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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한)

유표(劉嫖): 황태후가 아니면서 후궁을 장악한 인물

by 중은우시 2013. 8. 24.

글: 소랑(小浪)

 

 

 

중국역사상, 이런 여인이 있다. 그녀는 황태후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의 지위와 권세는 황태후보다 높았다. 그녀는 서태후처럼 수렴청정을 하지도 않았고, 무측천처럼 일대여황에 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황실의 권력다툼에서 후궁을 독패한다. 그녀는 딸을 이용하여 황태자에 접근하고, 혼인에서 농권조세(弄權造勢)하고, 이를 통하여 황실의 권력방향을 결정지었다. 이 여인은 아주 대단했다. 그녀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따라 황제로 하여금 태자를 폐위시키게 만들고, 또 다른 태자를 세우게 만들었다.이 여인은 바로 한나라때 한경제의 누나이고 한무제의 고모인 대장공주(大長公主) 유표이다.

 

유표는 두태후의 맏딸이다. 한나라때 황제의 딸은 "공주"라 칭한다. 황제의 자매는 "장공주"라 칭하고, 황제의 고모는 "대장공주"라 칭한다. 두태후가 임종할 때, 유조(遺詔)로 동궁의 금은보화를 모조리 장공주 유표에게 하사한다. 이 장공주는 두태후가 가장 아끼던 딸이고, 장상명주(掌上明珠)이다. 유표는 한경제의 누나였으므로, 오누이는 서로 존중해주었고, 모친은 누나를 깊이 사랑했다. 그러다보니 황제인 동생은 누나를 더욱 신임하게 된다. 그리하여, 한경제가 매일 시침하는 후궁을 선택할 때, 누나인 장공주 유표가 추천하였다. 오랫동안 이렇게 하다보니, 장공주 유표의 지위는 아주 높아진다. 황제인 동생에게 그녀는 거족경중(擧足輕重)의 인물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고귀한 지위와 수없이 많은 금은보화도 그녀는 부족하게 여긴다. 그녀는 자신의 딸도 자신과 같은 풍광을 누리게 하고 싶었다. 유표는 진(陳)씨의 처로 들어갔고, 집안은 아주 현귀(顯貴)했다. 그녀는 딸을 하나 낳는데, 용모가 보통이 아니었고, 아주 예뻤다. 보통사람들의 눈에도 금지옥엽이었다. 그래서 이름을 아교(阿嬌)라 짓는다. 유표는 진아교를 황후로 만들고 싶어했다. 자신은 돈도 있고, 고귀하다. 그리고 딸을 위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고자 했다. 아마도 "첨독정심(舔犢情深)"해서인지, 유표도 자신의 이 보배같은 딸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남자는 직업을 잘못 가질까 걱정하고, 여자는 시집을 잘못 갈까 걱정한다"는 말이 있다. 천하의 모친이 딸에 대하여 가장 신경쓰는 것은 아마도 결혼일 것이다. 유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녀의 안목은 상당히 높았다. "시집가려만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서는 안되고, 반드시 황제의 후계자에게 시집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마음 속으로 당금세계에서 오로지 태자만이 그녀의 딸과 결혼할 자격이 있었다.

 

기실, 장공주 유표의 마음 속으로 계속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항상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여자가 황태자에게 시집간다면, 태자가 등극했을 때 황후가 된다. 그렇다면 황후의 모친은 바로 황제의 장모이다. 얼마나 자랑스럽고, 얼마나 부유해질 것인가. 황제의 누나에서 황제의 장모로, 그렇게 되면 일생의 영화부귀는 끝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황제의 누나인 장공주 유표는 여러가지 황당한 일을 벌인다. 그녀는 먼저 눈길을 율희(栗姬)에게 돌린다. 당시의 태자인 유영(劉榮)은 바로 율희와 한경제 사이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유표는 당연히 태자 유영에게 그러한 의사를 내비친다. 황제의 누나가 너를 잘 보아서 사위로 삼고 싶어한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냐. 원래 이것은 성사시키는데 자신이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율희가 거절한 것이다. 원인은 아주 간단하다. 유표가 한경제에게 시침할 후궁을 추천할 때, 율희를 소홀히 대했기 때문이다. 율희는 이로 인하여 유표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유표와 사돈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유표는 예상밖의 뒤통수를 맞는다. 그러나, 율희는 전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밉보이는 것은 괜찮아도, 황제의 누나인 유표에게 밉보여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결과는 아주 참혹했다. 결국 태자 유영은 폐위되고, 그녀 자신도 황후에서 쫓겨나서 냉궁으로 들어간다. 결국 우울하게 생을 마친다. 황제의 누나는 딸의 혼인이 이루어지지 않자, 이런 일을 벌인 것이다. 너무나 황당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당연히, 유표는 그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다시 눈길을 왕미인(王美人)에게 돌린다. 왜냐하면 그녀는 왕미인이 낳은 아들 유철(劉徹)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철은 아주 귀여운 사내아이로, 총명하고 영리했으며 학문을 닦는데 힘썼고, 사람을 대함에 예의가 있었다. 그리고 아주 잘생긴 아이였다. 현대의 기준으로 본다면, 키도 크고, 잘생기고 돈도 많은 남자이다. 그리하여 유표는 기회를 만들어, 달을 데리고 동생인 한경제의 집으로 간다. 한경제와 왕미인의 앞에서 유철에게 묻는다: "고모가 딸 아교를 너에게 시집보낸다면 너는 원하겠는가?" 왕미인은 잘 알고 있었다. 혼사를 거절하여 유표는 마음이 가장 약해 있을 때이다. 이때 그녀에게 친근한 태도를 보인다면 그녀가 감격해마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왕미인은 얼굴에 아부하는 웃음을 띄운다. 나이도 어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유철은 모친이 웃는 것을 보자 바로 말을 한다: "내가 아교를 처로 삼을 수 있다면 반드시 황금으로 집을 만들어 주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역사상 '금옥장교(金屋藏嬌)"라는 고사성어가 나오게 된다.

