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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사분오열된 상하이방(上海幇)

by 중은우시 2014. 11. 1.

글: 유의(劉毅)

 

시진핑의 상하이에서의 옛 부하들은 혹은 승진하거나, 혹은 다른 지역으로 가서 요직을 맡거타, 중앙정부로 갔다. 이와 동시에, 장쩌민의 상해방 심복들은 혹은 정리되거나, 혹은 다른 출로를 찾고 있다. 장쩌민 본인도 거주지를 감시받고 있다. 시진핑이 상하이에 있을 때의 비서 딩쉐샹(丁薛祥)은 장쩌민의 친조카 우즈밍(吳志明)을 상하이시위 상위에서 쫓아낸 후 중앙으로 올라갔다.

 

10월 17일, 중공은 동시에 2개의 중요한 인사결정을 내린다. 리시(李希)가 랴오닝성 성장에 당선되었고, 천하오(陳豪)가 윈난성 대리성장에 임명되었다. 리시와 천하오는 모두 예전에 상하이에서 근무했었다.

 

리시는 2011년 5월 상하이시위 상위, 조직부 부장을 지냈고, 2013년 4월, 상하이시위 부서기로 승진했었다. 천하오는 상하이 징안구위 부서기를 지내다가 나중에 상하이시위 인대상위회 부주임, 당조부서기, 시 총공회부석등의 직위를 지냈다.

 

마찬가지로 상하이에서 근무했던 두자하오(杜家毫)도 2013년 3월 후난성위 부서기, 후난성장으로 승진한다. 두자하오는 상하이 송강구, 양포구 두 구의 서기를 지내고, 나중에 상하이시위 부비서장을 지냈으며 다시 시위 상위로 승진했다.

 

중공18대에 시진핑이 취임한 후, 상하이, 저장, 푸젠의 옛 부하들이 속속 중용되고 있다.

 

딩쉐샹은 시진핑이 상하이에 있을 때 정치비서를 지낸 심복이다. 시진핑이 상하이를 떠나기 전에 딩쉐샹을 판공실주임에서 시위 비서장으로 승진시켰고, 나중에 시위 상위를 지낸다.

 

2012년 충칭사건이후, 장쩌민파의 세력이 점차 힘을 잃고, 장쩌민은 본거지인 상하이도 빼앗기게 된다.

 

2012년 5월에 개최된 상하이시위 당대회에서 딩쉐샹의 안배하에, 장쩌민 상하이방의 인물들인 우즈밍, 양슝(楊雄)등은 상하이시위 상위에서 쫓겨난다.

 

2013년 1월, 우즈밍은 상하이 정협으로 가서 조용히 지낸다. 그후 홍콩매체에 따르면, 우즈밍은 부정부패사건이 발각되어 여권을 압수당했다고 한다.

 

2013년 5월, 딩쉐샹은 중앙으로 올라가서 중공중앙판공청 부주임 겸 시진핑 판공실 주임을 맡는다.

 

중공18대때 시위서기가 된 한정은 2012년말 상하이시장을 사임하고, 장쩌민의 심복으로 이미 상하이시위 상위에서 쫓겨난 양슝이 대리시장을 맡아서 외부는 깜짝 놀란다.

 

분석에 따르면, 당시 시진핑은 새로 취임했고, 중공고위층은 여전히 보시라이사건이 가져온 정치대지진의 과정중에 있어서, 중남해는 '보당(保黨)'의 고려에서 파격적으로 '상하이방'인 양슝을 대리시장에 임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치적인 균형술을 보여준 것일 뿐, 장쩌민파가 상하이 혹은 당정사무에서 발언권을 다시 가지게 된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양슝은 장쩌민의 아들 장멘헝이 상하이에 성립한 상하이렌허투자유한공사의 총경리를 맡았고, 장멘헝을 도와서 상하이에 널리 처진 방대한 자본제국을 형성한다.

 

시진핑이 상하이시위 서기로 있을 때, 부서기는 한정, 인이추이(殷一璀)이고, 시위 상위에는 선더용(沈德咏), 우즈밍, 왕중웨이(王仲偉), 선홍광(沈紅光), 두자하오, 양샤오두(楊曉渡), 장친홍(江勤宏), 양슝, 딩쉐샹, 쉬린(徐麟)이었다.

 

현재, 딩쉐샹이 중앙으로 올라간 것을 제외하고, 양샤오두는 이미 중공중기위 상위, 부서기가 되었고, 선더용은 최고법원의 2인자가 되었으며, 왕중웨이는 국무원 부비서장이 되었고, 선홍광은 연령이 많아, 2선에 물러난 후, 다시 중앙제1순시조 회독도조 부조장을 맡았다. 우즈밍, 양슝은 상하이에 남아서 원래의 직위에 있었다.

 

7월 28일, 상하이광밍집단 동사장 왕종난(王宗南)은 공금횡령 및 뇌물혐의로 붙잡혀 간다. 10월 8일, 왕종난이 기소된다. 공식발표에 따르면, 특이하게도 그는 "일당과 함께" 공동으로 공금 1.9억위안을 횡령했다고 한다.

 

왕종난은 장쩌민 부자와 친한 친구사이이다. 그가 낙마했다는 것은 시진핑당국이 장쩌민을 건드리겠다는 하나의 신호로 보여진다.

 

7월 30일 오전, 왕치산의 중기위는 제2순시조를 상하이로 보낸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중기위 순시조가 상하이에 진주한 후, 장쩌민은 자신이 체포될 것을 걱정하여, 8월초 병이 중하다는 것을 핑계로 병원에 입원해 버렸다. 장쩌민이 퇴원한 후 시진핑진영에서 그의 거주지를 감시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은 6월 26일의 중공정치국회의에서, 반부패문제에 강경한 태도를 보일 때, 상하이를 직접적으로 언급했다고 한다.

 

5월 14일, 장쩌민의 상하이방의 주요 구성원이자 상하이시위 서기인 한정은 쩡칭홍 및 장쩌민의 아들 장멘헝과 나란히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내어 상하이 한텐헝미술관을 참관한다. 얼마후에 쩡칭홍이 중기위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후 시진핑의 심복인 잉용(應勇)이 상하이시위 부서기를 맡았는데, 이는 한정의 자리를 대체하기 위한 준비를 마친 것이라고 하였다.

 

얼마전, 상하이의 소학교 교과서에서 고시를 삭제한 사건으로 한정은 시진핑에 공개적으로 대항했다. 이는 더더욱 시진핑, 장쩌민진영이 공개적으로 분열, 대립한다는 것을 드러냈다. 그후, 시진핑은 여러번에 걸쳐 공개적인 장소에서 상해를 강경하게 비난한다. 외계의 분석에 따르면 한정의 앞날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