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우좌(于左)
당나라전기 서역에서 온 미친 듯한 놀이가 점점 유행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발한호희(潑寒胡戱)이다.
발한호희는 처음에 고대 서역의 일종의 악무(樂舞)였다. 매년 추운 동지섣달이 되면, 놀이하는 사람이 얼굴에 가면을 쓰고 발가벗은 몸으로 북을 치며 노래하고, 서로 쫓아다니면서 물을 뿌린다. 걸한희(乞寒戱)로 일종의 병과 재난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었다.
발한호희의 또 다른 명칭은 "소막차(蘇莫遮)"이다. 소막차는 서역의 부인들이 쓰는 모자로 양피로 만들며, 바깥에 기름을 바른다.
<문헌통고>에는 발한호희에 대하여 상세하게 적고 있다. 또한 놀이때 사용하는 각종 악기도 나열하고 있다:
"원래 서국 외번 당국의 음악이고, 그 악기는 대고, 소고, 비파, 오현, 공후, 적이 있다. 그 음악은 대체로 십일월 나신으로 길거리에서 물을 뿌리며 북을 치고 춤을 취며 뛰어올라 추위를 물리친다"
발한호희가 중원에 전래된 시간은 아주 오래되었다 처음에는 궁정에서의 놀이었다. 당나라초기에는 민간에서도 널리 유행하기 시작한다. 참가자들은 스스로 즐길 뿐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즐겁게 했다.
무측천의 집권말기 이런 공연성이 강한 오락은 다시 궁중에서 중시된다. 무측전이후의 당중종, 당예종 두 황제는 도무 이런 이국적인 축제활동을 좋아했다. 매년 발한호희 공연이 있을 때면 황자들도 미복을 입고 장안의 길거리로 나가서 구경을 하곤 했다.
사서에는 이에 대하여 여러번 기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신당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신룡원년 십일월, 당중종이 낙양성 남문으로 가서 발한호희를 구경하다; 경운2년 십이월 정미일 당예종이 발한호희를 하다.
원래 놀고 즐기는 집단활동이고 오늘날의 카니발에서의 공연과 유사하다. 수십년의 변화를 거쳐 특히 황제가 좋아하다보니, 발한호희는 점점 변모하게 된다. 갈수독 대형의 집단체조공연이 되어 버린다.
발한호의가 점점 유행하면서 각지에서는 속속 자신의 걸한팀을 만들어 서로 비교한다. 어느 팀의 복장이 더욱 화려하고 아름답고 멋진지. 이렇게 하다보니 언래의 활발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호화사치스럽게 되어 여러가지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게 된다. 일부 대신들로부터 반대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당중종은 동도 낙양의 남루에서 발한호희를 구경했다고 한다. 이때 전중시어사 여원태가 상소를 올려 간한다. 놀이하는 사람들이 오랑캐옷을 입고, 준마를 타고 북을 치며 깃발을 흔드는데 이는 전쟁의 모습이다. 도성안에서 공연하는 것은 아주 부적절하다. 그리고 참가자들이 앞다투어 자신의 옷을 자랑하여 이는 사치의 기풍을 조장하고 국가의 재물을 낭비한다.
여원태는 날씨가 추우면 그냥 순응하면 되는데, "왜 하필 발가벗고 길거리에서 물을 뿌리며, 북을 치고 춤을 추고 뛰어다녀서 추위를 몰아내려 하느냐?"는 것이다. 이런 풍속은 백해무익하니 황상에게 이런 야만적인 활동을 금지해달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당중종은 이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여전히 발한호희를 즐긴다.
당현종때에 이르러, 총신 장열(張說)이 상소를 올려 발한호희를 비판하는 글을 올린다. 이런 외래풍습은 전고도 없고 예의에 어긋난다. 나체로 춤을 추면 덕은 어디로 가겠는가. 물과 진흙을 뿌리면 모습도 보기싫어진다. 이런 이유로 발한호희를 금지할 것을 건의한다.
이번에는 당현종이 건의를 받아들였다. 겨울, "섣달에 걸한을 하는 것은 외번에서 나온 것인데, 점점 풍속이 되어 따른지 오래되었다. 오늘이후 외족이건 한족이건 금지한다."
이렇게 하여 생기발랄하던 놀이가 사라지게 된다. 생각해보면 아주 아쉽다. 만일 발한호희가 지금까지 전승되어 내려왔다면, 오늘날 추운 겨울에 우리는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곳으로 구경갈 수 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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