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경영망
돌연한 인사풍파는 에이서의 창업자인 스전롱(施振榮)의 조용한 은퇴생활을 교란시켰다.
11월 5일, 에이서의 동사장 겸 CEO인 왕쩐탕(王振堂)은 2014년 1월과 6월에 각각 CEO와 동사장의 두 직위에서 사임하고, 총재 웡젠런(翁建仁)이 CEO직을 승계할 것이라고 하였다.
동사회의 소환으로 이미 은퇴한지 10년에 가까운 스전롱은 부득이 다시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 변혁위원회의 소집인이라는 신분으로 에이서에 돌아왔고, 동사회를 도와서 새로운 경영진을 구성하는 것을 도왔고, 회사구조조정에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2주가 지난 후 스전롱의 소집인 신분에 다시 극적인 변화가 발생한다. 11월 21일, 에이서는 공고를 통하여 왕쩐탕과 웡젠런이 모두 사직을 청구했다는 것이다. 스전롱은 부득이 다시 에이서 동사장과 총재의 직무를 넘겨받아야 했다.
반달만에 두번이나 경영진의 인사변동이 있는 것은 에이서가 직면한 위기가 전면적으로 폭발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왕쩐탕을 핵심으로 하는 2세대경영진의 영도하에, 과학기술분야의 대기업은 한때 PC업계의 최고봉에 가까이 올랐다. 그러나 과거 2년동안, PC시장의 위축과 이동설비분야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함에 따라,
에이서의 경영상황은 오르락내리락했다. 가끔 늘기도 했지만, 하락의 대세를 되돌리지 못했다.
1976년에 에이서를 창업하고, 2002년 자체 브랜드와 OEM을 분할하여, 다시 Acer(宏碁컴퓨터), BenQ(明基電通), Wistron(偉創資通)으로 나누었다. 에이서는 PC에 주력하는 자체브랜드이다. BenQ는 주로 디지탈제품을 취급한다. Wistron은 주업무가 OEM이다. 이것은 회사성장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그 이후, 에이서는 신속히 확장하여 연이어 Gateway, Packard Bell등 회사를 인수한다. 2009년, 에이서는 넷북을 가지고 델을 추월하여, 세계2위의 PC업체가 되었다.
다만, 에이서의 넷북에 의존하여 2위자리에 오른 후, 곧 iPhone, iPad에 인기를 빼앗기고, 넷북사업은 신속히 위축된다. 순식간에 비점(沸點)에서 빙점(氷點)으로 떨어진다.
"성공해도 소하, 실패히도 소하"이다. 에이서의 과거성공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과의 강력한 연맹(Wintel)에 힙입은 바 크다. Wintel은 소프트웨어 하드웨어를 규범화한 수 신속히 대량의 제품을 시장에 내보낸다. 그 자체는 그다지 많은 연구개발이 필요없다. 심지어 제조까지도 외주를 주면 크게 원가를 삭감할 수 있고, 저가로 시장을 차지하여 규모의 효과를 누리게 된다.
그가 성공한 기반이 이러하기 때문에, 이동설비시장에서 에이서의 내부에는 의견이 계속 통일되지 못했다. 왕쩐탕을 위시한 부소세력은 에이서가 PC사업의 기반을 흔들어서는 안된다고 보았다. 비록 그동안 핸드폰사업에 손을 대기는 했지만, 시종 그것을 사업의 중점으로 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테블릿 컴퓨터에 승부를 걸어 다시 기회를 놓치고 만다.
이런 사례가 있다. 2008년, 에이서는 60억NT달러를 들여 이텐(依天, E-Ten)핸드폰을 인수했다. 다만 몇년 후, 한때 시장에서 잘나가던 이텐은 시장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고, 에이서 핸드폰은 여전히 시험단계였다. 1년동안의 출하량을 낙관적으로 추산해도 100만-200만대였다.
"에이서는 비록 자신의 제품을 잘 이해하고 있지만, 아마도 고객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같다. 그래서 고객들의 충성도를 끌어내지 못한다." <블루오션전략대만판>의 저자이자, 대만교통대학 관라과학과 교수인 주보용(朱博涌)이 더욱 심층적인 원인을 얘기한다: 에이서, HTC등을 대표로 하는 타이완에서 자체브랜드를 발전시키는 경우에 두 가지 곤경이 있다. 첫째는 "제품에 대한 이해도는 높지만, 고객에 대한 이해도는 낮다"는 것이다. 둘째는 추세가 바뀌면, 타이완기업은 적시에 대응하지 못하고 비지니스기회를 놓친다는 것이다.
