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천비홍(中天飛鴻)
철도부비리사건으로 또 한 명이 형을 받았다. 전 철도부 운수국장 장슈광(張曙光)의 정부인 뤄페이(羅菲)는 베이징제2중급법원에서 유기징역 5년의 형을 받았고, 판결선고후 보석상태에서 수감이 되었다(2014년 12월 2일자 <법제만보>).
2013년 11월 7일, 뤄페이는 제2중급법원에 출정하여 재판을 받았다. 당시 검찰측은 그녀가 장슈광의 수뢰범죄소득 합계 198만위안을 은닉한 죄로 기소했다. 뤄페이는 법정에서 범죄를 인정했고, 제2중급법원은 1심판결에서 죄명을 수뢰죄로 변경했다. 현재 뤄페이는 아직 상소하지 않았다고 한다.
10월 17일, 전 철도부 운수국국장, 부총공정사 장슈광은 수뢰죄로 사형, 집행유예 2년의 형(사형, 집행유예 2년의 형은 사형판결후 2년이 지난 후 심사하여 무기징역으로 감형할 수 있음)과 개인재산 전부 몰수형을 받았다. 법원은 재판을 통하여 장슈광이 2000년부터 2011년까지의 사이에 직무상의 편의를 이용하여, 직접적으로 혹은 그의 정부인 뤄페이를 통하여 인민폐 합계금 4,718만위안의 뇌물을 수령했다과 밝혔다.
기소서에 따르면, 장슈광이 체포된 4개월 후, 2011년 6월 13일, 정부인 뤄페이는 수뢰죄로 창핑(昌平) 경찰의 감시거주를 받았다. 십여일 후, 동청(東城)경찰이 형사구속했고, 2012년 1월, 뤄페이는 동청검찰원에 의하여 보석을 허가받았다.
2013년 8월, 검찰측은 수뢰죄로 뤄페이에 대하여 기소를 제기한다. 그 후, 검찰측은 뤄페이의 죄명을 수뢰죄에서 범죄소득은닉죄로 변경한다. 이 죄는 "명백하게 범죄소득 및 그로 인하여 발생한 소득이라는 것을 알면서 숨기거나 이전하거나 매수하거나 대신 소비하거나 혹은 기타 방식으로 은닉하는 행위"를 말한다.
32살의 뤄페이는 원래 중국철로문공단 가무단의 가수였다. 그녀는 소프라노가수이다. 일찌기 문공단을 대표하여 2010년 청년가수대회에 참가하였다. 2011년 6월 10일, 뤄페이는 범죄가 적발되어 수사를 받는다. 검찰은 2007년에서 2011년 1월까지, 뤄페이는 광저우중처철로기차차량판매임대유한공사의 법정대표인 양젠위(楊建宇)가 교부하는 금액이 장슈광의 수뢰범죄소득이라는 것을 알면서 은닉하였고, 상기금액은 인민폐로 198만위안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뤄페이가 범죄소득임을 알면서 은닉하였으니 범죄소득은닉죄로 형사채임을 추궁해야 한다고 하였다. 법정에서 뤄페이는 기소사실을 모두 인정하였다. 그리고 관련금액은 모두 추징당하였다. 장슈광이 재판을 받을 때, 검찰측은 증인을 내세워 뤄페이와 장슈광이 애인관계이고, 양젠위가 교부한 재물을 받은 사실을 입증했다.
제2중급법원은 재판을 통하여 검찰관이 기소한 죄명을 바꾸었고, 뤄페이가 수뢰죄를 구성한다고 인정한다. 1심에서는 유기징역 5년에 처한다. 현재, 보석상태의 뤄페이는 수감되었고, 상소기간만료전에 뤄페이가 상소할지 여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처인 왕싱(王興)이 일찌감치 아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미국에서 주택을 사고, 회사를 열었으므로, 장슈광은 전 철도부내에서 '나관(裸官, 가족이 모두 해외로 이주하고 중국에는 혼자 남은 관료)'이라고 불리웠다. 장슈광은 재판과정에서 2005년 연말, 그가 철도부 운수국 국장으로 발탁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철도문공단의 여가수 뤄페이를 알게 되었고, '그 후에 뤄페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녀를 아주 좋아한다고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2011년 2월, 장슈광은 정직되고, 조사를 받는다. 철로문공산 가수인 까오모의 증언에 따르면, 2011년 4월, 뤄페이는 검은 상자 1개를 그의 거처에 놓아 두었는데, 장슈광사건이 발생한 후 상자를 검찰기관에 제출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장슈광은 말했다. 뤄페이를 쫓아다니면서 그의 씀씀이는 커졌다고 한다. 당시 진촹(今創)집단 총재인 거젠밍(戈建鳴)이 장슈광을 찾아왔다. 그리고 일이 있으면 그를 찾아오겠다고 말한다. 나중에 장슈광은 거젠밍에게 전화를 해서 돈이 약간 필요하다고 하면서 그에게 200만위안을 베이징으로 보내라고 한다.
거젠밍이 베이징에 온 후 검은색 여행가방을 장슈광에게 건넨다. 그 안에는 200만위안의 현금이 있었다. 그중 7,8십만위안은 장슈광이 금고에 넣어두고 그와 뤄페이의 일상지출에 썼다. 나중에 장슈광은 다시 나머지 돈에 자신의 다른 돈을 더해서 뤄페이에게 집을 사준다.
장슈광에게 뇌물을 제공한 광저우중처공사 오너인 양젠위는 증언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는 전후로 뤄페이에게 명품시계, 고급승용차를 사주었고, 2008년 연말, 양젠위는 뤄페이를 그의 베이징회사의 기업선전및이미지기획을 하도록 맡긴다. 그리고 매월 뤄페이에게 1.6만위안의 급여를 지급했다. 뤄페이에게 모두 3,4십만위안의 '급여'를 지급하였지만, 기실 뤄페이는 그의 회사에 출근한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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