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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브랜드

삼성중국의 중국전략

by 중은우시 2012. 9. 20.

글: 재신신세기

 

일찌기 17년전에 30살도 되지 않은 탄홍(談洪)은 삼성회사에 입사하여 삼성중국츼 최초 직원중 하나가 된다. 이 경력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삼성이 중국시장을 중시하는 것과 한국동료들이 중국시장에 대하여 잘 인식하고 있는 것은 그를 놀라게 만들었다. 그러나 금방 3년후 그는 중국직원의 '천정'을 느낀다. 그래서 그는 떠나기로 결정한다. 많은 중국직원은 삼성에서 유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삼성에 가입하여 가전부문책임자가 되기 전에, 탄홍은 이미 창웨이(創維) 중국지역 상무부총경리를 맡았었다. 그가 보기에 삼성은 처음부터 중국시장을 '해외시장'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본토시장으로 보고 경영했다. 막 삼성에 도착했을 때, 경영진이 그에게 부여한 임무는 시장을 개척하라는 것도 아니고, 제품을 파는 것도 아니고, 당시 사무실내에서 쓰지 않는 구형 컴퓨터를 빈곤산간지역의 학생들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그 때, 삼성은 중국에서 모두 아는 유명상표가 아니었다. 공익은 삼성이 지명도를 여는 방식중 하나였다.

 

더욱 탄홍을 놀라게 만든 것은 그의 곁에 있는 한국경영진이 중국어를 아주 유창하게 하는 것이었다. 젊은 한국동료의 중국어도 모두 괜찮았다. 이들 한국국적직원이 중국에 온 후에 처음 하는 일은 바로 출근하는 것이 아니라,중국이 북대, 청화등 저명대학에서 1년간 공부하고 중국각지를 여행다니며, 풍토, 인정, 소비습관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삼성은 우리가 보아온 외국회사중 중국시장에 가장 노력을 많이 쏟아붓는 곳이다." 북경다국적기업연구소 소장, 상무부연구원 연구원 왕즈러(王志樂)의 말이다. 그는 예를 든다. 삼성의 사람들은 아주 자세하게 중국인이 가장 존중하는 색깔은 고궁의 홍색과 황제가 쓰는 유리기와의 황색임을 연구했다.

 

경동방집단 부총재이며 경동방시신(視訊)공사 총경리인 류단(劉丹)은 그가 접촉해본 삼성중국의 부장들은 거의 모두 중국에서 5년이상 일을 했다. "삼성이 목표시장에 뚫고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중국시장에서 일하는 삼상의 한국적경영진이 중국인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과 장사를 하면서, 그들을 한국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류단의 말이다. 경동방은 삼성과 패널업계에서 경쟁상대방의 하나이다. 류단에 따르면, 중국은 이미 삼성의 제2대 근거지가 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중국본토화를 중시하는 한국기업이 왜 탄홍과 같은 중국인을 붙잡아두지 못했을까? 승진공간이 한계가 있으므로, 삼성은 중국직원에 있어서 마치 무예를 연마하는 곳이지, 평생을 맡길 곳은 아닌 것같다.

 

삼성중국은 삼성 전체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10여년의 고속성장을 겪었다. 계속하여 이전의 '스승'들(모토롤라, 노키아, 소니 등등)을 추월했다. 핸드폰, 가전에서 패널까지 그들의 산업체인은 중국에서 전방위적으로 포진되어 있다. 글로벌전략에서 아주 중요한 곳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병목현상이 나타난다.

 

업계내에서는 삼성이 중국에서 마케팅을 가장 성공적으로 한 것은 핸드폰과 패널이고, 가전분야는 실적이 좋지 않다고 공인되어 있다. 삼성전자는 2006년 제3분기이래 연속 5년간 LCD TV의 전세계점유율 1위를 차지하여 왔다. 이런 강세는 중국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중이캉(中怡康)의 데이타를 보면, 2012년 4월까지, 삼성TV는 중국1급시장의 판매액이 29.59% 하락했고, 2급시장에서는 26.34% 하락했으며, 3급시장에서는 22.84% 하락했다. 4급시장은 하락폭이 가장 커서 36.17%가 하락한다. 냉장고, 에어컨등 백색가전분야에서 삼성은 더더욱 거리(格力)등 중국기업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그 원인은 일부업계인사들에 따르면, 삼성중국이 가전마케팅채널에서 지기(地氣)를 받지 못했다.

 

어떻게 중국현지화전략을 택할 것인지는 모든 다국적기업의 난제이다. 답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계속 바뀐다. 설사 삼성과 같이 중국시장을 아주 중시하는 기업도 근년들어 중국전략을 다시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부터 삼성은 중국에서 크게 일을 벌이겠다는 자세를 보인다.

