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상한(桑寒)
청나라말기, 서태후는 온갖 방법을 다 써서 구차하게 정권의 목숨을 연장하고자 하였다. 가경제이후, 청왕조는 황태자를 둔 적이 없다. 황태자를 두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직접적으로 국가의 장래 주인을 결정하는 일이다. 서태후는 '무술변법'이후 광서제를 멸시한다.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광서제를 처벌할 수밖에 없었다. 영록(榮祿)과 광서제의 폐출을 논의한다. 그리고 대담한 계획을 세운다. 그것은 미리 후계자를 두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외국인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1899년 봄, 부준은 궁내로 불려들어온다. 그리고 대아거로 불린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이 행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저 서태후가 자신의 집안에서 놀음을 하는 것으로 여겼다. 서태후는 어쩔 수 없이 부준을 황제로 세우려는 계획을 포기하게 된다.
황제후계자를 세우는 것은 첫째는 광서제를 혼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마음 속의 분을 푸는 것이다. 둘째는, 자신의 말을 잘 듣는 황제를 앉히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하여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것이다. 다만, 두 가지 난점도 있었다. 하나는 백성과 외국인이 반대의견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녀는 백성들은 해결할 수 있었지만, 외국인은 그녀에게 골치거리였다. 부득이 왔다갔다 하는 입장이 된다. 금방 후계자를 세웠다가, 금방 부준을 멀리한다. 둘째는 대아거와 그의 부친이 쓸데없는 짓을 해서 서태후의 화를 돋군다. 그들은 돌을 들어 자신의 발등을 찍은 꼴이다.
광서제를 혼내주는 것으로 따지면, 서태후가 이미 그녀의 뺨을 세게 두번 때렸다. 한번은 서태후가 광서제에게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나는 너의 건강이 몹시 염려된다. 너는 몸이 이렇게 좋지 않고, 슬하에 자식도 없지 않으냐!" 광서제는 이때 몸과 마음이 모두 피곤했다. 기실 그는 마음 속으로 서태후가 후계자를 세우겠다는 뜻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말한다: "저는 몸에 이렇게 많은 병을 달고 있으니, 언제 잘못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서태후는 바로 말을 잇는다: "나도 대청률에서 우리가 후계자를 세우지 못하게 한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네 몸이 좋지 않으니, 승계하는 사람이 없으면 안되는 일이다. 국가를 위하여, 특례를 두어야 겠다." 이 특례가 바로 대아거이다. 그렇다면 이 대아거는 서태후의 생각대로 그녀의 말을 잘 들을 것인가?
대아거 부준은 황궁에 들어온 이후, 이곳은 이미 그의 천하가 되었다고 여긴다. 그래서, 아직 황제의 보좌에 앉기도 전에, 거리낌없히 행동하기 시작한다. 대아거는 단왕 재의의 아들이다. 단왕은 기실 나중의 의화단 두목이다. 대아거는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십여세의 나이로 황제가 될 꿈을 꾸다니. 그래서 그는 아직은 권력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상태였다. 권력에 대한 갈구는 이 나이어린 소년을 자극했을 뿐아니라, 그의 부친까지도 자극했다. "급(急)"이라는 말은 바로 이들 부자의 심정을 가장 잘 대변한다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이 말을 기억해야 한다. 마음이 급해서는 뜨거운 두부를 먹을 수 없다. 그가 궁중에 오고서 보게 된 것은 꽃처럼 예쁜 궁녀들이다. 당연히 마음이 뛰었을 것이다. 원래 낭리 어두워진 후에 자금성에는 태감들을 제외하고 다른 남자가 들어올 수 없었다. 다만 현재 대아거나 나타났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이곳에 이미 두 명의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규황제와 후계황제. 그래서 궁녀들은 대아거를 거스릴 수 없었다. 그리하여 금방 대아거와 궁녀간의 일이 소문나기 시작한다. 처마밑에서 몰래 하는 말은 드러내놓고 할 수는 없다. 그저 조정신하들이 몰래 소근거릴 뿐이다. 그리고 원래 발설지옥(拔舌地獄)에 이미 들어갔어야할 태감들은 사건들을 만들기 좋아했다. 그리하여 궁내는 소란스럽게 된다. 부준은 놀기를 좋아했다. 서태후도 그가 난잡한 일을 많이 벌인다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스스로 체면이 말이 아니라고 여겼다. 이때, 서태후는 마음속으로 불쾌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를 후계자로 세운 것은 그녀가 스스로 결정한 것이다. 자신의 입장을 생각하여, 잠시 그냥 두기로 한다. 그러나 이런 스캔들은 부준과 그의 부친이 일을 잘못처리한 후 처벌을 받는데 화근이 된다.
외국인의 발걸음이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고, 서태후는 한발 한발 양보하고 있었다. 자신의 권력을 잘 보호하기 위하여, 부득이 먼저 광서제를 잘 보호해야 했다. 어쨌든 외국인들은 광서제를 지지하니까. 이때 부준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파리와 같은 신세가 된다. 서태후는 그를 피했다. 그리하여 부준은 아주 우울해진다. 그의 부친도 상처를 입는다. 광서제가 그만두지 않으면 그가 황제에 오를 수 없다. 얼마후, 의화단사건이 벌어진다. 재의는 의화단을 독실하게 믿었다. 그는 외국인을 몰아내야만, 그의 아들이 황제에 오를 수 있다고 믿었다. 팔국연합군이 의화단을 진압하러 오자, 궁안은 혼란에 빠진다. 서태후는 의화단에 대하여 태도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병부상서 서용의(徐用儀)와 호부상서 입산(立山)은 토벌을 주장한다. 외국인과의 마찰이 발생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서이다. 이때 단왕 재의는 의화단은 의로운 백성이며, 나라를 위난에서 구하기 위하여 죽음도 불사하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실제로 재의 자신은 여전히 부준을 황제에 앉히고 싶어했다. 그러나 밤이 길면 꿈도 많은 법. 무슨 꿈인가? 악몽이다.
결과적으로, 팔국연합군이 대고구를 함락시키고, 형세가 위급해진다. 재의는 다시 잔머리를 굴려서, 군기장경 연문충(連文忠)에게 열강이 대청에 보내는 외교문서를 위조하게 한다. 정권에 아주 불리한 소식에 서태후는 분노한다. 그래서 외국인을 향하여 선전포고를 한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너무 강했다. 그래서 서태후는 다시 후회한다. 그녀는 기실 다른 사람들에게 놀아났다. 일련의 약탈방화를 거쳐 서태후는 부득이 서쪽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게 된다. 그중에는 재의, 부준의 두 부자도 들어 있었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서태후의 분노는 마침내 폭발한다. 재의가 이 사변의 원흉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평민으로 신분을 격하시키지만 목숨만은 부지시켜준다. 그리고 신강으로 유배를 보낸다. 그리고 부준에 대하여도 점점 더 마음에 들어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부친이 의화단을 종용하는 죄를 범했으므로, 후계자로 남아있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이유를 들어 부준의 대아거 지위를 취소한다. 그리고 그도 신강으로 유배보낸다. 부준이 궁에 들어가서 행동을 잘 했더라면, 그래서 서태후의 환심을 샀다면 아마도 두 부자가 의화단을 비호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한 동앗줄의 메뚜기는 어떻게 튀든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 누구도 관계를 벗어날 수 없다.
이 후계자책봉사건은 하나의 스캔들이다. 스캔들의 감독은 서태후이고, 주인공은 부준과 그의 부친 단왕이다. 그러나 이 스캔들은 너무 요란스러웠고, 보는 관중들마저 간담이 서늘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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