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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관료

장진췐(江金權): 왕후닝(王滬寧)의 후계자가 모습을 드러내다

by 중은우시 2020. 11. 1.

글: 임중우(林中宇)

 

중공중앙은 10월 30일 오전 5중전회 기자회견을 거행했다. 장진췐은 처음으로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의 신분으로 공개장소에 몸을 드러냈다. 이는 중앙정치국상위 왕후닝은 이미 18년간 맡아오던 중앙정책연구실주임의 직을 내려놓았고, 그것을 장진췐이 이어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방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중앙정책연구실은 중공의 소위 최고싱크탱크이고, 중공중앙의 직속기관이며, 전문적으로 중앙정치국을 위해 정치이론, 저책을 연구하고, 문건을 초안한다. 직능은 주로 "전국당대회중앙위원회의 공작보고서를 기초하고" "당중앙대형회의의 문건기초에 참여한다"는 등이다.

 

공개된 자료를 보면, 금년 나이 61세인 장진췐은 1959년 9월 후베이 시쉐이(浠水)에서 태어났고, 그는 오랫동안 중앙정책연구실에서 근무하며, 전후로 중앙정책연구실 당건조(黨建組) 부처급(副處級) 조사연구원, 정처급 조사연구원, 당건연구국(黨建硏究局) 부국장, 국장, 중앙정책연구실 부주임을 지냈다.

 

2016년 5월, 장진췐은 중앙기율검사위 주국자위 기검조장을 지냈고, 다음 해에 19기 중앙기율검사위위원에 당선된다. 2018년 2월 장진췐은 중앙정책연구실로 돌아와서, 일상업무를 담당하는 부주임을 맡았다.

 

중앙정책연구실은 중공의 '대뇌'로 불리는 조직이다. 왕후닝은 여기에서 25년간 일해왔고, 한번도 이곳을 벗어난 적이 없다.

 

왕후닝은 "삼대국사(三代國師)"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가 관료로서 발걸음을 뗀 것은 상하이에서이다. 1995년 당시 중공총서기인 장쩌민의 눈에 들어 정계로 들어온다. 베이징으로 불려와서 가장 먼저 맡은 직위는 소위 중남해의 싱크탱크라고 불리는 중앙정책연구실의 정치조 조장이었다. 1998년에는 부주임으로 승진한다; 2002년부터 그는 계속하여 중앙정책연구실의 주임을 맡아왔다. 왕후닝은 뒤에 후진타오를 위하여 10년간 일했고, 18대이후에는 시진핑에게 충성한다. 중공 19대에서 왕후닝은 예상을 깨고 '필간자(筆杆子)'의 신분으로 정치국상위에 들어간다. 그리고 여전히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을 겸임했다.

 

대륙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장진췐은 중공의 당건분야의 소위 권위자인 전문가이다. 그는 또한 중앙당의 건설공작영도소조의 성원이며, 비서조 조장의 직도 맡고 있다. CCTV는 장진췐이 중공19대문건기초조 성원이며, 19대당장수정소조 성원이라고 하였다. 2017년과 2019년 그는 전후로 19대 기자회견, 19대4중전회 기자회견에도 참석했었다.

 

왕후닝은 오랫동안 중앙정책연구실을 장악해 왔고, 그의 아래에서 부주임으로 일하던 인물은 계속 바뀌었다. 장진췐이 한때 다른 기관으로 옮겨간 것을 제외하고, 중공18대이후, 경력이 많은 부주임 허이팅(何毅亭)은 2013년 9월 중공중앙당교 상무부교장으로 옮겨갔고, 또 다른 부주임 스즈홍(施芝鴻)은 이미 은퇴했다. 중공고위층이 변동되는 19대를 전후하여 변동은 더욱 빈번했다.

 

2014년 중앙선전부 부부장으로 중앙정책연구실 부주임을 겸임하던 왕샤오후이(王曉暉)는 2018년 1월 중앙선전부 상무부부장으로 승진하면서 중앙정책연구실을 떠난다.

 

그외에 오랫동안 중앙정책연구실에서 일하던 팡장샨(方江山)은 이미 2018년 4월 인민일보사 부총편집(부부장급)으로 옮겨갔다.

 

2017년 6월, 중앙정책연구실 부주임을 8년간 맡아오던 판셩저우(潘盛洲)도 역시 다른 기관으로 옮겨가서, 중앙기율검사위 주홍콩마카오판공실 기검조장이 된다.

 

같은 해, 왕후닝은 푸단대학에서 교수로 있던 때의 제자인 린샹리(林尙立)을 발탁하여 중앙정책연구실 비서장을 맡긴다. 그는 왕후닝의 노선을 쫓아 "학교를 떠나 정계로 들어왔고", 장진췐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린샹리가 한때 왕후닝의 후임자라고 알려졌었다.

 

그외에 2017년 3월 중앙정책연구실 부주임으로 승진한 장지(張季)는 공청단계통의 인물로 충칭에 13년간 나가 있었다. 그는 보시라이가 2007년 충칭의 시위서기로 온 후에 뜻을 펴지 못한다. 충칭시 난안구위서기에서 충칭시위 농공위서기, 시농위부주임이라는 '허직(虛職)'으로 밀려난다. 2010년 왕후닝이 도와주어, 장지는 잠깐 충칭시 인력자원및사회보장국 국장을 지낸 후, 같은 해말 중앙정책연구실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