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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문혁전)

서창전투 패배후 국민당 여자병사가족 실종의 수수께끼

by 중은우시 2014. 4. 4.

 

글: 하당월색(荷塘月色)

 

 

 

이것은 "국민당 장개석정권의 대륙에서의 최후거점의 소멸"이다. 다큐멘터리문학작품 <몽락월성(夢落月城)>에 이렇게 쓰여 있다.

 

이것은 세계전쟁사상 가장 드문 일막이었고, 이것은 국민당의 대도망중 여자병사와 가족의 잘 알려지지 않고 가장 불쌍한 일막이기도 하다.

 

1950년대초, 서창(西昌) 전투가 끝나갈 때쯤, 여자병사, 가족을 포함한 국민당 패잔병 근 3만명은 전국각지로 뿔뿔이 흩어진다. 다만,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 산간지구였고, 아직 노예사회에 머물렀던 이족(彛族)의 각 부락도 거기에 개입하였기 때문에, 국민당 패잔병은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다.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국민당 패잔병의 대도주 과정에서, 남자건 여자건 불문하고 이족부락에 의하여 옷을 발가벗기게 된다. 속옷조차도 하나도 남겨두지 않았다. 그들은 뛰어서 숨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비참한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방법이 없었다. 여자들도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할 수없이 산과 들판을 발가벗고 뛰어다녀야 했다.

 

<몽락월성>의 작자인 천위(陳宇)는 현지의 당사자들을 인터뷰할 때 알 수 있었다. 황련자총(黃連刺叢) 즉 가시나무가 가득한 산골짜기에서 목격자들은 최소한 50여명의 부녀들이 수백명의 토비들에게 윤간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리고 발광한 몇몇 토비는 여인의 "포도를 먹었다"(유두를 깨무는 것). 가시나무숲에서 이리저리 드러누운 혈육이 모호한 여자시신들이 있었다. 그녀들중 일부는 이렇게 비참하게 '실종'된다. 이것은 단지 산골짜기에서 발생한 하나의 장면이다. 유사한 사건은 더욱 많았다. 왜냐하면 발가벗고 도망치는 여인은 가장 쉽게 그녀들의 '약점'을 노출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소수의 죽지 않은 여자병사 혹은 가족들은 '행운'스럽게 부근의 토비가 강제로 마누라로 취한다. 어떤 경우는 토비가 약탈해가서 여러번 유린한 후에 팔아버린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노예주가 빼앗아가서노예로 되었다(현지의 노예주는 그들을 '왜자(娃子)'라고 불렀다). 여성노예가 창조하는 가치는 남성노예보다 훨씬 뛰어나므로, 여성노예는 순환이용할 수 있었고, 다시 어린 노예를 낳을 수 있었다. 그래서, 노예주들이 돈 하나 들이지 않고 빼앗을 수 있는 '여자노예'들은 그냥 두겠는가? 당연히 여자병사와 가족은 그들의 도마위에 놓은 고기가 된다. 더 이상 참지못하고 도망친 경우에는 악독한 노예주에 의하여 손발이 잘리고, 눈이 파이고, 귀와 혀가 잘렸다. 그렇게 하여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야 했다.

 

서창전투이후, 최소한 6년후에 민주개혁이 노예산채에까지 깊이 전개되었다. 이미 노예주에 의하여 여러번 팔리거나 이미 여러 아이를 낳은 소위 '여자노예'들은 비록 노예의 굴레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지만, 노예주가 그녀들을 위하여 선택해준 남자노예인 배우자와 그들이 공동으로 낳은 아이를 떠나기는 어려웠다. 그녀들중 대다수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영원히 산 속에 '실종'되었다.

 

신사회가 그녀들에게 행복한 생활을 보내도록 해준 후에도, 그녀들은 자신의 진실한 성명과 예전의 국긴당 장교였던 남편 및 자식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더더구나 산을 떠나 그들을 찾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원인은 자신의 그 불명예스러운 역사가 전남편과 자식을 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들 가련한 여자병사들과 가족들은 기꺼이 그녀들에게 상처를 많이 안겨준 산 속에서 '실종'되었다.

 

그녀들은 공산당, 해방군 및 공작대에 그녀들이 고해에서 빠져나오게 해준데 감사했고, 노예사회와 우매하고 낙후된 노예제도를 증오하고, 잔인하고 야만적인 노예주를 원망했다. 또한 국민당의 무능도 원망했다. 그녀들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두 유두가 성학대로 "포도를 먹은" 상태가 되었다. 유방에는 이빨자국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녀들은 일찌감치 수치심에 여러번 죽고자 했다. 이것도 아마 그녀들이 가족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려는 주요한 원인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녀들은 아직 살아있지만, 진정으로 '실종'되었다.

 

그 특수한 시대에, 특수한 지역에서, 서창전투중에 살아남은 여자병사와 군인가족은 각각 서로 다른 방식으로 대량산의 그 신비하고 시시때때로 그녀들에게 고통스런 기억를 남겨준 산과 돌 속에서 '실종'되었다.  그녀들은 원래 온 몸에 보석을 달고, 부귀영화를 누리던 관료부인이거나, 혹은 귀여움을 받고 자란 장교집안의 천금아가씨였거나, 혹은 국민당내에서 이름깨나 있고, 편안하게 국가의 급여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자랑스러운 군대의 꽃이었다. 아마도 대도망전에 그녀들은 천당 대만에 가려는 아름다운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나팔이 불어올 때, 꿈을 월성에 지고, 악몽이 계속되었다...그녀들이 어느 원인으로 산 속에 들어갔던 모두 다시는 나오지 못했다. 죽었거나 살았거나 모조리 '실종'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회에서도 잊혀졌다.

 

아마도 다시 몇년이 흐르면 그녀들의 이름은 혹은 '왜자'라고 불리면서 몸과 함께 산 속에서 풍화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영원히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수수께끼로 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