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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음악

중국고대의 십대 명곡(名曲)

by 중은우시 2018. 12. 26.

글: 고건중국(古建中國)


중국의 고대음악에는 10대명곡이라는 말이 있다. 한족의 전통악기로 연주하며, 소리가 우아하여 중국의 가락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중국전통음악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이들 곡은 역사전고가 배경으로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비전문가이므로, 우연히 옛곡을 들으면서 듣기좋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 깊은 의미는 모를 것이다.


1. 광릉산(廣陵散)


이 곡은 곡조가 비교적 격앙된 고금곡(古琴曲)이다. <광릉지식(廣陵止息)>이라고도 부른다. 전설에 따르면 원래 광릉지역에서 전해져 내려오던 민감음악이라고 한다. 지금은 고금곡으로만 남아 있다. 가장 먼저 출현한 것은 동한(東漢) 채옹(蔡邕)의 <금조(琴操)>이다. 섭정(聶政)은 전국시대 한(韓)나라 사람이다. 부친은 환왕에 의해 검을 주조하는데 기한을 맞추지 못했다고 피살당한다. 부친의 복수를 위해, 금을 10년간 각고수련한 후, 얼굴과 목소리를 바꾸어 한나라로 돌아온다. 궁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금을 연주하니, 뛰어난 금연주에 길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었고, 우마차도 길을 막아 도로가 정체도었다. 한왕이 이를 들은 후, 궁으로 불러서 연주하게 한다. 섭정은 연주하는 도중에 금의 안쪽에서 비수를 끄집어내어 한왕을 찔러서 죽인다.


섭정시대로부터 약 6백여년이 흐른 후, 서진(西晋)의 한 재지가 뛰어난 인물이 <광릉산>을 천고의 절창으로 만든다. 그는 바로 '죽림칠현"중 가장 영향력이 있는 혜강(嵇康)이다. 고곡 <광릉산>의 배후에는 실제로 섭정과 혜강의 두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2. 고산유수(高山流水)


춘추전국시대에 <열자.탕문>의 기록에 따르면, 백아(伯牙)는 금을 잘 연주했다. 종자기(鍾子期)는 잘 들을 줄 알았다. 종자기는 이것이 "외외호지재고산(巍巍乎志在高山)", "양양호지재유수(洋洋乎志在流水)"라는 것을 알아본다. 백아는 놀라서 말한다. "좋다! 그대의 마음이 내 마음가 같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인생이 지기가 된다. 나중에 <여씨춘추>에는 이런 내용까지 기록되어 있다: 종자기가 죽은 후, 백아는 금을 부수고 현을 끊고, 평생 다시는 금을 연주하지 않았다. 이렇게 <고산유수>곡이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다


3. 십면매복(十面埋伏)


기원전202년, 초한간의 전투가 해하(垓下)에서 벌어진다. 후인이 이 전투를 근거로 유명한 비파곡 <십면매복>을 만든다. <십면매복>은 고대 비파연주예술이 등봉조극의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말할 수 있다. 개별악기의 독주형식으로 파란만장한 서사시같은 장면을 담았다. 지금도 <십면매복>은 비파연주예술분야에서 가장 대표적인 한족전통명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4. 평사낙안(平沙落雁)


이 곡은 기러기뗴가 모래밭에 내려앉기 전에 공중에서 선회하면서 돌아보는 정경을 묘사한 것이다. 명나라때 내우외환이 극심한데, 천하의 식견있는 선비들은 모두 걱정이 많았다. 이 곳은 "홍곡지원지(鴻鵠之遠志)를 빌어 일사지심흉(逸士之心胸)을 그린 것이다" 이를 통해 유가의 '가난할 때는 독선기신(獨善其身)하고, 성공하면 겸제천하(兼濟天下)한다는" 사상을 나타낸다. 이를 통해 보자면, 이 곡의 곡중지음(曲中之音)과 곡외지의(曲外之意)가 있다. 재주를 가졌음에도 시대를 만나지 못했지만 공명을 취득하고파하는 뜻을 포함한 것이고, 간언을 하다가 죄를 바아 산림에 은거한 사람을 위로하는 것이기도 하다.


5. 석양소고(夕陽簫鼓)


저명한 비파곡이다. 어떤 사람은 이 곡이 백거이의 <비파행>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심양강두야송객(潯陽江頭夜送客), 풍엽획화추슬슬(楓葉獲花秋瑟瑟)" 그러나, 사실상 역사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은 이 곳의 음악적 의경(意境)은 장약허(張若虛)의 <춘강화월야(春江花月夜)> 시에서 유래한다고 본다. 이 곡이 묘사하는 것은 그런 시에서 묘사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게 만들고, 사람으로 하여금 꿈속에 당나라시절로 돌아가게 만든다. 그리하여 성당시기의 기상을 마음 속으로 느껴보게 만든다.


