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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문혁전)

보이보(薄一波)의 7명 자녀는 지금 무엇을 하는가?

by 중은우시 2014. 10. 24.

글: 복녕객(福寧客)

 

 

 

 

보이보는 걸출한 프롤레타리아혁명가이고, 중국공산당 경제사업의 탁월한 지도자이다. 그는 1925년에 입당하고 1949년에 정무원 재정부장이 되며 국무원 부총리, 중앙고문위원히 상무부주임등의 직을 역임한다. 2007년 1월 15일 20시 30분에 베이징에서 서거하니 향년 99세이다.

 

보이보는 모두 4남3녀를 두었다. 그중 장녀 보시잉(薄熙瑩)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두번째 처인 후밍(胡明)의 소생이다. 그들은 각각 장남 보시용(薄熙永), 차남 보시라이(薄熙來), 삼남 보시청(薄熙成), 사남 보시닝(薄熙寧); 차녀 보제잉(薄潔瑩), 막내딸 보샤오잉(薄小瑩)이다. 후밍이 사망한 후, 보이보는 재혼하지 않았다. 보이보의 후손들은 말한다. 부친 보이보와 모친 후밍은 같은 달 같은 날에 사망하는데 전후로 꼬박 40년이 차이가 난다.

 

보시용은 보이보의 장남이다. 그는 리쉐밍(李學明)이라는 이름도 쓴다. 청화대학 기계과를 졸업했고, 베이징노즐,오일펌프공장 공장장, 중국광다(光大)집단 집행동사 겸 부총경리를 역임했다. 광다국제는 2012년 4월 25일 홍콩거래소에 공시를 통해 리쉐밍이 이미 회사부주석과 집행동사직무에서 사임했다고 발표하고, 더 이상 동사회 집행동사위원회 위원도 맡지 않는다고 하였다.

 

보시라이는 보이보의 차남이다. 그는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생원 국제신문전공으로 졸업해서 문학석사학위를 받았다. 일찌기 대련시위서기, 대련시시장, 요녕성위 상임위원, 요녕성위 부서기, 요녕성 성장, 상무부 부장, 중앙정치국 위원, 중경시위 서기등의 직위를 지낸다. 2012년 3월 15일, 중공중앙은 보시라이가 더 이상 중경시위서기, 상위, 위원직무를 맡지 않는다고 발표한다; 같은 해 10월 26일,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보시라이의 전인대상임위원회 대표자격을 정지시킨다. 11월 4일, 17기 7중전회는 보사라이에게 당적제명처분을 내린다. 2013년 9월 22일, 법정에서 피고인 보시라이는 수뢰죄, 탐오죄, 직권남용죄로 형사처벌을 받아 무기징역, 종신정치권리박탈형을 받는다.

 

보시청은 보이보의 삼남이다. 1951년생으로 중공당원, 고급경제사이다. 북경시 경태람공장 공장장, 서기, 북경공예미술품총공사 총경리, 부서기, 북경시관광국 국장, 당조서기를 지낸다. 현재 중국부빈개발협회 부회장, 북경육합흥과무유한공사 동사장, 북경육합흥반점관리유한공사 동사장, 북경흥대조학기금회 이사장으로 있다.

 

보시닝은 보이보의 사남이다. 북경육합흥집단유한공사 동사장이다.

 

보시잉은 보이보의 장녀이고, 외교부 아프리카사 사장을 지낸다. 보이보의 첫째부인 소생이다. 남편은 주덴마크대사인 정야오원(鄭耀文)이다.

 

보제잉은 보이보의 차녀이다. 중국의과대학을 졸업했다. 1980년 미국에서 생물화학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위생부 국제교류및합작센터의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보샤오잉은 보이보의 삼녀이다. 북경대학 중국고대사연구센터, 북경대학 역사학과 부교수이다. 보샤오잉은 전 국가개발은행 부행장 왕이(王益)과 동창인데, 당시 보이보가 비서를 찾을 때 바로 보샤오잉의 추천으로 왕이는 보이보의 비서가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