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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브랜드

홍뉴(紅牛, Red Bull) vs 잔마(戰馬, War Horse): 자둬바오 왕라오지의 재현인가?

by 중은우시 2018. 12. 19.

글: 이광두(李光斗)





역사는 항상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첫번째는 비극적인 방식으로 나타나고, 두번째는 희극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먼저 한 사건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

시간: 2012년 9월 3일 새벽

장소: 태국 방콕 수쿰빗47가

사건내용: 회색 페라리 1대가 순경 위센 그란바슈를 치고나서 순경을 100미터이상 끌고가서 사망시켰고, 페라리는 도주했다.

사건분석: 경찰은 흘린 휘발류흔적을 단서로 삼아 방콕 부자동네의 한 호화주택을 찾아낸다. 이 주택의 주인은 아주 유명하다. 일찌기 2009년 포브스에서는 이 가족을 태국최고부자로 꼽았다. 사고나기 반년전에 가족의 제1대 창업자가 막 사망한 상태였다. 그는 바로 세계에너지음료의 거두인 레드불(Red Bull, 紅牛)의 창시자 찰레오 유위터야(Chaleo Yoovidhya, 許書標)이다.

사건결과:

범인은 27세의 워라윳 유위터야이며 그는 찰레오의 손자이다.

차량사고가 발생한 몇주후에 워라윳은 개인비행기를 타고 가서 F1경기를 관전했고, 해외로 나가 놀기도 했다.

그후 워라윳은 사라진다. 그의 죄목은 소송시효가 있다. 6년이 지나 뺑소니죄명은 이미 소송시효가 경과되었다.

그후 워라윳은 50만태국바트(약1.59만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석방된다.

배경조사:

찰레오는 태국을 풍비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200원으로 시작하여 순자산만 35억달러에 달한다. 2번의 혼인으로 11명의 자식을 두었다.

워라윳의 조부인 찰레오는 평생 조용히 살았고, 말그대로 태국의 음료대왕이었다. 중국에 이런 말이 있다: "부자가 삼대를 못간다(富不過三代)" 워라윳은 마치 이 말을 실증이라도 하는 것같았다.


1923년 찰레오는 해남도 문창(文昌)에서 태어난다. 2살때 태국으로 가서 부친과 만난다. 허씨집안은 태국에서 오리농장과 과일판매를 하고 있었다.

20살때, 찰레오는 판매원이 되고 주로 약품을 판매한다.

1956년, 찰레오는 T.C.Phamaceutical Limited Partnership을 설립한다.

그후, 그는 방콕에 제약공장을 만드는데, 이름은 '태국천사(天絲)의약보건유한공사'였다.

1970년대 중후반, 찰레오의 공장에서는  물, 설탕, 카페인, 섬유소와 비타민 B등을 성분으로 하는 자양강장음료를 생산한다. 이름은 "Krating Daeng"(태국어로 Red Bull이라는 뜻임)였다.

2010년, 87세의 찰레오는 중병을 앓고 있었고, 충희(沖喜)를 위하여 19살된 비서를 처로 삼으려 해서, 일시에 여론이 발칵 뒤집힌다.

2012년 찰레오는 사망한다.


워라윳의 배경은 확실히 남다르다. 집안배경이 대단할 뿐아니라, 그는 인물도 잘생겼다. 그는 조부의 우량한 전통을 이어받아 여자에 대한 애호가 있었다.

워라윳은 15살때부터 여자를 쫓아다니기 시작하고, 로맨스역사는 아주 풍부하다. 매번 아주 순조로웠는데, 한번은 아주 힘들었다. 바로 집안에서 일하는 여자 팡니다이다. 이 여자는 바로 죽은 경찰의 처이다. 그러나, 결국 워라윳은 원하는 바를 이룬다.

이 젊은 플레이보이는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았다. 그의 조부가 여자를 가지고 논 것보다 더 심했다.