6. 한궁추월(漢宮秋月)


가을바람이 스산히 불고, 달은 높이 걸려 있다. 궁안에는 얼마나 많은 눈물이 있는가. 무한한 기다림과 기대로. 그러다가 결국은 머리가 백발이 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한궁추월>은 고대에 압박받는 궁녀의 유원(幽怨)과 비읍(悲泣)한 정서를 표현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그녀들의 불행한 인생처지에 대한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7. 매화삼농(梅花三弄)


매화는 뜻이 고결하다. 역대이래로 문인묵객들이 노래한 대상이다. '삼농'이라 함은 같은 단의 곡조를 세번 반복하여 연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악곡은 매화가 추위와 서리를 무서워하지 않는 완강한 성격을 노래하고, 고상한 절조를 지닌 사람을 찬양하는 것이다. 이 전고는 동진의 대장군 환이(桓伊)가 광사(狂士) 왕휘지(王徽之)에게 연주한 이야기에서 나온다.


왕휘지는 동진의 도성 건강으로 불려가는데, 그가 탄 배가 마두에 정박해 있었다. 마침 환이가 강안에 있었고, 두 사람은 서로 몰랐다. 왕휘지는 사람을 시켜 환이에게 말한다: "듣기로 그대가 피리(笛)를 잘 분다고 하던데, 나를 위해서 한곡 연주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환이는 이때 이미 고위관료인데, 피리를 꺼내서 매화곡을 세번 불어주었는데, 아주 뛰어나고 절륜했다. 두 사람은 비록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지만, 얻기 힘든 기연이었다. 바로 이런 만남으로 천고의 가작 <매화삼농>이 탄생한다.


8. 어초문답(漁樵問答)


<삼국연의>의 시작부분에 '백발어옹강저상(白髮漁翁江渚上), 관간추월추풍(觀看秋月春風), 일호탁주희상봉(一壺濁酒喜相逢), 고금다소사(古今多少事), 도부소담중(都付笑談中)"이 있는데, 이는 고곡 <어초문답>을 가장 잘 풀이한 것이다.


어초경독(漁樵耕讀, 물고기잡고, 나무베고, 농사지으며, 글읽는 것)은 농경사회의 4가지 직업이다. 중국민간의 기본생활방식을 대표한다. 이 4가지 직업은 어느 정도 고대의 서로 다른 가치지향을 보여준다. 만일 농사짓고 글읽는 것이 현실을 대표하여, 세속을 지향하는 도리라면, 물고기잡고 나무베는 것의 심층적 의미는 세상을 벗어나서 도리를 찾는 것 즉 초탈의 의미가 있다. 악곡은 어부와 초부가 청산유수의 사이에서 각자 즐기는 정취를 표현한다. 이를 통해 명리를 추구하는 것을 멸시한다. 이는 은일지사의 어초생활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세속의 번잡한 일의 구속에서 벗아나기를 갈망하는 것을 표현한다. 세상의 일든 짐이 무겁지만, <어초문답>에서 훌훌 털어버린다. 그 경지는 실로 탄복스럽다.


9. 호가십팔박(胡笳十八拍)


한나라말기, 저명한 문학가이자 고금가(古琴家)인 채옹의 딸 채염(蔡琰) 즉 채문희(蔡文姬)는 병란중에 흉노에 붙잡혀 간다. 남흉노에 머물머 좌현왕(左賢王)의 비가 되어 두 아들을 낳는다. 나중에 조조사 사람을 보내어 그녀를 맞이해 간다. 그녀는 장시(長詩)를 한 수 지었는데, 그녀의 비참하고 힘들었던 신세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정서는 아주 격동적이고 사람을 깊이 감동시킨다. 십팔박은 십팔수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 시는 그녀가 호가의 애성(哀聲)을 듣고 만들었으므로, 이름을 <호가십팔박> 혹은 <호가명(胡笳鳴)>이라고 한다.


10. 양춘백설(陽春白雪)


<양춘백설>의 전고는 <초사(楚辭)>중의 <송옥답초왕문(宋玉答楚王問)>이다. 초양왕(楚襄王)이 송옥에게 묻는다. 선생은 무슨 숨은 덕행이 있습니까? 왜 선비와 백성들이 선생을 그다지 칭찬하지 않는 것입니까? 송옥이 대답한다. 초나라의 영(郢)에 노래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처음에 '하리파인(下里巴人)'을 노래하니 따라부르는 사람이 수천명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노래하는 사람이 '양춘백설'을 노래하니 나라안에서 따라부르는 사람이 수십명에 불과했습니다. 송옥의 결론은 이러하다: 하리파인은 민간가곡이고, 양춘백설은 당시 초나라의 고급가곡이다. 부를 수 있는 사람도 자연히 적다. 평범한 사람이 어찌 나를 알 수 있겠느냐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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