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조성명(曹聲明)
사마천의 <위기무안열전(魏其武安列傳)>을 읽어본 사람이면 분명 한무제때의 승상 전분(田鼢), 즉 한잔 술의 원한 때문에 두영(竇嬰)과 관부(灌夫)를 억울하게 죽게 만든 인물에 대한 인상이 아주 깊을 것이다. 그러나 적복이라는 자잘한 인물에 대하여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작자는 200자도 되지 않은 글을 통하여 그가 4번에 걸쳐 잠깐씩 등장한 언행을 남겼지만,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필자가 보기에, 이 사람에게는 아마도 2천년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역사적 비밀을 숨겨져 있는 것같다.
위기후 두영은 두태후의 조카이다. 두영은 오초칠국의 반란을 진압한 혁혁한 전공으로 위기후에 봉해지고 조정의 대권을 장악한다. 전분은 왕황후의 동모이부의 형제이다. 당초 그는 왕황후의 동생이라는 것에 의지하여, 두영등 권력귀족들의 문하에 들어가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전분은 비록 재주도 없고, 덕도 없고, 공로도 없지만, 그가 나중에 고관대작이 되어 크게 돈을 모으는데는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았다. 왕황후가 점차 득세하면서, 전분은 무안후(武安侯)에 봉해져서 이제는 위기후와 평기평좌(平起平坐)할 수 있게 된다. 승상 위관(衛綰)이 병으로 사직하자, 황제는 승상과 태위에 임명할 사람을 찾는다. 이때 전분은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방파를 모아서 승상이 되고자 한다. 이때 적복이라는 사람이 나타난다. 그는 전분에게 승상의 자리를 다투지 말라고 적극 말린다. 적복은 승상을 맡지 않았을 때의 좋은 점을 분석해서 설명했는데, 합리적이었다 전분은 흔쾌히 승상자리를 놓고 다투는 것으 포기한다. 이때부터 상층부의 권력투쟁에서 물러나 있게 된다. 두영과 전분 두 사람이 공동으로 집정할 때는 정통인화(政通人和)의 국면이 형성된다. 이것은 적복이라는 사람의 건의로 이루어낸 성과였다. 적복은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지자(智者)라는 깊은 인상을 남긴다. 암중으로 두영이 승상에 오르는데 공을 세운 적복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두영이 승상에 오른 것을 축하하러 간 자리에서 그는 이 일을 내세워 두영에게 공로를 자랑하거나 상을 바라지 않았고, 여하한 축하의 말도 건네지 않았다. 오히려 분위기에 맞지 않게 두영에게 이렇게 간한다: "당신은 천성적으로 좋은 사람을 좋아하고, 나쁜 사람을 미워한다.천하에는 나쁜 사람이 아주 많은데, 그들은 모두 당신을 비방할 것이다. 당신은 나쁜 사람을 상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게 해야 당신의 승상직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이때 권력의 꼭대기에 올라선 두영에게는 그런 귀에 거슬리는 말이 들어가지 않았다. 나중의 사실은 적복이 예측한 것과 마찬가지로, 두영은 결국 외척집단의 이익을 건드려 파직되어 집으로 돌아가서 손자나 안게 된다. 전분은 황후인 누나에게 잘 아부하여 원하던 바에 따라 승상에 오른다. 적복의 선견지명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전분이 승상에 오른 후, 아주 탐욕스럽고 발호한다. 그는 두영이 가진 성남(城南)의 전답에 눈독을 들인다. 그는 적복을 보내어 두영에게 전답을 내놓으라고 말한다. 두영은 전분의 무리한 요구를 즉석에서 거절한다. 두영의 친구인 관부는 이 소식을 들은 후, 사신역할을 맡은 적복에게 한바탕 욕을 해댄다. 적복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억울하게 욕을 얻어먹었다. 누구든지 이런 일을 당했다면, 돌아가서 여기저기 살을 붙이고 과장하여 보고했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적복은 이 일을 숨기고 그는 좋은 말로 전분을 속여넘긴다: "위기후는 늙어서 곧 죽을 것입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될 것입니다." 세상일을 잘 아는 적복은 두 사람간에 원한이 맺어지면 어떤 심각한 결과가 올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차라리 자신이 오해의 욕을 얻어먹더라도, 도의를 지킨 것이다. 적복은 시종 암중으로 두영, 관부와 같이 국가에 중대한 공헌을 한 현신양장(賢臣良將)을 보호해주었다. 