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봉신(長鳳新)
이향란이 누구인가? 주성치(周星馳) 영화 <국산능능칠(國産凌凌漆)의 그 노래 <이향란>에서 그리워하던 전설적인 여인인가? 아니면 왕가위(王家衛)영화 <일대종사>에서 두번이나 부른 <하일군재래(何日君再來)>의 러시아식 소프라노인가? 오늘의 젊은이들은 "이향란'이라는 세 글자가 마치 구시대의 아이콘인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잘 아는 낯선 사람으로 처염(凄艶)하면서 신비롭다.
9월 7일, 이향란이 일본에서 사망한다. 향년 94세. 근 1세기동안의 일생이 드디어 끝난 것이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운 큰 두 눈을 지니고 있었다. 화가가 형용한 바에 따르면, "오른쪽 눈에서는 '자유분방'이, 왼쪽 눈에서는 '침온한정(沉穩嫻靜0'이 있다". 별명도 적지 않다. "금어미인(金魚美人)", "동방지앵(東方之鶯, 동방의 꾀꼬리)", "고음가후(高音歌后)",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당연히 "간첩명성(間諜明星)"이다. "모국인 중국과 조국인 일본의 사이에 끼어서 싸우는 불꽃이 온 몸에 튀었다." 그녀는 나중에 이렇게 형용된다. 1937년, 같은 반 친구가 일본이 침입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자, 그녀는 이렇게 답하였다: "나는 베이징의 성벽 위에 서겠다." 그저 이렇게 어느 측이든 총구에 희생되는 것을 선택하겠다고 하였다: 항전승리후 그녀는 사람들 사이를 가면서 눈물을 흘렸다. 왜냐하면 양국의 젊은이들이 "죽을 필요없다. 모두 끝났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상해를 떠날 때, 선실에는 <야래향>이 흘렀다. "그것은 나의 목소리, 그것은 나의 노래"(그녀의 자전적인 글 <이 생애의 이름은 이향란>을 참조)...이런 화면은 영화에서 잘라낸 것처럼 그녀의 눈부신 전반생을 보여준다.
다만, 신세내력의 비밀은 여전히 남았다. 그것은 항상 신비로운 전설의 일부분이었다. 1950년대 홍콩에서 영화를 찍는데, 기자가 그녀가 일본인인지 아닌지를 물었다. 그녀는 이렇게 답한다: "나의 키를 봐라. 그게 바로 증거가 아니냐?"(위계인의 <세기영가성삼각정: 주선, 이향란, 백광>이라는 책) 1943년, 상해의 한 공원에서 사진을 찍는데, 그녀는 키가 작아서, 마른 장애령이 앉아야 했다. 키가 나중에 그녀의 혈통을 증명했다. 1975년, 북경을 지나면서, 누군가 그녀가 항상 말하던 "일본은 아버지의 나라이고, 중국은 어머니의 나라이다"라는 말의 진정한 뜻을 물었다. "부친은 일본인이고 모친은 중국인이란 뜻인가?"라고.
후반생도 전설이라고 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옛날에 장애령이 그녀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서른 살이 되어서도 아직도 소녀같이 활발하냐고. 마치 그녀의 이미지가 단조롭고 특별한 점이 없는 것을 지적하는 것같았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대답한다. "평범하지 않은 애정신"을 연기해보고 싶다고. 일본에 돌아온 후, 그녀의 은막에서의 이미지는 과연 천진한 소녀에서 섹시한 여인으로 변신한다. 1950년 미국에 초청을 받아 갔을 때, 기자가 그녀에게 헐리우드에서 무엇을 배우고 싶냐고 물어보자 그녀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키스해야하는지를 배우고 싶다." 그후에 적지 않은 호방한 연기가 있었다. 더욱 큰 변신은 그녀가 개가한 후에 영화계를 떠나 정치가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TV프로그램의 MC가 되어, 아라파트, 만델라를 인터뷰하고, 국회의원까지 되어 중일간의 우호를 극력 추진하며, 중국에서 처음으로 동물보호관련법을 통과시키는 것을 추진한다....야마구치 요시코(山口淑子), 반숙화(潘淑華), 이향란, Shirley Yamaguchi(山口雪梨), 노구치 요시코(野口淑子), 오타카 요시코(大鷹淑子)....계속 바뀌는 이름은 그녀의 끊임없이 변신하는 일생과 같다.
후세 창작인들에 있어서, 이향란은 그들의 뮤즈였다. 예를 들어, 채명량(蔡明亮)은 그녀를 우상으로 삼고, 그녀의 "춘잠토사(春蠶吐絲)같은 노랫소리"를 사랑한다. 말레이시아의 화교로 태어난 채명량은 자신이 그녀와 같이 '신분이 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영화 <흑안권>에서 그녀의 곡 <심곡>과 <한불상봉대가시>를 삽입한다. 그녀의 연극같은 인생은 더욱 참작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일본에서는 중일합작 드라마 <안녕, 이향란>을 찍은 바 있고, 옥치호이(玉置浩二)의 주제곡은 장학우가 번역해서 불러 중국인세계에도 전해진다. 이향란의 다큐멘터리를 가장 찍고 싶어했던 이한상(李翰祥) 감독은 이미 여러해 전에 죽어서 유감을 남겼다.
파스빈더가 독일 가수 랄레 안데르센이 겪은 일을 바탕으로 한 영화 <릴리 마를렌>을 찍을 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는 쉽게 한 사람을 비난하고 싶지 안핟. 나는 이런 지경에 처하게 된 것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한다ㅣ 첫째는 살아가려는 필요이고 하나는 예술가에 있어서 남보다 두드러지려는 필요이다." 시대와 운명의 사이에 끼어서 분투하면서 일생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몸과 마음이 찢어진 것은 이향란에게서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았다. 중국판의 영화 <릴리 마를렌>은 언제나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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