.

 

길은 어디에 있는가?

 

민영기업이 오늘날까지 발전하면서, 계속하여 어떤 사람들의 '사유화'라는 비판을 받는 상황하에서 성장했다. 이를 보면 민영기업의 생명력은 아주 강함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회발전법칙에 부합하고, 상식에 더욱 부합하기 때문이다. 실천은 이미 증명한다. 민유기업은 중국사회주의제도의 경제기초의 중요구성부분이다. 실천은 이미 이 문제에 대답을 해주었다. 화웨이등 민영기업이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력의 강력한 탄압을 받는 것은 완전히 그것이 중국사회주의제도의 경제기초라는 것을 증명한다. 다만, 중국법률의 승인을 얻지 못했다. 법률은 단지 공유제경제만 중국사회주의제도의 경제기초라고 인정한다. 민영경제를 중국사회주의제도의 경제기초라고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 우리는 여전히 십자로에 서 있다.

 

길은 어디에 있는가?

 

인민정부의 신성한 직책은 공민의 인신안전과 재산안전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안전이 절실하게 보장되는 상황하에서, 공민은 비로소 전력으로 안심하고 창업할 수 있다. 우리의 법률은 바로 공민의 인신안전과 재산안전이 침해받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재산보호방면에서, 국가헌법은 공공재산의 신성불가침만을 인정했다. 민유의 사인재산도 공공재산과 마찬가지로 신성불가침으로 헌법에 넣을 수 있을까? 우리는 다시 상부구조와 경제기초간의 문제에 부닥쳤다. 우리는 여전히 십자로에 서 있다.

 

길은 어디에 있는가?

 

국가의 헌법은 오직 "공민의 합법적인 사유재산은 침범받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핵심단어는 '합법적'이란 세 글자이다. 헌법에 규정된 합법적인 사유재산은 분명히 법률의 의미에서의 합법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사인재산이 어렇게 많은데, 그리고 언제든지 바뀌고 있는데, 국가의 어느 부문 혹은 기구가 사인재산의 합법성을 인증해주는 것인가? 없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있다. 이렇게 방대한 사인재산이 법률의 인증을 거쳐 합법적으로 되기 전에, 모두 비합법의 상태에 놓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인재산은 바로 원죄가 된다. 정부의 합법인증을 거친 후에 비로소 합법이 된다. 이는 우리 국가가 무죄추정의 법률원칙을 유죄추정으로 바꾼 것이다

만일 헌법에 공공재산과 공민의 사유재산을 마찬가지로 신성불가침으로 규정했다면 이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는 공공재산과 사유재산의 평등보호문제도 있다. 우리는 다시 십자로에 서 있다.

 

길은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소련이 우리에게 전해준 공유제는 사회주의제도의 본질적 특징이다. 사유제는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징이다. 이런 개념은 뿌리가 깊다. 

개혁개방40년의 실천은 우리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해준다. 사회주의에도 사유제가 있고, 자본주의에도 공유제가 있다(예를 들어, 사우디 아라비아의 아람코석유회사는 세계최대의 석유회사인데, 상장전에는 사우디 국유였지만, 사우디가 사회주의국가인가?). 사유경제(민영경제)에 대하여 공유경제와 법률, 정책, 제도등등의 방면에서 평등하게 취급해야할 것인가? 아니면 법률, 정책상 민영경제는 덜 보호해야 할 것인가? 자원배분상에서 공유에 후하게 사유에 박하게 하여야 할 것인가? 현재 이런 상황은 지방정부관리들에게서 비교적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문제이다. 우리는 다시 십자로에 서 있다.

 