비록 두 사람이 알아주지는 않았고 심지어 그를 원망하였지만, 이런 고풍양절(高風亮節)은 실로 사람의 모범이 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승상 전분의 결혼주연에서, 악을 원수처럼 미워하는 관부는 전분이 불가일세의 교만함을 부리는 모습을 참지 못하고, 몇 마디 말로 전분을 조롱한다. 그리고 그에게 술 한 잔을 꽉채워서 마시도록 억지로 강요하며 두 사람은 대치한다. 그후 다시 지상매괴(指桑罵槐)식으로 다른 사람을 조롱한다. 그 결과 결혼연은 좋지 않은 분위기로 끝나게 된다. 분노한 전분은 관부를 구금한다. 이때 적복은 개인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앞으로 나서서, 관부를 대신하여 죄를 청하고, 승상의 관용을 청한다. 그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 관부의 목을 잡고 그에게 고개를 숙여서 죄를 인정하도록 한다. 아쉽게도, 관부는 조금도 적복의 고심을 알아주지 않았고, 죽어라 저항했다. 전분은 그 후 관부에게 대불경의 죄명을 씌워 멸족의 형에 처한다. 두영은 친구를 구하기 위하여 전분과 안면을 몰수하고, 전분의 부정부패행각을 고발하기까지 한다. 다만 인치의 사회에서, 소송의 승부는 왕왕 권력의 크기로 결정된다. 이 천하를 뒤흔든 큰사건도 결국은 두영, 관부 두 사람이 멸족되는 혈우성풍가운데 막을 내리게 된다.
두영, 관부 두 사람이 멸족된 후, 두 달도 지나지 않아 기괴한 일이 발생한다. 이 놀랄만한 대사건을 일으킨 원흉인 전분이 원인을 모르게 미쳐버린다. 하루종일 입으로는 이런 말을 내뱉는다: "나는 죄를 인정한다. 나는 죄를 인정한다." 무당에게 보여주자 모두 두영, 관부 두 사람의 원혼이 전분의 곁에서 그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얼마 후, 전분은 두려움과 놀라움과 불안함 속에서 미친 상태로 죽는다. 이 독자들을 속시원하게 하는 결말을 읽으면서, 필자는 마음 속으로 한가닥 의문이 떠올랐다: 세상에 절망 귀신이 있단 말인가, 이것이 살아있는 사례가 아닐까? 사실은 이것은 아마도 2천년간 숨겨져온 역사의 비밀이 아닐까 한다. 만일 귀신이 장난을 친 것이 아니라면 단지 내인(內因)과 외인(外因) 두 가지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먼저 내인방면을 보자. 전분이 이런 하늘과 도리에 저버린 나쁜 짓을 저질렀기 때문에 양심이 발현되어 죄책감에 날로 시달리다가 결국은 정신이 붕괴되었다 그리하여 헛소리를 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전분이 주연에서 관부를 구금한 때로부터 그가 멸족의 일까지 벌이는 것을 보면 이미 미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복의 사죄, 두영의 부탁, 대신들의 간언, 심지어 황제의 계속된 암시에도 불구하고, 전분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승상의 권위로 대신을 억누르고, 태후누나를 내세워 황제를 몰아세웠다. 그러므로, 그의 양심이 발현되었다고 보는 것은 헛소리가 아닐 수 없다. 만일 이런 가설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외인의 가능성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누군가가 당시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미신사상을 이용하고, 민중들이 선악에는 보답이 따른다는 강렬한 열망을 빌어, 암중으로 체천행도(替天行道)한 것이다. 정교하게 이 2천년간 아무도 깨트리지 못한 역사의 수수께끼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현세현보의 인과응보의 국면을 만들고자 한다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깊은 밤 조용한 때, 누군가 귀신으로 분장해서 괴이한 동정을 보이면 된다. 혹은 전분의 곁에 수시로 신비한 물건이 출현하면 된다. 그렇다면 잘못한 일이 있는 사람은 분명히 두려워할 것이다. 전분의 내심 깊은 곳에 숨어있던 두려움이 자연히 드러날 것이다. 만일 그의 곁에 있는 사람이 계속하여 암시를 주고 겁을 준다면 전분의 정신이 붕괴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무당의 말은 더욱 이해하기 쉽다. 전분은 술잔때문에 두 사람의 현인을 죽이는 악행을 저질렀다. 그래서 일찌감치 천하인의 공분을 샀다. 전분이 입으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미친 자의 추태를 보인다면 누구든지 그것은 두영, 관부의 원혼이 그를 죽이려 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물며 눈치를 살펴서 말하는데는 도가 튼 무당임에야. 당연히, 다른 수단으로 전분에게 "나는 죄를 인정한다'는 코메디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암중으로 전분에게 뇌신경을 손상시키는 환각약물을 먹이는 것이다. 