 

1992년 중국에 들어온 이래, 삼성이 중국에 파견한 관리직은 직급이 모두 아주 높았다. 일반적으로 삼성그룹의 동사회구성원은 한국인이다. 이는 당시에 아주 보기 드물었다. 설시 거의 모든 글로벌기업이 모두 중국을 전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으로 보는 현재도 여전히 보기 드문 일이다.

 

삼성과 같은 중량급의 구미기업의 중국지역 경영진중 많은 중국인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AMD회사의 중국지역 경영진의 90%이상은 중국인이다. 탕쥔, 장야친은 마이크로소프트에 있었고, 린정강은 시스코의 중국지역 최고경영자였다. 그러나 중국런다방략기업관리자문회사의 동사장인 왕지펑에 따르면, 이런 쇠사들에서 중국지역 경영진은 회사본사의 지위는 높지가 않다. 마이크로소프트웨어의 경우 중국지역 경영진이 전체회사에서 랭킹이 100등이내에 들면 아주 괜찮은 편이다.

 

두 가지 방식은 고하를 구분할 수 없다. 왕즈러는 삼성과 같이 하는 경우의 좋은 점은 중국지역 경영진이 비교적 큰 의사결정권을 지닌다는 것이다. 비교적 효과적으로 그들의 생각을 집행할 수 있다. 나쁜 점은 중국직원에 대한 메리트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중국직원은 명함의 직함을 중시한다.이것이 개인발전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중국에 파견된 삼성의 한국적 경영진은 중국의 비지니스게임규칙을 잘 알았다. 금방 지방정부의 중요성을 발견한다. 그들은 신속히 중국의 많은 지방정부와 깊이있는 합작을 전개한다. 투자로 현지의 토지자원과 각종 인센티브조치, 보조금 및 지방정부로부터 드러나거나 드러나지 않는 보호를 받아낸다. 이런 합작 및 이로 인한 지방정부의 삼성에 대한 보호는 한중양국매체에서 수시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삼성이 얻은 이익은 아주 많았다.

 

1995년 막 삼성으로 가서 일을 시작한 탄홍은 금방 발견한다. 삼성은 중국의 시장선택에서 아주 많이 따졌다. 처음에, 삼성은 랴오닝, 지린, 헤이룽장의 동북삼성에서 시작한다. 왜냐하면 동북삼성에는 한국인이 비교적 많고, 브랜드인지도와 지명도가 높기 때문에 시장을 개척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두번째 중점 진출대상은 광저우였다. 왜냐하면 당시 수출입은 광저우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외에 베이징, 텐진과 상하이 쑤저오도 삼성의 가장 주요한 시장이었다. 이곳은 모두 중국의 부유한 지방이다.

 

왕즈러에 따르면, 삼성은 점차 베이징천진, 상하이쑤저우, 광동을 중심으로 하는 3대기지가 형성된다. 3대기지를 키운 후에 다른 지역에 대한 투자를 고려했다. 많은 다국적기업이 해외투자에서 서로 다른 지역에 전면적으로 꽃을 피우는 것처럼 하는 것에 비하여, 삼성은 자기발전의 핵심지역을 확정한 후, 계획에 따라 밀집하여 투자를 진행했다. 왕즈러는 밀집투자는 지방정부로부터 세수, 자금과 기타 관련시설에서 기업에 많은 지지와 도움을 받아냈다.

 

HP, 알카텔-루슨트등 기업과 유사하게 삼성도 중국정부와 합자를 선택한다. 합작모델은 삼성이 돈을 내고, 기술을 내고, 관리를 하고, 정부가 땅을 내고, 세수우대혜택을 주고, 지분을 차지한다. 삼성은 일찌감치 베이징,텐진시장에 진입한다. 텐진의 712창(텐진광파기재창)와 합자로 공장을 짓는다. 당시 삼성중국은 판매권이 없었다. 그저 합자회사의 라이센스와 공장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왕즈러는 삼성의 전략배치는 비교적 중국의 국정에 들어맞았다고 본다. "현재 삼성은 텐진에 십여개의 회사를 가지고 있다. 이미 규모를 이루었다. 지방정부의 더 많은 우대조치와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만일 전국에 투자를 펼쳤다면 이런 효과는 없었을 것이다." 텐진의 예가 있으므로, 더 많은 지방정부는 삼성을 끌어들이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993년, 삼성은 글로벌화 디지탈기술의 두 가지 목표를 세워서 전환한다. "굶주린 늑대"처럼 중국으로 밀려온 삼성은 중국을 글로벌 전략에서 "제2의 한국"으로 삼았다.