재정국가주간에 따르면, 전략방향의 실수이외에, 에이서내부에서의 저지세력도 전환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에이서 전환의 사명을 짊어진 터치스크린사업군은 내부 각 세력의 투쟁으로 결국 명존실망(明存實亡)하게 된다.
성립시, 에이서의 터치스크린사업군은 비록 천궈웨이(陳國維)를 총경리에 임명했지만, 배후에서 실제로는 웡젠런이 전체적으로 책임지고 있었다. 처음에 업무를 테블릿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한정하고, 지위를 에이서컴퓨터제품 글로벌운영센터와 대등하게 했다.
그러나 반년도 지나지 않아, "PC를 주업"으로 한다는 전략하에, 터치스크린사업군의 태블릿컴퓨터사업은 집단내에서 지위가 더욱 강세인 컴퓨터제품글로번운영센터로 넘어간다. 2013년 상반기, 터치스크린사업군의 등급은 에이서회사 핸드폰집단으로 강등되고, 단지 중국지역의 스마트폰사업만 책임지고 인원편제도 70명이 채 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이 스마트폰집단의 거취에 대하여도 격렬한 투쟁이 일어난다. 스마트폰사업도 컴퓨터제품글로벌운영센터에 흡수될 추세였다.
사실상, 유사한 내부투쟁은 이전에도 에이서에서 계속 존재했다. 전CEO 겸 총재인 란치(Gianfranco Lanci, 중국명 蘭奇)의 이직도 그 하나의 예이다.
2008년, 란치가 CEO를 맡은 후 에이서는 대외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그룹이 란치 총재를 높이 긍정하고 신임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만 이것은 모두 양호한 실적의 기초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2010년 회사가 실적하락을 보이자, 고위층내부에서 란치에 대한 태도에 거대한 변화가 발생한다.
당시, 외부에서는 란치의 이직원인에 대하여는 별로 말이 없었다. 한가지 견해는 왕쩐탕이 한 말이다. 그는 이렇게 해명했다: "란치의 회사의 미래발전에 대한 견해가 회사 대부분의 이사와 달랐다. 그리고 수개월에 걸친 의견교환에도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다."
왕쩐탕에 따르면, 그와 란치는 회사규모, 발전, 고객가치창조, 브랜드지위제고, 그리고 자원배분과 집행수단에 있어서 모두 의견차이를 보였다고 한다.
예를 들어, 에이서의 사업에 충격을 가져다준 이동인터넷설비분야에서, 왕쩐탕과 이사회는 PC는 여전히 회사의 핵심사업이라고 보았고, 이동설비사업은 비록 계기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견지했다.
란치의 견해는 달랐다. 당시 에이서는 태블릿컴퓨터와 스마트폰 분야에서 이미 뒤떨어졌으므로 반드시 자원을 대거 투입하여 이 분야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외에 CEO를 맡은 후, 란치는 경영진에서 더욱 의사결정권을 갖기를 희망했고, 이동설비분야에 진입하는 문제에서, 그는 여러번 이사회에 제출한다. 그가 타이완 이외의 지역에서 태블릿컴퓨터와 스마트폰컴퓨터업종의 경영인재를 영입할 수 있도록. 그러나 이사회는 그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것은 에이서의 '탈대만화'를 촉진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에이서라는 전세계 4대 PC제조업체중 하나는 일찌기 넷북으로 거의 정상까지 올라갔지만, 순식간에 '위험구역'으로 떨어졌다.
지금, 에이서는 업종전환의 곤경에 처해 있다. PC시대가 쇠락하면서, 전체 대만의 IT업계는 하락추세를 겪는다. 에이서의 창업자인 스전롱은 다시 하산해서 제3차 에이서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에이서가 며칠 전에 공표한 2013년도 제4분기 재무제표를 보면, 영업수익은 867.0억NT달러(미화약28.69억달러)로 전년동기대비 5.9% 하락했다. 순결손은 76.3억NT달러(미화약2.54억달러)로 전년동기의 33.7억NT달러(미화약1.13억달러)보다 크게 늘었다.
