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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사회

사실상 고아: 사회의 사각지대

by 중은우시 2014. 10. 24.

글: 이순풍(李淳風) 남풍창 특약기자

 

어떤 때는 네가 듣지 못한다고 하여, 아무도 신음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13년 8월 5일, 광동성 산터우시 공익기금회 비서장 정쥔친(鄭俊欽)은 두터운 명단을 보여주었다. 그 위에는 매 행마다 "사실상 아무도 돌보지 않는 아동"이라는 정보가 있었다. 간단한 정보이지만 보는 사람은 마음이 아팠다.

그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 다닐 나이였다. 부친은 없고 모친은 있으나 모친이 실종된 경우도 있고, 일부는 양친이 모두 건재하거나 그중 한쪽이 있는데, 노동능력이 없거나 심각한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국가의 고아에 대한 정의에 따르면, 그들은 고아가 아니다. 매체에서는 이런 집단의 아이들을 간략하게 "사실상고아"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들의 처지는 고아들보다 훨씬 어렵다. 먹고 입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뿐아니라, 생존까지 문제된다.

이것은 사회의 어두운 구석이다. 해가 비치는 곳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회가 반드시 직면해야할 문제이다.

 

그들의 부친은 영웅이다.

 

산터우시(汕頭市)에서 레이링진(雷嶺鎭)으로 가는 길은 울퉁불퉁하여 오장육부를 다 뒤집어 놓았다. 마치 류샤오홍(劉曉虹), 류샤오화(劉曉華), 류샤오원(劉曉文) 세 오누이의 불행한 인생과 같았다. 

난시촌(南溪村)은 가난한 마을이라고 할 수는 엇다. 반이상의 집은 모두 견고한 3,4층짜리 건축이다. 류씨 세오누이가 사는 곳은 그중의 하나인 백색의 3층짜리 건물이었다. 그곳이 그들의 집이다. 다만 그것은 백부와 백모의 집이다. 그들 자신의 집은 마을 뒤편의 낡아빠진 단층집이다.

2004년, 큰언니 류샤오홍이 9살때, 그들의 부친 류무하이(劉木海)는 같은 마을의 아이 한 명이 연못에 빠지자, 아무런 망설임없이 뛰어들어 구해주었다. 아이를 구해냈으나 이미 죽었고, 류무하이는 지치고 힘이 빠져서 연못 속으로 빠져들어가서 사망한다. 

지금, 류샤오홍은 이미 18살이고, 그는 이미 부친과 모친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네 부친을 화장할 때, 내가 너의 곁에 있었고, 너에게 아빠에게 절을 하라고 시켰었는데, 기억이 조금도 나지 않는다고?" 40여세된 당형이자 난시촌지부 부서기인 류진(劉錦)이 곁에서 여러번 추궁하여 물었지만, 류샤오홍은 여전히 부끄럽게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계속 집요하게 몯자 겨우 이렇게 대답한다: "조금은..." 16세된 류샤오화와 12살된 류샤오원은 부모에 대하여 더더구나 아무런 인상도 남아 있지 않다.

류샤오홍은 기자들 앞에서 가끔 몇 마디 대답을 했다. 샤오화와 샤오원은 비록 태도는 호의적이었지만 기본적으로 한 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류진은 말한다. 아마도 부친이 사망한 그림자가 너무 오랫동안 애들을 덮어온 것같다. 그래서 이 3 아이의 성격도 내성적이 되고 평소에 기본적으로 말이 없게 되었다.

류진이 샤오홍에게 돌아다신 부친에 대하여 기억이 남아있지 않은지를 추궁할 때, 곁에 있던 기자도 질식할 것같았는데, 샤오홍은 계속 보는 사람의 가슴이 아플 정도로 미소만 짓고 있었다.

류진은 뭐 거리낄 것이 없다고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이 관문을 넘어야 한다고. "너희는 스스로 비하할 필요가 없다. 너의 부친은 영웅이라는 것을 기억해라. 전사회가 모두 존경하는 사람이다. 너희는 어디를 가든지 가슴을 펴고 떳떳하게 살아라."

샤오홍은 고개를 숙이고, 좀 있다. 고개를 끄덕인다.

샤오화와 샤오원은 모두 나가서, 아주머니가 불러서 데려온다. 같이 있던 20여분동안, 둘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응'이라는 소리도 내지 않았다.

