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두문자(杜文子)
명청시기, "양수마(養瘦馬)"는 일종의 폭리사업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업종에 종사했다. 먼저 돈을 내어 가난한 집안에서 용모가 비교적 괜찮은 여자를 사온 다음 교육훈련을 시킨다. 그녀들에게 가무, 화장, 금기서화를 가르쳐서 나이가 든 후에 부잣집에 첩으로 파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서 이익을 취한다. 가난한 집안의 여자아이들은 비교적 마르고 약했기 때문에, '수마(마른 말)'라는 명칭이 나오게 된다. 수마를 기르는 것이 가장 성행한 곳이 양주이다. 청나라때 문인 조익의 <해여종고.양수마>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양주 사람은 처녀를 길러서 다른 사람에게 팔아서 첩이 되게 한다. 이것을 양수마라고 부른다."
명나라중엽이후, 만일 첩을 사려면, 대체로 양주에 갔다. 양주의 수마는 "광릉희(廣陵姬)"라고도 부른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숭정제의 전귀비(田貴妃)도 원래 양주수마였다고 한다. 명나라때 문인 심덕부(沈德符)는 <만력야획편>에서 이렇게 말했다: 양주의 많은 관료 부호들은 이런 류의 특별한 여인을 길러서 돈을 벌었다. 수마는 어려서부터 계획적으로 예절교육을 받고, 남녀간에 응대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녀들은 비천한 지위에 기꺼이 머물러 있도록 교육받고, 주인의 잘 모시고, 본부인을 어떻게 잘 대하는지에 대하여도 교육을 받는다.
심덕부는 직접 양주에 가본 적이 있다. 거기서 북을 두드리며 꽃가마를 태워서 드나드는 것이 밤낮으로 끊이지 않는 것을 보았다. 그는 첩을 사려는 남자들의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았다. 어떤 사람은 금(琴)을 탈 줄 아는 여자를 찾고,어떤 사람은 매화를 그릴 줄 아는 여자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난초나 대나무를 그릴 줄 아는 여자를 고집했다. 어떤 사람은 바둑을 둘 줄 아는 여자를 좋아했고, 어떤 사람은 노래를 잘 하는 여자를 찾았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다 있었다. 첩을 사는 과정에서 어떤 남자는 한두번 보고는 바로 협의를 하고, 어떤 사람은 여러번 알아본 다음에 비로소 주머니를 열었다. 어떤 수마는 단지 '제일갑제일명', '해원' '대학사'등 몇 글자만을 쓸 줄 알았다. 만일 그녀에게 다른 글자를 써보라고 하면 그녀는 쓸 줄을 모른다. 용모가 평범한 여인은 반드시 다른 재주를 배워야 빨리 팔려나갔다. 재주가 없으면 그저 비단손수건을 들고 손을 흔들며 웃음이라고 지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싼값에 팔릴 수밖에 없다.
양수마로 살아가는 사람이 양주에만 수백집에 달했다고 한다. 첩을 사려는 사람이 일부러 소문을 흘리면, 매파가 파리떼처럼 찾아와서 그냥 놔두지를 않는다. 가는 곳마다 쫓아오고, 그를 수마가 있는 집으로 데려가서 앉아서 차를 마시게 하고, 그 다음에 백면홍삼의 아가씨를 데려나와 손님에게 절을 하게 한다. 그리고 몸을 돌려서 걸음을 걷게 하고, 눈웃음을 치며, 추파를 보낸다. 그리고 팔의 살을 보여주기도 하고, 손으로 치마를 끌어당기기도 한다. 한 수마는 매일 개략 5,6명을 만나고, 심지어 어떤 수마는 한명이 들어가고 한명이 나오기도 한다. 만일 마음에 들면, 남자는 수마의 머리에 비녀를 꽂아준다. 이것을 "삽대(揷帶)"라고 한다. 만일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남자는 수백동전을 매파와 수마의 시녀에게 주고 다시 다른 집으로 간다. 어떤 때는 5,6십명을 보기도 한다. 보다가 지쳐서 아무 수마에게나 '삽대'를 한다. 이때 수미의 본가에서는 홍단자(紅單子)를 준비하여 얼마의 능라주단, 금화채례를 요구하는지 적는다. 첩을 사는 사람이 살펴보고서 동의하면, 바로 계약을 체결한다. 통상적으로 첩을 사는 사람이 거주하는 곳으로 돌아오기도 전에 주악대가 북을 치면서 먼저 그가 거주하는 곳으로 가 있고, 조금 시간이 흐르면, 꽃가마를 타고 수마가 도착한다. 이런 의식은 일반적으로 혼례를 책임지는 직업전문가가 처리하는데, 금방 두 사람을 동방으로 들여보내어 화촉을 밝히게 한다. 오시가 되기 전에 이 전문가는 상전(賞錢)을 받아내고, 급히 또 다른 집으로 가서 비슷한 일을 처리한다.
'소진회(小秦淮)'라는 별칭이 있는 양주는 과연 풍월연화(風月煙花)의 취산지(聚散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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