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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삼국)

적벽대전의 다섯가지 수수께끼

by 중은우시 2016. 8. 14.

글: 정정(丁丁)





삼국정립의 전투이자 삼국시대 3대저명한 전투중 하나인 적벽대전은 중국역사상 하나의 수수께끼이다. 주로 다섯가지 방면에서 해결되지 않는 점이 있다. 첫째, 조조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병력을 데리고 출정했을까? 조조 스스로는 83만대군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학계에서는 23만대군정도로 보고 있다. 다만 조조의 부하중 고위장수는 거의 모두 출정했고, 또한 거의 모든 모사(순욱제외)를 데리고 갔다. 이것은 사실이다. 둘째, 손류연합군이 조조에 대항했다고 하는데, 왜 주유가 지휘하는 3만군대가 전투에 참여한 것을 제외하고 유비측과 관련해서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일까? 셋째, 조조측의 손실이 도대체 얼마일까? 현재 일반적으로는 과반수가 사상당했다고 보는데, 왜 쌍방은 모두 중요한 장수중에는 한 명도 죽은 사람이 없을까? 이처럼 거대한 전쟁에서 이런 일은 거의 발생할 수 없는 것같다. 관도지전이건, 한중지전이건, 관우가 일으킨 강릉전투이건, 아니면 나중의 이릉전투이건, 여기에 육손이 북벌할 때의 가정전투이건, 아니면 제갈량이 일으킨 북벌전쟁이건 각측은 희생된 저명한 장수들이 제법 많다. 그런데 이처럼 영향이 큰 적벽대전에서는 왜 장수가 한 명도 희생되지 않은 것일까? 넷째, 이 전투이후 조조는 왜 북으로 돌아간 후 다시는 적극적으로 남하하지 않은 것일까? 다섯째, 이 전투는 도대체 얼마나 오래 싸웠을까?


이상의 천고의 수수께끼를 해결하려면 기실 먼저 전쟁이 도대체 얼마나 오랜 기간동안 지속되었는지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적벽대전은 208년에 발생한다. 이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또한 <삼국지>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다만 208년 7월에 조조는 남하하고, 9월에야 신야(新野)에 도착한다. 이때 유종(劉琮)이 투항하고, 조조는 유종의 투항을 받는 문제에서 의사결정을 못하고 있었다. 유종이 부절을 보내오고나서야 그의 투항을 믿는다. 그 후에 유종에게 관직을 주어 다른 지방에 보낸다. 청주자사(靑州刺史). 여기에도 분명 시간이 어느 정도 들었을 것이다. 그 후에야 장판파의 격전이 일어난다. 이 전투는 비록 작았고, 유비가 대패하여, 겨우 수십기의 인미로 도망쳤고, 유비의 마누라와 아이들의 목숨도 하마터면 잃을 뻔했다가 나중에 두 딸을 잃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최소한 조조대군의 남하시간을 어느 정도 막아냈을 것이다. 이 단계에서 조조는 형주의 인심을 안정시켜야 했고, 형주의 관리들의 직무를 다시 배분해야 했다. 이런 인사임명은 아주 복잡한 일이다. 거기에도 시간이 제법 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조조가 진정 손권과 대치한 시간은 빨라야 십월 이후이다. 이 때 막다른 골목에 몰린 유비는 할 수 없이 제갈량을 동오에 사신으로 보낸다. 이때 조조는 이미 전서(戰書)를 보낸다 손권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하의 중요모사인 장소(張昭)는 투항파이다. 그는 조조에 투항할 것을 주장한다. 손권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유종과 같은 결말을 맞이하는 것이다. 비록 여전히 지방관리이겠지만 지금처럼 강동을 할거하여 일파를 이루는 군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때 제갈량이 동오에 사신으로 오고, 게다가 노숙, 주유같은 주전파가 극력 주장하여 비로소 손권은 조조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다. 그동안 조조는 기다렸다. 손권이 부하들과 협의하는데 일정한 시간을 기다려 주었다. 하물며, 손권이 최종적으로 결심을 내린 것은 전선에 나가 있던 주유를 불러들여 만난 후에 비로소 내린 것이다. 당시, 주유가 전선에서 돌아오는데는 최소한 며칠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조조와 손권이 최종적으로 전쟁대치를 시작한 시점은 십일월일 것이다. 역사상 정의된 적벽대전은 208년이다. 즉 적벽대전의 전후를 게산해보면 2달이 되지 않는다. <삼국지>의 기록에 따르면, 십이월 손권은 다시 합비전투를 일으킨다. 이렇게 계산해보면 적벽대전은 십일월에 발생한 것이다.


