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경제/중국의 경제

주택공적금: 정의의 이름으로 합법적 재산을 빼앗지 말라

중은우시 2014. 4. 4. 01:55

글: 섭단(葉檀)

 

모두 탐내는 고기덩이가 곧 뜯어먹힐 지경이다.

 

2조위안을 가지고도 가치보전이나 가치증식을 하지 못하고, 마치 어린아이가 옥돌을 끌어안고 시장바닥을 뛰어다니는 것같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여러 사람들이 그 옥돌에 눈독을 드리게 된다. 전국정협위원이며 심천거래소 이사장인 천동정(陳東征)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 정협회의에서, 그는 주택공적금의 시장화를 추진하는 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전국인대대표이자 국가개발은행 호남성분행장인 왕쉐동(王學東)은 각지방의 주택공적금센터를 국가주택보장은행으로 개조하고, 각지 주택공적금센터의 인원, 업무, 자산, 부채를 포괄적으로 이전하여 국가주택보장은행의 각지 분지기구가 되도록 하자고 건의했다. 첫째는 "협심층(夾心層)"을 위하여 생애최초주택구매 혹은 개선성주택구매시 장기저리의 개인주택자금대출업무를 하고, 둘째는 도시에 보장주책건설, 판자촌개조 및 농촌주택개조등에 장기저리의 보장성주택개발융자업무를 진행하는 것이다.

 

전국인대대표이자 안휘성주택건설청청장인 리밍(李明)은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안휘성에서 시범적으로 '주택은행'을 해서 이 도시에 거주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지면서, '주택은행'에 공적금을 납부하고, 주택구매시에는 저리대출을 얻고, 주택구매를 하지 않을 때는 공적금수익을 얻도록 하자.

 

모두가 백성을 위하여 나서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백성을 위해서 나선 것인가? 입이 비뚤어진 중이 불경을 잘못 읽는 경우는 수도 없이 보아왔다. 천동정 선생은 주식시장의 장기자금의 각도에서 말했고, 왕쉐동 선생은 정책적 업종의 각도에서 말했으며, 리밍 선생의 제안은 주택은행을 성에 두어야 한다고 하였다. 엉덩이가 머리를 결정한다는 말이 전혀 틀리지 않았다.

 

이들 대표위원들이 제안을 할 때, 머리 속에 합법적 재산권을 보호한다는 개념이 도대체 들어 있는 것일까?

 

공적금은 주인없는 돈이 아니다. 소유자가 있다. 공적금의 납부자는 있다. 주택건설부공적금센터는 단지 관리책임을 하고 있을 뿐이지, 방대한 재산의 진짜 주인은 아니다. 재정부도 이 돈의 주인이 아니다. 공적금의 본 뜻은 노동자의 상호부조이다. 저리의 공적금대출로 주택구매대금부족의 난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이들 납부자가 납부한 것은 세금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말해서, 모든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만든 기금이다. 공적금센터의 이들 관리자들은 나중에 은행에 이 재산을 맡기거나, 혹은 조건에 부합하는 자에게 대출해주거나, 국채를 구매하거나 하는 등 안전하게 투자하고 있다.

 

여하한 법치국가도 아무런 이유없이 다른 사람의 합법적인 재산을 빼앗아갈 수 없다. 공적금은 바로 납부자들의 합법적 재산의 일부분이다. 누구도 빼앗아갈 권리가 없다. 당연히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것은 빼앗는 것이 아니고, 윈윈이라고. 투자로 수익을 증가시키는 것은 납부자의 이익을 늘이게 되기 때문에, 현재 효율이 낮게 관리하는 것보다 효율을 높여서 관리하는 것이 낫다고. 그리고, 주택보장은행을 건립하는 것은 저소득계층에 유리하고, 납부자에게 유리하며 최소한 수익이 현재보다 낮지는 않을 것이라고. 또한 은행건립, 장기투자에 대하여 일정한 절차에 따라 행정조례를 만들고, 재정이 개입하고 절차를 두면 된다고.

 

이것은 정의의 궤변인 것처럼 보인다. 소위 절차적 정의라는 것은 기금납부자의 동의를 요한다. 왕쉐동 선생의 주택보장은행제안은 법률즉인 층면을 언급했고, 적시에 '국가주택보장은행조례'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이를 통하여 국가주택보장은행의 직능포지셔닝, 자금원, 업무범위, 회사지배구조, 지원정책 및 관리감독매커니즘을 규정하여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에 법률적 보장을 제공하자고 한다. 공적금이라는 이 기금의 출자자의 권익은 마치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처럼 말한다. 왕쉐동 선생은 아마도 국가개발은행이라는 운용모델에 익숙해져서인지, 공모기금의 특색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정책성은행과 비교할 것이 아니다. 그리고, 국가개발은행의 대량의 정책대출, 거액의 자금조달은 정리해야할 것이고, 공중에 명백히 공개해야할 것이다. 이쪽도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서, 저쪽에 다시 새로운 정책성은행을 만들자니 정말 빚이 많으면 겁이 없어지는 것인가 보다.

 

주택은행을 지방정부의 틀에 넣자는 말에는 더더욱 식은 땀이 흐를 정도이다. 그들은 먼저 도시은행을 자신의 돈주머니로 생각하는 의식부터 바꾸어야 한다. 그 다음에 주택은행에 대하여 애기해도 늦지 않다.

 

저수입자의 주택조건을 개선하자는 목표는 정의롭다. 그러나 절차적인 정의도 아니고, 더더구나 실체적인 정의도 아니다. 공적금 납부자로 하여금 저수입계층을 돕게 하려면, 첫째 납부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설사 납부자가 동의하더라도, 사용효율에 대하여 과학적인 논증을 거쳐 목표집단을 벗어나지 않도록 확보해야 한다. 정의의 이름으로 민중이 부를 함부로 취하는 것은 유래가 깊은 비극이다. 법치사회에서 다시 재연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현재 공적금의 사용효율이 낮고, 투자효율이 낮다. 이것은 사실이다. 공적금을 가지고 더 높은 효율의 투자를 하는 것은 못할 것도 없다. 법률의 장애도 많지 않다. 관건은 납부자의 동의, 투자자의 전문성 그리고 관리감독의 엄격함, 재무제표의 공개와 투명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