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의 정치/홍콩송중사태

홍콩 "폭란(暴亂)"의 검은 손은 쩡칭홍(曾慶紅)이다.

by 중은우시 2019. 11. 28.

글: 왕우군(王友軍)


만일 완전무장한 홍콩경찰이 없고, 폭력을 계속 강화하면서 진압하지 않는다면, 만일 홍콩정부가 민의에 순응하여 민중의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2019년에 홍콩의 '폭란'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금년 6월 홍콩의 반송중운동이 발발한 후, 200만의 홍콩인들이 길거리로 나와서 시위를 했다. 질서는 잘 유지되어 전세계가 감탄할 정도였으며, 누군가는 홍콩인들이 노벨평화상후보라고 얘기하기까지 했다.


다만 7월 21일이후, 홍콩의 반송중운동에서 '폭란' 문제가 두드러지게 된다. 그리하여 갈수록 '폭력(暴)'이 늘어나고, 갈수록 '어지러워(亂)'졌다. 중국정부는 이번 '폭란'은 홍콩의 '폭도(暴徒)와 외국적대세력과의 '결탁'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진실한 상황은 그러나, 이번 '폭란'은 중국공산당의 가장 흑악(黑惡)한 세력의 대표인물인 쩡칭홍의 '검은 손'이 막후에서 조종한 결과이다.


시진핑이 비록 현재 중국공산당의 '우두머리'이지만, 쩡칭홍은 홍콩의 실질적인 '우두머리'이다. 2004년에 정치국상임위원, 국가부주석으로 있던 쩡칭홍은 중앙홍콩마카오공작협조소조의 조장을 겸임하고 있었는데, 그 이후 홍콩은 쩡칭홍의 손아귀에 장악되어 있었다.


2013년 1월, 시진핑이 반부패 타호(打虎)를 발동한다. 5년동안 440여명의 부성장급이상의 고위관료들이 조사처벌받았다. 다수는 장쩌민, 쩡칭홍이 발탁하여 중용한 사람들이다. 쩡칭홍의 확실한 심복이며 전 홍콩특구행정장관을 지낸 렁춘잉(梁眞榮)은 차기 홍콩행정장관출마를 어쩔 수 없이 포기하게 된다. 쩡칭홍이 밀던 홍콩의 전 행정장관 도날드 창(曾蔭權)은 20개월의 형을 받았다. 쩡칭홍의 심복이자 전 홍콩화룬(華潤)그룹 동사장인 쏭린(宋林)은 12년형을 선고받았다. 쏭린이 체포된 후, 화룬그룹의 부동사장인 왕솨이팅(王帥廷)등 7명의 고위경영진이 연이여 조사를 받는다. 쩡칭홍의 '돈주머니'이며 '명천계(明天係)'그룹의 막후조종자인 샤오젠화(肖建華)도 체포되고, 합계 3조위안에 달하는 자산은 시진핑이 몰수해 버렸다. 어떤 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로써 쩡칭홍은 시진핑과 불공대천의 원수가 되었다."


쩡칭홍은 또한 중국공산당이 벌인 대규모 파룬공신자 장기적출의 중요책임자이다. 재미학자인 허칭롄(何淸漣)은 일찌기 이런 글을 썼다: "보시라이가 먼저 사형범의 시신매매를 시작한다. 저우용캉이 나중에 사형범의 장기매매 이익체인의 시발점이 된다. 만일 배후에 공동의 단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쩡칭홍이 중앙서기처 서기로 정법위업무를 주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형범의 장기와 시신을 상품으로 매매하는 것은 거대한 이익체인을 이루게 된다. 이는 중국인의 치욕과 아픔이며, 더더구나 이런 매매를 비준하고 이런 상업활돌을 허용하고 이를 통해 이익을 취한 중국정부의 치욕이다. 국제사회에서 비난을 받을 뿐아니라, 국내인들도 통한으로 여기고 있다." 국제적으로 파룬공신자의 장기매매죄행을 조사처벌해야한다는 목소리는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이는 파룬공신자의 선혈을 손에 가득 묻힌 쩡칭홍으로 하여금 언제 댓가를 치러야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항상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2019년은 '6.4사태' 30주년이다.