 

2005년, 박근희(朴根熙)가 삼성중국의 총재로 부임한 후 공개적으로 "중국에 제2의 삼성을 만들겠다"는 전략을 내놓는다. 박근희는 "삼성중국의 포지셔닝은 단순한 공장 혹은 시장이 아니다. 삼성의 사업기지이다." 이 말은 삼성그룹 산하의 금융 및 서비스업등 사업을 중국으로 가져오는 것뿐아니라, 삼성이 중국에서 생산하는 모든 제품은 기획, 연구개발, 생산 잋 판매등 전체 체인을 모조리 중국에서 완성한다는 것이다. 공급체인을 장악하는 것이 관건이다.

 

같은 해, "삼성(중국)"이라고 명명된 자회사의 명칭은 모조리 "중국삼성"으로 고쳐진다.

 

이것도 다른 다국적기업의 선택과 달랐다. 왕지펑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 GE등 기업은 이전에 아주 명확한 중국전략이 있었다. 현재, 그들은 중점을 아시아태평양지구로 둔다. 주요한 가치체인은 처음에 전체 아시아태평양의 배치였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는 현재 많은 소프트웨어개발을 인도로 이전했다. 왜냐하면 인도의 언어, 생활습관 및 기술개발이 미국에 더욱 가깝기 때문이다. 글로벌화에 더욱 경험이 있는 일본기업 예를 들어, 소니와 마쓰시다는 과거에 시종 중국전략을 명확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개척의 강도가 약했다.

 

삼성중국의 "늑대같고 호랑이같은" 기세는 삼성의 공성략지를 도와준다. 또한 동종업계의 반발도 불러왔다. 1990년대 중반, 삼성제품은 일본기업제품과 마찬가지로 중고급제품으로 포지셔닝되었다. 당시 일본제품은 중국의 중고급시장에서 절대적인 우세를 점했다. 비교적 늦게 진입한 삼성은 가격에서 일본제품보다 훨씬 낮게 설정한다. 그리고 중국국산브랜드보다 약간 높게 설정한다. 이런 저가전략은 삼성이 다른 나라에 들어갈 때도 써먹었다. 비록 자주 정부보조금으로 원가이하로 판매한다는 비판을 받지만, 공급체인의 통제는 삼성이 저가전술을 쓸 수 있는 중요한 원인이었다. 삼성이 완전한 산업체인을 점차 완성하고, 핵심부품의 생산 및 가격결정권을 장악하자, 삼성은 가격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다. 전세계 각 시장에서 빠르게 반응할 수 있게 된다.

 

홍하이(鴻海)의 총재인 궈타이밍(郭台銘)은 대만 TV 및 가전기업에게 "타랑(打狼)"(늑대는 삼성을 가리킨다)행동에 가입할 것을 호소한다. 그 원인은 2008년 삼성과 LG가 손을 잡고 지속적으로 타이완기업의 패널을 구입하다가, 금융위기가 도래하자 대폭 주문을 취소한 것이다. 치메이(奇美, 홍하이의 자회사)와 여우다(友達)등은 손실이 참혹했다. 치메이는 그해 10월 출하량이 40%가 줄어든다. 삼성은 순조롭게 약 24.5%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한다.

 

지금 삼성은 전자업계의 거의 "공적"이 된다. 그는 현재 유일하게 동시에 패널, 메모리, 반도체제조(ASIC)를 할 수 있는 기업이다. 기의 전세계 절반의 전자회사는 삼성에서 물건을 사지 않으면 그와 어느 분야에서 경쟁한다. 제품의 총이윤율은 삼성의 눈치를 봐야 한다. 주가도 삼성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많은 사람들은 삼성의 중국시장에 대한 거대한 투입에 곤혹을 느낀다. 금년의 "중국가전발전서미트포럼"에서, 삼성전자의 전무 최도철(崔度哲)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한국내시장은 더 이상 그렇게 큰 성장공간이 없고, 중국시장은 시장점유율이 가장좋은 시장이다."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한국회사로서 삼성은 가장 좋은 중국발전의 성공요소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믿는다. 누가 중국소비자의 마음을 얻느냐에 따라 그가 글로벌 승리자가 될 것이다.

 

많은 업계인사들은 삼성의 한국경영진의 중국어실력에 깊은 인상을 얻는다. 그외에, 삼성은 중국직원이 삼성이 동화되는 것도 중시한다. 삼성의 중국직원은 짧으면 몇 달, 길면 몇년 모두 한국본사로 파견가서 교육받는다. 교육내용은 삼성의 기업문화, 한국시장, 풍속민정등등이 포함된다. 탄홍은 한국에서 반년간 교육을 받았다. 그가 보기에 사고와 시야가 많이 늘었다. 그는 한국에 가서 처음으로 "상품의 배치는 '금변은각란중앙(金邊銀角爛中央)"이라는 것을 배운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중국직원은 삼성에서 대부분 중간층 혹은 고위층의 부직(副職)을 담당한다. 이는 많은 한국,일본기업의 통병이다. 중국구의 일인자 혹은 본사의 더 높은 지위는 중국인에게는 오지 않는다.

