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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문혁전)

고쳐진 역사사진들

by 중은우시 2015. 1. 18.

글: 노이람사(老李覽史)

 

2010년 광동연주촬영절때 예술가 장따리(張大力)은 130여조의 사진으로 구성된 <제2역사>를 전시했다. 이는 그 촬영전에서 볼만한 거리였고, 이 전람은 사람들에게 분명히 말해주었다. 널리 알려져 있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 사진이 여러번에 걸쳐서 미화되거나, 합치거나, 삭제하거나, 첨가하는 등의 처리를 거친 것이라는 것을. 모주석의 주름살은 없어지고, 지도자들이 같이 찍은 사진에서 민감한 인물은 사라지며, 레이펑의 사진은 여러번 고쳐졌다....

 

 

 

공산주의전사인 레이펑의 1965년 원판의 배경에는 관목이 있었는데, 이것을 소나무로 바꾸었다.

 

모주석, 주은래, 주덕을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그들의 뒤에 서 있던 인원들과 받쳐주고 있던 우산을 제거해버렸다.

 

주은래가 소련의 10월혁명 47주년기념식에 참가하고 귀국할 때, 모택동, 유소기, 주덕이 공항으로 나가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주은래를 맞이했다. 유소기가 타도된 후, 사진에서 유소기는 사라진다.

 

1940년 주은래가 코민테른에서 돌아올 때, 임필시,모택동과 같이 사진을 찍었다. 왼쪽에는 임필시를 제거했는데, 그 원인은 전쟁시기에 임필시가 소련에서 요양을 하고, 곤란시기에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판을 받아서이다.

 

아래 사진 오른쪽 끝은 임표이다. 9.13사건후 임표는 관련사진에서 삭제된다. 위쪽 사진에서는 임표가 없다.

 

문혁때, 진운이 타도되어 강서의 농촌에 하방된다. 이 사진은 진운이 사라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위의 사진은 정부의 공식선전사진이다. 모택동이 무개차를 타고 전국각지에서 온 홍위병을 사열하는 것이다. 아래 사진은 원래사진인데, 9.13사건후 아래 사진에 나오는 임표가 위의 사진에서는 사라졌다.

 

문혁이 발발한 후, 국가주석 유소기가 타도되었고, 그는 각종 사진에서 사라진다.

 

모택동은 당시 북경시장이던 팽진을 데리고 북경십삼릉댐으로 가서 자원봉사로 노동에 참가한다. 문혁때 팽진이 타도되면서, 왼쪽 그림인 공식선전사진에서 팽진은 사라졌다. 오른쪽은 원사진인데 모택동의 옆에 팽진이 있다.

 

1944년, 모택동이 부대를 사열하는 사진이다. 기실 모택동은 주덕, 왕진과 함께 359여단을 사열한 것이다. 위의 사진이 원판사진이다.

 

원판사진(왼쪽)은 실외의 광경이고, 분명하게 농촌집의 형편없는 벽을 보여준다. 그리고 모주석상과 표어도 없다. 1969년 국외에 발표된 사진(오른쪽)의 배경은 실내로 바뀌어져 있고, 벽에는 모주석상과 대련: "모주석의 말을 듣고, 공산당을 따라가자(聽毛主席話, 跟共産黨走)"라는 글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