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치아(李治亞)
민국(民國) 재녀(才女) 가운데 가장 개성이 있는 사람은 장애령이다. 출신이 고귀할 뿐아니라(이홍장의 외손녀), 연애도 상당히 요란스럽게 했다. 당연히 장애령의 애인은 소위 정파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도 장애령이 한때 열애에 빠지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지금까지 장애령을 유미주의자(唯美主義者)라고 생각해왔고, 그녀의 작품을 읽으면 그녀가 세상을 잘 아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그녀가 호란성과 서로 만나서 친해지고 사랑하는 것을 보면, 갈수록 기실 장애령이 어떤 때는 아주 멍청하고 천진하고 생각되게 한다. 1944년 초봄의 어느 날, 남경의 한 정원의 잔디 위에서, 등나무 의자에 누워 잡지를 뒤적이는 중년남자가 있었다. 그는 소설 한편을 읽었는데, 막 시작부분을 읽다가 자신도 모르게 똑바로 앉아서, 자세히 한번 또 한번 읽게 된다. 이 남자가 바로 호란성이다. 그리고 그가 읽은 소설은 바로 장애령의 <봉쇄(封鎖)>였다. 당시 호란성의 첫번째 부인은 사망했다. 돈이 없어서 생활이 궁할 때, 왕정위의 친일남경정부가 그를 좋게 보게 되고, 그는 왕정위의 주구가 된다. 이때 호란성은 남경에서 요양중이었다. 그가 소청(蘇靑)이 부쳐준 잡지 <천지> 제11기를 읽으면서, <봉쇄>를 보자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문인과 문인간에는 이렇게 서로를 아끼는 경우가 있다. 그리하여 그는 작자인 장애령에 대하여 호기심을 가진다. 호란성은 원래 재자(才子)이다. 그는 즉시 소청에게 서신을 써서, 그가 작자인 장애령과 교류하고 싶다고 말한다. 소청은 회신에서 이렇게 말한다. 작자는 여성이고 재주가 아주 뛰어나다고. 이는 호란성으로 하여금 장애령을 더욱 그리워하게 만든다. 얼마후 그는 다시 소청이 부쳐준 <천지> 12기를 받아든다. 거기에는 장애령의 글이 있을 뿐아니라 그녀의 사진도 있었다. 장애령의 자연스럽게 드러난 아름다운 기질은 호란성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리하여 그는 더욱 장애령과 알고지내고 싶어진다. 그러나 장애령은 낯선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지 않았다. 특히 정계인사는. 결국 여러 방면으로 장애령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그녀에게 만나는 것을 거절당한다. 그러나 호란성은 포기하지 않았다. 문틈으로 쪽지를 집어넣는다. 자신의 방문이유와 집주소, 전화번호를 적었다. 그리고 장애령 소저의 시간이 괜찮을 때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다음 날, 장애령은 호란성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를 만나러 가겠으며 조만간 가겠다고 한다. 다만 장애령은 그가 찾아오겠다는 것은 다시 거절하고, 장애령이 직접 그를 보러 간다. 원래 장애령도 호란성을 알고 있었다. 일찌기 호란성은 왕정위에게 밉보여서 감옥에 갇혀 있었고, 장애령은 일찌기 소청을 따라 주불해의 집으로 그를 석방해달라고 부탁하러 간 적도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그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만나자, 호란성은 오히려 어쩔 줄을 몰라했다. 왜냐하면 장애령은 자신이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작가같지도 않고, 오히려 아직 미성숙한 여학생같았다. 그러나 문학을 얘기하자 하는 말마다 옳았다. 특히 현재 유행하는 작품에 대하여는 더더구나 자기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처럼 잘 알았다. 나중에 장애령에게 매월 원고료수입이 얼마인지 물어본다. 호란성은 자신도 대답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지만, 장애령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호란성은 장애령을 골목길 앞까지 바래다주면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너무 늦게 만난 것을 한탄하면서. 그러나 여전히 군자의 풍모는 유지했고, 손조차 끌어당겨 잡지 않았다.
