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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문혁후)

송경령(宋慶齡) 말년의 알려지지 않은 혼인

by 중은우시 2016. 3. 19.

글: 왕사여연(往事如煙)


송경령은 이름도 유명한 20세기의 위대한 여성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작고한 국가명예주석으로 그녀는 일생동안 무사무외(無私無畏)했다. 그녀와 국부(國父) 손중산과의 사랑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전해져 내려온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손중산을 제외하고 말련의 송경령은 혼인을 한 역사가 있다. 그리고 모택동 주석도 송경령의 개가를 비준했다....


신중국이 성립된 후, 중국해방사업에 걸출한 공헌을 한 송경령은 대만국부의 미망인으로서 북해후해의 한 조용한 왕부에 살았다. 송경령과 손중산의 사이에는 자식이 없다. 커다란 정원은 더욱 텅 비어 있는 듯했다. 말년의 송경령은 전례없는 적막과 고독을 느낀다. 모두 노인은 아이같아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때의 송경령은 어린아이처럼 한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했고, 곁에 자신과 기쁨과 슬픔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기를 희망했다.


송경령의 생활비서는 여성의 마음을 잘 잡는 남자였다. 젊고 건강했다. 송경령에 대하여 모든 것을 보살펴 주었다. 송경령도 이 나이로 따지자면 충분히 자신의 아들이 될만한 비서를 좋아했다. 생활비서는 혹은 송경령의 인간적 매력에 이끌려서, 혹은 진심으로 이 노인을 사랑해서, 혹은 유산과 지위를 위해서, 용감하게 송경령에게 결혼하자고 요구한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사랑을 송경령의 말년을 돌보는데 쓰겠다고 약속한다.


당시의 송경령은 여러가지 생각이 많았다. 첫째는 생활비서는 자신과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났다. 진심으로 자신을 대하는 것일까에 의문을 가졌다. 둘째는 자기가 이혼한 생활비서와 결혼한다면 파장이 크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처한 정치적 지위였다. 재혼을 하는데  장애는 없을까? 생활비서는 송경령에게 말했다. 결혼은 두 사람의 일이다. 두 사람의 마음 속에 상대방이 있다면, 나머지는 모두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활비서가 두 딸을 가르쳐서 두 딸이 송경령을 '엄마'라고 부르자, 송경령도 용감하게 결혼하자고 하게 된다.


그들의 결혼신청은 큰 파장을 불러온다. 그 시대에 여자가 재혼하는 것은 이미 논쟁거리가 될 일이다. 하물며 '국모'가 재혼하는 것임에랴. 대만으로 도망친 장개석은 송미령을 생각해서 송경령에 대하여는 예의를 지켰다. 많은 통일전선활동은 송경령의 '국모'신분과 큰 관계가 있다. 만일 송경령이 재혼하면, 국모는 그저 '손중산 전처'라는 명칭만 남게 될 뿐이다. 통일전선공작에 분명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래서 주은래는 송경령의 재혼에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생활비서가 송경령을 돌봐주고, 두 사람이 동거하는 것까지는 좋다고 한다. 그러나 모주석은 바로 일필휘지한다: "동의" 이렇게 하여 비록 대외적으로는 재혼소식을 선전하지 않았지만, 송경령은 생활비서와 결혼하여 행복한 말년을 보낸다.


송경령의 재혼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인생의 마지막 시기에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와 함께 석양을 보고 함께 아침이슬을 맞으며 행목한 말년을 보냈다. 90세로 사망할 때까지. 임종전에 그녀는 유언을 남긴다: 나를 국부와 함께 묻지 말라. 나는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