아마도 더욱 고명한 방법이 있을 수도 있겠다. 이미 역사의 먼지 속으로 사라져서,지금으로서는 그저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이런 놀랄만한 일을 누가 벌였을까? 첫째, 아래의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사람만이 이런 큰 일을 벌일 수 있다. (1) 이 사람은 강렬한 정의감을 가져야 한다. 전분의 악행에 대하여 내심으로 분노하고 있어야 한다; (2) 이 사람은 담량이 크고 대신 세심해야 한다. 지모가 뛰어나야 한다. 그리고 속마음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으며, 인심을 얻고 있어야 한다; (3) 이 사람은 전분의 곁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가장 믿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에 맞는 사람은 적복밖에 없다. 적복은 관부의 죄가 확정된 후 소리소문없이 사라진다. 다만 만일 우리가 자세히 찾아본다면, 여전히 그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있다. 전분이 관부가족을 체포하라고 명령내리자, 전분의 부하는 암중으로 그 소식을 전하여, 관부의 가족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도망칠 수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추측할 수 있다. 이것은 적복이 암중으로 조치한 것이라고. 여기서 지적할 점은 이런 큰 사건을 벌이려면 적복 혼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조금만 부주의하면, 멸족의 재난을 당할 수 있다. 다행히 전분은 이 때 인심을 완전히 잃었다. 그의 부하조차도 두영과 암중으로 연락하고 있었다. 전분이 권세를 믿고 관부에게 멸족의 죄를 뒤집어씌울 때가 바로 그가 고가과인(孤家寡人)이 되는 날이었다. 교만한 전분이 어찌 알았으랴. 그의 사방에는 이미 무형의 끈이 조이고 있음을. 몇 사람이 이 일에 참가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이 비밀을 발견했는지 여부도 관계가 없다. 전분이 원혼에게 붙잡혀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 되어 버렸다.
적복은 전분과의 사이에 아무런 원한이 없다. 전분은 적복을 신임했고, 적복도 전분을 위하여 충성스럽게 일했다. 적복이 4번에 걸쳐 등장할 때의 언행은 전분과 두영, 관부 쌍방에 모두 이로운 일만 있었지 해로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쌍방의 모순을 조화시키기 위하여, 비극의 발생을 회피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의 일언일행은 모두 공심(公心), 공덕(公德), 공리(公理)에서 나온 것이다. 만일 이 사건이 정말 적복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정의의 검이 그의 정의의 손을 빌려, 정의의 심판을 집행한 것이라고! 이천년동안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비밀이다. 이것은 비밀이 교묘하여 풀기 어려워서가 아니고, 결말이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주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인과응보의 심리를 만족시켜주었기 때문에 아무도 이를 따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일찌감치 누군가 그 속의 이상한 점을 발견했을 수도 있다. 다만 그것을 밝히고 싶어하지 않았다. 대중의 인과응보의 선량한 마음에 상처를 줄까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가 대담하게 자신의 추측과 판단을 내놓는 것은, 실로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귀신을 믿지 않고, 인과응보를 믿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금전만 믿고, 권세를 숭배한다. 우리가 무신론자의 신분으로 전분의 신비한 사망이라는 수수께끼를 드러낸 후, 큰 소리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다: 세상에 귀신은 없을 수 있지만, 인과응보가 없을 수 있지만, 다만, 정의의 심판은 영원히 존재한다. 어느 때이건, 어느 곳이건, 어떤 형식이건, 그것은 귀신의 심판보다 더욱 진실하고 더욱 혹독하며 맹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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