 

취징동(曲敬東)은 삼성에서 비교적 잘 발전한 중국인이다. 2007년, 삼성은 이미 전세계 최대의 LCD 및 평면TV제조업체, 전세계 제2위 핸드폰 및 반도체제조업체가 된다. 당시 레노보집단 부총재인 취징동은 삼성 대중화구 총재 박근희의 요청을 받아 삼성에 가입한다. 삼성전자 대중화구 상무이사, 마케팅부총재가 되어 상용사업을 책임지낟. 당시 삼성에서 가장 젊은 중국국적 경영진이 된다.

 

"삼성으로 가는 것을 선택한 것은 전체적인 발전추세에 끌렸기 때문이다. 삼성은 2005년 소니를 추월했고, 기술, 마케팅등의 분야에서 축적되어 있었다. 모두 배울만했다." 취징동의 말이다.

 

2009년말, 취징동은 계약기간이 끝난 후, 더 이상 삼성과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그의 다음번 회사는 몸집이 훨씬 작은 아이고(Aigo, 愛國者)였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더 발전할 무대가 필요했다" 삼성의 플랫폼은 컸지만, 취징동에게 발전공간은 이미 '천정'에 닿았다.

 

삼성중국은 발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삼성의 글로벌시장에서 최근의 상승추세와 비교하면 여전히 손색이 있다. 삼성이 여러해전에 구상한 "제2의 한국"의 지위에는 못미쳤다. 가전업계 관찰가인 류부천에 따르면, 삼성의 우세는 완전한 산업체인배치와 제품의 혁신능력에 있다. 그러나 중국의 최대문제는 마케팅전략에 있다. 현지의 풍토와 맞지 않았다. 판매채널은 시종 힘을 쓰지 못하고, 1,2급시장에 떠돈다. 현재 3,4급시상과 농촌시장은 이미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고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이것은 삼성가전이 중국에서 시종 중국국산브랜드를 이기지 못한 원인이다. 삼성판매액과 정비례하지 않는 것은 삼성의 서비스가 있다.

 

마찬가지로 '늑대근성'을 지닌 중국공사는 점차 삼성의 주요경쟁적수가 된다. 이는 삼성에 있어서 용인전략에서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청화대학 경영학원 연구원 친허팡(秦合舫)은 이렇게 말한다. 미래 삼성은 일본기업과의 경쟁에서 중국기업과의 경쟁으로 바뀔 것이다. '패널과 칩은 하이테크와 고투자의 업종이다. 삼성의 이분야에서의 우세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스마트폰이 저급으로 확산되면서, 삼성의 시장점유율은 아마도 내려갈 것이다. 중국시장에서 본토기업에 추월당할 가능성도 있다."

 

과거 20년 삼성은 이미 중국에 106억달러를 누적적으로 투자했다. 2011년 삼성은 중국에 16억달러를 투자했고, 금년에는 21.6억달러에 달할 것이다. 이런 투자증가추세는 미래에도 지속될 것이다. 중국삼성은 2005년부터 '제2의 삼성건설'전략을 시작한다. 목표는 바로 영업센터를 대도시에서 농촌과 내륙지구로 확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효과는 그다지 좋지 않다.

 

금년 1월 5일, 전 삼성전자LCD패널사업부 사장인 장원기(張元基)가 강호문(姜皓文)을 대체하여, 정식으로 삼성그룹 대중화구총재에 취임한다. 부임한 후 가장 중요한 업무는 LCD패널, 칩등 첨단기술분야의 대중국투자를 진행하는 것이다. 왕즈러는 이렇게 평가한다: 삼성중국의 경영진은 "박근희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 맡은 것을 제외하고" 최근 들어 빈번하게 변동하는데 이는 좋은 일이 아니다. 삼성은 지금 용인전략을 조정하고 있다. 장원기는 말한다. 이전의 중국삼성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한국본사와 중국의 한국국적 경영진이 책임졌다. 앞으로 삼성본사는 점차 이들 권한과 책임을 대량으로 중국현지의 경영진간부에게 넘길 것이다. "현지업무를 현지직원에게 넘겨서 하게 하여야 단기간내에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현재, 삼성중국의 경영진중 중국인이 70%를 차지한다. 2년전만해도 비율은 20%였다. 왕즈러에 따르면, 삼성통신연구원의 원장인 왕통(王彤)은 현재 이미 삼성의 '전무'로 동사회구성원 직급이 되었다. 현재 중국인으로서 삼성회사의 최고위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