찰레오가 87살이 되어서 중병이 들자 19살의 비서를 처로 맞이하여 충희하려고 했으나 전체 가족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 바 있다.

찰레오가 90세로 사망했는데, 만일 그때 꽃같은 나이의 여비서를 처로 취했다면, 공연히 그 여자의 일생만 낭비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돈이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있다' 어쨌든 찰레오는 돈이 많았고, 늙은 남편이 젊은 부인이라고 하더라도 당시 찰레오의 눈에는 별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전세계를 풍미한 에너지음료 '레드불'의 태국창시자와 그의 허씨가족의 전투력은 무시할 수가 없다.


시장의 수요가 확대되면서, 제품의 포지셔닝도 잘 했다. 그리하여 레드불은 태국에서 금방 인기를 끈다.

태국을 나선 후, '레드불'은 동나마와 서유럽, 북유럽등 각국시장에서 성공을 거둔다. 그리하여 새로운 별명을 얻는다: '에너지음료대왕'

1995년 12월 '레드불'은 중국으로 온다. 그리고 그의 중국 '양부(養父)' 엄빈(嚴彬)을 만난다.


엄빈은 산동성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엄빈은 1954년생이다.

가난한 집의 자식은 일찍 집안을 책임진다. 그는 혼자서 노력을 거듭하며 나중에 태국으로 간다. 1984년 태국에서 태국화빈(華彬)국제집단을 설립하여, 부동산업, 관광업, 국제무역을 주요업무로 하였다.

1988년, 엄빈은 홍뉴(紅牛)비타민음료유한공사를 설립한다. 중국화빈집단은 태국천사에 홍뉴상표를 임차하여 홍뉴비타민음료를 중국에 출시한다.

20년후, 홍뉴는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음료브랜드중 하나가 되었다. 홍뉴는 중국경내에서의 브랜드자산가치가 이미 506.9억위안에 달한다. 중국에너지음료시장의 80% 시장점유율을 가졌다. 전성기때는 연간수입이 230.7억위안에 이르렀다.

홍뉴는 이미 화빈집단 영업수익의 주요구성부분이 된다. 홍뉴가 계속 성장하면서 홍뉴의 태국 '생부'와 중국 '양부'간의 대결도 부득이하게 된다.

홍뉴의 '생부'와 '양부'는 10번의 소송을 거친다. 주로 싸운 것은 상표기한연장과 관련한 전투였다. 2016년말, 화빈집단은 에너지음료의 신제품을 내놓는다: "잔마(戰馬, War Horse)"

2017년 후룬글로벌부호랭킹에서 홍뉴의 양부인 엄빈은 110억달러의 자산으로 107위에 오른다.

홍뉴의 생부인 태국 허씨가족의 자산은 93억달러에 달하여 145위에 오른다. '잔마'와 '홍뉴'를 둘러싸고, 두 억만장자가족은 새로운 쟁탈전을 벌인다.


2017년 3월, '잔마'가 전면적으로 시장에 나온다. 허씨가족은 합작파트너인 엄빈 및 그가 지배하는 여러 회사에 대하여 법률소송을 제기한다. 제기내용은 상표권침해, 부정경쟁행위 및 라이센스없이 홍뉴제품을 생산, 판매한 것과 관련한 기타행위등이다.

2018년 2월, '잔마'의 캔음료가 시장에 나온다.

'잔마'는 공개적으로 말했다: 기한연장, 기한만료의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1995년부터 시작하여 임차기간은 50년에 달했다.

홍뉴 상표의 원소유자인 태국천사도 약세를 보이지 않았다. 계약이 증거라고 주장하며, 상대방의 발언은 전혀 법률과 사실의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이번 소송에서 만일 당신이 엄빈이라면 어떻게 싸워야 잔마가 홍뉴를 이길 수 있을 것인가?

