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독서삼매(讀書三昧)
안사의 난(安史之亂)이 발발한 후, 낙양, 장안이 차례로 무너지고, 당현종은 황급히 "행촉(幸蜀, 촉 즉 사천으로 행차하다)". 장안을 떠나서, 태자 이형이 영무에서 즉위한 것을 알고 스스로 황위를 물려줄 때까지, 당현종은 계속 대당정부의 유일하고 합법적인 '장문인'이었다. 이 기간동안 별도의 정부를 만들어 황제 즉 당숙종이 된 태자 이형은 듣기 싫겠지만, 필자의 생각으로 이는 즉위라고 할 수가 없다. 그저 진화타겁(趁火打劫)이고,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황위찬탈이다. 그것도 아주 정교하게 포장된 황위찬탈이다. <구당서>권10 <숙종본기>에는 대신 배면(裴冕), 두홍점(杜鴻漸)등이 태자 이형이 즉위한 3대이유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를 보면 그들이 고의로 사람들의 이목을 가리기 위한 핑계와 정정당당한 근거를 찾아서, 태자 이형의 황위찬탈을 변명해준 것을 알 수 있다.
첫번째 이유, "구역난상(寇逆亂常), 독류함곡(毒流函谷), 주상권근대위(主上倦勤大位), 이행촉천(利幸蜀川)". 이 이유는 다음의 2가지 이유의 기초가 된다. 얘기하는 내용은 아주 실질적이다. 그 뜻은 국가에 반란이 일어났고, 현종황제는 이미 이 국면을 주재할 수가 없게 되었으며, 사천으로 도망쳐서 피난했다. 즉, 그는 자신의 자리를 내놓은 셈이고,황태자로서, 이때 즉위하여 부황의 근심을 덜어주고, 사직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이 대국을 온전히 보살피는 것이며, 당연히 해야할 선택이라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말해서, 황태자였던 당숙종은 비록 당현종에 의하여 천하병마원수에 임명되어, 양경을 수복하고 반란을 진압할 전권을 수여받았지만, 새로운 관직을 얻었다고 반드시 호소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더욱 큰 권력을 획득하고자 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다만, 부황의 근심을 덜어주고, 사직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이 딴살림을 차리는 것 즉 별도의 정부를 만들어 스스로 황제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당현종의 다른 아들도 모두 이런 '기치'를 내걸고 별도의 중앙정부를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당현종의 "이행촉천"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이행촉천"이 "권근대위"(황제로서의 업무처리를 게을리하다)는 아니다. 이는 태자 이형의 즉위할 충분한 조건이 갖추어졌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하물며, "행촉"의 이 기간동안 당현종은 "권근대위"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전국의 반란평정업무를 주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쇠대한 대당정부 '장문인'에 상응한 직책을 이행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중앙과 지방의 관련 인사를 조정하고, 전후로 최원, 방관, 최환등 3명을 재상으로 임명했다. 어느 정도 위난시기의 중앙정부 호소력을 제고시키고, 인심을 회유하고, 응집력을 발휘할 중요한 역할을 했다. 태자 이형을 천하병마원수로 임명하여 삭방, 하동, 하북, 평려등절도병마로 하여 양경을 수복하게 하는 동시에, 각각 영왕 이린, 성왕 이기, 풍왕 이공을 각로도통절도사로 임명하여, 외진을 나누어 지키게 함으로써, 국면을 안정시키고, 반란을 평정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만들었다. 역사기록에 따르면, 이렇게 임명하는 조서가 내려가자, "원근이 서로 경축하고, 모두 나라를 새로 일으키는데 충성을 다할 생각을 했다"(<구당서.현종본기하>고 한다. 그리고 반란의 수괴 안록산은 가슴을 치며 탄식했다고 한다: "나는 천하를 얻을 수 없겠구나"(<곤학기문.고사>)
확실히 이렇게 당현종에게서 '핑계'를 찾아, 태자 이형이 즉위할 이유를 만들어내려는 것은 사람들이 납득하기 어렵다.
