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양반(梁盼)
명나라때의 공안소설(公案小說) <백가공안(百家公案)>은 송,원 시기의 포공(包公) 이야기를 모아서 책으로 만든 것이다. 이는 하나의 단편소설집이다. 제26회의 제목은 "진씨환혼배세미(秦氏還魂配世美)"이다. 그 내용은 북송 '균주(鈞州)" 사람인 진세미(陳世美)는 과거에 장원급제한 후 고향에 돌아가지 않았다. 그의 처인 진씨(秦氏)는 경성인 개봉으로 가서 남편인 진세미를 찾아간다. 그러나, 진세미는 그녀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을 보내어 그녀를 추살하려 한다. 그 결과 진씨는 살해당한다. 나중에 아들 영가(瑛哥)는 과거급제후, 나라에 공을 세우고, 적군을 무찔러, 조정의 고위 장군이 된다.
진영가가 관직에서 송공한 후 모친이 예전에 살해당한 곳을 지나게 된다. 묘에서 진씨가 죽었다가 살아난다. 원래 하늘도 가련하게 여기고, 신선도 진씨가 이렇게 참혹하게 죽는 것은 차마 참을 수 없어 암중으로 그녀의 시신을 보호하고 있다가, 진영가가 성공한 후에 모자가 서로 만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이어서, 진영가와 진씨는 태사(太師) 포증(包拯)을 찾아가고, 진세미를 고발한다. 포증은 진세미를 요동의 군대로 보내어 병졸로 복역하게 한다. 포청천의 사건해결애 관한 이야기는 너무나 많다. 진세미와 진씨부부가 반목한 사건은 원래 별 것이 아니었다. 소위 "포공안"은 기본적으로 모두 허구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저 사람들이 권선징익의 일종의 심리적 만족과 안위를 주는 내용일 뿐이다.
"이묘환태자"의 이야기에서 소위 태자는 바로 북송으 제4대황제 송인종(1022-1063 재위)이다. 당초, 송인종 조정의 생모인 이비(李妃)는 아들을 하나 낳는다. 그런데 후궁지주인 류황후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그녀는 이비 소생의 아들을 몰래 훔쳐서 자신의 아들로 삼는다. 후인들은 이야기를 더욱 재미있게 만들기 위하여 류황후가 이비의 아들을 안고 간후 '물물교환'처럼 이비에게 '이묘'를 한 마리 보냈다고 하였다. 이 유황후는 정말 못됐다. 남의 아들을 빼앗아 갔을 뿐아니라, 다시 그녀가 '이묘'를 낳았다고 능멸한 것이다.
이런 악랄한 행위는 당연히 포증이 해결해야 한다. 단지, 역사상 유황후가 나쁜 짓을 한 때는 우리의 포청천이 아직은 공부하고 있던 어린 청년이었다. 아직 개봉부윤이 되기에는 시기적으로 멀었다. 그는 아예 '이묘환태자' 사건을 해결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상 송인종은 양모 유태후(예전의 유황후)가 죽은 후, 비로소 누군가가 그에게 생모에 관한 이야기를 해준다. 이것도 포청천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다.
이를 보면, 포청천의 이야기는 설사 사람들에게 재미는 주고, 대중들의 마음을 안위시키는 효능은 있지만, 그것을 사실로 믿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진세미라는 사람과 사건은 모두 허구이다. 최소한 송인종시기에 장원중 진세미라는 사람은 없다. 소설에 나오는 불쌍한 진향련(秦香蓮)은 이때까지는 그저 '진씨'로만 불리웠다. 아직은 '향련'이라는 이름은 얻지 못했다. 그래서 명나라때 사람인 안우시가 <백가공안>을 편찬한 후 상당한 기간동안 진세미는 아직 배신남의 대명사는 아니었고, 그의 이야기는 아직은 악명을 널리 떨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청나라초기 순치(順治)연간에 아주 경전적인 포공사건심리 희곡 <찰미안(鍘美案)>이 탄생한다. 그것은 명나라때의 단편소설을 기반으로 발전시킨 것인데, "균주(鈞州)"는 "균주(均州)"로 바뀌고, 진세미는 장원급제후에 황제의 부마가 된다. "진씨"는 이름까지 얻어서 "진향련"이 된다. 그리고 진세미는 더욱 나쁜 사람으로 된다. 처를 죽일 뿐아니라, 한쌍의 자녀도 한꺼번에 죽여버린다. 마지막에는 결국 포청천이 나선다. 이때는 진세미를 쉽게 용서하지 않고, 직접 진세미의 목을 친다. 소위 "찰미"라는 것은 바로 진세미의 목을 친다는 뜻이다. 이때부터 진세미는 '천하에 악명을 떨치고" 배신한 남자의 대명사가 되어버린다.