기실 방법은 있다. 시기를 잘 잡아서 힘을 내어 "일고작기(一鼓作氣), 재이쇠(再而衰), 삼이갈(三而竭)"하는 것이다. 홍뉴가 이 세 초식을 받아낼 수 있을까?


첫째 초식: 호가호위(狐假虎威) - '전마가 바로 홍뉴이다'는 전략


비록 상표전이 시장을 뒤흔들지만 홍뉴의 두 부친은 모두 가만히 있지 않았다. 엄빈은 다시 새로운 1필의 '잔마(戰馬)'를 만들어 냈다. 비록, 키우고 싶기는 하지만, 어쨌든 신생아이다. 둘째아들이 어떻게 해야 큰아들과 맞싸울 수 있겠는가? 

홍뉴는 중국시장을 일찌감치 장악했고, 소비자들의 마음 속에 깊이 박혀 있다. 이 방면에서 강호의 초짜인 잔마는 절대로 홍뉴를 당할 수가 없다. 이길 수 없으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우리는 어쨌든 형제이니, 큰형의 뒤에 서서,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잔마가 바로 홍뉴이다.

이런 붙어가기 전략은 붙어가는 동시에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지기이고 무엇이 지피인가?

잔마와 홍뉴는 본질적으로 모두 기능성음료이다. 소비자군도 일치한다. 잔마는 이 문제를 고려해보지 않았을까? 홍뉴가 왜 잘 팔렸을까? 홍뉴의 소비자군은 왜 홍뉴를 선택하고 코카콜라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첫번째 층면에서는 홍뉴가 기능성음료라는 것이다. 마시면 기운이 돋고, 효과는 몇 캔의 콜라를 마신 것보다 현저하다. 그래서 소비자들의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다.

두번째 층면에서 가치도 있고, 실용성도 높다. 홍뉴가가 갈증을 해소시킬 수 있다. 그러나 코카콜라의 광고는 계속 갈증해소를 간판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기운이 나게 하지는 못한다. 커피는 기운을 차리게 해준다. 마신 후에는 물을 마시고 싶어진다. 홍뉴는 양자의 장점을 결합시킨 것이다. 입맛도 괜찮으면서 기운도 나게 해준다.


잔마는 자둬바오의 전략을 따라해야 한다. 물을 저어서 흙탕물로 만든다. 홍뉴이 시장주도지위를 지키기 위하여, 최대한 홍뉴의 브랜드자산을 이전해야 한다. 기타의 2,3선 에너지음료에게 잠식당하지 않도록 연합상표를 만들어야 한다.


나아가 두개상표 프로모션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현재이 홍뉴 캔이 앞뒤에는 각각 '홍뉴'와 '잔마'를 인쇄해 놓았다. 소비자들에게 잔마가 바로 홍뉴이고, 홍뉴가 바로 잔마라고 인식시키는 것이다. 다시 각종 광고와 종합예능프로그램에서 새병에 옛술을 담았다고 하며 강조한다: "역시 원래대로의 배합, 역시 원래대로의 맛" 광고선전과 영화드라마를 통하여 소비자들의 인지도를 끌어올린다.


잠재적인 소비자를 고객으로 보고, 그들이 심리적 수요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소매상에 손을 써서 식당에 잔마를 뿌린다. 소비자들이 홍뉴를 달라고 하면 잔마를 내놓는다. 잔마를 마시면 홍뉴를 마시는 것과 같다. 이렇게 오래되면 소비자들의 눈에 둘간의 구별이 모호해진다. 적은 돈을 잃고서 큰 혜택을 얻는 것이다. 이것은 머리를 써서 시장에서 PR을 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엄빈은 홍뉴의 기초 위에서, '잔마는 더 좋은 홍뉴'라는 시장개념을 만들도, 제품업그레이드를 진행한다.


포장에서, 여러해동안 바뀌지 않은 홍뉴와 비교하여, 잔마는 패션을 따르고 아름답고 활력있는 바깥포장을 하고 있다. 맛에서도 더욱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가벼운 질감으로 개량했고, 주력소비자군의 다원화된 입맛수요에 맞추었다. 끼어들기로 상대방을 이길 수 있고, 업그레이드로 자신을 넘어설 수 있다.