IT업계의 옵서버인 자징화는 이렇게 말한다. 지난번에 에이서에 나타난 위기는 스전롱이 이탈리아인 란치에게 회사 CEO를 맡기면서 혁신적인 마케팅방식으로 에이서를 곤경에서 구해낼 수 있었다. 최근 2년동안, PC시장은 위축상태였고, 태블릿 PC, 스마트폰시장이 번성했다. 그러나 에이서는 PC라는 큰 나무만 끌어안고 놓지 않아서 전환의 길이 아주 힘겹다.
에이서의 두 번에 걸친 개조에서, 스전롱이 처음에는 에이서의 업무를 간략하게 브랜드와 제조사업으로 나눈다; 또 한번은 에이서에게 브랜드에 추력하도록 했다. 두번의 전략은 모두 에이서의 급속한 발전을 불러온다. 주목할만한 점은 이전 두번의 에이서부활의 대배경은 회사내부전략에 문제가 있거나 혹은 전체적인 경제의 불경기였다. 다만 이번에 직면한 것은 PC산업의 구조적 전환이다. 즉, 이윤센터 혹은 이윤원천이 철저히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위기에 하산한 스전롱은 이틀간의 회의를 거쳐, 근 40여명의 고위경영진들과 토론한 후, 변혁방향을 기본적으로 이렇게 잡았다: 미래에 에이서는 사용자자체클라우드(Build Yuor Own Cloud)에 주력하고, 하드웨어회사에서 하드웨어+소프트웨어+서비스회사로 전환한다; 회사는 소프트웨어로의 전환을 통하여 부활한다.
구상에 따르면, 미래 에이서는 하드웨어를 팔 뿐아니라,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팔게 된다. 소비자들이 자신의 기계에서 자체건설클라우드를 만든다; 예를 들어, 음악클라우드, 사진클라우드등 각종 클라우드를 둔다. 이들 자체제작클라우드는 개방된 플랫폼에서 만들어진다. 믿을 수 있고, 사용하기 쉽고 언제든지 나눌 수 있다는 세 가지 특색을 지닌다. 그리고 서비스는 갈수록 많아질 것이다.
클라우드컴퓨팅생태시스템에서 네 가지 핵심역할은 보유자, 건설자, 운영자 및 사용자이다. 사용자는 각종 클라우드 컴튜핑의 최종소비자이다; 건설자는 클라우드환경을 만들어주는 업체이다. 여기에는 각종 기초자원, 해결방안과 서비스의 공급업체가 포함된다 예를 들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제품, 정보안전, 지급, 네트워크서비스등이다. 또한 클라우드환경의 집성업체도 포함된다; 보유자는 클라우드 컴퓨팅서비스의 각종 IT자산(예를 들어 하드웨어자산 및 소프트웨어자산)의 소유자이; 운영자는 클라우드컴퓨팅 및 서비스의 후기운영, 유비보수, 관리를 맡은 업체이다. 대부분이 상황하에서, 보유자와 운영자는 같은 업체일 것이다.
"전통적인 IT업체에 있어서, 클라우드컴퓨팅이 진입할 때, 단기 및 중장기로 기업이 클라우드 컴퓨팅에서 할 역할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아마존 클라우드 컴퓨팅에서 일한 바 있는 중국계 엔지니어의 말이다. 현재, 클라우드 컴퓨팅서비스는 주로 공유클라우드와 개인클라우드의 두 분야로 나뉜다. 에이서는 개인클라우드분야에 뛰어들고자 하는 것이다. 아마존, 애플, 구글등이 모두 클라우드 분야에서 '한걸음 앞서 나갔다' 에이서는 확실히 한걸음 느리게 시작했다.
그가 보기에, 에이서 브랜드의 핵심은 채널경영에 지나치게 치중되어 있고, 소프트웨어기초가 약하다. 더더구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의 결합은 말할 것도 없다. 도 다른 두개의 PC제조업체인 델과 HP가 걷는 길은 클라우드 컴퓨팅 + 서버노선이다. 기초가 상대적으롯 성숙되어 있지만 전환은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고 있다.