 

실종된 모친

 

류무하이가 사망한 후 1개월만에, 처가 돌연 실종되고,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류진은 말한다. 분명히 개가했을 것이다. 당시에 사람이 죽으면 우리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녀를 설득했다. 남자를 하나 데려와서 함께 아이들을 기르라고, 그러면 아이들이 자란 후에 의지할 곳이 생긴다고. "그녀는 당시에 이미 난관절제를 했다. 개가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못한다. 이런 상황을 나는 그녀와 분석을 해보았다. 그래도 소용없었다. 돌연 사람이 없어진 것이다."

기금회의 그 명단중 부친이 죽거나, 장애인이 되거나 중병에 걸린 후 모친이 실종된 경우가 627명의 아이들 중 90%이상을 점했다.

모친이 독하게 마음먹은 것이 아이들을 곤경에 빠뜨린 공동원인이다. 이들 불행한 가정은 대부분 원래 아주 가난했다. 그래서 모친은 대부분 외지의 더욱 가난한 곳에서 데려왔다. 심지어 일부분은 월남에서 왔다. 이들 외지의 며느리들은 차오산(潮汕)이라는 특이한 문화로 유명한 곳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남편이 없어지면 지탱해주는 모든 것이 없어진 셈이 된다.

이들 실종된 모친은 기본적으로 한 명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사실상 부모가 없게 된다. 그러나 모친이 아직 살아있으므로, 그들은 고아로 인정받을 수도 없다. 그래서 정부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대부분은 힘들게 버텨나가고 스스로 살아나가야 하는 지경에 처한다.

샤오홍의 오누이는 불행하다. 그래도 그들은 운이 좋다. 왜냐하면 최소한 그들에게는 백부백모라도 있다. 류무하이의 형과 형수인 류무칭(劉木淸) 부부는 아이들을 자신의 집에 받아주었고, 친자녀와 같이 기른다. 류진은 말한다. 무칭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남부끄럽지 않은 위대한 부부이다. 그들은 원래 생활이 그다지 부유하지 못하다. 부부 둘은 리치를 심어서 살아간다. 가격과 날씨가 모두 변동이 심하므로 어떤 해는 돈을 벌지만 어떤 해는 손해를 본다. 그리고 그들자신에게도 부양해야할 아이가 둘이나 있다. 그러나 샤오홍 오누이에게 전혀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친자식처럼 대해준다.

류진의 생활상황은 약간 나은 편이다. 마을에서 공장을 하나 열었다. 손전등의 선로판을 생산한다. 여러해동안, 그는 계속하여 3명의 아이를 도와주었다. "나와 너희 부친은 같은 집에서 자랐다. 마을에서 가장 친한 친구였다. 나는 내가 할 수 있은 반드시 하겠다."

나머지 많은 '사실상 고아'들도 친척에 의존하거나 이웃에서 도와주어 살아가고 있다. 다만 대다수는 류무칭부부처럼 좋은 친척이 없다. 어떤 7,8살된 아이는 하루에 겨우 두끼만 먹고 그것도 자주 간장에 밥을 비벼 먹는다.

산터우시공익기금회 회장 장저화(張澤華)는 이렇게 말한다. 현장에서 그들의 처지를 보면, "마음 속으로 정말 안타깝다."

 

벗겨진 가림막

 

산터우시공익기금회는 기관에서 퇴직한 노간부들이 주축이 되어 조직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전에 쌓아놓은 인맥자원을 이용하여, "밥그릇을 들고 사방을 다니며 구걸한다" 산터우기업가에게 공익자금을 모집한다. 작년8월이전에, 그들이 한 일은 대부분의 민간공익조직이 한 것처럼, 복지원의 아동을 도우고 관심가지는 것이었다.

2012년 8월, 기금회는 '휼고원몽(恤孤圓夢)"활동을 했다. 그러나 하층으로 깊이 들어가보니, 그들은 우연히 '사실상고아'라는 이들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을에서 지역에서 이들 아동의 처지는 고아들보다 훨씬 힘들었다. 기본적으로 여하한 정부로부터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중 상황이 가장 나은 것은 기층민정부서에서 저보(低保)를 처리해서 매월 300위안을 받게 해주는 것이다. 다만,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는 이 사실 자체는 아무도 당연히 보여야할 관심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사회의 이 어두운 구석은 산터우시공익기금회가 그 빛을 가리는 가림막을 걷어내 주게된다. 이 기금회는 이들 아이를 중점관심대상으로 삼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즉시 자금모집에 착수하고, 전력을 다하여 그들을 돕기로 한다.

기금회는 바로 산터우시 민정국에 서신을 보낸다. 이들 아이들이 전체 시내에서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는데 협조해달라고. 결국 민정부서의 도움하에 627명의 아이들 명단이 만들어 진다. 현재 자금은 아직 모으는 중이다. 9월이면 명단상의 아이들에게 매들 200-300위안의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을 것이고, 자금지원기간은 3년으로 잡았다.

