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문혁후)

후안강(胡鞍鋼)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중은우시 2018. 8. 12. 23:00

글: 임시원(林詩遠)


청화대학의 천명 교우는 연명으로 청화대학 총장에게 서신을 보내어 청화대학에서 국정연구원 원장 후안강을 제명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유는 그의 "중국종합국력미국초월론"이 국책을 오도했다는 것이다. 호후망(虎嗅網)은 글을 실어 후안강이 형성된 과정을 폭로했다.


글에 따르면, 1988년말, 중국과학원 국정분석소조의 1호국정보고서 <생존과 발전>이 정식 완성된다. 자동화연구소 박사생인 후안강은 아마추어학자의 신분으로 두각을 나타낸다. 이 보고서는 중국공산당의 당시 지도자 등소평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고, 후안강은 이때부터 자신의 학술방향을 정해 버린다.


글에 따르면, 5년후, 후안강과 왕샤오광(王紹光)이 공저한 <중국국가능력보고>는 다시 한번 지도층의 관심을 끈다. 보고서에서, 그들은 국가의 4가지 능력을 제시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재정취득능력이다. 이 주장은 당시 중공중앙의 재정이 부족했던 문제를 그대로 지적한다. 그리고 이어진 분세제개혁에 이론적근거를 제공한다. 그래서 '서방경제학'이 유행하던 시기에, 중국고위층은 이후의 개혁과정에서 국가주도역할을 강화하게 된다.


이 초기의 두 개의 '학술성과'로 인하여 후안강은 여러번 중국공산당 당중앙, 국무원 지도자의 지시로 여러번 국가부,위의 초청을 받아 국가장기계획을 제정하는데 참여하고, 부서에 자문한다. 그리하여 매체에서는 "국가정책을 해독하는 방향표시판"이라고 불리는 청화대학 교수가 된다.


<국가능력보고>가 관심을 얻은 후, 후안강은 계속하여 중국모델이 서방모델보다 뛰어나다는 점을 찾고 증명하려고 애쓴다.


1996년, 후안강은 <정부의 현대화과정에서의 주도적 역할>이라는 책을 저술한다. 그리고 "비록 우리는 일인당으로는 세계의 뒷자리이지만, 종합국력합계로 보면 우리나라는 중대한 대국이다." 이 사상은 후안강의 국력비교에서 시종 관철된다. 한 나라의 종합국력이 강대하면 일인당으로 낙후된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같은 해, 후안강은 다시 <분석은 한도가 있다. 유고슬라비아분열의 교훈과 계시>라는 글을 쓴다. 여기에서도 후안강은 중앙제정취득능력(국가능력)을 제고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원인을 설명한다.


1997년, 후안강은 <중미관계 및 그 대첵에 관한 약간의 건의>를 저술한다. 그는 "2015년 중국은 세계최대의 경제실체 및 무역대국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 후, 후안강은 다시 <중국은 어떻게 미국을 따라잡는가?>라는 글에서 대국부흥의 목표는 바로 미국을 추월하는 것이라고 명확히 한다.


2007년에 후안강은 처음으로 이론모델을 업그레이드한다. "현재의 이론으로는 중국기적을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방경제학의 교조주의를 파괴해야 할" 뿐만 아니라, "중국의 길"의 독특성과 중요성을 명확히 해야한다는 것이다.


후안강이 배양한 제자들은 현임 청화대학 국정연구원 부원장 언일룡(鄢一龍)이 있는데, 그는 <국가능력보고>출판20주년기념식때 이렇게 직언한다: "중국과 서방의 하드웨어실력을 대비하면 이미 근본적인 변화가 있다. 다음 목표는 중국중화문명의 자신감을 재건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후, 후안강도 점차 태도를 분명히 하게 된다. "이미 중국은 미국을 따라잡았으니, 장래 미국을 추월할 것이다. 즉 중국의 제도가 미국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연이어 <정치제도로 볼 때 중국이 왜 결국 성공하는가?>, <절대로 외국인이 중국모델을 혁신해주기를 기다려서는 안된다>는 등의 글과 강연에서 더더욱 "미국은 이미 쇠퇴기에 접어들었고, 자체적으로 노화, 경직화, 퇴화되었다."고 말한다.


이어서 우리 모두가 아는 내용이다. 2017년에 후안강은 장기적인 계산을 거쳐 놀라운 결론을 내놓는다 일찌기 2010년에 중국의 종합국력은 이미 미국을 추월해서 미국의 1.04배에 이르렀다고 한다. 2020년에는 중국의 종합국력이 미국의 1.75배에 이를 것이며, 2030년에는 중국의 종합국력이 미국의 2배에 상당할 것이라고 하였다.


사정의 결과는 이미 모두 아는 바이다. 미중무역전이 발발하면서 중싱(ZTE)는 한 때 미국의 제제를 받는 등의 사건이 일어나고, 중국민중은 미중양국의 국력차이를 몸으로 느끼게 된다. 많은 대륙의 네티즌들은 후안강이 이전에 허풍떨었던 "학술연구보고"를 찾아내고는 조롱하고 있다.


그러나, 후안강현상의 출현이 그 개인의 문제인지, 체제의 문제인지에 대하여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후안강현상은 개인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개인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상해대학 역사학과 교수인 주쉐친(朱學勤) 교수는 중국의 '개혁'이 40년째 접어들면서, 후안강과 같은 사람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개혁'에 큰 문제가 나타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우리의 개혁은 근본적으로 그들이 선전하는 것처럼 열화조천(烈火朝天)하고 있지 않다."


주쉐친은 이렇게 본다. 후안강사건은 그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전체 중국대륙사회의 역향도태의 상징이다. "어떤 사람이 대학에 있고, 어떤 사람이 국가자원을 가지고 이런 거짓된 모습을 만들어내는지 바로 후안강이다. 그는 기껏해야 이 30년동안 중국에서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를 설명해줄 뿐이다."


뉴욕의 독립시사평론가인 횡하(橫河)는 미국의 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후안강사건은 중국공산당의 장기적인 정책이 장애에 부닥쳤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정책은 바로 도광양회를 포기한 것이다. 더욱 공격적인 자태로 정치, 군사, 문화등 각 방면에서 대외확장한 것이다.


횡하는 이렇게 말한다. 후안강이 이렇게 비판받는 것은 무역전과 중싱사건을 통하여 모두가 마침내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경제, 과학기술이건 아니면 종합실력이건 모두 과장되어 있었다는 것을. 문제가 출현한 후, 당내외는 모두 일치하여 이 사건을 추궁하고 있다. 도대체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모두가 창끝은 감히 중국최고위층에 향하지 못하는 상황하에서, 후안강이 가장 두드러진 과녁이 된 것이라고 본다.


횡하는 이렇게 생각한다. 중국은 문과분야에서 돈이 되는 프로젝트을 맡으려면, 모두 당국의 '주석(註釋)'을 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기실 후안강이 이런 주장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당국이 이런 주장을 필요로 한 것이다. 후안강은 그래서 득세한 것이다. 문혁이 끝난 후, 매번 정치운동에서 많은 지식분자들이 나서서 당국의 정책결정을 해석해주곤 했다.


미래사건의 방향에 대하여. 횡하는 이렇게 본다. 중국은 하나의 사건으로 전체 사상계의 현상이 바뀔 리 없다. 그저 중국공산당통치가 바뀌지 않는 한, 이런 현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