 

그러나, 이런 구혼은 실로 황당하다. 유철은 아직 어린아이였다. 그가 무엇을 알겠는가? 무엇이 결혼이고 무엇이 처로 삼는 것인지, 아마도 아무런 개념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그저 재미로 입에서 나오는대로 지껄인 것이다. 그 왕미인을 보자. 그녀는 심기가 고심막측한 여인이다. 그녀는 유표에게 잘 보일 수만 있다면, 그녀에게 호의를 베풀 수만 있다면, 나중에 후궁에서 유표와 손을 잡고 후궁을 독패할 수 있다. 그녀의 심계는 정말 대단하다. 그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올케와 사이를 좋게 가지는 것이 시집에서 잘 지내는 관건이라는 것을.

 

사실이 그러했다. 장공주 유표는 황당하게도 꽃처럼 아름다운 금지옥엽의 딸인 아교를 아직 어린아이인 유철에게 시집보내기로 한다. 왕미인을 자손만대의 영광을 보장하는 잠재주로 여기고, 극력 손을 잡는다. 왕미인도 그녀의 마음을 잘 알았다. 그리고 장공주가 자신의 신분을 바꿔줄 사람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호응해준다.

 

그리하여, 이 혼인은 잘 진행되었다. 유철과 아교의 혼인이 확정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경제는 박황후(薄皇后)를 폐위시키고, 태자 유영의 모친 율희를 황후로 삼고자 한다. 대장공주 유표는 당연히 동의하지 않는다. 계속하여 한경제에게 율희는 별로 좋은 여자가 아니고, 문제가 많으며, 마음씀씀이가 좁아서 황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그녀는 왕미인을 추천했다. 왕미인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녀는 몰래 사람을 보내어 태행관(太行官)으로 하여금 한경제에게 상소를 올려 빨리 율희를 황후로 삼아달라고 청하게 한다. 한경제는 그 상소문을 보고는 화를 벌컥 내면서 태행관을 죽였을 뿐아니라, 율희에 대하여도 크게 불만을 가진다. 기록 왕미인을 황후로 삼는다. 율희가 낳은 태자 유영을 페위시키고, 왕미인이 낳은 아들 유철을 태자로 다시 세운다. 이때 유철의 나이 겨우 7살이었다.

 

자신의 딸에게 자신과 같은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기 위하여, 장공주 유표는 딸 아교를 황태자에게 시집보내고자 한다. 그러나, 태자 유영의 모친 율희로부터 거절당하자, 눈길을 아직은 어린아이인 왕미인의 아들 유철에게 돌린다. 결국 왕미인과 손을 잡고, 후궁을 독패한다. 이 일은 정말 아주 황당하다. 다시 말해서, 꽃처럼 빼어난 미모를 지닌 다 큰 딸을 아직 7살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시집보내는 것은 부적절하다. 어린아이는 나중에 커서 한무제가 된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인이라도 늙기 마련이다. 나중에 한무제는 위자부(衛子夫)를 총애하고, 진아교를 멀리한다. 바로 그런 이유때문이다. 이 황당한 혼사는 농권조세의 변태적인 심리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녀의 마음 곳에 애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황실의 권력쟁탈만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