두번째 이유, "강산조험(江山阻險), 주청노절(奏請路絶), 종사신기(宗社神器), 수유소귀(須有所歸)". 이 이유는 첫번째 이유의 연장이다. 확실히 아주 객관적이다. 그 의미는 현종황제가 '행촉'한 후, 교통이 불편하여, 보고를 하고 지시를 받는데 곤란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떠나자 대당강산, 국가정권은 응집력의 핵심을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하에서 황태자가 황제가 되어 사직의 주인이 되어야 비로소 반란을 평정하고, 사직을 새로 일으킬 중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세가 그러하여 부득이하게 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마외역에서 헤어질 때, 당현종은 고력사를 통하여 자신의 태자 이형에기 바라는 희망을 전했다. "너는 잘 가거라. 백성들의 바램을 중시하고 어기지 않도록 하라. 나를 신경쓰지 말라(莫以吾爲意). 그리고 서융, 북적은 내가 일찌기 후하게 대해주었는데, 이제 나라가 곤란한 지경에 처해있으니 반드시 쓸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잘 해내도록 해라"(<구당서.숙종본기>). 당현종의 이 말을 의미심장하다. 다만 음미할만한 것은 "막이오위의"라는 구절이다. 왜 음미할만한 점이 있다고 하는가? 필자가 이해하기로 이는 최소한 두 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는 부자감정의 각도에서, 태자 이형에게 걱정하지 말고, 부황을 신경쓰지 말라는 말이다. 둘째는 군신대의의 각도에서, 태자 이형에게, 이러한 특수시기, 특수경우에, 통상적인 예의에 구애될 것이 없고, 반란평정에 관한 시정방침은 보고를 하여 지시를 받을 필요없이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라는 것이다. 이 두가지 뜻이 당현종의 본 뜻에 부합할 것이며, 당현종이 이형에게 절대적인 신임을 보낸 것이고, 그의 말에서 그러한 점이 넘쳐났다는 것은 다툼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절대적인 신임이 있으면, 이형은 황제가 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로 반란평정의 중임을 충분히 이행할 수 있다. 그러나 이형은 굳이 별도중앙정부를 만들어 황제에 올랐다. 이는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점이다:
교통이 곤란하여, 보고하고 지시받는 것이 어렵다고 하였는데, 그렇다고 자신이 황제에 올라야 하는가? 이런 논리는 말이 되지 않는다. 첫째, 장수는 바깥에 나가 있을 때 군명도 받지 않을 수 있다. 반란평정의 책임을 맡은 천차병마원수로서 태자 이형은 완전히 자신이 하고싶은대로 군정등 관련사항을 처리할 수 있었다. 어떤 것을 보고하고, 어떤 것을 지시받을지는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서 하면 되는 것이고 교통상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둘째, 당현종은 이미 충분히 권력을 이양했다. 이 권력범위내에서, 태자 이형이 해야할 일은 잘하든 못하든 완전히 그의 능력과 책임범위내에서 할 수 있다. 보고하거나 지시받는 것은 외부요인이고 문제의 관건이 아니다.
국가정권이 응집력의 핵심을 잃었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거짓명제'이다. 이치는 아주 간단하다: 당현종이 죽지 않았고, 퇴위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 핵심을 잃었다고 한단 말인가. 설마 현종황제가 장안에 있어야 핵심이고, 낙양에 있어야 핵심이고 사천에 있으면 핵심이 아니란 말인가?
의문의 여지없이, 이렇게 객관적인 조건을 핑계로 삼아, 태자 이형이 즉위할 이유로 말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세번째 이유는 "만성옹옹(萬姓顒顒), 사숭명성(思崇明聖), 천의인사(天意人事), 불가고위(不可固違)". 이 이유는 앞의 두 이유의 보충이자 우가이다. 미혹성이 있다. 그 뜻은 이 곤란한 시기에 백성들이 모두 바라고 있고, 각종 상서(祥瑞)가 징조를 보여주고 있는데, 명군이 나타나야 그들을 도탄에서 구해줄 수 있다. 그 명군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당신 태자 이형이다. 이것은 백성의 뜻이고, 하늘의 선택이다.