1989년 4월 15일 전 중공총서기 후야오방이 서거한다. 이 사건은 전국을 석권한 학생민주운동의 도화선이 된다. 같은 해 4월 26일, 인민일보는 <반드시 선명하게 동란에 반대하는 기치를 들어야 한다>는 글을 싣는다. 같은 해 6월 4일, 중국인민해방군은 천안문에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6.4사태'를 일으킨다. 이때부터 매년 4월 15일부터 26일까지 그리고 6월 4일은 모두 중국정부에 '민감한 날'이 되었다.


2019년 4월 20일, 3년여동안 공개적으로 얼굴을 드러낸 바 없는 쩡칭홍이 돌연 그의 고향인 장시(江西)에서 요란하게 얼굴을 드러낸다. 4월 24일, 쩡칭홍은 비가 오는데도 장시성 공청성(共靑城) 후야오방 묘지를 참배한다. 쩡칭홍이 이번에 얼굴을 드러낸 것에 대하여 외부에서는 미중무역전으로 시진핑이 정신없는 틈을 타서, 고의로 국면을 악화시켰다고 해석한다.


쩡칭홍의 심복이자, 현임 중국주홍콩연락판공실주임인 왕즈민(王志民)은 홍콩시위서기에 상당하는 인물인데, '옛 상사'가 친히 나서는 것을 보자, 즉시 그의 뜻을 알아차린다. 그리하여 계속하여 홍콩행정장관 캐리 람(林鄭月娥)를 독촉하여 '송중조례'를 추진하게 한다. 누군가 반대하면 할수록 더욱 밀어부쳤다. 반대하는 사람이 많으면 만을 수록 더욱 강하게 밀어부쳤다. 103만명이 길거리로 나와서 반대해도, 계속 밀어부쳤다; 200만이 길거리로 나와서 반대해도 여전히 '철회'하지 않았다. 계속하여 홍콩의 주류민의와 반대로 간 것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왕즈민은 일찌기 쩡칭홍의 모친을 모신 바 있고, 모친의 환심을 사서 발탁되었다고 한다.


쩡칭홍의 심복이자 현임 중공정치국위원, 중앙정법위서기인 궈셩쿤(郭聲琨)도 '옛 상사'가 '민감한 날'에 '민감하게' 참배한 것을 아고는 즉시 '심유영서일점통(心有靈犀一點通)'했다. 그는 홍콩경찰의 고위층을 원격조종하여 반송중민중에 대한 고강도의 폭력진압을 진행하게 한다. 6월 12일, 절대다수의 홍콩시위자들은 평화롭고, 이성적이고, 비폭력적이었다(和理非). 홍콩경잘은 그런데도 150여발의 최루탄을 발사했다! 이는 5개월여동안 홍콩경찰이 고의로 갈등을 격화시키고 폭력진압을 격상시키는 시작점이었다. 6월 12일부터 지금까지, 홍콩의 폭력경찰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폭행(인터넷에 많은 동영상이 있음)을 저질렀고, 홍콩 '폭란'이 격화된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현재, 비록 송중조례는 이미 철회되었지만, 홍콩인들은을중국으로 송환해서 재판받을 필요도 없이, 홍콩의 폭력경찰이 홍콩현지에서 일체의 도덕과 법률의 마지노선을 무시하는 방식으로 진압하고 있다. 


궈셩쿤의 부인의 이모가 바로 쩡칭홍의 모친인 덩류진(鄧六金)이다. 궈셩쿤은 바로 이 관계를 이용하여 발탁되었다.


