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당)

천금공주(千金公主): 난세를 살아가는 법...

중은우시 2018. 3. 6. 16:01

글: 모운서(慕雲舒)


천금공주는 당고조 이연(李淵)의 딸이고, 당태종 이세민의 여동생이며, 당고종 이치의 고모이다. 그녀는 역사상 한가지 황당한 일을 저지른다.


683년, 당고종 이치가 죽고, 무측천이 태후가 되어 조정을 장악한다. 이때부터 이당종친에 대하여 첫번째 숙청을 시작하다. 종실근친으로 천금공주는 불안에 떨며, 살아남기 위하여 무측천의 숙청이 자신에게까지는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조카며느리인 무측천에게 면수(面首, 남총)를 바친다. 그가 바로 역사상 유명한 설회의(薛懷義)이다. 이리하여 무측천의 은총을 받아 위기를 넘긴다.


그후 무측천이 이당종친에 대한 숙청을 게속하면서 이당황실의 지위는 갈수록 낮아진다. 이당종친중 피살되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난다. 그러나 천금공주는 죽은 조카 이치에게 녹색모자를 씌워준 덕분에 아주 잘 살았다(중국에서 녹색모자를 씌운다는 것은 처가 바람났다는 것을 의미함)


690년이 되어, 무측천이 황제에 오르려는 생각이 드러난다. 그러면서 본가의 무씨가족중 두각을 나타낸 무승사(武承嗣), 무삼사(武三思)는 나머지 이당종친의 인물들을 제거하는데 더욱 매진한다. 다른 한편으로, 무승사와 무삼사도 경쟁자였다. 무측천의 나이가 이미 많아서, 황제로 그렇게 긴 기간을 있을 수는 없었고, 두 사람은 조카로서 후계자가 되는데 가장 유리했다. 그리하여 무승사는 자기가 과부가 된 무측천의 딸 태평공주(太平公主)를 처로 삼고 싶어 천금공주에게 다리를 놓아달라고 부탁한다. 이 일은 무측천도 동의한 일이었다. 그러나 성격이 강한 태평공주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태평공주는 모친이 뜻을 거역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았다. 끝까지 거부하면 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태평공주는 유약한 무씨자제인 무유기(武攸曁)를 선택한다. 그러나 무유기에게는 이미 처자식이 있었다. 태평공주가 억지로 시집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무유기의 처는 죽고 자식든 흩어지게 된다. 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자 천금공주는 무척 겁을 먹는다. 태평공주와도 원한을 맺었고, 무씨형제들과도 원한을 맺은 것이다.


무측천이 등극하기 전에 다시 한번 이당황실에 대한 숙청을 시작하려 했다. 이때 태평공주 및 무씨집안과 원한을 맺은 천금공주는 무척 겁을 먹고, 이번 숙청이 자신에게까지 화를 미칠까 겁낸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하여, 천금공주는 궁에 들어가 무측천을 배알한다. 그리고 무측천에게 모친으로 모시고 싶다고 간청한다. 자신을 딸로 받아들여 달라는 것이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이연의 딸인 천금공주는 원래 무측천에게는 고모뻘이다. 이번에 조카며느리를 자기가 모친으로 모시게 되면 일거에 본인은 배분이 세 단계나 내려가는 것이다. 다만,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천금공주는 그런 것까지 신경쓸 여지가 없었다. 


무측천의 입장에서는 천금공주를 딸로 받아들이면 자기와 이연이 동등하게 되는 것이니 황제를 칭하는데 유리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 요청을 받아들인다.


무측천의 권세가 하늘을 찌를 때, 대당이씨자제들은 주살당할 사람은 주살당하고, 다행히 살아남은 사람도 감옥에 들어가거나 유배를 갔다. 천금공주는 대당의 장공주로서 오히려 자신의 조카며느리를 모친으로 모시는 바람에 평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