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문학/문학일반

서문경(西門慶)은 어떻게 갑부가 되었는가?

by 중은우시 2014. 10. 2.

글: 강위화(姜衛華)

 

사람들이 서문경을 얘기할 때면, 이를 갈면서 "서문경은 나쁜 놈이다"라고 한다. 이를 보면, 서문경은 유명하긴 하지만, 명성은 아주 나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문경의 부친인 서문달(西門達)은 약포(藥鋪)를 열었다. 그러나 서문경의 손을 거쳐 운영되면서, 급속히 발전하고, 상계에서는 물론 정계에 까지도 영향을 크게 미치게 된다. 그는 오월낭(吳月娘)에게 이렇게 자랑한 바 있다: "허비경(許飛瓊)을 납치하고, 왕모낭낭(王母娘娘)을 강탈하더라도, 내 재산을 축내지는 못할 것이다."

 

서문경이 어떻게 갑부가 되었는가? 첫째, 그의 원시자본을 어떻게 축적하였는지 보자. <금병매> 제1회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일처리가 기심궤휼(機深詭譎)하고, 방관리채(放官吏債)를 했다....현에서 공무를 처리하면서 파람설사과전(把攬說事過錢)했다." 여리서 '방관리채'라는 것은 국가재산을 가져다가 고리대를 놓아서 이자를 수취했다는 말이다. '파람설사과전'은 다른 사람의 송사에 관련하여 다른 사람의 편을 들어주거나 일처리를 해주고 거기서 돈을 받아챙겼다는 말이다. 이를 보면 서문경의 사회활동능력을 상당히 컸다. '방관리채'는 리스크가 크다. 그러나 그는 '일처리가 기민'하여 사업은 줄곧 순조로웠다.

 

이것만으로 돈을 벌어서는 서문경의 재물욕심을 채우기 어렵다. 혼인을 통하여 큰 돈의 혼수를 얻는 것도 서문경이 자본을 축적한 수단의 하나이다. 그는 전후로 부자과부 맹옥루(孟玉樓), 태감의 조카며느리 (李甁兒)를 속여서 취한다. 이 두 소첩이 오면서 그에게 거액의 재산을 가져다 준다. 맹옥루가 가져온 재산만 보더라도 다음과 같다: .....4계절 의복, 장화포아(妝花袍兒)가 4,5개 상자, 금은보석은 말할 것도 없고, 손에 가진 현은만 천냥이 넘었다; 좋은 삼사포(三梭布)도 2,3백통이었다.

 

이병아가 그에게 가저온 재산은 더욱 많았다. 그래서 이병아가 죽을 때, 지금까지 감정에 휩싸이지 않던 서문경도 통곡실성한 것이다.

 

노대안(奴玳安)의 한 마디가 그 중의 비밀을 말해준다: "나의 여섯째어머니가 나의 부친에게 시집올 때...얼마나 많이 가져왔는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안다. 은자는 말할 것도 없고, 금은주보, 옥대, 조환(縧環), 추빈(鬏鬢), 값나가는 보석이 얼마인지도 모른다. 왜 나의 부친이 가슴아파 하는가. 사람을 가슴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가슴아파하는 것이다."

 

그외에 서문경은 잘 알고 있었다. "마무외초불비(馬無外草不肥), 인무외재불부(人無外財不富)" (말은 남의 풀을 먹지 않으면 살찌지 않고, 사람은 남의 재물을 차지하지 않으면 부자가 될 수 없다). 그가 자본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특히 외재(남의 재물)를 약탈하는 것을 중시했다.  예를 들어 사위 진경제(陳經濟)는 그의 부친 진홍(陳洪)의 사건이 터져서 집안재산을 장인인 서문경의 집으로 옮겨서 보존한다. 나중에는 결국 서문경이 모두 차지해 버린다.

 

인정해야할 것은, 여하한 원시자본의 축적도 모두 약탈적인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다. 서문경이 소송을 도와주고 돈을 받아먹었건, 다른 사람의 재물을 빼앗았건, 사기혼인으로 재물을 취했건 모두 개인적으로 교묘한 수단을 썼다. 즉, '일처리가 기심궤휼'했던 것이다.