다음 날, 호란성은 장애령의 집으로 답방한다. 호란성은 삼국시대 유비가 손부인의 방을 들어가는 것처럼 느꼈다. 그날, 장애령은 보람주오고(寶藍綢袄褲)를 입고 있었고, 노란테두리가 있는 안경을 끼고 있었다. 여러 해후에도 호란성은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후, 그는 매일 장애령을 보러 간다. 하루는, 그가 장애령에게 <천지>에 실린 사진에 대하여 얘기하자, 장애령은 꺼내와서 그에게 건네준다. 그리고 뒷면에 몇 마디 글자를 적는다: "그를 만나면, 그녀는 아주 낮아지고 아주 낮아진다. 낮아져서 먼지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그러나 그녀는 마음 속으로 기쁘다. 먼지 속에서 꽃을 피울 수 있다." 이 해에 호란성은 38살이고, 장애령은 24살이었다.비록 서로 14살의 차이가 있었지만, 금방 그들은 사랑에 빠진다. 호란성은 남경에서 일을 하면서 1달에 한번 상해로 돌아왔고, 8,9일씩 머물렀다. 매번 상해로 돌아올 때면 그는 미려원(美麗園) 자기의 집으로 가지 않고, 바로 헉덕로(赫德路)로 가서 장애령을 먼저 본다. 두 사람은 매일 함께 있었고, 서로 사랑의 밀어를 나누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오음연어(吳音軟語), 얘기해도 끝이 없는 이합비환(離合悲歡),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할 때는 인간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일이 이보다 더할 수 없다고 느꼈다.
호란성은 성숙한 남자였고, 장애령을 깊이 사랑했다. 그래서 그는 장애령을 알았고, 그녀가 귀족가정의 배경 속에서 고귀하고 우아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녀가 어린시절에 겪은 불행으로 급시행락(及時行樂)하려는 생각을 잘 알았다. 그녀는 뱃속에 세상을 뒤덮을 재주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천지간에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1명이면 족하다는 것도 알았다. 바로 이런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장애령으로 하여금 그를 사랑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를 따지지도 않고, 그가 매국노라도 좋았고, 남성우월주의자라도 좋았다. 그리고 이미 두번이나 결혼한 늙은 남자여도 좋았다. 그녀는 한 서신에서 호란성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생각해 보았는데, 네가 앞으로 나의 집을 오고가도 괜찮겠다" 아마도 그녀는 호란승이 현재 그녀를 사랑하는 것만 신경썼고, 다른 것은 더 많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같다.
호란성은 장애령보다 나이가 많았다. 장애령은 어려서부터 부친의 사랑이 결핍되어 있었고, 엘렉트라 컴플렉스(戀父情節)가 있었다. 그러므로, 나이문제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모든 사랑을 쏟아 이렇게 세상사람들이 괴이한 눈으로 바라볼 사랑을 한 것이다. 그렇게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고 그렇게 초범탈속(超凡脫俗)하게 사랑한 것이다.
이 해 8월, 호란성의 두번째 부인이 이혼을 요구한다. 이것은 장애령에게 하나의 기회였다. 외도를 하는 세컨드에서 친밀한 부부로 될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결혼한다. 법률절차는 없었고 그저 한 장의 혼서(婚書)가 증빙이었다. 장애령을 깊이 사랑한 호란성은 나중에 시국이 바뀌면 자신때문에 장애령이 힘들어질까봐 걱정했다. 아무런 의식도 없이, 장애령의 가까운 친구인 염앵(炎櫻)이 증인이 되었다. "호란성과 장애령은 평생을 함께하기로 맹세하고 부부로 맺어졌습니다. 바라건데 세월이 조용하고 현세에서 안정되면 좋겠습니다.(胡蘭成與張愛玲簽訂終身,結爲夫婦. 願使歲月靜好, 現世安穩)". 앞의 두 문구는 장애령이 쓴 것이고, 뒤의 두 문구는 호란성이 썼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그들의 감정은 단단하고 안정적인 관계인 부부로 맺어졌다.
이 기간동안은 장애령의 창작생애에서 황금기이다. 호란성은 그녀의 작품에 도움을 준다. 두 사람은 함께 문학주제를 토론하였다. 장애령의 산문 <애(愛)>는 처음 도입부분에서 이렇게 바로 말한다. 이것은 실제 이야기라고. 확실히 실제 이야기이다. 호란성의 서모(庶母)의 이야기이다. 아마도 그는 그녀의 창작에 영감을 부여한 것같다. 그러나, 이런 시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아쉽게도 행복했던 시간은 너무 짧았다. 이 해 말, 시국은 확실히 변동했다. 일본군은 중국에서의 세력이 날로 약화되었다. 호란성은 왕정위정부의 관리로서 위기감을 느꼈다. 어느 날 저녁, 두 사람은 상해의 밤경치를 구경하고 있었다. 호란성이 말한다: "장래 일본이 패전하면, 나는 아마도 이 겁난을 피할 수는 있을 것이다. 처음 1,2년은 이름을 감추고 숨어 지낼 것이니, 우리가 다시 함께 할 수는 없겠다." 장애령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때 네가 이름을 바꾸려면 장견(張牽, 견은 끌다) 혹은 장초(張招, 초는 부르다)라고 해라. 세상 끝이라도 내가 너를 끌고 너를 부를 것이다."
