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문혁후)

황당한 문혁때의 "망고숭배운동"

by 중은우시 2013. 12. 4.

글: 신당인(新唐人)

 

이것은 20세기에 발생한 가장 황당한 시대의 이야기이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요란스럽게 진행될 때, 수천수만의 중국노동자들이 18개월간이나 "망고숭배"운동을 지속했던 것이다.

 

1968년 8월,당시의 파키스탄 외교부장관이 북경을 방문했고, 중국최고지도자 모택동에게 한 바구니의 '망고'를 선물했다. 모택동은 이 40여개가 든 한 바구니의 망고를 청화대학의 공선대(工宣隊)로 보낸다. 바로 이 한 바구니의 과일이 정치선전도구가 되었다. 그리하여,전국범위내에서 금방 망고를 전달하고, 감사하는 붐이 일어났다. 

 

청화대학에 진주하여 지식분자 "취노구(臭老九)"를 관리하는 공선대원들은 망고를 받은 후 감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리하여 "모든 노동자가 모주석의 은총을 나누어 느끼도록" 결정했다. 그래서 북경의 모든 대공장에 각각 망고를 1개씩 보낸다. 다만, 이 망고는 불과 십여개에 불과하여 다 보내주기에는 부족했다. 어떤 사람이 방법을 생각해 낸다. 밀랍으로 망고를 만들어 대체하는 것이다. 복제품이 있으니, 보내주는 것은 훨씬 편해졌다. 모택동에 대한 미친 듯한 숭배시기에 '망고'라는 이 글자는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모주석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금방 개인숭배의 등봉조극(登峰造極) 시기에는 공장의 가장 좋은 진열실 유리관내에 성물로 모셔놓았다.

 

금방, 이 망고를 보내는 열풍은 신주대지를 석권한다. 창춘(長春)에서는 거리행진이 벌어지고, 쓰촨(四川)에서도 거리행진이 벌어진다. 푸젠(福建)과 지난(濟南)의 대표들은 유리틀 속에 모셔놓은 밀랍망고를 받들었으며, 젊은이들은 대형 비단 대좌(臺座)를 들고 밀랍망고를 놓아둔다. 전국이 노래부르고 춤을 추었다. 모택동이 노동자계급, 빈하중농에 관심을 가진 것을 축하하고, 문화대혁명을 끝까지 하겠다는 결심을 표시했다. 선물을 보낸 것은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했다. 몇 개의 망고로 열광적인 충성붐을 조성한다. 이것은 바로 문혁때의 '정치적 빚'이다.

 

<인민일보>는 모택동이 공선대에 망고를 선물한 다음 날, 첫페이지 머리기사로 격정에 충만한 글을 싣는다: "이것은 전체 노동자계급과 광대 공농병군중에 대한 최대의 고무이고, 최대의 관심이고, 최대의 교육이고, 최대의 편달이다."

 

망고 하나를 나눠받은 북경제일기상창(北京第一機床廠)은 상해의 자매공장에도 모주석의 사랑을 나눠주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특별히 비행기를 한 대 빌려서, 전용기로 이 망고를 상해로 보낸다.

 

당시의 일부 노동자들이 회고한 바에 따르면, 망고를 받은 그날은 공장 최대의 명절중 하나가 되었다. 사람들은 기뻐 날뛰고, '모주석만수무강'이라는 구호를 소리높여 외쳤다. 어떤 노동자는 망고가 썩지 않도록 최대한 보존하기 위하여, 거기에 밀랍을 발랐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어떤 노동자, 해방군전사는 망고를 받은 후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 먹었다. 이것은 가장 멍청한 짓이었다. 왜냐하면 지도자가 보내준 망고는 너에게 먹으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망고를 보내고, 망고를 받는 것은 일종의 의식이다. 망고는 그저 연출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도구는 사용하고, 연출을 다하면 사명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 상징적인 의미가 실용가치보다 훨씬 높다. 과일을 받아서 먹어버리면, 그것은 지도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선물을 받은 북경침직총창(北京針織總廠)은 망고를 받은 후, 노동자들이 성대한 환영의식을 거행한다. 망고를 밀랍으로 보존한 다음 대청의 한 단상에 놓아둔다. 노동자들은 줄을 서서, 절을 한다. 아쉽게도 그 때는 방부를 잘 몰라서, 망고에 밀랍을 바르기 전에 소독을 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기 전에, 망고는 썩기 시작한다. 혁명위원회는 밀랍을 제거하고, 껍질을 벗긴 다음, 솥에 물을 끓여서, 망고과실로 탕을 끓인다. 그리고 성수(聖水)를 마시는 의식을 다시 거행한다. 노동자들은 한 줄로 서서, 모든 사람이 망고즙을 한 모금씩 마신다. 망고맛이 났는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역시 이 의식이다. 어떤 사람은 역대 운동중에서, 동서남북중의 맹목적인 집단사건을 '혁명의 묘회'라고 한다. '문혁'과 '망고사건'으로 형용하는 것은 더없이 적합하다.

 

망고가 전국을 돌아다니는 동안 국민들은 다시 한번 영혼의 세례를 받는다. 사람들이 집단열광으로 이성을 상실할 때, 개별적인 정신이 맑은 사람들의 결말은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복제한 망고가 사천 옹안으로 갔을 때, 한원현 부림진의 한광제라는 치과의사가 유리박스 속에 들어 있는 망고를 보고 한 마디 했다: "망고가 꼭 고구마 같다. 별로 볼 것도 없다. 희한할 것도 없고..." 그 결과 정부는 '악독공격'이라는 죄명으로 그를 구속하고, 1년여후 사형에 처했다.

 

층층이 선물로 전해진 망고는 마지막에 어디로 갔을까? 기록은 없다. 지도자가 보내준 선물을 어떻게 처리할지, 백성들에게 이것은 뜨거운 감자가 되어 버렸다. 그저 조용히 소리없이 풍화되고 썩어문드러져서 마지막에는 사라지길 기다릴 뿐이다. 이것이 바로 그 열광의 시대에 벌어진 황당한 이야기이다. 우리에게 어떤 생각을 가져다 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