쩡칭홍의 심복이자 현임 중공정치국상임위원인 왕후닝(王滬寧)은 중국 선전기구의 총책임자이다. '옛 상사'가 돌연 장시에 나타나니 자연히 협력하게 된다. 7월 21일, 홍콩의 폭력경찰은 흑사회(黑社會, 조직폭력단)를 종용하여 윈롱(元郞)에서 무차별적으로 홍콩시민을 구타한다. 이는 홍콩사태를 악화시킨 전환점이다. 8월 1일, 왕후닝이 주관한 CCTV는 <폭력을 다스려 홍콩의 법치질서를 회복하는 것은 시급한 일이다>라는 글을 싣는다. 홍콩의 폭력경찰과 흑사회의 모든 폭행은 눈을 뜨고도 보지 않는다. 책임을 모조리 홍콩시위자와 소위 '외국적대세력'에게 돌린다. 이 '암장설기(暗藏殺氣)'의 문장은 중국공산당의 홍콩시위자말살, 대륙민중기망, 홍콩'폭란'가속화의 총동원령이 된다.


옛날에 바로 쩡칭홍이 왕후닝을 장쩌민에게 추천한다. 이때부터 왕후닝은 성공가도를 달렸다.


쩡칭홍을 배경으로 하는 해외매체는 반송중운동이 발발하기 전에, 계속하여 '홍콩이 혼란스럽지 않을까봐 두렵다'는 신호를 내보낸다. 3월 19일부터 4월 14일까지 연이어 글을 발표해서, 캐리람으로 하여금 23조 입법을 추진하도록 재촉한다. 4월 4일의 글에서는 '최근 권위있는 소식통이 털어놓은 바에 따르면, 중국공산당은 제23조입법을 캐리람의 임기내에 해야할 가장 중요한 임무로 보고 있다." 4월 8일의 글에서는 "여러 방면의 권위있는 소식통에 따르면, 기본법 제23조입법이 계속 미뤄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중앙에서는 더욱 적극적인 방식을 준비하고 있으며, 그중 하나의 가장 놀라운 방안은 인대상위회가 제23조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법을 해석하는 것이다." 4월 14일의 글에서는 "만일 누군가 더 이상 미룰 수 있다면, 그것은 절대로 타당하지 않다." 2004년, 홍콩정부는 강제로 제23조입법을 추진한다. 그러다가 50만의 홍콩인이 길거리로 나와서 시위했었다. 그래서 결국은 철회한다. 지금 다시 23조입법을 강력하게 추진하다니 이는 고의로 홍콩을 심연에 빠트리는 일이다.


쩡칭홍은 중국공산당 특무의 우두머리라고 인식되고 있다. 해외에서 많은 홍색매체들이 지지한다.


홍콩의 반송중운동은 중국공산당이 홍콩을 22년간 통치하면서 계속하여 <중영공동성명>에서 만든 '일국양제' 50년불변의 약속을 어긴 것의 연속이다. 이를 통해 심각하게 홍콩의 자유와 자치를 침식한다. 누적된 갈들이 이번에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홍콩의 소위 '폭란'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 막후의 검은 손은 바로 쩡칭홍이다. 그 목적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시진핑이 그의 많은 심복들을 조사처벌한데 대한 복수이고, 다른 하나는 1989년 덩샤오핑이 중공총서기 자오쯔양을 끌어내린 것과 마찬가지로 이 기회를 틈타 시진핑을 끌어내리고 자기 사람으로 대체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처벌을 면하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설명해야 할 것은 여기서 말하는 쩡칭홍은 실제로 장쩌민, 쩡칭홍 일파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장쩌민과 쩡칭홍은 한 몸이다. 그리고 많은 막전막후의 대리인들이 있다. 단지 장쩌민은 지금 93세로 그저 목숨이 간당간당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쩡칭홍을 얘기한다고 하여 시진핑의 책임을 면제해줄 수는 없다. 시진핑은 홍콩의 혼란국면에 책임을 져야 한다. 다만 고의로 홍콩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바로 쩡칭홍과 그의 일당이라는 것이다.


만일 시진핑이 쩡칭홍과 그의 일당을 체포하지 않는다면 홍콩은 안정될 수 없다. 그리고 홍콩혼란의 모든 책임은 결국 시진핑이 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