두 사람은 정말 헤어지게 된다. 이해 11월, 호란성은 호북으로 가서 <대초보(大楚報)의 편집을 맡으면서 장애령과 장기간 떨어져 있게 된다. 그 당시는 자주 경보와 공습이 있던 때이다. 하루는, 호란성이 길을 가다가 폭격을 맞는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져 있었고, 그는 철궤에 무릎을 꿇고있었다. 자신이 곧 폭격에 죽을 것이라고 여겼다. 절망의 와중에 그는 두 글자를 부른다: "애령" 이때 그는 아직도 장애령을 전심전력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호란성은 원래 애정이 오래가지 않는 사람이다. 무한으로 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양의원의 한 17살된 간호사 주훈덕(周訓德)과 사랑에 빠진다. 그는 주훈덕에게 장애령에 관하여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에게 그녀를 데리고 살겠다고 한다. 단지 첩으로. 주훈덕의 생모도 첩이었다. 주훈덕의 반응은 엄마도 첩인데 딸도 첩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호란성은 다시 한번 결혼식을 올린다. 마치 장애령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같았다. 장애령은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그에게 보낸 서신을 보면 여전히 그에게 그녀의 생활에서의 여러가지 자잘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그녀는 아직도 그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해 3월, 호란성은 무한에서 상해로 돌아온다. 장애령의 집에서 1개월여를 머문다. 이때 그는 비로소 주훈덕과의 일을 장애령에게 털어놓는다. 장애령은 깜짝 놀란다. 그녀는 호란성의 사랑이 굳건하고 동요하지 않는다고 여겼는데, 어찌 다시 주훈덕이라는 여자가 나타난단 말인가. 이때 장애령이 마음은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그를 사랑했고 그래서 그는 그저 묵묵히 받아들인다. 두 사람이 함께 살면서, 호란성은 다시는 주훈덕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이렇게 그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만 생각하는 것같다.
아쉽게도, 5월, 호란성은 다시 무한으로 돌아간다. 주훈덕을 보자,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그는 다시 장애령을 잊어버린다. 그러나 호란성은 확실히 아주 엉망인 나자였다. 얼마후 다시 온주로 피난을 간다. 이 기간동안 자신의 동창의 계모와 간통을 한다. 그러나, 이미 반년동안 만나지 못했던 장애령은 그를 찾아서 온주까지 온다. 이 두 여인과 한 남자의 삼각관계는 어떻게 보더라도 난감할 뿐이다. 범수미(范秀美)의 이웃이 세사람의 관계에 대하여 함부로 얘기할까봐 그들 세 사람은 여관에서 만난다. 어느 새벽, 호란성과 장애령은 여관에서 얘기를 나눈다. 은근히 복통이 왔지만 그는 참는다. 범수미가 오자, 그는 바로 자신은 몸이 좋지 않다고 말한다. 범수미는 방문 옆의 한 의자에 앉는다. 어떻게 아픈지 물으보고는 바로 좀 있다 차를 한잔 마시면 낫는다고 말한다. 장애령은 그 때 아주 서글퍼진다. 왜냐하면 그녀는 분명히 느꼈기 때문이다. 범수미는 호란성의 가족이고, 그녀 자신은 '제3자' 혹은 손님인 것같았다. 또 한 가지는, 장애령이 범수미가 예쁘다고 칭찬하며 그녀를 위하여 그림을 그려주겠다고 말한다. 원래 그림은 장애령이 잘 하는 분야였다. 범수미도 단정하게 앉아서 그녀가 그림을 그리게 한다. 호란성은 옆에서 보고 있었다. 그러나 막 얼굴윤곽을 그리고, 눈섭, 눈과 코를 그리다가 장애령은 돌연 그림 그리기를 멈추고, 아무 것도 못그리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처연한 얼굴을 한다. 범수미가 떠난 후, 호란성은 계속 묻는다. 그러자 장애령이 대답한다: "내가 그리다보니 그녀의 눈썹이 예쁘다고 느꼈고, 그녀의 입술은 갈수록 너를 닮았다고 느꼈다. 마음이 울컥해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그리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부처상(夫妻像)"인가. 장애령은 정말 억울하다. 그녀의 마음 속에는 오직 한 남자 밖에 없다. 그러나 이 남자는 마음 속에 여러 남자를 담고 있다. 그녀가 어떻게 해야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까?