단기간내에 에이서가 예상하는 새로운 이윤센터를 재무적으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천쥔성(陳俊聖)이 얼마전에 솔직하게 말한 바 있다. "Build Your Own Cloud"라는 클라우크 컴퓨팅 서비스분야에서 에이서는 여전히 초기단계에 처해 있다. 다만 그도 일단 충분한 고객군을 확보한다면 에이서가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하여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이 일흔을 넘긴 스전롱이 만병통치약으로 찾아온 것이 클라우드 컴퓨팅인 것같다. 다만, 이전에 델, HP가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이 방향을 선택했으나 효과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스전롱이 무슨 회천술을 지니고 있을 것인가?
스전롱이 다시 에이서를 부활시킬 수 있을까? 답은 낙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제일재경일보에 따르면, 어느 정도 스전롱이 다시 돌아온 것은 2009년 렌상의 창업자인 류촨즈가 다시 나온 것과 일맥상통한다.
류촨즈는 당시에 렌상집단의 경영에서 물러나고자 했지만, 진정으로 은퇴한 것은 아니었고, 롄상지주를 무대로 하여 더 높은 단계의 일선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스전롱은 진정으로 쉬고자 한 것이고, 10년간 정력을 문화사업과 공익사업에 쏟았다. 얼마나 시간이 더 흘러야 옛날 기업을 이끌었던 민감한 신경이 회복될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스전롱을 잘 아는 대만기업가에 따르면, 더욱 큰 문제는 이 70세노인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스전롱의 건강상태는 양호하다. 그러나 심장수술이 이미 두자릿수에 이르렀다. 고강도의 기업경영업무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이다. 이것은 에이서의 부활업무에 걱정거리를 남긴다.
중국인터넷협회 비서장인 리이(李易)에 따르면, 대만 현지시장은 공간이 너무 적어서, IT업계의 가장 핵심인 산업표준을 정하는 능력이 없다. 예를 들어 OS의 소스코드, 기초통신특허등이 부족하다. 대만기업은 한국모델을 선택할 수도 없고, 전력을 다하여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국제노선을 걸을 수밖에 없다.
이상으로 인하여 나오는 결과는 발전이 순조로울 때는 걱정이 없다. 일단 찬바람이 불면, 전략이 위축될 때, 쉽게 붕괴하게 된다. 회사는 국제화시스템을 지니고 있고, 아주 방대하지만, 대만본토의 시장은 그 운영을 지탱해줄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스전롱이 에이서를 되살릴 수 없다면 에이서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에이서의 시장에서의 실적으로 보면, 최종답안은 아마도 노키아, 모토롤라등과 같이 합병당하는 것 뿐이다.
현재 에이서를 인수할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3군데이다. 각각 롄상, 아수스(ASUS, 華碩), HTC이다. 그중 렌샹은 몇년전이 명확하게 당시의 최고경영진 왕쩐탕에게 인수의사를 전달한 바 있다. 다만, 롄상의 사업중심은 이미 PC+로 변했다. 최근 들어 속속 새로이 IBM의 하단서버를 쟁탈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PC업무만 있는 에이서는 이상적인 인수대상이 아니다. 같은 이치로, 델, HP등도 소문속의 인수대상이다.
의외인 점은 또 다른 PC업체인 아수스이다. 해외자본시장에서 누군가 건의한 바 있다. 에이서와 아수스를 합병하여 "쌍A조합"을 만들자고. 아수스의 장문인인 스숭탕(施崇棠)은 원래 에이스 창업자중 한 명이다. 두 회사는 분위기도 비슷하고 쌍방이 합병하는데 난이도가 낮다. 이전에 스전롱도 공개적으로 자연스럽게 하겠다고 얘기한 바 있고, 스숭탕도 개방적인 태도를 나타냈다. 만일 양자가 합병하면, 본질적으로 전환이 없는 인수합병이다. 합병을 통하여 PC의 빅맥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는 다시 PC업종의 전환문제를 남긴다.
HTC와의 합병은 대만매체에서 많이 언급하는 이슈이다. HTC와 에이서제품라인은 마침 상호보완적이다. 롄상의 "PC+"사업전환모델을 따라갈 수 있다. 전망을 자본시장에서도 좋게 본다. 다만, 스마트폰시장에서 HTC는 진흙탕에 빠져있고, 양자의 결합이 반드시 1더하기 1은 2보다 크다는 것을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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