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숙(劉夙)
요즘 들어, 일본과 관련된 문제라면 왕왕 정상적인 토론을 하기가 힘들다.
산동성 칭다오시의 중국과학원 해양연구소의 두 연구원인 선체봉(單體鋒), 방소군(逄少軍)은 아마도 전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일본 홋카이도대학의 부교수 요츠쿠라 노리시게(四倉典滋)와 공동으로 작성한 다시마의 기원에 관한 한편의 논문이 2017년 3월 웨이보로 인하여 돌은 인터넷에서 네티즌의 관심을 끌게 될 줄은.
그 글은 중앙인민라디오방송국의 1채널 '중국지성(中國之聲)' 프로그램의 공식웨이보에 올라왔다. 이 연구에 따르면 중국근해의 다시마는 일본의 홋카이도(北海島)에서 왔다고 소개한 후에 화사첨족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 "앞으로 다시마를 먹지 말아야 것인가?" 이 말은 즉시 많은 비판을 받았고, 심지어 욕설까지 들어야 했다. 일이 커지자 공식웨이보에서는 그 글을 삭제하고 끝낸다.
정상적인 과학연구에 대하여 아무런 이유없이 정치적인 색채를 덧붙이고 다시 그것을 여론전에 떠밀어 넣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정치화하는 일을 시작한 사람은 아무리 비판을 받아도 마땅하다. 아래에서는 우리가 가급적 정치와 관련된 일체의 것들을 배제하고, 순수히 다시마의 기원문제를 논의하도록 하자.
다시마: 식물(植物)이 아니어도 "작물(作物)"
다시마(학명 Saccharina japonica)는 생물학적으로 갈조류(褐藻類)에 속한다. 20세기 이전에, 생물학계는 통상적으로 모든 생물을 단지 동물과 식물의 둘로 나누었고, 다시마는 당연히 식물쪽에 속했다. 비록 1969년, 미국의 생물학자 R. H. Whittaker가 영향력이 아주 큰 "5계계통(五界係統)"을 내놓아 생물은 다시 분류하여 원핵생물(原核生物), 원생생물(原生生物), 균물(菌物), 동물(動物)과 식물(植物)의 5가지로 구분하자고 하였지만, 그는 여전히 갈조류를 식물로 분류하고 있었다. 분자방법이 널리 분류학연구에 도입된 후, 갈조류는 비로소 식물계에서 철저히 쫓겨나서,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들어본 적도 없는 "SAR생물"의 하나가 되었다.
갈조류 중에서 다시마는 다시마목(Laminariales)의 거의 100종에 이르는 대형 조류(藻類) 중 하나이다. 그중 대다수 종류는 남북반구의 극지에서 온대의 차가운 해수에서 자란다. 그리고 소수의 종류는 비교적 온난한 해역에서 자란다. 다시마목이 분포하는 해역주변, 연해주민들은 일찌기 그중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을 채취하였다. 예를 들어, 중국인들은 자고이래로 식용의 미역(裙帶菜, Undaria pinnatifida)와 곤포(昆布, Ecklonia kurome)를 먹었고, 유럽의 아이슬란드인, 스코틀란드와 아일랜드인은 북대서양에서 나는 해조(Alaria esculanta)를 먹어왔고, 칠레인은 남태평양에서 자라는 Bull kelp(Durvillaca antarctica)를 샐러드와 채소찜요리에 사용했다.
그러나, 대형해조인 다시마목을 가장 즐겨먹는 민족은 역시 일본인일 것이다. 중국인들도 미역(일본한자로 '若布')와 곤포(일본한자로 '黑布')를 먹는 외에 일본인들은 활엽미역('廣布)', 강곤포(Ecklonia cava, "搗布'), 우엽조(Eisenia bicyclis, '荒布')와 다시마속(Saccharina, 일본한자의 '昆布', 중국한자의 '昆布'와 다르다)의 여러 종류가 있다. 다시마목뿐아니라, 일본인들이 먹는 해산물에는 다른 갈조류, 홍조류가 있다. 이는 '바다에 의존하여 바다를 먹고 한다'는게 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야생식물자원은 유한하다. 만일 식재료를 풍부하고 안정적으로 공급받으려면 인공양식을 해야 한다. 해조류를 가장 잘 먹고 많이 먹는 일본인들은 가장 먼저 해조류를 양식한 민족이기도 하다. 17세기, 그들은 홍조류에 속하는 김(海苔)과 석화채(石花菜)를 약식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18세기부터, 다시마도 양식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일본 혼슈(本州)의 최북단인 아오모리현(靑森縣)에는 이마베츠쵸(今別町)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 본각사(本覺寺)라는 절이 있다. 현지 전설에 따르면, 18세기초 본각사의 주지스님인 데이덴쇼닌(貞傳上人)은 어민들이 바다로 나가서 물고기를 잡는 생활이 힘들다는 점을 생각하여 자주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독경을 했다. 한편으로 경을 읽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문을 적은 돌을 바다로 던졌다. 나중에 이 돌맹이에서 다시마가 자랐다. 그리하여 데이덴쇼닌은 투석법다시마양식의 창시자가 된다. 이 전설이 반드시 사실은 아닐 것이다. 다만 최소한 19세기에 일본의 다시마양식은 이미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비록 다시마가 지금은 식물로 보지 않고 있지만, 그것을 '작물'로 부르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중국의 다시마가 일본에서 왔다는 것은 지금까지 부인된 적이 없는 사실이다.
