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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관료

장진췐(江金權): 신임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그는 누구인가?

by 중은우시 2020. 11. 1.

글: 강류(江流)

 

만일 이번 5중전회에서 인사이동이 외부의 예상을 깨트렸다면, 5중전회이후 중공의 최고싱크탱크 중앙정책연구실의 주임 자리가 변동된 것은 적지 않은 의외이다.

 

5중전회가 폐막한 후, 중공은 특별히 10월 30일 기자회견을 열어 5중전회결의를 알렸다. 그중 장진췐은 처음으로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의 신분으로 공개적으로 나타났다. 이전에 그 직위는 중공중앙정치국상위인 왕후닝(1955년 10월 생)이 겸임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언제 직위를 인수인계하였는지에 대하여 공식으로 발표한 바는 없다. 다만 장진췐의 최근 공개활동을 보면 그가 주임에 오른 것은 최소 2019년 11월이후이다.

 

1959년에 출생한 장진췐은 중국 화중과기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초기에 후베이성위 조직부의 부처장을 지낸다. 그의 이력을 보면, 중공중앙정책연구실의 부처급 조사연구원으로 시작하여, 계속 승진하여 2013년에는 중앙정책연구실 부주임에 이르러, 왕후닝의 직계부하가 된다. 2016년 장진췐은 한때 중앙기율검사위 주국자위 기검조 조장으로 잠시 옮겨간다. 2년후인 2018년 2월에 다시 중앙정책연구실로 돌아와 상무부주임이 된다.

 

현재 볼 수 있는 매체의 보도중에, 장진췐이 마지막으로 나타난 것은 중앙정책연구실 부주임의 신분으로 1년전인 2019년 11월 1일 중공19기 4중전회결의를 읽을 때였다. 그때 중공의 4중전회에서 통과된 중국국가통치체제및 통치능력현대화제도의 틀에 관한 결의를 통과시켰는데, 거기에는 "당의 영도제도체제를 견지하고 완비한다"를 경제, 문화, 법치등 기타 12개방면의 제도의 통령으로 보았다. 당시 중공영도제도체제를 낭독한 사람이 바로 장진췐이다. 그후 중공은 4중전회결의의 보도독본(輔導讀本)을 내놓았는데, 장진췐이 바로 작성인원난에 있었다.

 

사실상 19기 4중전회기간만이 아니라, 18기 4중전회의 법에 따라 나라를 통치하는 전략의 보도독본에도 작성인원중에 장진췐이 있었다.

 

기실, 장진췐이 중앙정책연구실의 주임을 맡게 된 것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을 끈다. 첫째, 중공중앙정책연구실 자체의 고도의 정치성 문제이고, 둘째, 전임 왕후닝의 정치영향력에 관한 것이다.

 

전자에 대하여, 외부에서 알고 있는 중앙정책연구실은 중공의 최고싱크탱크이다. 또한 중공최고의사결정권층의 업무기구이다. 전문적으로 25명으로 구성된 권력최고봉인 중공정치국을 위하여 정치이론, 정책을 연구하고 문건을 초안하는 곳이다. 만일 중공을 중국정치구조의 중심이라고 부른다면, 중앙정치국은 바로 중국정치구조중심중의 핵심이다. 이러면 아마도 상상이 갈 것이다. 이 막후의 중공정치기구가 어떤 존재인지.

 

후자에 대하여, 왕후닝 자신이 가진 정치적인 광환은 2017년 예상을 깨고 중공정치국 7명의 상위에 들어갔다는 것을 제외하고, 대체로 그가 중공의 중앙정책연구실을 18년간 장악한 막후경력에 있다. 장진췐과 비교하면, 경력이 훨씬 간단한 왕후닝은 모교인 푸단대학의 국제정치학과, 법학원에서 교직을 잡은 후 당시 중공지도층의 추천으로 베이징으로 간다. 외부에서 보기에,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의 3대중공지도자를 모시고도 여전히 정치중심에 있는 인물인 그는 아마도 중공정치체제에서 학자중 정계로 투신한 최고의 대표적인물이라 할 것이다.

 

1995년 베이징으로 와서 '특별조리'의 신분으로 중공중앙정책연구실 정치조 조장이 된다. 1998년 4월에는 중앙정책연구실 부주임이 되고, 2002년 11월에는 주임이 된다. 왕후닝은 이 중공최고의 싱크탱크에서 20여년간 일하며, 주요 기획자로서 장쩌민의 '삼개대표'중요사상, 후진타오의 '과학발전관' 그리고 시진핑의 '신시대중국특색사회주의사상'등 중공지도자들의 정치유산을 직접 참여하고 작성하고, 또한 중공당장에 정치이론과 사상으로 들어가게 했다. 외부에서는 '삼조제사(三朝帝師)'라고 그의 정치적 영향력에 감탄한다. 심지어 그에게 '중공지도자정치이론설계사'라는 명칭을 붙여주기도 했다.

 

당시 왕후닝은 중앙정치국위원 및 이후 정치국상위가 되는데, 이는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의 관료로서의 관례를 깬 것이다. 그의 전임인 왕웨이청(王維澄), 텅원셩(縢文生)등은 이를 돌파하지 못했고, 정부급(正部級, 장관급)에 머물렀었다.

 

이번에 왕후닝과 장진췐의 돌연한 교체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장진췐의 출현이 왕후닝의 정치도로를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의 자리를 다시 막후로 되돌려 놓을것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신임 주임은 중공의 당건에 대하여 연구를 많이한 관리이다. 그가 중앙정책연구실 부주임으로 있을 때, 중공중앙당건영도소조비서조 조장을 맡은 바 있다. 장진췐의 저작 중에는 <당내비평의 예술>, <장쩌민당건사상연구>, <과학발전관의 이론체계를 논한다> <시진핑총서기의 당의 건설에서 엄격하게 당을 관리할 것을 논하는 행동가이드라인의 학습>는 등의 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