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문혁후)

누가 후진타오를 이끌어 주었는가?

중은우시 2018. 6. 9. 00:10

글: 장돈(張頓)


보통집안 출신인 후진타오가 중공총서기가 돈 후에도 계속 낮은 자세를 유지했다. 누가 그의 "정치백락(政治伯樂)"인지에 대하여 항상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그의 부인인 류용칭(劉永淸)은 후진타오보다도 낮은 자세를  취한다.


6월 3일, 인터넷매체인 오도구학인에서는 후진타오의 처인 류용칭의 신세내력을 공개했다. 그녀의 외삼촌이야말로 후진타오를 이끌어준 인물이었던 것이다.


글에 따르면, 류용칭은 1940년에 태어난다. 그녀의 부친은 중공 서남군구의 고위군관이었다. 그녀에게는 두 명의 언니가 있는데, 한명은 교사이고, 다른 한명은 사회과학원 부원장 겸 당위부서기를 지냈다.


류용칭은 1959년 청화대학에 입학하여 후진타오와 같이 공부한다. 1970년 후진타오와 류용칭은 결혼단다.


글에 따르면, 류용칭의 외삼촌은 창즈칭(常芝淸)인데, 중공의 전 최고지도자 등소평이 생전에 아꼈던 인물이다. 일찌기 <항전일보>, <진수일보>, <신화일보>, <광명일보>. <대공보>의 총편집을 지냈고, <인민일보> 부총편집을 지냈다.


후진타오는 여러번 류용칭의 집에 갔는데, 그때 창즈칭을 알게 된다. 창즈칭은 후진타오를 아주 좋아했고,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서 특히 정치문제에 대하여 그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후진타오의 조적은 안휘 적계(績溪)이다. 1942년 강소성 태현에서 태어난다. 그의 부친인 후징즈(胡靜之)는 가업을 승계하여, 태현 상패에 "호원차엽점(胡源茶葉店)"을 열었다. 모친 리원뤼(李文瑞)는 후진타오가 7살 되던 해에 돌아가신다. 부친은 재혼하지 않았고, 세 아들은 처가에 보내어 기르게 했다.


중공이 '공사합영(公私合營)'을 진행할 때, 후징즈의 차엽점도 국유로 귀속된다. 그 본인은 태형 공소사의 직원이 된다. 그러나, 문혁기간에 후징지는 비투를 당하고, 문혁이 끝나는 해인 1978년에 겨우 50여세의 후징즈는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난다.


후진타오가 중공총서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처외삼촌인 창즈칭 외에 여러명의 '정치백락'이 있었다. 예를 들어, 청화대학 당위제1부서기인 류빙(劉氷), 중공전총서기 후야오방(胡耀邦), 전 중앙조직부장 송핑(宋平)등이 있다.


후진타오는 1964년 청화대학을 졸업한 후 학교에 남는다. 문혁이 발발한 후, 그는 1968년 수전부 류가협공정국 방건대로 가서 일하고, 1974년 감숙성 건설위원회로 가서 일을 한다.


1978년, 류빙은 난주대학 교장 겸 당위서기, 감숙성 부서기로 안다. 이때, 감숙성 건설위원회 설계관리처 부처장으로 있던 후진타오는 자주 난주대학으로 류빙을 찾아간다.


후진타오가 감숙성 건설위원회에서 일할 때, 알려진 바에 의하면 감숙성위서기인 송핑의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1980년대, 후진타오는 중공중앙당교로 가서 학습하는데, 후야오방의 아들인 후더핑(胡德平)가 같은 반에 있었다. 한번은 후더핑이 후진타오를 데리고 집으로 가서 후야오방을 만난다. 후야오방은 후진타오와 얘기를 나눠보고는 금방 후진타오를 마음에 들어한다. 1982년 후진타오는 공청단중앙의 서기를 맡는다.


후진타오는 1988년 티벳으로 보내어저 자치구 상위서기를 맡는다.


후진타오는 1992년 중공14대때 정치국 상임위원이 되고, 등소평이 지정한 '격대후계자"가 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중공14대 준비조의 조장인 송핑, 챠오스는 후진타오를 준비조에 들어오게 하고는 등소평에게 후진타오를 정치국 상임위원으로 발탁할 것을 건의했다고 한다.


1997년 등소평이 사망한 후, '후계자'인 후진타오는 당시 중공당수인 장쩌민의 압박을 받는다. 홍콩매체가 토로한 바에 따르면, 장쩌민은 심지어 후진타오의 '후계자'지위를 빼앗아 그의 심복인 쩡칭홍에게 넘겨주려고까지 생각했었다. 그러나 중공원로들의 반대에 부닥쳤다.


후진타오는 2002년 중공16대에서 중공총서기에 오른다. 그러나 권력은 장쩌민파에서 쥐고 있었다. 외부에서는 후진타오가 정치에 들어선 후 계속 조심스럽게 행동했는데, 아마도 그가 한번도 실권을 잡지 못했기 때문일 것으로 본다.


후진타오는 2012년 중공18대에서 물러났고, 그후 다음해 중공양회에서 모든 권력을 시진핑에게 넘겨주고 물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