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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과 일본

중일관계를 분석한다.

by 중은우시 2014. 10. 4.

글: 항소개(項小凱)

 

중소국경분쟁이 끝난 3년후인 1972년 일본수상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는 중국을 방문한다. 지연정치(地緣政治)는 중일관계를 좌우하는 주요요인이었다.

 

APEC 2014년 정상회담은 11월에 베이징에서 개최된다. 그때 중국지도자 시진핑이 아마도 일본수상 아베신조(安倍晋三)와 만날지도 모른다. 이것은 가능한 사건이다. 중일관계의 변화를 관찰하는 중요한 창구가 될 것이다.

 

2012년 12월 26일, 제2차아베내각이 정식 조각된 이래로, 중일양국의 지도자는 거의 2년의 시간동안 정식으로 국교방문한 적이 없을 뿐아니라, 여하한 다른 경우에도 만나서 회담한 적이 없다. 이런 상황은 중일같은 가까운 이웃대국사이에서는 확실히 통상적인 일이 아니다.

 

실제로, 중일양국의 관게는 20여년이래 가장 열악한 시기에 처해 있다. 일본의 <언론NPO>와 중국일보가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에 다르면, 중국의 1500여명의 인터뷰대상자중에서 일본에 부정적인 견해를 지닌 사람이 87%를 점했고; 일본의 1000명의 인터뷰대상자중에서 중국에 부정적인 인상을 지닌 비율은 93%에 달했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조성한 주요한 원인은 영토분쟁, 정부행위 및 역사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이다.

 

중일관계가 현저히 악화된 것은 2012년부터이다. 그해 4월, 도쿄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등은 앞으로 도쿄도정부가 나서서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제도, 계약에 따르면 사키타마현의 개인소유임)를 구매하겠다고 발표했다. 중일도서분쟁이 신속히 무대의 전면에 등장한다. 중국정부의 반응을 우려하여, 일본내부에는 찬반양론이 형성된다. 다만 섬구매를 지지하는 측이 명백하게 더 우세했다. 8월 15일, 홍콩어선 <계풍2호(啓豊二號)>가 댜오위다오에 도착하고, 7명의 선원이 성공적으로 상륙하여 일본에서는 큰 파란이 일어난다. 당시 일본수상을 맡고 있던 노다 요시히코는 사태를 종결하기 위하여, 최종적으로 20.5억엔의 가격으로 섬을 국유로 구매하기로 결정한다.

 

이는 중국측의 강렬한 반응을 불러 일으킨다. 9월 15일에서 18일까지의 며칠동안, 중국은 50개이상의 도시에서 대규모 반일시위가 벌어진다. 그중 몇개도시의 시위는 규모가 만명을 넘었다. 이 기간동안 중구에서는 여러번 점포방화, 차량파괴, 상해등 폭행사건이 벌어진다.

 

2012년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은 최근의 중일관게 방향을 가르는 분수령이었다. 다만 중일관계의 복잡성은 여러가지 더욱 깊은 층면의 요소가 포함된다. 종합적으로 말해서, 중일관계는 역사, 경제, 그리고 정치의 3개분야의 요소가 종합적으로 영향받는다.

 

중일양국의 역사문화는 상대방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고대에, 일본은 중국의 문자와 일부 단어를 빌려 썼고, 그것을 원래의 언어와 혼합하여 독특한 언어 문자시스템을 만들어 낸다. 근대에는 일본이 먼저 서방문화를 받아들여, 여러 현대서방용어를 일본한자로 번역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중국에 전래된다. 이를 통하여 중국의 근대화과정이 가속화된다. 현재도, 통계에 따르면 3000개의 상용중국한자단어 예를 들어, 자유, 민주, 사회, 과학등등은 모조리 일본에서 '역수입'된 것이다. 중일양국은 문화방면에서 아주 높은 친근성이 있다.

 

19세기후반, 일본은 신흥민족제국으로 성장하고 군국주의를 확장하는 길을 걷는다. 그 시기에 날로 쇠약해가던 청나라건, 건립후 막 걸음을 떼고 있던 민국정부이건 모두 일본의 침략에 고통을 겪는다. 이런 상황은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지속된다.

 

과거의 침략사는 자주 중일관계에서 마찰을 일으키는 표면적인 분쟁의 이슈가 된다. 다만 역사문제는 중일충돌관계에서 가장 표면적인 하나의 요소이다. 마찬가지로 일본으로부터 침략받은 기억이 있는 다른 국가지구들 예를 들어 대만,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네시아등등은 현재 중국의 반일감정같은 것을 나타내지 못한다. 설사 영국과 독일, 미국과 일본괕은 2차대전시기에 참혹하게 싸웠던 이전의 원수국가들도 역사의 전쟁기억을 현재의 인상이나 정서에 대입시키지 않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의 대부분시기에 중국의 대일관계는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때, 중국TV는 <배구여장>, <혈의(血疑)>, <일휴(一休)>들 일본드라마를 방영했다. 정부이건 민간이건 모두 보편적으로 친일적인 태도를 보였다. 당시의 공식매체에서 역사문제를 내세우지도 않았고, 기본적으로 댜오위다오같은 류의 영토분쟁이슈도 나오지 않았다.

