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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홍루몽

홍루몽의 작자는 누구일까?

by 중은우시 2016. 10. 12.

글: 사류석(謝流石)


홍루몽의 작자는 누구인가? 2,3백년동안 여러가지 설미 많이 나와서 하나로 모여지지 못했다.


청나라때의 유서(裕瑞)는 <조창한필(棗窓閑筆)>에서 이렇게 말했다. 듣기로 <풍월보감>이라는 책은 <석두기>라고도 하는데, "누가 썼는지 모른다." 조설근이 그것을 삭제하고 고치고 윤색했으며, 그의 숙부인 지연재(脂硯齋)가 비주(批注)를 달았으며, 이름을 <홍루몽>으로 구쳤다. 그는 초본(抄本)을 본 바 있다.


정위원(程偉元)은 소주 사람으로 출판상이다. 일찌기 세번 <홍루몽>을 인쇄출판한다. 그가 출판한 <홍루몽> 정갑본(程甲本), 정을본(程乙本)의 각본의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홍루몽>소설의 본명은 <석두기>이다. 작자는 서로 다르게 전해진다. 알아보았지만 누가 썼는지 알지 못했다. 단지 책안에 설근 조선생이 여러번 삭제하고 고쳤다고 되어 있다." 보기에 그도 조설근이 작자인지 아닌지 자신이 없었던 것같다. 지평본(脂評本)의 겉면에는 단지 지연재중평석두기(脂硯齋重評石頭記)>라고만 되어 있고, 조설근의 이름은 없다. 그리고 또 문제가 있다. 지연재의 비주는 서로간에 모순이 많다. 지연재 비주는 아마도 날조된 것일 것이다.


호적(胡適)은 이렇게 생각했다. <홍루몽>의 작자는 조설근이다. 그는 1921년에 <홍루몽고증>을 발표한다. 그리고 <홍루몽> 전80회는 조설근이 쓴 것이고, 후 40회는 고악(高鄂)이 이어서 쓴 것이라고 인정했다. 이 견해는 이미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계속하여 의문이 있어왔고, 오늘날까지도 의문의 목소리는 끊긴 적이 없다.


필자의 시나웨이보상의 친구인 시인지아 학자가 있다. 그도 홍학을 연구하는데, 홍루몽의 작자는 조설근이 아니라 명말청초의 대시인 전겸익(錢謙益)이라고 했다. 그의 논문을 볼 필요도 없이, 시가애호가로서 <홍루몽>의 작자가 시인이라는 견해에는 찬동한다. 왜냐하면 이 책을 읽으면 책안에 그렇게 많은 아름다운 시가를 담았고, 시가이론을 적은 것도 아주 적절하여, 작자의 시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홍루몽의 작자를 판단하는 첫번째 조건은 반드시 뛰어난 시인이어야 한다고 본다. 둘째는 반드시 고관이거나 혹은 고관가정출신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제왕같은 생활광경을 구체적으로 쓰려면 그 속에서 생활하지 않고서 상상만으로 써내기는 아주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홍학연구자달은 일반적으로 문본(文本)과 판본비주(版本批注)와 가타 이 책을 언급한 자료를 보고  진짜 작자를 판단하고 추적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설은 없다. 그래서 아직은 하나의 수수께끼라 할 수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홍루몽의 작자가 조설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견해는 최소한 수십가지이다. 아래에 55가지 조설근이외의 작가 목록을 소개한다.


1. 길림성 토목열 교수는 작자가 명말청초의 극작가 홍성(洪晟)이라고 본다.

2. 북경임업대학 인문학원 주건군 교수는 명혜제 주윤문이라고 본다.

3. 온문은 숭정제로 본다

4. 진현부는 방이지(1611-1671)로 본다

5. 대만도민 왕이안은 모양(1611-1693)으로 본다

6. 왕몽완은 순치제(1638-1661)로 본다

7. 주강병은 이어(1611-1680)로 본다

8. 풍작회는 임운명(1628-1697)으로 본다

9. 곽려는 조용(1613-1685)으로 본다

10. 왕교림은 고경성(1621-1687)으로 본다

11. 이명조는 장대(1597-1679)으로 본다

12. 무순의 부파, 종장산은 명말청초의 시인 오위업(1609-1672)으로 본다

13. 손유중은 진홍수(1599-1652)로 본다

14. 조영상은 주자랑(1629-1644)으로 본다

15. 이명조는 사계좌(1601-1676)로 본다

16. 하신은 납란성덕(1655-1685)으로 본다.

17. 위염춘은 오교(1611-1695)로 본다

18. 마흥화는 주유련으로 본다

19. 두홍헌은 만사동(1638-1702)으로 본다

20. 미국인 철안은 엄승손(1623-1702)으로 본다

21. 조국동은 정극상(1670-1717)으로 본다

22. 정허문은 포송령(1640-1715)으로 본다

23. 장지견은 조집신(1662-1744)으로 본다

24. 포진은 홍승(1645-1704)으로 본다

25. 카나다인 최호강, 손혜민은 조왈위(1671-1706)로 본다.

26. 종운소는 석도(1642-1707)로 본다

27. 원등화는 조인(1658-1712)으로 본다

28. 진림은 조부로 본다

29. 유동순은 조옹(1689-1714)으로 본다

30. 이설비는 조석으로 본다

31. 대불범은 조죽촌으로 본다

32. 유윤위는 조연으로 본다.

33. 서내위는 조안으로 본다

34. 장걸은 조기로 본다

35. 장방은 묵향으로본다

36. 제옥서, 이신전은 홍석(1694-1742)으로 본다

37. 주전수는 홍효(1722-1778)로 본다

38. 손화천은 홍교로 본다

39. 장국진은 윤잉(1674-1725)으로 본다

40. 울래우는 윤제(1688-1755)로 본다.

41. 왕성기는 옹정제(1678-1735)로 본다

42. 진전곤은 영용(1743-1790)으로 본다

43. 장우림, 정려평은 영침으로 본다

44. 이홍기는 돈성(1734-1791)으로 본다

45. 유종옥은 방포(1668-1749)로 본다

46. 진지엽은 고점으로 본다

47. 장등유는 이산으로 본다

48. 마효랑은 마기로 본다

49. 사지명은 사재조로 본다.

50. 왕희산은 설향옥으로 본다

51. 호영영은 진옥으로 본다

52. 진붕비는 조일사로 본다

53. 곽국령은 유혜란으로 본다

54. 동력군은 정일흥으로 본다.

55. 봉관은 고란서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