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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삼국)

미방(糜芳): 삼국시대 얼굴이 가장 두꺼운 사람...

by 중은우시 2018. 9. 7.

글: 무릉산인(茂陵散人)


'얼굴이 두껍다'는 것을 얘기하자면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세계는 결국 반드시 얼굴두꺼운 사람의 것이다. 비록 이 말은 놀리는 말이기는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기실 삼국시대에 이렇게 얼굴이 두꺼운 인물이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두꺼웠을까? 그는 멀쩡하게 다른 사람을 무고하여 자신의 큰형이 화가나서 죽게 만들었다. 유비와 인척관계가 있어 유비도 그를 어떻게 하지 못한다. 그렇다며 이런 신기한 인물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삼국연의>의 내용에 따르면, 삼국시대 가장 얼굴이 두꺼운 사람은 욕을 먹어 죽은 왕랑(王朗)은 턱도 없다. 왜냐하면 왕랑의 얼굴은 사실 그다지 두껍지 못하다. 제갈량으로부터 욕을 먹자 화가나서 죽었다. 진정으로 얼굴이 두꺼운 인물은 유비의 처형인 미방이다. 그야말로 바늘로 찔러도 들어갈 곳이 없고, 화살을 여러개 맞아도 끄덕없을 정도로 두껍다. 그리고 이 자는 계속하여 다른 사람을 모함하고 해쳤다. 조운(조자룡)을 무고하고, 관우(관운장)를 함정에 빠뜨려죽이고, 친형을 홧병으로 죽게 만들고, 매부인 유비의 강산을 절반이나 잃게 만들었다. 그러나, 유비는 그를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나쁜 짓도 미방 정도가 되면 정말 극치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다.


먼저 미방의 얼굴이 얼마나 두꺼운지 보기로 하자. 당양 장판파 전투에서, 유비집단은 조조의 호표기에게 형편없이 패배한다. 관우 제갈량은 길을 나눠서 도망치고, 유비의 곁에는 겨우 장비만 남았다. 이때 미방이 온다. 그리고 보자마자 그의 얼굴이 얼마나 두꺼운지 알 수 가 있다: 돌연 보니 미방이 얼굴에 화살 몇 개를 달고 달려왔다. 얼굴에 화살 몇 개를 달고도 달릴 수 있다니, 그리고 달리는 중에도 화살이 떨어지지 않다니, 이를 보면 얼굴이 얼마나 두꺼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갑옷을 두껍게 입고 있어야 등에 화살을 여러개 맞고도 쓰러지지 않을 수 있다. 미방의 얼굴은 바로 두꺼운 갑옷과 같다. 이 점에서 그의 얼굴두께는 '삼국무쌍'이라고 할 만하다.


미방이 이때 유비의 앞으로 달려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금방 여동생을 놓쳤다. 즉 유비의 미부인(糜夫人)이다. 다만 그가 달려온 것은 자신의 실직을 보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운을 모함하기 위함이었다: "조자룡이 조조의 군영으로 투항하러 갔습니다!" 유비는 당연히 믿지 않았다: "자룡은 나의 오랜 친구이다. 어찌 배반하겠는가?" 정사에 기재된 것은 유비가 대노하여 수극을 집어서 던졌다고 한다. 이 수극이 명중했다면, 아마도 관우가 형주를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관우가 형주를 잃은 것은 큰 원인이 바로 미방이 여러 여러 장병과 대본영 남군을 함께 여몽에게 바쳤기 때문이다)


자신이 매부가 자신의 무고를 믿지 않는 것을 보자, 미방은 하늘과 땅에 맹세하며 소리쳤다: "내가 직접 그가 서북으로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때 유비는 아마도 무슨 일인지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미방이 몰랐을 리는 없다. 만일 미방이 여동생과 유아두를 서북에 버려두고 도망쳐 오지 않았다면 조운이 왜 서북으로 사람을 찾으러 갔겠는가? 다행히 조운이 나중에 미축(糜竺)과 감부인(甘夫人)을 구해서 오고, 그렇게 하여 누명을 벗는다. 만일 그러지 않았다면, 장비가 그를 보자마자 "자룡 빨리 가시오. 추격병은 내가 맡겠소!"라고 왜치지 않고, "보자마자 바로 베어버렸을 것이다."


