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부의)

완용(婉容)과 문수(文秀)의 후궁투쟁사

중은우시 2015. 1. 14. 00:17

글: 서문(瑞文)

 

 


1922년, 이미 퇴위한 마지막 황제 부의(溥儀)는 대혼을 거행하여 황후 완용과 숙비 문수를 취했다. 완용은 찬약도화(燦若桃花)하고, 문수는 정약추수(靜若秋水)했다. 두 사람은 서로 보완되어 일후일비의 생활은 원래 아주 행복해야 했다. 그러나 몇년 후, 문수는 이혼하고, 완용은 바람피우는 비극이 일어난다. 도대체 무슨 원인으로 부의의 혼인생활은 불행하게 되었을까?


부의가 결혼한 후 첫 2년간은 3명이 그래도 잘 살았다. 완용은 명문규수로 개명한 서양식교육을 받았고, 게다가 정궁낭낭의 존귀한 신분까지 지니고 있으니 오만하고 패도적이었다. 문수는 파락한 만주귀족집안 출신으로 삼종사덕의 전통적인 교육을 받았다. 적서의 차별에 대하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황후의 패도적인 태도에 대하여도 용인했다. 부의도 두 사람을 대등하게 대해주었다. 그는 완용과는 공동의 언어가 있었다. 부창부수로 서로 사랑했다; 문수와는 괜찮은 편이었다. 문수가 영어를 못하니, 부의는 그녀를 위하여 특별히 선생을 초청해서 공부시켰다. 어떤 때는 그녀의 궁으로 가서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그녀의 공부진도에 관심을 나타냈다. 부의가 출궁할 때도 왕왕 황후, 숙비를 곁에 함께 데리고 다녔다.


두 여자가 한 남편을 모시게 되면 시기, 질투가 나타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러나 완용과 문수는 이로 인하여 사건이 생기면 어떤 때는 부의의 앞에까지 가지고 가서, 황상에게 판결을 내려달라고 한다. 이런 현상은 이전의 궁정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부의도 처음에는 비교적 공정하게 결정을 내려주었다. 그러나 점점 완용에게 바가지 긁히는 것을 줄이기 위하여, 점점 문수의 궁으로 가지 않게 된다. 부의 자신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거의 완용과 함께 있었고, 문수가 거주하는 곳에는 가지 않았다."


후비의 투쟁에서, 부의의 저울추는 점점 완용으로 기울었다. 문수는 점점 멀리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한쪽을 잘 대해주고 한쪽에 박하게 대하는 것은 3명이 천진의 장원으로 들어간 후 더 분명해진다.


부의의 회고록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하루는, 문수가 혼자서 외출했다가, 돌아온 후 정원에서 침을 뱉었다. 마침 완용이 곁에 앉아 있었다. 문수가 자신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래서 완용은 이 일을 부의에게 보고하고, 그의 수하를 문수에게 보내어 질책해달라고 한다. 문수는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자, 부의의 방으로 가서 상황을 설명하려고 한다. 부의는 그러나 그녀를 문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마음 독하게 먹고 그녀를 보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도 있었다: 음력 칠월 초칠일. 원래는 오작교에서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 만나는 좋은 날이다. 저녁에 부의는 완용과 정원에서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문수는 혼자서 방안에 있었다. 스스로 이번 생에는 희망이 없다고 여기고, 가위를 들어 자신의 배를 찔러간다. 자살하려 한 것이다. 다행히 태감들이 말렸다. 태감은 이 일을 부의에게 보고한다. 부의는 그 말을 듣고 화를 내며 말한다: "그녀는 신경쓰지 말라. 그녀는 이런 뻔한 수단으로 나를 겁주려 한다. 누구든지 그녀를 신경쓰지 말라." 사후에 완용은 약간 겁이 난다. 저녁을 먹을 때 부의에게 말한다: "숙비를 불러서 같이 식사를 하시지요." 그러나 부의가 거절한다: "필요없다. 네가 그녀를 불러내면 나는 밥을 먹지 않을 것이다."


이를 보면 당시 부의의 눈에 문수는 이미 그저 "일곡이뇨삼상조(一哭二鬧三上弔)의 투부(妬婦)로 보였다. 두 사람사이의 애정은 이미 없었다. 그래서 완용의 배척과 부의의 절정(絶情)으로 문수는 결국 이혼을 선택한다.


부의는 이혼한 후에 체면을 완전히 구겼다고 여긴다. 그는 자신이 이 건에서 잘못한 것을 반성하지 않았고, 오히려 책임을 모조리 완용에게 떠넘긴다. 그가 보기에 완용이 질투하여 문수를 쫓아낸 것이다. 만일 완용이 질투하지 않았더라면, 문수는 이혼하자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제왕으로서의 체면도 이렇게 땅바닥에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문수가 떠난 후, 부의는 완용에게 반감을 갖기 시작한다. 그녀의 방에 가는 일이 드물어진다. 그녀가 하는 말을 잘 들어주지도 않았다. 이전에 설 사랑하던 부부는 이제 서로 갈수록 멀어진다.


완용이 부의의 환심을 잃은 후, 그저 아편에 의존하여 적막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만주국시대에 부의와 완용은 겉으로는 여전히 부창부수였지만, 실제로는 이미 허명뿐인 부부였다. 결손감을 느낀 완용은 아편을 더욱 심하게 피웠을 뿐아니라, 심지어 다른 여자들과 만나기 시작한다. 1935년 완용이 그들의 자식을 낳은 후 냉궁(冷宮)에 들어간다. 두 사람의 이전의 애정은 이전의 감정은 이제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부의의 불행한 혼인은 한편으로 그 시대이 낡은 혼인제도때문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자신이 혼인관계를 잘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일 당초 부의가 공정하게 처리했다면, 만일 그가 문수가 모욕을 당하고 난 후에 그녀를 적당히 위로해주었다면, 아마도 문수는 그를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문수가 떠난 후, 만일 부의가 자신의 잘못을 반성했다면, 만일 그가 완용과의 애정을 아꼈다면, 아마도 황제와 황후는 서로 손을 잡고 더 멀리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 가정은 없다. 원래 아름다워야할 혼인생활은 이렇게 부의가 자기 손으로 망쳐 버렸다.


그래서 부의는 실패한 황제일 뿐아니라, 실패한 남편이다. 그의 비극적인 혼인은 후세인들이 무한히 안타까워 하고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