 

실제로, 지연정치야 말로 중일관계를 좌우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1980년대 중일밀월의 배경은 중소관계가 악회되어 있었고, 덩샤오핑등의 주도하는 정부는 중국의 구경제매커니즘에서 하루빨리 벗아나고자 했고, 세계경제체제에 편입되고자 했다. 일본은 미국민주진영의 동북아에서의 교두보이다. 한편으로 미국의 전략의도를 받고,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지연관계를 개선해야할 동기가 있었다. 일본정부는 일찌기 중국에 대량의 ODA자금을 원조했다. 이는 이런 외교전략의 구체적인 집행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89년사건은 중국이라는 독재정부가 직면한 거대한 통치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소련의 해체는 독재국가의 생존위기를 더욱 드러내 주었다. 그리고 지진의 방식으로 격렬하게 지연정치의 판의 국면을 뒤흔들었다. 결과적으로, 중국이 실제로 전소련의 위치를 차지한다. 그리하여 자유민주질서에 최대의 잠재적인 도전자로 등장한다. 중일양국의 해상경계선은 점차 지연의 정치판이 충돌하는 새로운 하나의 지대가 된다. 중일관계의 기본추세는 이렇게 변한다. 역사분쟁, 영토분쟁등 여러 충돌이 연이어 수면위로 등장하여 중일마찰의 일상적인 이슈가 된다.

 

그러나, 정치문제는 전면적으로 중일관계의 추세를 결정하지 않았다. 경제문제도 쌍방이 고려해야할 관건적인 요소였다. 89년사건이후, 비록 양국은 정치적 입장에서 이견이 날로 명확해진다. 동시에, 중국공업화의 추진으로 중일은 경제상호발전의 호기를 맞이한다. 중국은 외국의 자금과 기술이 급하게 필요했고, 일본의 기업도 원가를 낮추고 신흥시장을 개척하고자 했다. 양국의 문화와 지리의 접근성은 경제관계발전의 중요 추진력이 된다. 이 시기에 '정냉경열(政冷經熱)'이 중일관계의 기본국면이었다.

 

2010년이 되면서, 중국의 GDP가 일본을 처음으로 추월한다. 일본을 대체하여 중국은 미국의 바로 다음가는 경제대국이 된다. 일본은 인구노령화등의 원인으로, 경제가 침체되고 양국의 경제는 선명하게 대비되었다. 중일양국은 제조업등 분야에서 경쟁을 벌이는데 날로 치열해진다. 쌍방의 무역총액이 한때 하락하기도 했다. 그리고 일본의 대중투자도 급격히 감소한다.

 

다른 한편으로, 2010년말에 발생한 일련의 북아프리가민주화혁명은 중국에 영향을 미친다. 2011년 중국의 여러 대도시에는 민중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자스민산책'이 일어난다. 중국당국은 민간운동을 엄중하게 탄압하는 동시에, 자신의 정책을 조정하여 국가기구를 더욱 강화하고 사회의 반항충돌을 압제한다. 이 일련의 조정과정에서 대외적으로 강경한 외교태도를 보이고 이는 새로운 국가의 길에서의 중요한 구성부분이 된다.

 

장기적으로 보면, 중국의 신극권국가의 길은 반드시 지연정치국면을 새로 만들 필요가 있다. 이는 과거에 미일이 주도한 아시아민주질서에 직접적인 중대한 도전이 된다. 중일양국은 국가도로와 발전전도에서 조화될 수 없는 핵심적인 이익충돌리 존재했다. 이 본질적인 충돌요소는 앞으로 미래 중일관계추세의 주선(主線)이 될 것이다.

 

다만 동시에, 중일쌍방은 경제분야에서 상대방에 어느 정도 의존하고 있다. 쌍방은 여러 산업에서 아주 광범위하고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으며 단기간내에 서로 떨어질 수 없다.이런 경제적 관계는 어느 정도 중일관계가 신속히 악화되는 것을 완화시켜준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완충작용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각종 표면적인 역사이슈는 계속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도구'역할을 하면서 각종 정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갈 것이다. 이렇게 예견할 수 있다. 이익을 생각하는 경제협력동기는 깊은 층면의 핵심이익춫돌을 해소시킬만하지 못하다. 일단 양국의 경쟁강도가 어느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 아마도 신속히 통제하기 어려운 동아시아의 냉전으로 팽창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미국이 극력 회피하고자 하는 국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