<삼국지>의 적벽대전에 대한 기술은 상당히 간략하다. <조조전.에는 겨우 몇 자이다. <촉지>에는 아예 기록이 없다. 다만 <오지>에는 명확히 기록하고 있다. 그것도 짧아서, 근본적으로 관도지전, 이릉지전과 나란히 비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삼국정립을 결정하는 전투인 적벽대전은 그저 한번 싸워서 바로 해결되는 그런 것이었다. 아마도 하루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을 수 있다.


왜 삼국정립의 전투인 적벽대전이 한번의 전투로 문제를 해결하였을까? 그런데도 어떻게 영향이 이처럼 깊고, 조조대군이 과반수가 사상당했으며, 조조가 이후 남하할 수 없게 되었을까? 이것이 바로 적벽대전의 천고의 수수께끼이다.


기실, 적벽대전이 일전으로 승부가 결정되고, 일전으로 조조가 일패도지한 근본원인은 3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조조는 군대사용측면에서 큰 문제가 있었다. 조조대군은 원래 북방군대이다. 수전은 해보지 않았다. 다만 조조는 유종의 수군을 얻었다. 현재 주류학자의 분석에 따르면 이들 수군이 10만이상이다. 조조는 그 중 8만수군을 군대료 편입하여 손류연합군의 부대를 공격하는 주력이 된다. 조조는 이 방면에서 엄중한 잘못을 저질렀다. 유종의 수군에 전투력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유종의 수군이 현재 조조의 수군이 되었는데, 이들 수군은 조조를 위하여 목숨을 바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 근본원인이다. 구월이 이 부대를 거두어 들이고, 십월에 군대에 편입시켰으며, 게다가 주력이 되어서 선봉에 섰는데, 이들 군대는 겉으로 보기에는 위풍당당하고, 표면적으로는 조조의 군대이지만, 조조가 분명히 생각지 못한 것이 있다. 이들 군대가 전쟁터에서 창끝을 거꾸로 들면, 그 영향이 얼마나 클지라는 점이다.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사용한 군대는 전부 합쳐서 23만가량이고, 이들 8만의 유종군대는 결국 조조의 모든 부대의 전투력을 일거에 없애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조조대군이 일거에 패배한 주요 원인일 것이다. 그래서 조조의 수하 모사가 아무리 큰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마도 이 방면의 문제를 조조에게 일깨워주지 않았던 것같다.


