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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삼국)

이교(二喬): 가장 행복한 여자포로...

by 중은우시 2018. 7. 21.

글: 표우동(飄雨桐)


먼저 미어(謎語) 맞추기 문제를 하나 내보겠다. "江東二喬(1글자)" 답을 알겠는가? 그것은 바로 "오(娛)"이다. 강동은 바로 동오이고, 이교는 오나라 여자이다. 여(女)+오(吳)=오(娛)가 된다. 아주 유치한 문제였다. 이제 주제로 들어가자. <삼국연의>를 많이 보진 않았다. 그렇지만 전혀 낯설지는 않다. 특히 <낙신(洛神)>의 견복(甄宓)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줄줄 외울 정도이다. 왜 그런가? 낙화는 물을 따라 흐른다.



강남유이교(江南有二喬), 하북견복초(河北甄宓俏). 견복의 최후는 좋다고도 할 수 없고 좋지 않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런 난세에 순조롭게 살았다면, 몇 살을 살았건 간에 그래도 안락한 일생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강남이교는 아주 잘나간 것같이 보인다. 두목(杜牧)도 이런 시를 남기지 않았던가? 동풍불여주랑편(東風不與周郞便), 동작춘심쇄이교(銅雀春深鎖二喬). 이를 보면 하마터면 행복이 사라질 뻔했다.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겠다. 만일 적벽대전이 없었더라면, 조조는 아마도 대소이교를 동작대에 가두어 놓을 수 있었을까? 아, 천하의 미인은 모조리 조씨집안으로 모였다. 그 장면은 그렇다면 얼마나 장관이겠는가. 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러나 역사는 이미 발생한 일이다. 상상은 그저 상상일 뿐이다. 난세에 미녀의 운명은 항상 등에 식은 땀이 나게 만든다. 이 남자에서 저 남자에게로 옮겨가는 과정은 그다지 복잡하지도 않다.


대소이교는 포로일까? 교공은 관직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딸인 대소이교를 데리고 안휘 환성에 은거한다. 이 딸들은 모두 절색가인이다. 이런 시가 있다: "교공이녀수색종(喬公二女秀色鍾), 추수병제개부용(秋水竝蒂開芙蓉)" 건안4년 십이월, 주유(周瑜)는 손책(孫策)을 따라 환성(皖城)을 공격하여 함락시킨다. 진수(陳壽)의 <삼국지>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교공(喬公)의 두 딸을 얻었는데, 모두 국색(國色)이었다. 책(손책)은 대교(大喬)를 자납(自納)하고, 유(주유)는 소교(小喬)를 취(娶)했다."


이 내용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손책은 대교를 '자납'했고, 주유는 소교를 '취'했다. '자납(自納)'이라는 것은 부모의 명이 없고,중매인의 말도 없다는 것이다. 데리고 갔다는 것이니 정실부인은 아닌 것이다. 소교는 다르다. 주유는 '취'했으니 정실부인이다. 이 두 결합은 완벽한 것처럼 보인다. 남재여모(男才女貌). 미녀와 영웅. 포로로 잡힌 대소이교는 비록 포로이지만 직접 손책과 주유의 집으로 데려간 것이다.


그러나, 액운은 항상 피하기 어렵다. 대교는 더욱 처연했다. 손책과 3년의 행복한 시절을 겨우 보내고, 남편 손책이 허공(許貢)의 가객(家客)에게 피살당한다. 대교는 20세 가량부터 과부 생활을 하게 된다. 다행히 아들 손소(孫紹)가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비참했을지 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소교는 언니보다 약간은 더 행운이 따랐다. 주유는 천하의 미남이고 문무를 겸비했다.


"곡유오주랑고(曲有誤周郞顧)" 소교가 일부러 이 장면을 만들어 냈을까? 소식의 붓끝에서의 주유는 소교를 취하고나서 더욱 의기풍발(意氣風發)한다. 그러나, 좋은 시절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주유는 익주를 공격할 준비를 하던 중에 파구(巴丘)에서 병사한다. 삼십세 가량의 소교는 이때부터 혈혈단신이 된다.


어찌되었건, 대교소교는 가장 행복한 여자포로들이다. 우수한 남자와 사랑할 수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