그러나, 기금회도 자신의 역량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들 아이들을 도와주는 것은 결국 정책층면에 의존해야 한다. 이것은 그들이 어두운 구석을 벗어나게 하는 최종방법이다. 그래서 산터우시기금회는 행동으로 시범을 보이고 호소하는 효과를 내고자 한다. 각급정부가 진정으로 중시해주고 동시에 더 많은 자선기관이 진실한 상황을 보고 행동을 취해주기를 희망한다.

"먼저 국가는 '사실상 아무도 돌보지 않는 아동'들의 분명한 기준을 정해주어야 한다. 고아의 기준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정책제정의 전제이다." 정쥔친이 보기에, 각급정부는 현행법률의 각도에서 확실히 반드시 '사실상 아무도 돌보지 않는 아동'을 도와줄 의무가 없다. 도와줄지 말지는 각지의 뜻에 달렸다. 이에 대하여 먼저 국가층면에서 계통적인 규범을 만들어야 한다.

작년붜, 정쥔친은 '사실상 아무도 돌보지 않는 아동'에 관한 소식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정부에서 중시하는 흔적을 보고 싶어한다. "일부 사실상 아무도 돌보지 않는 아동의 보장정책은 아직 실시되지 않고 있다." 2012년 10월 24일 제11기 전인대 상무위원회 제29차회의에서 민정부 부장 리리궈(李立國)는 이런 말을 했다. 정쥔친은 말한다. 이것은 최소한 정부가 이런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몇년전, 국가는 성급정부에 '사실상 아무도 돌보지 않는 아동'의 상황을 전면적으로 조사하라는 문건을 하달한 바 있다. 광동성정부는 이 문건을 각 지급시에 보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요구사항이 구체적이지 않고, 그저 간단한 1장의 통지문이었고, 다른 한편으로 상부에서 문건을 하달한 후 재촉이 심하지 않아서 최종적으로 아무런 결과도 없이 흐지부지되고 만다.

만일 정부에서 이런 사람들의 곤경을 전혀 모른다고 한다면, 논리적으로 그리고 여러가지 상황으로 볼 때 말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많은 촌급조직은 계속하여 상부에 이 내용을 보고했기 때문이다. 사실을 알고 있는 인사는 이렇게 말한다. 지방정부는 아마도 재정부담을 생각하는 것같다. 혹은 새로 일이 늘어나는 것을 생각하는 것같다. 그래서 선택적으로 눈을 감아버린 것이다.  

만일 위안리하이사건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정책고아'의 생존상황을 드러냈다면, 난징 장닝의 여아가 굶어죽은 사건은 극단적으로 참혹한 방식으로 정부와 사회에 '사실상고아'문제에 관심을 가지라고 경고한 것이다.

 

부모가 건재한 "고아"

 

"사실상 아무도 돌보지 않는 아동"이라는 이 집단의 상황은 아주 복잡하다. 하나의 간단한 개념으로 전체를 포괄할 수 없다. 전 산터우시시위당교 교장이었으며 엄격한 학자인 정쥔친은 '사실상고아'라는 민간의 명칭은 적절하지 않다고 한다. '사실상고아'는 고아가 아니다. 그래서 고아와 관련된 사항으로 무슨 기관이나 사람들에게 요구할 수가 업는 것이다.

이것은 전혀 새롭고 완전히 새로운 제도로 보살펴야할 집단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규범이 있는 기준을 가지고 그들의 신분을 인정하여야 하며 이것은 아주 복잡한 과제이다. 기금회에서 제공한 명단을 가지고 기자는 이를 한번 시도해보았으나, 복잡다기한 느낌은 그 안의 복잡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롱후구 신시진 싼허촌의 세쟈한(謝佳涵)은 이제 막 4살이 된 여자아이이다. 그녀의 전체 가정은 모두 다 갖추어져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건재하다. 단지 부친이 1급정신질환을 앓고 있고, 모친은 자동차사고를 당해서 다리에 분쇄골절상을 입었다.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것은 겨우 제사용의 황지에 금색의 박막을 입히는 일로 약간의 가련한 수고비를 받는 정도이다.

산터우시공익기금회가 4000위안의 위문금을 전달했고, 동시에 어린 셰쟈한을 '사실상 아무도 돌보지 않는 아동'의 도움이 필요한 명단에 넣어주었다. 이런 도움은 오히려 할아버지에 대한 것이지 아이에 대한 것이 아닌 것같다. 이것이 바로 '복잡성'이 존재하는 점이다.