둘째, 조조는 남방의 겨울이 북방보다 더 춥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것같다. 남방의 겨울 기온은 북방보다 낮지 않지만, 남방의 겨울은 습냉(濕冷)하다. 북방인들은 그 추위에 두려움을 느끼고 손을 꺼낼 수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겨울에 남방에서 손권부대와 전투를 벌이는 것은 불리하다. 왜냐하면 사병들은 무기를 드는 것조차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어느 정도 시간을 예열해야한다. 전쟁을 벌이는데 예열할 시간적 여유가 있겠는가. 일거에 갑옷을 잃고 도망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조조는 겨울에 손권과 전쟁을 벌일 생각이 없었다. 날씨가 따뜻해지기를 기다려 싸우려 했고, 지구전이 조조의 머리 속에 이미 자리잡고 있었다. 하물며, 당시 조조의 군대는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 이것도 현지 기후에 적응하지 못해서이고 치료를 해야 했다. 이 방면에서 조조의 모사들도 생각했어야 한다. 조조도 이들 모사의 전략에 맞추어 진행해야 했다. 그러나 생각지 못했던 것은 전쟁은 네가 시작했지만, 전쟁의 시간을 네가 결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셋째, 주유는 확실히 기후조건을 이용할 줄 아는 군사전략가였다. 기실 기후는 상호적이다. 겨울은 절대다수의 시간동안 북풍이 분다. 조조에 있어서 유리한 것이다. 다만 주유는 이 점을 파악해서 아주 조심했다. 다만 남방의 날씨는 변화가 많다. 가끔 남동풍이 분다. 어떤 때는 소나기를 퍼붓는다. 주유는 이 얻기 힘든 유리한 시기를 이용한 것이다. 소나기가 오기 전에 동남풍이 부는 틈을 이용하여, 음랭한 아침애 망망한 안개 속으로 상대방이 전쟁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때 전쟁을 시작한다. 공격을 개시한 것이다. 특히 황개가 투항하겠다고 하여 경비를 서는 군인들은 아마도 몽롱한 눈으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몰랐고, 어떻게 대응해야할지도 몰랐다. 가장 좋은 방법은 옷을 제대로 입지도 못하고 그냥 도망치는 것이다. 주유의 군대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일같은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주력부대는 유종의 부대이다. 졸지에 그들은 흔적도 없이 도망친다. 8만대군이 이런 상태가 되니 23만대군에 끼친 영향이 무척이나 컸을 것이다. 총사령관인 조조는 아마도 달콤한 잠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배 위에서 미녀를 품에 안고 있었을 것이다. 전투가 이렇게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모든 군대가 도망치는 것을 보자, 곁에 있던 장수와 모사들도 조종게 빨리 말을 타고 도망치라고 권한다. 자신들이 뒤를 막겠다고. 전투를 즐기는 주유가 어찌 그에게 이런 기회를 줄 것인가. 분명히 전체 3만대군을 이끌고 전력으 다해서 공격했을 것이다. 고함을 높이 지르며....말 위에서 도망치던 조조는 도대체 상대방의 군대가 몇 명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하물며 자신의 23만대군은 이미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고, 대형을 갖추지도 못하고 속속 도망치기 바빴다. 기실 이들은 자기에게 자기가 놀란 것이다. 조조는 부득이 대오에서 신속히 빠져나와 도망친다. 주유가 대군을 이끌고 강을 건너 군대를 이끌고 추격한다. 조조군대는 주유의 군대에 놀라서 간담이 서늘해지고 그저 도망치기 바빴다. 이때, 소나기가 퍼붓는다. 남방의 길은 진흙탕이 많다. 당시 동정호 일대는 강한평원을 포함해서 늪이 많았다. 잘못 밟으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이제 조조의 군대는 더욱 당황한다. 서로 짓밟고, 기병은 그 가운데를 뚫고 나가니 사상자가 무수히 발생한다. 주유의 군대가 쫓아오는 것이 겁나서 황급히 도망치는 것이다. 기실 주유의 부대는 한참 뒤에 있어서 추격할 수가 없는데도. 주유의 군대가 추격해온다고 해도 겨우 3만이고, 몇 개 부대로 나눠서 쫓아오면 결국 조조의 군대를 당해낼 수가 없는 일이다. 그래서 조조의 군대가 정말 전력을 다해서 추격하려면, 손권과 유비의 지원군이 도착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이때 조조의 군대는 이미 추격이 불가능할 정도로 도망쳤다. 도망치다가 뒤떨어진 조조의 부상병이나 패잔병들을 포로로 잡는 것만 해도 충분하다.


