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문학/홍루몽

홍루몽은 왜 겨우 80회뿐인가?

중은우시 2018. 2. 19. 16:37

글: 주옥기(周玉琪)


<홍루몽>은 미완성의 책이다. 좋은 작품이라면 완성되었건 아니건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음악가들이 남긴 가장 좋은 교향곡도 미완성인 경우가 많지 않은가? 많은 회화작품도 반드시 완성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도 완성하지 못하긴 했지만, 기실 쓸만큼 쓰고 떠날 때쯤에 떠난 것이다. 소설을 다 쓰지 않았으므로, 시간도 다 흐르지 않았고, 인생도 다 끝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인생에서 다음번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홍루몽의 속편을 쓰는 사람은 모두 <홍루몽>을 읽은 후에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후로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가보옥(賈寶玉)은 최후에 누구와 결혼할까? 등등.


그래서 어떻게 하든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고악(高鶚)과 정위원(程偉元)이 보완해서 쓴 후반사십회는 건륭년간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받아들인 '결말본'이 되었다.


만일 여러분이 장애령(張愛玲)의 <홍루몽염(紅樓夢魘)을 읽는다면, 장애령이 고악에 대해 전혀 인정사정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홍루몽>을 읽다가 81회가 되니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확실히 80회이전과 80회이후의 쓰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가장 두드러진 예를 하나 들어보자. 80회이전에 임대옥(林黛玉)이라는 이 중요한 여주인공에 대하여 그녀가 등장할 때면 그녀가 무엇을 입늕;, 무엇을 차고 있는지 전혀 묘사하지 않았다. 임대옥은 꿈처럼 돌연 왔다가 돌연 사라진다. 약간은 우리가 말하는 봄날이 꿈과도 같고 봄날의 아지랑이와도 같은 감각이다.


80회이후 임대옥에 대하여 의복도 묘사하고, 얼굴의 오관도 묘사한다. 이것은 아주 큰 차이이다. 왕희봉(王熙鳳)은 등장하자마자 작자가 그녀가 입은 옷이 무엇인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현실 속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대옥은 하늘에서 내려와서 사람들과 한바탕 놀고는 다시 사라지는 여인이다.


그녀가 떠나고 나서, 네가 그녀를 기억하려고 하면, 그녀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달빛과도 같이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배가 지나간 자리에 물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느낌과 같은 것이다.


임대옥의 존재는 일종의 심령적인 존재이다. 물체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81회를 읽어보면, 돌연 임대옥의 옷에 색깔이 있고, 몸에 무엇을 차고 있는지를 얘기한다. 확실히 작자의 수준이 앞의 작자보다 많이 뒤쳐진다.


이는 장애령이 후반에 보완한 부분을 이렇게 비판한 원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래도 고전소설에서 임대옥을 죽게 하고, 설보채(薛寶釵)는 가보옥과 결혼하게 하여 한편으로 혼례음악이 흐르고, 다른 한편에서는 원고를 불태우며 치정을 끊은 임대옥이 죽는 이런 비극성과 희극성을 대비시킨 것은 잘 썼다고 본다.


<홍루몽>이 마지막 결말이 어떠했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마지막에 가보옥이 결혼하는 것은 사상운(史湘雲)일 것이라고 얘기한다. 왜냐하면 어느 회인가 제목에 "인기린복백수쌍성(因麒麟伏白首雙星)"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사상운은 금기린을 갖고 있다. 금옥양연(金玉良緣)은 가보옥이 입에 물고 있던 그 옥과 사상운이 몸에 지니고 있던 금기린이다. 그들이 마지막에 결혼해서 금옥양연을 이룬다는 것이다.


"인기린백수쌍성"의 '백수(白壽)'는 바로 부부가 백년해로한다는 의미이다. 이것도 홍학의 고증에 속하는 문제이다. 누구도 진정한 결말이 무엇일지는 알 수가 없다.


만일 작자가 쓰려는 것이 자신이 꿈속에 본 것이라면, 번화도 원래는 한바탕 꿈이다. 그는 아마도 근본적으로 결말이 어떻게 될지를 신경쓰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저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생명 가운데, 권력, 재부, 애정은 전부 헛된 것이라고.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헛된 것을 알면서도 집착을 한다. 아는 것은 아는 것이고, 집착은 집착이다. <홍루몽>이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분명히 모든 것이 헛된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매순간 또 집착을 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