멍뉴는 당시 끼어들기전략을 써서 초원우유를 성공저으로 광명우유가 1위인 상해시장에 뛰어들었다. 그후 금패우유 터룬수를 내놓았다. "모든 우유를 터룬수라고 부러는 것은 아니다.' 고급우유의 이미지를 사람들의 마음 속에 심어주었다.


기세를 빌어 마케팅을 한다. 홍뉴의 기세를 빌어서 잔마를 만들어 낸다.


동시에, 반드시 자신의 브랜드와 결합시켜야 한다. 한편으로 따라가면서, 한편으로 세를 만든다. 세를 만들어, 브랜드지명도를 높인다. 따라하기는 게임과 같다. 네가 가위를 내면 나도 가위를 낸다. 네가 보를 내면 나도 보를 낸다. 끝까지 승부가 나지 않고 고하를 가리지 못하게 된다.


둘째 초식: 상전하태급(相煎何太急) - 딴 살림을 차리고, 브랜드로 대항한다.


모든 일이 준비하면 서고, 준비하지 않으면 망한다. 이것은 조상들이 우리에게 알려준 진리이다. 사전에 기획하고, 시장의 기선을 제압하여야 비로소 더욱 뛰어나게 자신의 제품을 마케팅할 수 있다.


엄빈이 내놓은 잔마는 홍뉴를 대체하려고 하고; 태국천사는 홍뉴와 같은 포장에 같은 맛의 제품을 내놓고, 이름을 '홍뉴비타민에너지음료를 내놓아 브랜드업그레이드를 하고, 시장을 계속 점령하려 한다.


채널이 왕이고, 단말에서 승리가 결정된다. 잔마는 홍뉴의 원래 채널을 빌려, 급속히 오프라인의 단말에 진열한다. 그리고 고의로 잔마를 강화하고, 홍뉴를 약화시킨다; 대리점지원전략을 조정하여 잔마판매비용을 크게 늘이고, 눈에 잘 띄는 위치에 잔마를 선저한다. 이를 통해 전국에서 연동프로모션을 벌여, 소비자들로 하여금 '잔마광고를 보면 잔마제품을 살 수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그 외에, 잔마는 자신의 제품과 결합된 소비장면을 중시한다. 예를 들어 피트니스클럽, 체육관, 사무실과 같은 곳이다. 자동판매기와 인터넷음료판매점을 통하여 새로운 판매방식을 취한다. 모델에서, 분공사, 전매점, 특허경영점등 다양한 방식을 취하여 브랜드마케팅채널을 확대한다.


전파역량을 강화하면서, 잔마는 이번 대규모전투에서, 광고선전에서 다관제하(多管齊下)의 책략을 쓴다.


주류의 권위있는 매체를 이용하여, 선전하고 소비자의 신뢰도를 증가시킨다. 나아가, 대규모로 성급위성TV에 광고를 투입한다. CCTV에서는 전국시장에서 대규모로 제품선전을 퍼붓는다.


감정으로 전파를 이끈다. '에너지' '활력' '자유' '잔마, 너와 함께 천하를 싸우자'를 마케팅주제로 삼는다. 젊은층을 공략하는 마케팅과 오락화된 마케팅 그리고 인스턴트점포방식으로 소비자와 감정적으로 연결시킨다. 잔마브랜드의 감정가치를 강화한다. 예를 들어, 코카콜라는 일찌기, 표어병, 가사병, 대사병, 표정병등 젊은층을 겨냥한 병모양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소비자들의 인기를 끈다.