조조는 며칠 밤낮을 도망치다가 더 이상 추격병이 없다고 확신하고나서야 부대를 다시 수습해서 살펴보았다. 이런, 수십만대군이 절반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남은 자들도 모두 온전하지 못했다. 주유의 부대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아도 서로 다른 사람을 쳐다보기만 할 뿐이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이 때, 조조는 아마도 화가 머리끝까지 났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을 정도였으나 수하들이 말렸다. 그렇다고 다시 싸우려 해도 싸울 군대가 없었다. 설사 현재 남은 군대만 하더라도 주유의 몇 배이긴 한데, 모두 놀라서 간담이 서늘해진 상태라 전투력이랄 것이 없었다. 만일 이런 소식이 북방에 전해진다면, 북방의 군벌, 흉노대병이 쳐내려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쉽지 않게 평정한 북방까지 순식간에 빼앗길 수 있다. 그래서 아예 돌아가기로 한다. 각로의 대군과 인마를 수습한 후 즉시 유리한 지형을 택하여 주둔시킨다. 다행히 주요장수, 모사는 다 살아 있었다. 엘리트들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예 적군과 전투를 벌이지 않았고, 장비도 아주 좋기 때문에 장수들은 희생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조조에게 좋은 일이다. 신속히 인마를 조직하여 대치할 수 있었다. 자신은 주요장수와 모사를 이끌고 인심을 다독일 수 있었다. 자신은 아직 살아있다고 알리고, 패하지 않았다고 알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주유는 다시 혼내주면 된다. 나를 이겼다고 명성을 떨치게 해주다니,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날 일이다.


주유가 적벽대전에서 이길수 있었던 근본원인은 바로 손권이 권력을 위임했다는 것이다. 주유에게 전쟁기회만 잡으면 전쟁을 일으키라고 분부했다. 그에게 연락해서 지시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는 대군을 이끌고 주유에 호응하며 실패하더라도 주유를 책망하지 않고 그가 스스로 수습하며 조조와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이런 말은 주유에게 최대의 용기를 주고 지혜를 쓸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잡지 않으면 금방 지나칠 기회를 이용할 수 있었고, 보고없이 신속히 전쟁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정보가 새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럭에 천하대국을 결정짓는 전투를 벌인 것이다. 심지어 지구전이라고 생각했던 전쟁을 순식간에 해결한 것이다. 누구든 알고 있다. 이 전쟁은 특별한 수잔을 쓰지 않는다면, 그저 온건한 방법을 쓴다면 손권에게는 조조를 이길 기회가 없다. 주유와 제걀량이 아무리 모략에서 뛰어나더라도 국면을 뒤집을 수 없는 것이다. 어쨌든 실력차이가 너무나 현저했다. 그리고 적벽대전에서 주유는 준비할 시간이 충분했다. 그는 계속 전전에서 병력을 훈련시켰다. 일찌감치 전쟁준비를 마친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전쟁에서 서로 대치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전쟁에서 패배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문제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연구해놓았다. 시기만 기다린 것이다. 동남풍이 오기만 기다린 것이다. 그외에 주유측은 아마도 조조의 수군 유종의 부대와 연락을 취했을 수 있다. 전쟁시대에 고의로 혼란을 일으키고, 조조군대가 진격해온다는 여러가지 상황을 퍼트렸는데. 유종의 수군과 형주의 여러 방면이 인원릉 여러가지로 연결리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이 23만대군이 일거에 그저 도망만 친 근본원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삼국정립의 전투인 적벽대전은 기실 한번의 전투로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 진정으로 승부를 결정지은 관건적인 포인트는 바로 몇시간내이다. 힌쪽의 총사령관인 손권과 유비가 이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전쟁의 승부가 이미 결정난 뒤였다. 그래서 아마도 손유연합군이지만 유비의 군대가 나타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소식을 듣자마자, 엉? 전쟁이 끝났다고? 이겼다고? 그리고 조조가 완전히 패배했다고? 이렇게 빨리 이길 줄은 아예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거대한 전쟁이 일거에 승부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또 한측의 총사령관인 조조는 생각만 하면 화가 난다. 일세의 영웅이 거의 모든 주력을 다 모아서 전쟁을 일으켰는데, 이렇게 일거에 망치다니, 뭐가먼지도 모르고 이 천하를 정복하는 전쟁에서 패해버리다니. 그래서 한을 품고 북상하고, 왕을 칭하고 감히 황제를 칭하지는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