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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당)

논흠릉(論欽陵): 30년간 당나라를 벌벌 떨게 만든 토번의 장군

by 중은우시 2018. 3. 6.

글: 행심식군(幸甚識君)


당나라는 중국역사상 가장 번성했던 시기이다. 정치, 경제, 문화가 모두 최고봉에 달했다. 특히 당나라초기는 영웅이 배출되던 시기였고, 장기간의 전란을 겪은 후, 무수한 영웅이 나타나서, 대당의 건실한 기초를 닦았다. 예를 들어, 진경, 위지공, 정교금 등등이다. 이들은 모두 당나라의 원로인물이다. 명장도 있고, 정예병도 있고, 여기에 이세민과 같은 영명한 군주도 나타났다. 대외확장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당태종때, 소수민족과의 전쟁에서 여러번 중대한 승리를 거둔다. 그리하여, 당왕조의 강역은 넓게 확장된다. ㄱ러나 이런 성황도 오랫동안 유지되지는 못했다. 당나라는 중대한 도전에 부닥치게 된다.


이 도전은 서쪽의 토번정권에서 왔다. 토번정권은 당태종시기에 당다라를 아주 앙모했다. 송찬간포(松贊干布)는 녹동찬(祿東贊)을 보내어 당나라에 구혼을 청하기도 했다. 나중에 당태종은 문성공주를 송찬간포에게 시집보내어 토번에 중원지구의 선진적인 경작기술과 생산기술을 전해준다. 그리하여 토번이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런 평화적인 국면도 그다지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650년, 송찬간포가 사망하고, 667년 녹동찬도 사망한다.


이때의 조정은 녹동찬의 아들인 논흠릉(論欽陵)의 손에 장악되어 있었다. 논흠릉은 토번의 유명한 정치가, 군사가이다. 아마도 그가 토번 역사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잘 모르는 사람이 있겠지만, 일단 그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기만 하면 아나도 그의 휘황한 경력에 놀라자빠질 것이다. 논흠릉은 그의 부친대의 인물들처럼 평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머리에는 시종 한 가지 말이 있었다: 확장!


그래서 670년, 논흠릉은 구자(龜玆, 지금의 신강 쿠차), 언기(焉耆), 소륵(疏勒, 지금의 신강 카슈카르), 우전(于闐)등 안서사진(安西四鎭)을 점령한다. 그리하여 당나라와 서역과의 교통노선을 철저히 단절시킨다. 기실 이는 이미 당나라에 선정포고한 셈이다.


그리하여 670년 8월, 당고종은 설인귀(薛仁貴)에게 토번을 정벌하도록 보낸다. 토번을 혼태줄 생각이었다. 출정전에 당고종은 자신만만했다. 자그마한 토번이 예전에는 무릎꿇고 구혼을 청했는데, 이번에 대당이 명장을 보내니 아마도 깜짝 놀라서 오줌을 지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고종이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진다. 설인귀의 백전백승의 재능은 논흠릉과 싸우는 과정에서는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10만당군은 논흠릉에게 형편없이 무너진다. 당나라군대의 모든 양초와 장비를 빼앗겼을 뿐아니라, 많은 당군 장병이 포로로 잡힌다. 이리하여 설인귀는 신단에서 내려와 골짜기로 떨어진다. 평생 전쟁을 해왔던 설인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마지막에 이렇게 당할 줄은. 설인귀를 격패시킨 후, 청해서부는 완전히 토번의 손에 넘어간다. 그리고 논흠릉은 이 전투로 일거에 명성을 떨친다. 이후 당군은 그의 이름만 들어도 간담이 서늘해진다. 이 전투는 역사상 대비천(大非川)전투라 부르는데, 당군이 외적과 싸워서 가장 참혹하게 패패한 일전이다.


당연히 이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토번은 서역을 장악한 후, 계속 확장하여 전과를 공고히 하고자 한다. 그러나 당나라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여러번 군대를 파견하여 토벌한다. 이경현(李敬玄), 심례(審禮)등등이 차례로 나서지만 논흠릉에게 패배한다. 오랫동안 당나라조정은 그로 인해서 머리가 아팠다. 대장 배행검(裴行儉)은 일찌기 논흠릉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한 바 있다: "흠릉이 집권할 때는 대신이 화목하여 도모하지를 못했다." 이를 보면 논흠릉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을 때 당나라에 대한 위하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무측천 만세통천원년(696년), 논흠릉의 동생인 찬파(贊婆)가 토번병을 통솔하여 소라한산(素羅汗山, 지금의 洮州일대)에서 정벌하러 온 당군을 무찌른다. 당나라측 대장인 왕효걸(王孝傑)은 파면되어 서민이 되고, 누사덕(婁師德)은 원주원외사마로 좌천된다. 오랫동안 논흠릉은 당왕조의 악몽이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토번 내부에 내란이 일어나서, 토번 찬보는 논흠릉형제가 조정을 장악하여 자신의 통치에 위협이 된다고 보아 정변을 일으킨다. 논흠릉의 사람 2천명이 모조리 살해당하고, 나중에 논흠릉의 군대와 찬보의 군대가 격전을 벌이나 논흠릉은 패배하고 자살한다. 이때부터 대당은 걱정이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