젊은층이 소비의 주력군이 되는 시대에 잔마는 젊은층을 겨냥한 포장을 하고, 여러 시리즈의 포장을 해서 브랜드에게 이차원, 개성화된 레테르를 갖게 했다. 브랜드잔파채널에서도 전면적으로 젊은이들의 SNS플랫폼, 웨이보, 위챗, 두어인등에 깔았다. 마케팅, 이업종과의 합작으로 이슈를 만들고, 잔마드랜드가 모든 구석구석에 파고들게 만든다. 젊은이들로 하여금 언제든지 브랜드존재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태국천사도 화빈이 그의 브랜드를 마케팅하는 것을 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천사는 천연적인 브랜드우세를 지니고 있다. 자신이 중국시장을 경영하려고 준비했다. 다만 아직은 중국시장의 운영을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빈에게 반격하는데 가장 큰 약점이 되고 있다.


잔마는 비록 화빈의 강력한 자금지원을 받고 있고, 성숙된 시장운영경험도 있지만, 홍뉴브랜드를 일단 잃고나면, 반드시 시장점유율이 하락하는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만일 소비자들의 브랜드인지도에 편차가 있다면, 홍뉴가 이전에 가졌던 시장을 반드시 다른 브랜드에게 신속히 점령당하게 될 것이다.


셋째 초식, 자원통합, 순풍차(順風車)를 교묘하게 만들다.


잔마를 출시하기 전에, 화빈집단은 이미 커져 있었다.


엄빈의 성공은 그의 독특한 안목에 있다. 1995년, 불혹의 나이에 엄빈은 중국으로 돌아와 투자한다. 심천에 홍뉴비타민음료유한공사를 설립한다.

북경의 한 곳에 12년간 내버려져있었던 미완공건물을 엄빈은 한 상업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으러 간다. "누구든지 이 건물을 짓겠다고 한다면 나는 건물에서 투신해버리겠다."

지금 이 건물은 화빈빌딩이 되었다. 북경CBD의 고급비지니스오피스빌딩지역에 있다. 이곳에서 엄빈은 자신의 왕국 화빈집단을 창립한다. 점유면적 10,800평방미터, 총건축면적 53,000평방미터.

이 미완공건물의 '기사회생'을 위하여, 엄빈은 이 23층건물을 하루에 20여회 오가기도 했다.


2000년, 엄빈은 북경 창평남구에 화빈장원을 투자하여 만든다. 이곳에는 5,300무의 국제표준골프장이 포함되어 있다. 세계골프황제이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골프장성계자인 잭 니클라우스가 설계했고, 세계의 성공한 인사들에게 고급교류의 장을 제공해주고 있다.

엄빈은 화빈집단의 현재 자원을 충분히 이용하여 잔마를 프로모션할 수 있다.

상품마케팅에서 자원통합을 통해 힘들이지 않고 마케팅하는 전략을 시험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건강음료'전략이다. 잔마를 고급인사들에게 프로모션하고, 골프장이라는 고급플랫폼을 이용하여 브랜드와 기업을 서로 결합시켜 건강음료와 건강한 생활방식을 연결시킨다. 그렇게 하여 순조롭게 잔마를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브랜드전파를 진행하면서 소비자의 마음 소에 고급건강운동음료라는 이미지를 심어야 한다. 화빈빌딩의 독특한 자원우세를 이용하여, 식당, 호텔, 영화관등 소비채널을 개척하고, 소비추세, 고객과 소비동력에 대한 종합분석을 통하여, 잔마의 브랜드선전을 하여 최대효과를 거두어야 한다.

자둬바오가 왕라오지를 빌어 브랜드를 키웠듯이 엄빈은 '홍뉴'브랜드를 빌어 천하를 얻는다. 양자는 모두 비지니스의 멋진 사례를 만들었다. 다만, '성야소하(成也蕭何), 패야소하(敗也蕭何)"이다. 브랜드는 기업이 성공하는 기초이다. 기업의 가장 고귀한 자산이다. 일단 기업의 브랜드자산이 부저추신되면, 아무리 높이 솟은 빌딩이라도 비바람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