다시마는 전형적인 냉수성(冷水性) 해산물이다. 수온이 20도를 초과하면 살 수가 없다. 분자시대 이전에, 다시마의 천연적인 분포해혁은 주로 일본 혼슈섬 북부, 홋카이도주변 및 러시아의 사할린섬 남부이고, 러시아의 극동연안에서 한반도 동해안 북부에도 소량 분포했다. 중국해역에는 원래 다시마가 없었다.
당연히, 중국의 고대서적에 다시마에 관한 기록이 확실히 있다. 남조 양나라의 도홍경(陶弘景)이 주석한 <명의별록(名醫別錄)>과 당나라 이순(李珣)이 쓴 <해약본초(海藥本草)>에는 모두 '곤포(昆布)'를 기록하고 있다. 앞의 책에서는 그것이 "지금은 오로지 고려(高麗)에서 나온다"고 하였고, 뒤의 책에서는 "신라(新羅)에서 나온다"고 적었다. 고려와 신라는 모두 한반도의 고대국가이다. 이들 산지와 다시 두 책에서 곤포의 형태와 용도를 묘사한 것을 보면 여기에서 말하는 곤포가 다시마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중국고대서적에서의 "곤포"가 반드시 다시마는 아니다. 지금 알고 있는 최초의 "곤포"에 관한 저작은 삼국 위나라 오보(吳普)의 <오보본초(吳普本草)>인데, 그 안에는 곤포가 "윤포(綸布)"의 별칭이라고 적었다. 이시진(李時珍)의 고증에 따르면, "윤포"는 바로 <이아(爾雅)>에 나오는 "륜(綸)"이다. 즉 중국동부해역이 원산지인 해조이다. 이시진의 <본초강목>의 부도(附圖)등 증거에 따르면, 중국해조학연구의 창시자중 하나인 증정규(曾呈奎)는 이런 "동해에 있다"는 "곤포"는 아장채(鵝掌菜)라고 본다. 그의 주장으로 조류학계는 현재 곤포를 아장채의 정식 중문명칭으로 삼는다.
송나라때부터, 본초서에서 다시 "해대(海帶, 지금의 다시마를 가리키는 중국명칭)"라는 명칭이 나타난다. 이는 동부해역에서 난다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증정규는 고증을 거쳐, 이들 소위 '해대'는 실제로는 대엽조(大葉藻, Zoster marina) 혹은 하해조속(蝦海藻屬, Phyllospadix)류의 해생피자식물로 보았다(산동일대의 민간은 여전히 그것을 '해대초(海帶草)'라고 부른다). 지금의 우리가 말하는 다시마는 아닌 것이다.
1920년대가 되어서 비로소 다시마는 처음으로 중국의 북방연안에 들어온다. 증정규의 조사에 따르면, 최초의 다시마는 홋카이도와 혼슈섬북부에서 별생각없이 다렌(大連)의 해안으로 가져왔고, 해저에서 자연적으로 번식에 성공했다고 본다. 1930년, 오오츠키 요시로(大槻洋四郞)라는 학자가 다롄에서 자라는 다시마를 고찰한 후, 여기에서 다시마양식업을 발전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특별히 홋카이도의 하코다테(函館)에서 새로운 다시마종류를 도입하여 정식 양식을 시작한다. 오오츠키 요시로는 다시마양식에 혁신을 이루어, 전통적인 투석법양식을 벌식(筏式)양식으로 바꾼다. 이는 다시마를 해면에 뜬 부벌(浮筏)에 고착시키고 해저의 암석에 고착시키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원가를 낮추고, 생산량을 늘일 수 있었다. 그의 노력하에 중국은 금방 일본을 추월하여 일약 다시마양식 1위국가가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이런 새로운 식용해조류는 '다시마(海帶)'라는 이름을 독점하게 된다.