온주를 떠날 때 호란성이 그녀를 배웅한다. 하늘에서는 비가 내렸다. 그녀는 탄식하며 말한다: "네가 결국 안되겠다고 하니. 나는 생각해봤다. 내가 설사 부득이하게 너와 헤어진다고 하더라도, 짧은 생각을 하지는 않겠다(죽지는 않겠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나는 그저 이렇게 시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번 비는 그들의 예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랑"을 씻겨내려갔다. 장애령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의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이미 씁쓸한 끝을 맞이했다는 것을. 다시는 만회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그후의 8,9개월간, 두 사람은 가끔 서로 서신을 주고 받는다. 장애령도 자신의 원고료를 호란성에게 부쳐준다. 그가 도망다니는 와중에 고생을 겪을까봐.
한번은 호란성이 상해를 지나갈 일이 있었다. 위험한 가운데, 그는 장애령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문다. 그는 자신의 외도를 반성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오히려 장애령이 생활에서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을 질책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자신이 주훈덕과의 일을 쓴 <무한기>에 대한 인상이 어땠는지를 묻고, 자신과 범수미의 일을 얘기한다. 그러나 장애령은 아주 냉담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다른 방에서 잔다. 다음 날 새벽, 호란성은 장애령의 침상으로 가서 작별인사를 하고 몸을 굽혀 그녀에게 키스한다. 그녀는 두 손을 뻗어 그를 꼭 끌어안고 눈물을 쏟아낸다. 오열하는 와중에 '란성'이라는 말 한 마디만 하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이 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이다.
몇 달 후, 1947년 6월, 호란성은 장애령으로부터 결별서신을 받는다: 나는 이미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 너는 일찌감치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번의 결심은 내가 1년반의 오랜 시간동안 생각해서 결정한 것이다. 너가 그 때 소길(小吉)인 연유로, 너에게 곤란을 더 하고 싶지 않다. 너는 나를 찾지 말라. 혹시 서신을 보내더라도 나는 보지 않겠다.
소길은 소겁(小劫)이다. 즉 작은 겁난이다. 이때의 호란성은 이미 위험을 벗어나서 한 중학교에서 교사로 있을 때이다.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장애령은 그가 모두 안정된 때를 골라서, 결별서신을 보낸 것이다. 서신에는 자신의 30만위안 원고료도 같이 부친다. 이후, 두 사람의 전설적인 사랑은 막을 내린다. 호란성은 일찌기 장애령의 가까운 친구인 염앵에게 서신을 보내어 애정을 만회해보려고 했지만, 장애령이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고, 염앵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 사랑은 이렇게 끝난 것이다. 장애령은 호란성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저 이렇게 시들어갈 것이다." 시들어가는 것은 애정만이 아니다. 문채(文采)도 그렇다. 그후의 장애령은 창작에서 침체기를 맞는다.
이를 보면 세상의 사랑은 어떤 때는 믿을만하지 못하다. 어떤 사람은 일생동안 사랑하고 어떤 사람은 조삼모사이다. 그저 꽃을 찾아드는 나비처럼 그 아름다운 겉모습만을 추구한다. 이전의 맹세는 완전히 잊어버린다. 장애령은 행복했다. 어쨌든 이 일생에 자신을 사랑하던 사람이 한 명은 있었으니까. 애령은 만족했다. 그 한 사람을 1년동안 모든 힘을 다해서 사랑했었으니까. 애령은 충실했다. 어쨌든 그 기간동안 자신도 호란성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했고 그 사랑은 붓으로 융합되어 아름답고 다채로운 문자가 되어 한편한편 주옥같은 글이 나왔으니까. 애령은 고독했다. 모든 것이 지나가고 조용해 진 후에 비로소 안개같고 비같고 바람같던 것이 원래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때의 장애령은 마음이 이미 죽었다. 눈물도 이미 말랐다. 마음 속의 그 멋있던 난자는 이미 절세의 먼지가 되었다. 어떤 때는 칼처럼 심장에 낙인을 새긴다. 그저 인한성치(因恨成痴)의 기억도 일종의 사랑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신의 혈액속에 들어가서 아주 깊이있는 철리(哲理)를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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