미방이 조운을 모함한 것은 실제로 자신의 책임을 벗어나기 위함이다. 문관인 큰형 미축과는 달리, 미방은 무장이다. 유비는 처음부터 처자식을 보호하는 책임을 그에게 맡겼다. 어쨌든, 처의 오빠이니까 믿을 수 있었던 것이다.


조운을 모함한 후, 유비는 죽어가는 미부인의 얼굴을 봐서 그의 책임을 추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에게 남군태수의 직을 맡긴다. 관우도 미방을 중용한다. 양번전투때 그를 선봉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는 술을 마시다가 일을 그르친다. 대군의 양초와 무기를 불태워 관우에게 '불상지조(不祥之兆)'를 안긴다. 화가난 관우는 그를 남군으로 돌려보낸다. 관우와 장병들의 가족은 모두 남군에 있었다. 그러나 관우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바로 이 '왕친국척(王親國戚)'이 배반할 줄은.


사실상, 미방과 부사인(傅士仁)의 배반은 바로 낙타를 쓰러뜨린 마지막 지푸라기이다; 관우 수하의 병사들은 가족의 서신을 받은 후에 전투의지를 잃고 속속 흩어진다.


<삼국연의>에 따르면, 유비가 거병하여 관우의 복수를 하려 할 때, 미방, 부사인은 두려움으로, 촉한의 진영으로 달려가서 벌을 받기를 청한다. 그러나, "관흥은 미방, 부사인의 옷을 벗기고, 영전에 무릎을 꿇게 하고, 친히 칼을 들어 죽여서 관우의 영전에 제사를 지낸다." 천도만과는 당연히 반도의 최후이다. 미방이 죽은 것은 많은 사람들의 울분을 풀어 주었다. 그러나, 역사의 진상은 그렇지가 않다.


진실한 역사에서, 미방은 큰형 미축을 홧병으로 죽게 만든다. 미방은 남군태수로 관우와 함께 일했다. 그러나 그는 딴 마음을 품고 손권을 받아들이고 관우는 이로 인하여 패배하고 형주를 잃는다. 미축은 얼굴을 가리고 죄를 청한다. 선주 유비는 형제는 죄가 서로 미치지 않는 것이라고 위로하며 ,원래와 똑같이 대우해준다. 그러나 미축은 부끄럼에 병이 나서 결국 1년여만에 죽는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이렇게 조운을 모함하고, 관우를 죽게 만들고, 큰형을 홧병으로 죽게 만든 후안무치한 인물을 유비가 어떻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사에 보면 이 자는 법에 따라 처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손권에게 가서 중요앋고, 손권을 위하여 전공도 세웠다는 것이다.


<오주전>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황무2년 육월, 손권은 장군 하제, 도독 미방, 유소등으로 하여금 기춘을 기습하게 하여 승리를 거둔다. 손권이 이 황무2년은 223년이다. 즉 미방이 동오에서 공을 세웠을 때 유비는 이미 죽은 뒤였다.


미방은 그와 마찬가지로 인품이 저급한 손권에 의해 장군으로 임명된다. 그는 아마도 자신의 성이 무엇인지 잊어버린 듯하다. 그는 문을 너서서 길을 갈 때 의장대를 이끌고 보무당당하게 갔다. 그리고 기도위(騎都尉) 우번(虞翻)을 만나자 길을 비키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우번이 그를 한바탕 욕한다: "너 같이 불충, 불의하며 능력도 없는 자가 무슨 얼굴로 장군을 칭한단 말인가!" 미방은 아무리 얼굴이 두꺼워도 이때는 자신이 길을 비켜서 양보한다. 그러나 우번은 그래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고의로 미방의 군영을 지날 때 군영을 고의로 뚫고 지나가려 한다. 미방은 규정에 따라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러다가 다시 한번 조롱을 당한다: "문을 닫아두어야 할 때는 닫아두지 않더니(남군을 바치고 투항할 때를 가리킴), 문을 닫아두지 않아야 할 때는 닫아놓는구나. 세상 어디에 너같이 이렇게 하는 자가 있단 말인가" 두번이나 욕을 얻어먹자, 삼국제일의 두꺼운 얼굴을 가진 미방도 이때는 약간 부끄러운 빛을 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