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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당)

수당(隋唐)의 4명의 황제는 왜 고구려를 정복하고자 했는가?

by 중은우시 2015. 2. 10.

글: 천행건(天行健)


고구려를 신복(臣服)시키지 못한 것은 이세민의 일생에서 최대의 유감이었다. 심지어 그는 죽기 전에, 어떻게 고구려를 정복할 것인지를 계획하기도 했다. 사학계의 많은 사람들은 이세민이 고구려에 대한 정복전쟁을 벌인 것은 그의 인생에서 최대의 실패작이라고 말한다. 궁병독무(窮兵黷武)의 혐의가 있다. 수양제와 동일한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수나라가 멸망한 근본원인은 수양제의 폭정 내지 무슨 농민반란때문이 아니라, 실제로는 고구려를 정벌하는데서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세민이 고구려를 정벌하고자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한 후, 아들 당고종 이치도 고구려를 없애는 것을 중요한 사명으로 삼는다. 여기에 수왕조 초기에 수문제도 고구려에 대한 정벌행동을 보였다. 중국역사상 두 왕조 4명의 황제가 고구려를 정벌하려는 대규모 행동을 벌인다. 왜 반드시 고구려를 정벌해야만 했을까?


실제로, 고구려는 돌궐, 토곡혼, 고창, 언기, 설연타등의 나라들과 달랐다. 비록 표면적으로는 당왕조에 칭신했지만, 계속하여 당나라에 적대적인 태도를 나타낸다. 당시의 고구려는 외지인이나 후세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작은 나라가 아니었다. 6,7세기의 고구려는 더 이상 지역적인 소국이 아니다. 이미 강대한 중앙집권제국가로 성장했고, 이미 당나라와 동아시아의 패권을 다툴 정도의 잠재력이 있었다.  남북조후기, 전체 수왕조시기, 그리고 당왕조 초기, 고구려는 계속 영토를 확장하는 동시에 계속하여 수, 당의 인근국가를 부추겨서 수,당에 대한 전란을 일으키게 했다. 고구려는 전체 동아시아를 독패하려고 생각한지 오래 되었다. 소위 하나의 산에 두 마리의 호랑이는 용납할 수 없는 법이다. 당나라와 고구려의 전쟁은 회피할 수 없게 된다. 당나라는 고구려의 날개가 아직 풍만해지기 전에 대거 토벌하고자 한다. 이는 후환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취지이다.


641년, 이세민은 고구려에 사신을 보낸다. 고구려가 많은 수왕조의 장병을 거두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때, 이세민은 이미 고구려를 정벌하겠다는 생각을 품는다. 나중에 고구려의 내부에 정변이 발생하여, 대신이 고구려를 치자고 건의한다. 이세민은 백성들을 힘들게 하고 돈이 많이 든다고 생각하여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구려는 국면이 안정된 후, 백제와 연합하여 신라를 친다. 신라는 계속하여 당나라에 신복해왔다. 이세민은 현장(玄奬)을 파견하여 조정을 하나, 고구려가 거절한다. 여러 신하들과 상의할 때, 이세민은 이렇게 말한다: "고구려가 신라를 친 것은 표면적으로는 우리의 체면을 상하게 하는 일이고, 실제적으로는 고구려가 전체 한반도와 요동반도를 지배하고자 함이다. 만일 성공하면, 반드시 우리에게 도전해올 것이다. 그 때가 되면, 국면은 더 통제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내가 통치하는 범위내에서, 절대로 이런 세력이 출현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그리하여, 이세민은 저수량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645년 친히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를 공격한다. 비록 이번 정벌에서 전면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고구려의 국력을 크게 파괴한다. 나중에 이세민은 부하의 건의를 받아들여, 계속 고구려에 소요행동을 벌여서 고구려가 국력을 신속히 회복할 수 없도록 만든다. 이는 나중에 당고종이 고구려를 멸망시키는데 기초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