 

서문경은 부정하게 경쟁하고 관부와 결탁했다. 이를 통하여 유리한 장사조건을 만들었다. 이것이 그가 잘 써먹던 수법이다. 예를 들어 새로 장원이 된 채일권(蔡一權)이 고향으로 부모를 만나러 갈 때 청하현을 지나가게 된다. 요청을 받아 서문경의 집에 잠시 머문다. 좋은 술과 음식과 여색을 제공해서 대접하고, 그가 떠날 때는 은자 1백냥을 쥐어준다. 나중에 채일권이 양회순염사가 되었을 때, 산동순무 송교년을 서문경에게 소개시켜준다. 그리하여 서문경은 관부와 결탁할 더 많은 길을 마련하게 된다. 그 후에 서문경은 소금을 판매하고 소금운송업을 한다. 채일권은 양회염운사의 직책을 이용하여, 서문경이 다른 염상보다 1개월 염인을 더 받을 수 있게 해준다. 그리하여 서문경을 짧은 1개월만에 가볍게 2만냥의 은자라는 폭리를 취한다. 나머지 염상들은 그저 눈만 멀거니 뜨고 바라보아야 했다. 서문경이 계속하여 산동순무 송교년에게 뇌물을 바쳐서, 송교년의 세력을 빌어 혼자서 조정에서 내려온 2만냥은자의 고기(古器) 거래를 독점한다. 거기에서 얼마나 많은 이윤을 남겼을까? 관무와 결탁하여 사업상의 특권을 취득하는 것은 서문경이 폭리를 취하는 주요수단이었다. 독점을 하고, 동종업계경쟁자를 탄압하는 것은 서문경의 사업에서 '성공경험'이 된다.

 

상인의 본성은 바로 영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독점은 폭리를 의미하고, 서문경은 그 이치를 잘 알았다. 원래 청하현에는 서문경의 약포만이 있었다. 나중에 의생 장죽산(蔣竹山)이 이병아의 도움으로 약포를 하나 열게 된다. 장죽산은 의생이면서 약포도 경영했으며 후덕하고 온화했다. 그래서 많은 손님들이 그를 찾았다. 한 현성에 두 개의 약국이 들어서자 이는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떠 있는 것과 같았다. 서문경에 있어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지방깡패무뢰한들을 동원하여, 여러번 장죽산의 약포로 가서 소란을 피우게 한다. 그리고 어음을 위조하여, 그가 빚을 갚지 않는다고 억지를 쓰며 관청에 소송을 낸다. 그리고 장죽산을 반쯤 죽을 정도로 때려서 결국 약포를 닫도록 만든다. 이렇게 하여, 서문경의 약포는 다시 장사가 불티나게 잘된다. 이러한 부정당한 경쟁은 다른 방면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세금담당관리를 매수하여, 세금을 대거 탈루한다. 서문경의 경영방식으로 볼 때, 그의 상업활동은 주로 가족, 노비 혹은 다른 사람과의 동업에 의존한다. 혹은 다른 사람의 명의를 빌려서 했다. 자신은 막후에 숨어서 조종한다. 그러므로, 그의 불법경영문제는 다른 사람이 문제삼기가 쉽지 않다.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서문경이 장사에는 '도'가 텄다는 것이다. 그는 확대재생산했을 뿐아니라, 기회를 잘 잡을 줄 알았다. 외지상인의 악성재고를 매점매석하여 나중에 시세가 좋아지기를 기다릴 줄도 알았다. 그는 경영다각화에도 능하여, 고리대를 놓고, 전당포를 열고 각양각색의 비단점포도 열었다. 동시에 강호에서 선박운송도 하여, 점포경영과 장거리운송을 결합시켰다. 그리하여 사업규모는 갈수록 커진다. 그는 응백작(應伯爵)에게 금전에 대하여 분석할 때 이렇게 말한다: "그것(돈)은 움직이기 좋아하고 가만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찌 한곳에 묻어둘 수 있겠는가? 하늘이 내린 것은 사람이 쓰라고있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말했다: "자본은 일종의 증식된 가치이다, ....그것은 일종의 운동이다." "정지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자본론>제2권). 양자는 자본에 대한 이해가 놀랄 정도로 비슷하다. 바꾸어 말하면, 서문경은 돈이 돈을 버는 이치를 알았던 것이다. 그가 교대호(喬大戶)와 동업으로 연 비단점포의 최초투입자금은 1천냥이었다. 나중에 그는 소금을 팔아서 번 돈으로 항주와 남경에서 1만여냥은자의 화물을 구매한다. 비단점포는 연지 얼마 지나지 않아 6천냥은자를 벌어들이낟. 순이익은 그가 다시 호주와 송강에서 물건을 사오는데 쓴다. 이렇게 하여 자본과 이윤은 갈수록 늘어난다. 서문경이 죽을 때 비단점포는 이미 "오만냥이자의 자본"을 보유하게 된다.

 

다행불의필자폐(多行不義必自斃). 불의를 많이 행하면 반드시 스스로 죽는다. 서문경이 끌어모은 자산은 뜬구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