더 말할 필요도 없이, 당현종이 '사천으로 도망침으로써', 그의 동기가 어떠하든 간에, 백성들의 그에 대한 기대는 크게 약화된 것이 사실이다. 다만 그렇다고하여 이것이 그들이 현종황제를 인정하지 앟는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마외역에서 육군(六軍)이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서, 양귀비를 주살하라고 요구한 것이 이를 잘 설명한다. 이와 선명하게 대비되는 것은 영무즉위전에, 백성들은 태자 이형에게 확실히 기대에 차 있었다. 다만 이런 기대는 절대로 그로 하여금 현종황제를 대체하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태자이므로 현종황제를 가장 잘 대표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들을 지휘하여 '한 마음으로 나라를 위하여 반적을 토벌하는" 총사령관이 되어달라는 것이었다. 바로 이러하기 때문에, 그들은 이형이 하서에서 병력을 이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흥분하여 말한 것이다: "우리 태자의 대군이 곧 올 것이다". 이런 심정은 이형의 옹립자들이 차제발휘(借題發揮)한 "만성옹옹, 사숭명성"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포장을 잘하는 사람들은 왕왕 이런 일을 벌인다. 그저 이용할만한 '소재'만 있으면, 관련이 있든 없든 신경쓰지 않고, 잘라내고, 갇다부치고, 분식하는 것이다.
마외역에서 당현종과 헤어진 후, 이형은 군대를 이끌고 북상한다. 하루는 저녁에 영수(永壽)에 도착했다. 이때 하늘에 돌연 기이한 관경이 나타났다. "흰 구름이 서북에서 일어나는데, 길이가 수장에 달했고, 누각의 모습을 하였다. 의자(議者)는 천자의 기운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기괴한가? 기실, 전혀 기이할 것이 없다. 그저 머리를 굴린 것은 이들 '의자'들이다. 그들은 왜 이런 자연현상을 인간세상의 일과 연결시켰을까? 그리고 이것이 진명천자가 출현하기 전의 상서로운 징조라고 여겼을까? 이것이 바로 포장이다. 태자이형의 즉위를 위하여 '군권신수'의 근거를 던져서 여론을 형성하려 한 것이다.
평량(平凉)에서 출발한 후, 곧이어 여러 건의 기괴한 일들이 벌어진다. "오색구름이 하늘에 걸려 있고, 백학이 앞을 이끌고, 군대가 출발한 후, 황룡이 황상(당숙종)이 시는 집에서 날아 올라갔다." 하늘에 오색구름이 나타나고, 백학이 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것은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황룡이 집 위를 날아갔다니, 그리고 이형의 집에서 날아 올라갔다니, 이것은 '사건'이다. 만일 하늘의 뜻이 아니라면, 누가 이런 관경을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인가. 아무도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진명천자가 누구인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게 된다.
풍영 남쪽에 도착했을 때, 이형은 황하를 건너가서 풍녕을 지키려고 한다. 이때, "돌연 큰 바람이 일어 모래를 날려. 한발자국 앞의 사람과 물건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군대를 돌려 영무로 돌아온다. 그러자 모랫바람이 돌연 멈추고 천하가 맑아졌다." 정말 신기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천자가 누구인지 정해져을 뿐아니라, 즉위할 장소까지도 정해준 것이다. 이렇게 앞뒤가 딱딱 들어맞는다는 것은 포장의 극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포장을 잘하더라도, 결국은 속에서 꿈틀거리는 야심을 감출 수는 없는 법이다. 위소유(魏少遊)는 영무에서 "공장(供賬. 휘장)을 준비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이와 상응하여 일찌감치 태자즉위를 위한 각종 준비를 마쳐두었다는 것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그래서, 이렇게 거짓으로 '천의'를 조작하여 '인사'를 추진하는 것이므로 태자 이형의 즉위를 위하여 내세운 각종 이유는 마찬가지로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3가지의 믿기 어려운 이유에도 태자 이형은 대신들의 계속된 권유에 결국 황제의 보좌에 오른다. 이것은 바로 이러한 점을 설명한다: 당숙종의 즉위는 무슨 즉위가 아니라, 정교하게 포장된 황위찬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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