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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한)

숙손통(叔孫通): 서한개국구경(西漢開國九卿)의 한 명

by 중은우시 2014. 1. 14.

글: 조염(趙炎) 

 

한 가지 의문이 몇 달동안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서한의 개국구경중 한 명인 숙손통같은 중요한 인물이 왜 TV드라마 <초한전기>에서는 13집의 첫머리에 잠깐 등장할 뿐인 것일까? 최근 들어 홍량(洪亮) 선생의 대작 <우회와 집착>을 읽고서야 편극 왕해림(汪海林)의 고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 마디 말이 나라를 흥하게 할 수도 있고, 한 마디 말이 나라를 망하게 할 수도 있다. 이 사람은 초한(楚漢)에 한 마디 말의 공로가 있다.

 

숙손통은 설현(薛縣, 지금의 산동성 등주 일대) 사람이며, 진나라말기의 유명한 유생이다. 진이세때 그는 대조박사(待詔博士)였다. 진승, 오광이 깃대를 들고 반란을 일으켜 초나라땅을 석권할 때, 호해는 박사와 유생을 소집하여 대책을 논의한다. 대부분은 사태가 긴급하다고 말하면서, 반란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도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하루빨리 병력을 일으켜 난을 평정해야한다고 말했다.

 

숙손통만이 별 것이 아닌 것처럼 말했다: "지금 위로는 영명한 지도자가 있고, 아래로는 법령제도가 있다. 사람들마나 자신의 직위를 잘 수행하고 있고, 천하의 마음이 진나라를 향하고 있는데, 누가 감히 반란을 일으킬 담량이 있겠습니까? 이들은 단순히 서절모적(鼠竊毛賊)일 뿐입니다. 이번이 많은 수는 이미 군수 도위에게 붙잡혔습니다. 신경쓸 것 없습니다."

 

호해는 그의 말을 듣고 아주 기뻐한다. 숙손통에게 비단 스무필을 내리고, 새로운 옷 한 벌을 내린다. 그리고 박사로 승급시킨다. 반란이라고 말했던 자들은 하옥시키고, 도적이라고 말했던 자들은 관직에서 파면했다.

 

확실히 숙손통이 한 말은 거짓말이며, 황제의 뜻에 영합하는 말이며, 아부하는 말이다. 여러 유생들은 차마 부끄러워 하지 못한 말이다. 다만 숙손통의 해석이 아무런 이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러 유생들이 말한다: "선생은 어찌 그런 아부의 말을 하십니까?" 숙손통은 이렇게 대답한다: "여러분이 모르는 것입니다. 나는 호랑이 아가리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급히 그물을 벗어난 물고기처럼 고향으로 도망쳐 돌아간다.

 

TV드라마의 묘사는 <사기>의 기재와 동일하다. 나중에 숙손통은 이 드라마에서 황학처럼 날아가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 정사에서 숙손통은 초한지쟁의 시야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먼저 설지에서 항량에 투신한다. 항량이 죽자, 다시 초회왕을 모신다. 초회왕이 의제가 되어 장사로 옮겨가자, 마지막으로 "남아서 항왕을 모신다" 한고조2년(기원전205년), 유방이 팽성(서주)를 함락시키자, 숙손통은 비로소 유방을 따른다.

 

그동안 숙손통은 계속 주군을 바꾼다. 전후로 10명의 주군을 모신다. 그는 아부를 잘하여 중용받았다. 예를 들어, 유방은 유생의 복식을 싫어했는데, 그는 바로 초나라사람의 짧은 의복으로 갈아입는다. 유방이 기뻐하여 숙손통에게 박사를 맡기고, 직사군(稷嗣君)이라는 호를 내린다. 나중에 숙손통은 서한개국구경의 반열에 오른다. 한고조, 한혜제의 두 황제때 태상(太常)의 직에 있으며 조근(朝覲)의 예의를 제정하고, 제사의 예를 바로잡고, 유가의 일대종사가 된다.

 

당시의 사람들의 숙손통에 대한 평가는 형편없다. 어떤 사람은 그가 다섯번이나 주군을 배반했고, 신의를 저버렸으며 원칙이 없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그가 입만 열면 아부하고, 변신의 귀재이며, 명철보신한다고 말했다. 숙손통을 이런 말에 신경쓰지 않았다. 그들이 "비유(鄙儒)"라고 일축해 버린다. 사마천의 평가는 그를 인정하는 편이다. "대직약곡(大直若曲), 한가유종(漢家儒宗)". 당대학자인 홍량선생의 혜안은 독보적이다. "진나라가 망한 것은 조고때문에 망했다. 실은 숙손통의 한 마디 말에 망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진리는 완전히 소수인 혹은 개별인의 손에 쥐어져 있다. 의사결정은 집단지혜를 벗어날 수 없다. 만일 진이세가 여러 사람의 말을 채택했더라면, 그리하여 과감하게 반란을 평정했더라면, 요원의 불꽃을 하루빨리 꺼버렸다면, 숙순통의 말을 쉽게 믿지 않았더라면, 그리하여 시기를 놓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초한쟁패의 국면은 나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진나라사람들은 스스로를 슬퍼할 여유가 없었고, 후인들이 그들을 슬퍼한다. 후인들은 슬퍼하지만 그것을 교훈으로 삼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의 후인들이 다시 후인을 슬퍼한다." 숙손통의 한 마디 말로 진나라가 망했다. 호해는 스스로를 슬퍼할 줄 몰랐다.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