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삼국)

"삼영전여포(三英戰呂布)"는 칭송할만한 일인가?

중은우시 2016. 8. 28. 00:54

글: 풍현일(馮玄一)


<삼국연의>에 여러 무장들간의 멋진 대결이 그려져 있다. 예를 들어, 태사자와 소패왕(손책)의 싸움, 허저의 마초와의 맨몸싸움, 마초와 장비의 일대일대결등등. 그리고 이들 대결중 지명도가 가장 높은 것은 당연히 "삼영전여포"이다. 소위 '삼영'은 유비, 관우와 장비의 삼형제를 가리킨다.


'삼영전여포'와 '온주참화웅'은 모두 반동탁동맹과 동탁과의 회전기간중에 발생한다. 두번의 대결로 유비 삼형제의 명성은 올라간다. 유비 삼형제는 일전으로 명성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삼영전여포'는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얘기하는 것이다. 다만, 자세히 읽어보면, '삼영전여포'는 유비에게 전혀 자랑스럽지 못하고, 칭찬받을 만한 일이 아니다. 왜 그렇게 말하는가? 필자가 하나하나 분석해 보겠다.


'삼영전여포'는 반동탁동맹과 동탁대군과의 회전기간에 발생한다. 원래, '삼영'은 여포와 싸울 자격이 안되었다. 왜냐하면 이때 여포는 이미 명성을 크게 떨치고 있었고, '삼영'은 그저 공손찬 수하의 '소장(小將)'에 불과해서 지위도 비천하고 직위도 낮았다. 아무리 용사라 하더라도 대장과 싸울 자격은 안되는 것이다. 지위가 비천하고 직위가 낮은 사람을 내보낸 측은 상대방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설사 이기더라도 체면이 떨어지는 일이기때문이다. 중국인은 체면을 아주 중시한다. 이점은 관우의 온주참화웅때 확실히 보여진다. 관우는 그저 무명소장이고, 화웅은 명장이다. 관우가 모수자천하였으나, 원술은 화를 낸다. 이유는 바로, '너는 우리 여러 제후들에게 대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냐." 설사 관우가 잘생기고 화웅의 머리를 잘랐다고 하지만, 원술은 여전히 소리친다. "우리 대신들이 스스로 겸양한다고 하더라도, 한 현령의 수하인 소졸이 어찌 여기에서 무위를 자랑하게 놔둔단 말인가. 모두 장밖으로 꺼져라."


화웅이 관우에게 참해진 후, 동탁은 친히 대장과 여포등 장수를 이끌고 각로제후를 토벌한다. 첫번째 전투에서, 제후측에서 '하내명장 방열(方悅)'을 내보낸다. 동탁측에서는 여포를 내보낸다. 오합도 싸우기 전에, 명장 방열은 여포의 일극에 찔려 말 아래로 떨어진다.


두번째 전투에서, 여포는 진목순(陳穆順)과 싸운다. 목순은 여포가 손에서 극을 들자 찔려서 말아래로 떨어진다.


세번째 전투에서, 여포는 무안국(武安國)을 상대한다. 여포는 '일극에 무안국의 팔을 잘라버린다."


제후측에서는 삼전삼패가 되니 이미 아주 낭패해졌다. 더욱 낭패스러운 일은, 그들이 상의한 후 여포를 상대하는 방법은 겨우 "십팔로제후가 모두 모여서 같이 좋은 방책을 상의하자. 만일 여포를 잡으면, 동탁을 주살하기는 쉽다."는 것이다. 무장 하나를 상대하는데, 십팔로제후를 모두 동원하다니 이를 보면 여포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알 수가 있다.


네번째 전투에서, 여포는 공손찬과 대진한다. 공손찬은 십팔로제후중 제십사진의 두령이다. 그리고 제후중에서 아주 실력있는 장수이다. 아쉽게도, "수합도 싸우지 않아서, 공손찬은 패주한다." "여포가 적토마를 타고 쫓아온다.....따라잡았을 때, 여포는 화극을 들어 공손찬의 등을 찔러간다." 바로 이러한 관건적인 순간에, 장비가, "장팔사모를 들고 나서서" 공손찬을 구한다. (유비, 관우, 장비는 이때 공손찬의 수하였다. 주공을 구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당연한 책임이었다). '삼영전여포'의 장면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를 보면, '삼영전여포'는 여포가 제후측의 4명의 대장을 격패시킨 후에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삼영'이 어떻게 여포와 싸웠는지를 살펴보자.


장비가 정신을 차리고 여포와 싸웠다. 연속 오십여합을 싸웠는데 승부가 나지 않았다. 관운장이 보고는 말을 달려 팔십이근의 청룡언원도를 휘두르며 여포를 협공한다. 3필의 말이 정(丁)자로 싸웠다. 삽십합을 싸웠지만, 여포를 쓰러뜨리지 못했다. 유현덕은 쌍고검을 들고 황종마를 몰고 사선으로 찔러가며 싸움을 도운다. 이 세 명이 여포를 포위하고 회전하는 등처럼 싸운다. 팔로인마는 모두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다. 여포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게 되자, 유현덕을 보고 극을 한번 거짓으로 휘두른다. 그러자 유비가 급히 피했다. 여포는 화극을 거꾸로 끌면서 말을 달려 돌아간다. 세 명이 어찌 그냥 놓아주겠는가. 말을 타고 달려간다. 팔로의 군병은 소리를 우렁차게 지르며 함께 쇄도해 들어갔다.

유비 장비 관우 세 사람이 함께 여포를 협공한다. 싸움이 백합을 넘었다. 여포는 그저 '버티기 힘들어' 졌을 뿐이다. 이 전투가 재미있는 것은 완전히 여포가 너무 용맹했기 때문이다. 여포가 4번을 연이어 싸우는 상황하에서, 유비관우장비는 여전히 여포를 어찌하지 모한다. 이를 보면, '삼영'의 실력은 그다지 대단치 않은 것이다. 관우, 장비도 '전설'에서 처럼 그렇게 강하지 않다. 그후 장비와 '금마초'가 싸운 적이 있는게, 그 경심동백의 전투에서 장비는 확실히 용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관우는? 관우는 쫌 손색이 있다. 화웅은 아예 그의 상대가 아니다. 그의 실력을 증명하는데는 부족하다. 안량, 문추를 주살한 것은 적토마가 빨리 달려주어서이다. '과오관참육장'에서 참한 사람은 모두 무명소장이므로 충분하지 않다. 유비는? '삼영전여포'이후 그는 1대1로 싸워본 적이 없다. 그는 대장이니, 가혹하게 따질 필요는 없다.


이런 점들을 종합하면, '삼영전여포'는 근본적으로 칭찬할만한 것이 아니다. 비록 유비측이 이겼지만, 사용한 것은 차륜전술이고, 이겨도 자랑스럽지 못하다. 게다가 여포를 어찌하지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