일본이 패전한 후, 오오츠키 요시로는 계속 산동 얜타이와 칭다오에서 일한다. 1949년이후 산동대학 수산학교 교수로 지내고, 1953년에야 비로소 귀국한다. 바로 그의 가르침아래, 증정규를 포함한 중국의 수산과학자들이 다시마 벌식양식기술을 확보하게 되고, 계속 개선하여, 최종적으로 중국의 신선한 다시마생산량이 오늘날에는 200만톤을 넘게 만들고, 집집마다 모두 알고 있는 보통의 채소가 되도록 하였다.
결론적으로, 다시마는 중국에 들어온지 100년도 되지 않은 해산물이다. 무에서 유로의 발전과정은 분명하게 역사기록으로 남아 있다. 비록 모두 알고 있는 원인으로, 오오츠키 요시로의 중국다시마양식에 대한 탁월한 공헌이 고의로 희석되고 무시되기도 하지만 최소한 지금까지 중국 다시마의 기원이 일본이라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어 있다.
먹을 거리를 만들어주는 좋은 연구가 이렇게 선전될 수 있다니.
특별한 지리적 위치로, 일본은 근 백년이래 해양과학대국이며 해산물양식대국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아지노모토(味精)의 발명도 다시마와 관련이 있다. 1907년, 일본 도쿄제국대학(현재의 도쿄대학)의 교수인 이케다 기쿠나에(池田菊苗)는 다시마국물의 신선한 맛의 근원을 찾다가 L-글루탐산 나트륨이라는 화학물질을 발견한다. 다음 해, 그는 자신의 발견에 특허를 신청하고 이 물질에 통속명칭인 "아지노모토'(味精, 출시후의 상표명에는 味之素라고 붙였다)라고 이름짓는다. 이는 "일본의 10대발명"중 하나라고 일컬어지는 조미료이 발명이다. 그러나, 비록 아지노모토가 일본의 오리지날 발명이기는 하지만, 그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요리는 중국요리이다. 지금 중국이든 외국이든, 중국요리에서 아지노모포를 빼면 남는게 없다고 말한다. 서방에서는 일찌기 "중국음식증후군"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는데, 이는 중국요리를 먹은 후에 나타나는 신체불량반응이다. 전해지는 바로는 이것은 바로 아지노모토때문이라고 하였다. 당연히 후속연구에 따르면 이런 중국음식증후군은 존재하지 않고, 아지노모토는 아주 안전한 식품첨가제이다.
일본의 해조학연구가 아주 발달되어 있고, 다시마의 원산국중 하나이기 때문에, 중국학자들은 다시마를 연구할 때 자주 일본학자들과 협력한다. 이는 원래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2015년, 마찬가지로 중국과학원 해양연구소의 연구원인 단덕린(段德麟)과 요건정(姚建亭)등은 홋카이도대학의 나가사토 치사코(長里千香子), 모토무라 타이조(本村泰三) 및 한 러시아학자와 협력하여 분자증거를 이용하여, 야생다시마가 유전적으로 2대 가계(家係)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 중 한 가계는 주로 홋카이도주변에 분포하고, 다른 한 가계는 사할린섬 남부에 분포한다. 그리고 둘 사이에는 소야(宗谷)해협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명확히 분화된 것을 보면 해류가 해조의 번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에 주목을 받은 논문은 마찬가지로 분자수단을 이용하여, "중국다시마가 일본에서 왔다"는 정설을 분자방면에서 상세히 증명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연구소가 채취한 샘플을 보면, 중국근해의 야생과 양식 다시마의 친척관계는 확실히 홋카이도서부의 야생 다시마와 가깝다. 그러나, 중국의 여러 다시마들은 친근관계가 아주 가깝고 유전인자도 단일하다. 이미 일본이 야생 다시마와는 명확히 구분될 정도이다. 다시마유전의 단일화는 품질의 퇴화를 가져올 뿐아니라, 글로벌기후변화, 해온의 변화라는 위협 속에서 다시마양식에 큰 리스크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일본에서 다시 새로운 다시마품종을 도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야생 다시마의 풍부한 유전다양성으로 중국 다시마를 개량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이 가격싸고 맛좋은 해산물이 시종 중국의 식탁에서 독특한 색과 향과 맛을 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원래 이는 중일양국의 해조연구자들이 먹거리를 충분히 제공하기 위하여 종사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연구활동이다. 정상적인 사고라면, 사람들의 논의 방향을 미식(美食)으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이들 묵묵히 먹거리를 위하여 노력하는 연구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길일 것이다. 양국의 정치문제를 끌고 들어오는 사람은 모두 양심불량인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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