할아버지는 이런 관계를 인식하는 것같다. 그는 말한다. 내 생각에 나는 노동할 수 있다. 기금회의 자금지원은 받을 수 없다.

이 맨어깨를 드러낸 바짝 마른 노인은 온몸의 피부가 고동색이었고, 얼굴에는 주름이 깊었다. 일생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여전히 강인했다. 그러나 그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볼 때, 분명히 그의 눈빛 속에서 비감하고 처량한 무력함을 엿볼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신시진 서남촌의 세동춘(謝冬春)은 이미 초등학교 1학년이다. 그녀의 집에 있는 전화는 자주 아무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화기를 받아든 부친 세무칭(謝木靑)은 식도암을 앓아서 목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모친 천리좡(陳麗粧)은 정신병을 잃고 있어 일찌기 물에 뛰어들어 자살하려 한 것을 구해냈다. 지금은 뼈만 남을 정도로 앙상하게 말랐다.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서 움직이지도 못한다. 동춘에게는 고등학교 2학년인 오빠와 전문학교에 다니는 언니가 있다. 그러나 이미 성년이므로 자금지원범위에 넣을 수는 없었다.

만일 산터우시공익기금회의 행동에 시범적인 의미가 있다면, 그것의 아주 중요한 점은 그들이 '사실상 아무도 돌보지 않는 아동"의 개념은 넓혀준 것이다. 가능한 한 더 많은 곤경에 빠진 아이들이 수익을 얻도록 해준 것이다.

마음씨좋은 사람의 위문금을 받고, 셰무칭의 표정은 복잡했다. 말을 할 수 없으므로 그는 분필로 벽에 "고맙습니다(謝謝)"라는 두 글자를 썼다.

 

그들에게 미래를 주자

 

샤오홍은 현재 마을의 한 공장에서 환경봉지를 만드는 것을 배우고 있다. 간지 막 3일이 되어 아직 다 배우지는 못했다. 그녀는 기자에게 말했다.아주 숙련된 노동자들은 많은 경우 1달에 4000위안까지 번다고. 그녀는 자신도 그렇게 높은 수입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그러면 백부백모의 부담을 조금 덜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백모는 눈이 좋지 않아서 현재 집안의 모든 일을 백부가 하고 있다.

"얼마? 4000위안? 꿈개라. 어떻게 가능하냐?" 류진은 곁에서 찬물을 끼얹는다. 그는 말했다. 자신이 바로 공장을 운영한다. 그래서 잘 안다. 공장에서 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1달에 1천위안을 받는다. 백모도 곁에서 말한다. 그렇게 좋은 일은 없다고. 그녀는 그래도 공부하는게 좋다고 말한다. 책을 좀더 읽으면 장래에 더 잘 살 수 있다고.

비록 이미 18살이지만, 샤오홍은 아직 중학교 1학년이다. 원래 부친이 그녀를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에, 학교에 간 것도 부친이 죽은 후 백부가 보내준 것이다. 당시에 이미 9살이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그녀는 계속 공부하려 하지 않았고, 선전으로 가서 2년간 일을 했다. 백모는 그렇게 하면 전도를 망친다고 생각해서 직접 선전으로 가서 그녀를 데려와 다시 중학교 1학년에 들어가게 한 것이다. 현재 샤오홍은 다시 학교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샤오홍은 자신이 공부하는 것은 완전히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여동생과 남동생도 그녀와 마찬가지이다. 성적이 아주 나쁘가. 자신은 이미 성년이 되었으므로, 일찌감치 돈을 벌어서 집안 사람들이 좀 더 잘 살게 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름방학때 그녀는 항상 백모, 당오빠와 공부를 계속 할 것인가 아닌가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였다. 어른을 말로 이길 수는 없어서 그녀는 그저 고개만 숙이고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백모와 당오빠는 모두 이 몇몇 불행한 아이들에게 더욱 좋은 미래를 갖게 해주고 싶다. 그러나 전국각지에 많은 '사실상고아'들은 아무도 그들의 미래를 위해서 걱정해주지 않는다.

8월 4일 오후 3시, 12살된 샤오원은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데 백부와 함께 황두(黃豆)를 심고 있었다. 백부가 밭을 갈아서 고랑을 내면, 그가 그 안에 콩을 심는다. 한번 또 한번 일하는 것이 아주 숙련되었다.

그의 미래는 콩과 같을 것이다. 어느 심산의 토지에 심어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