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주질평(周質平)
호적이 처음에 귀국했을 때, 사회를 개조하려면 반드시 문화의 층면에서 시작해야 개조가 오래갈 수 있고, 효과적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20년간 정치를 말하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계율을 세운다. 그의 정치를 논하는 친구들은 일찌기, "적지(適之, 호적)는 처녀이고, 우리는 기녀이다"라고 풍자하고 비유했다. 당연히, 호적도 얼마후 계율을 깨고 정치를 논하기 시작한다. 처녀의 몸도 유지할 수 없었다.
처녀와 기녀의 비유는 당연히 우스개이다. 그러나 이 우스개의 배후에는 중국지식인들의 진퇴에 있어서의 곤경을 보여준다: 처녀가 되기를 원하지 않고, 기녀가 되기를 원한다. 이 양자는 비록 청탁(淸濁)의 차이는 있지만, 그러나, "생취태진(生趣殆盡)"에 있어서, 양자는 같다. 이십세 이전의 처녀는 우리 사회에서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스무살이후 평생 처녀로 지내게 되면 '비참'하다는 조롱을 피하기 어렵다. 소위 "노처녀"는 절대로 칭찬하는 말이 아니다. 늙어서도 처녀로 지내는 것은 인생의 지통(至痛)이다.
필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여성에 대한 불경일 수 있다. '성차별'의 금기를 어기는 것일 수 있다. 기실, '동정'을 유지하는 비참함도 있으니 여성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남성들도 마찬가지이다. 호적은 <나의 기로(岐路)>라는 글에서, 충분히 설명했다. 정치를 논하지 않음으로써 '동정'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그래서 정치를 논하는 것은 그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나온 충동이라고.
처녀와 기녀라는 비유에서 우리는 알 수 있다: 정치는 중국지식인의 눈에 더러운 것이고, 개입하면 안되는 것이다. 일단 개입하면, '몸을 잃는다(失身)'. 소위 "애석우모(愛惜羽毛)", "명철보신(明哲保身)"은 어느 정도 사람들에게 관직에 가급적 나가지 말라는 권유를 담고 있다. 관료사회는 흉험하다. 일단 들어가면 몸을 온전히 보전하기 어렵다. 노자장자의 많은 명구우언은 모두 이런 생각과 방식에 최고의 이론기초를 제공해준다.
전통적인 중국지식인의 눈에, 정치는 그 본질에 있어서 더럽고 흉험한 것이다. 그러나 그 형식을 말하자면, "지고한 것"이고 "공부를 잘하면 벼슬을 한다(學而優則仕)", "왕의 스승이 된다(爲王者師)"는 것은 역대 중국독서인들의 최후 그리고 최고의 이상이었지 않은가?
풍우란은 평생 '국사(國師)'가 되려는 일념으로 고민했다. 그러나 문혁기간에 절개를 잃어버리는 추악한 모습을 보였다. 많은 지식인들의 기개와 풍골은 일단 정치권력중심과 만나면, 바로 노비의 얼굴, 아부의 모습을 하게 된다. 곽말약은 바로 생생한 사례이다. 이것은 바로 처녀와 기녀라는 지식인과 정치의 양극관계에서 온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해협양안은 이미 점점 "민족구성(民族救星)"의 독재라는 그림자가 덮여지고 있다. 지식인과 정치의 관계는 처녀와 기녀의 양극을 돌파했을 뿐아니라, 더더구나 "녕명이사(寧鳴而死)"의 열녀전통도 타파했다.
지금, 지식인과 정치의 관계는 처녀일 필요도 없고, 기녀일 필요도 없다. 그저 행동거지를 단정히 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양가부녀가 될 수 있다.
양수명(梁漱溟)은 일찌기 "우리들이 나서지 않으면 천하창생을 어찌할 것인가"라는 호언을 한 바 있다. 오늘 그 글을 다시 읽어보니, 반드시 "나서다(出)'는 말에 새로운 해석을 붙여야 할 것같다: "나서다'는 것은 반드시 "당도(當道)"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당도"가 되기 위하여 반드시 '나서야'할 필요는 없다.
"나선다"는 의미는 국사에 대한 관심과 창생이 대한 연민이다. 나는 창생이다. 창생이 나다. 양수명은 어떤 때는 "구세주"로 자처한 듯하다. 우리는 오늘날 자구해야 한다. 스스로를 구하는 것과 중생을 구하는 것은 원래 선후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이렇게 스스로를 구하고 사람을 구하는 것,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는 태도가 바로 '나선다'는 것이다.
진독수, 호적, 노신, 양수명과같은 근대지식인의 영수인물들은 엄격하게 말해서, 모두 '당도'의 관료사회에서 부침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런 망설임없이 그들은 일찌기 "나선" 바 있고, "나선 적이 있다"고 말한다. 천하창생도 "그들"이 나섰기 때문에 어느 정도 깨닫고 완화된 점이 있다.
이들 선배들의 전형은 이미 지식인과 정치의 관계를 처녀와 기녀이외에 다른 이미지로 세웠다. 우리는 참여하지만 같이 더러움에 어울리지 않을 수 있고, 개입하지만 그 더러움을 삼키지 않을 수 있다. 당연히 이것은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마음 속으로 이런 생각이 있다면, 처녀로 속수무책에 빠지거나 기녀로 음탕하게 살아가지 않을 수 있다.
장개석은 한 때, 호적을 국부위원으로 모셔, 정부에 참여시키려 한 바 있다. 그러나 호적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호적의 주요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는 재야에 있는 것이 재조에 있을 때보다 역량이 크다. 이 말은 우리가 깊이 생각해볼만한 것이다. 호적에 있어서, "재야"도 "나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조에 있으면 오히려 그는 전체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감소될 수 있다. 오히려 "정부의 꼬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그의 일생을 되돌아볼 때, 호적의 이 말이 아주 견식있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중국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대체로 정치권력중심과의 거리와 반비례한다고 보았다: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영향은 더욱 크다. 일단 자신이 개입하면 오히려 그의 역량을 발휘하기 어렵다.
우리는 현재 비록 '처녀'가 되고 싶거나, '기녀'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바로 "처녀횡의(處女橫議)"이고 "명이사(鳴而死)"의 위협은 없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왜 참고 좌시해야 하는가? 왜 수수방관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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