길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 국가의 권위있는 사회과학기구의 지도자들은 계급투쟁을 소리높여 얘기한다. 마치 누구든 그의 계급투쟁관점에 동의하지 않으면 계급의 적이 된다는 것처럼. 또 어떤 사람은 글을 써서, 전30년에 부르조아계급을 소멸시켰는데, 후30년동안 다시 부르조아계급을 배양했다고 한다; 전30년간 착취를 없앴는데, 후30년간 도처에 착취가 있도록 했다. 우리는 어떻게 부르조아계급을 대해야 하는가? 어떻게 착쥐를 대해야 하는가? 어떻게 계급투쟁을 대해야 하는가? 이것은 회피할 수도 없고, 회피해서도 안되는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답하기 위하여 우선, 노동가치창조설부터 시작해야 한다.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이다. 실천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노동은 반드시 자본과 결합해야만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 이는 실천을 통해 검증된 진리이다. 노동은 자본을 떠날 수 없다. 자본도 노동을 떠날 수 없다. 오직 양자가 결합해야 비로소 가치를 창조한다. 사회의 부를 창조한다. 양자는 평화공존관계이다. 화합공생관계이다. 이익공동체이자 운명공동체관계이다. 체력노동이건 두뇌노동이건, 단순노동이건 복잡노동이건, 농업노동이건 산업노동이건 서비스업노동이건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그러하다. 사용가치이든 교환가치이든 모두 그러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바로 노동자계급과 자산계급은 평화공존 화합공생해야하고 이익공동체이며 운명공동체일까? 아니면 너죽고 나살기식의 게급투쟁관계일까?

시총서기는 인류운명공동체를 극력 창도하고 있는데, 우리는 국내에서 계급투쟁을 해야할 것인가, 아니면 중국공민의 운명공동체를 건설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십자로에 서 있다.

 

길은 어디에 있는가?

 

노동자계급과 자산계급은 모순이 있을까, 없을까? 대립의 이익추구가 있을까, 없을까? 투쟁이 있을까 없을까? 있다. 당연히 있다. 우리는 평화로운 방식으로, 법률의 수단에 행정수단을 추가해서 모순을 해결하고 서로 다른 이익추구를 해결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대거 계급투쟁을 하고, 비투하고, 타도하고, 박탈하고 심지어 소멸시키는 방식으로 모순을 해결해야 할 것인가? 노동자계급과 자산계급은 시장경제법칙의 작용하에, 상호 의존하는 계약관계인가? 아니면 노동자계급이 자산계급에게 착취당하고 압박당하는 관계일까? 우리는 여전히 십자로에 서 있다.

 

길은 어디에 있는가?

 

자산계급은 우리의 용어에서 이미 부정적인 의미이다. 우리는 그것에 새로운 칭호를 붙여 주었다. 유산의 노동계급.

우리는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이라는 것을 견지하며, 실천에서 실사구시적으로 객관적인 실제에 부합하는 도리를 찾아내어 실시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실천은 보지 않고, 옛날의 틀, 옛날의 교조, 옛날의 이념을 견지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여전히 십자로에 서 있다.

 

길은 어디에 있는가?

 

현재의 형세를 쑨리쥔의 말을 빌리면, 사면매복, 팔면초가이다. 외부압력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나는 여하한 외부압력도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다고 믿는다. 관건은 스스로 일을 잘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무슨 카드든 다 쓴다. 아직 한 가지 카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중국이 외부압력하에 잘못을 범하여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다. 강대한 외부압력하에 가장 쉽게 범할 수 있는 잘못은 무슨 잘못일까? 내 생각에 가장 쉽게 범할 수 있는 것은 좌경착오이다.

"우경을 경계해야 한다. 다만 주로는 좌경을 경계해야 한다" 이런 관건적인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민심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그중 관건은 다시 기업가의 민심이다. 그들이 그들의 인신안전과 재산안전이 모두 정부가 법률로 확실히 보장해줄 것이라고 믿을 때, 그들은 죽어라 국내에서 노력하고, 투자하고, 발전할 것이다. 그러므로, 취업을 안정시키고, 금융을 안정시키고, 대외무역을 안정시키고, 외자를 안정시키고, 투자를 안정시키고, 예측을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이다. 어느 대학교수가 말하는 민영기업가의 심리상태처럼 "우리를 필요로 하는 것은 너희의 부득이한 선택이다. 우리를 없애는 것은 너희의 신성한 사명이다" 만일 그들이 미래에 대하여 공포와 우려로 충만하다면, 우리는 어떻게 중화를 진흥하고, 위대한 중국몽을 실현할 것인가> 우리는 십자로에 서 있다.

 

길은 어디에 있는가?

 

길은 발 아래 있다. 길은 개혁개방 초기와 마찬가지로, 결심을 내려 전국적으로 전략적으로 중대문제를 돌파해야 한다. 이론인식에서 법률제도, 실제업무에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나는 믿는다.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한 당중앙의 영도하에, 반드시 해낼 것이고 반드시 돌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