만일 청나라초기의 희극은 단지 이전 작품을 기초로 개작하였을 뿐이다. 진세미로서는 더 억울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이미 그 전부터 그는 나쁜 놈으로 낙인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청나라때 사람들은 그저 소규조수(蕭規曹隨, 소하가 만든 규정을 조참이 그대로 따라하다)한 것일 뿐이다. 관건은, 마침 순치연간에 균주(均州, 지금의 호북성 단강구시)에 진사가 한 사람 나타나는데, 이름은 진년곡(陳年谷)이고 호가 숙미(熟美)였다. 관운은 아주 좋아서, 강희연간에는 차관급인 시랑에까지 오른다. 우연의 일치인지 진숙미의 부인은 이름이 진형련(陳馨蓮)이다. 부부의 이름은 진세미, 진향련과 글자 하나만 차이가 날 뿐이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고증한 바에 따르면, 청나라때의 희곡 <찰미안>은 바로 진숙미를 원형으로 한 것이다. 다만 청나라초기의 진사 진숙미는 관료로서 청렴했고, 처신도 잘하여 좋은 평판을 얻었다. 처인 진향련과도 백년해로하여 근본적으로 무슨 '배신'같은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왜 진숙미가 이렇게 나쁜 사람의 원형이 된 것일까?
알려진 바로는 다른 이유가 있는게 아니다. 바로 진숙미와 같은 단강구 사람인 구몽린(仇夢麟)과 호몽접(胡夢蝶)은 진숙미를 통하여 관직을 얻으려 했으나, 진숙미는 그 요구를 거절한다. 이 두 고향사람은 진숙미가 과거에 급제하기 전에 진숙미를 도와준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진숙미가 이처럼 인정머리없게 굴자, 마음 속에 원한을 품는다. 그래서 진숙미를 희극에 써서 포청천의 칼아래 죽는 것으로 그려서 분을 풀었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진숙미는 '환남사변'보다 훨신 억울한 사건이다. 송나라때의 포증은 타임머신을 타고 6,7백년을 넘어와서 청나라때로 와서 악독하기 그지없는 부마 "진숙미"를 벤 것이다.
<찰미안>은 아주 재미있는 극이다. 갈등이 많고, 남자주인공은 아주 나쁘며, 여주인공은 아주 불쌍하다. 심지어 소설에서 진씨를 살해하고, 나중에 희극에서는 차마 진향련모자를 죽이지 못하고, 최종적으로 살신성인하는 조연 한기(韓琪)는 누가 연기해도 인기가 좋았다. 주인공보다도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리하여 전통희극에서 조연의 왕이라 할 만하다. 진강(秦腔), 예극(豫劇), 경극(京劇)등 일련의 극에서 모두 '진세미'를 아주 좋아한다.
만일 <찰미안>의 영향력이 이렇게 크지 않았다면, 포공의 이야기가 그처럼 민간에 전승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진숙미를 데려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더더구나 진숙미를 희극인물이미지 진세미와 같이 취급하여 악명을 얻지도 않았을 것이다.
청나라초기 <찰미안>이 고전소설 포공안을 승계한 것이든 아니면 지상매괴(指桑罵槐)한 것이든 아니면 둘 다이건, 청나라말기가 되면, 한 극단이 단강구에서 <찰미안>을 공연했다고 한다. 다만, 진숙미의 후인들이 2,3백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분노를 금치 못하며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그 연극판을 부수고, 극단 사람들을 모조리 단강구에서 쫓아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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