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공통)

황제의 상징: 절(節), 지절(持節), 가절(假節)

중은우시 2013. 4. 27. 01:20

글: 서북세호사 

 

황제가 모든 일을 친히 처리할 수는 없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여 대신 처리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냥 말로만 해서는 아무도 믿지 않느다. 그래서 "절(節)"을 증빙으로 삼게 된다.

 

"절"은  황제의 신분을 대표한다. 절을 가진(持節) 사신은 황제와 국가를 상징하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절을 가지고 제후를 분봉하고, 절을 가지고 죄인을 체포하고, 절을 가지고 반란을 진압하고, 절을 가지고 외국에 사신으로 나가서 의화를 체결하는 것등이 긋이다. 제후가 반란을 일으킬 때도, 사사로이 옥새를 새기는 것외에 절장(節杖)을 위조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강도이왕 유건이 반란을 일으킬 때도 '20개'의 사절(使節)을 만들어 놓고 사용한다.

 

소무(蘇武)가 절을 가지고 항복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라든지, 마일제가 원술에게 속아서 절을 편취당하고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절장의 실물은 길이 8척짜리 죽간(竹竿)이다. 제일 위를 장식한 것은 모우(旄羽)이다. 색깔은 한나라초기에는 적색이다가 나중에는 황색으로 바꾼다. 절의 재료는 나중에 금질동신(金質銅身)도 있다. 금도철권(金刀鐵券)류와 유사하고, 장식을 아주 화려하게 하고, 모조리 대나무는 아니었다.

 

그외에 "가절(假節)"의 "가"는 단기대리라는 의미이다. 진짜가짜라는 의미는 아니다. '가사마(假司馬)'는 대리사마를 가리키고, '가제왕(假齊王)'은 대리제왕을 가리킨다. 정식사마 및 정식 진왕과 구분한다. 당초 한신은 바로 가왕(假王)이 되고 싶어했는데, 유방이 진왕으로 봉한다. 이때는 진짜가짜의 차이가 있는 셈이다.

 

한나라때의 사절은 구분이나 등급이 없었다. 예를 들어, "조진(曹眞)"의 본전에서는 "가절"이라고 했다. 그러나 상소문에 존호를 올릴 때는 '사지절(使持節)"이라고 열거했다. 출토된 조진의 비에서도 '사지절'이라고 한다; 또한 위연도 본전에는 '가절'이라고 되어 있으나, 이엄을 탄핵할 때 연명으로 표를 올릴 대는 '사지절'이라고 한다. 이것은 황제를 대표하는데는 크고 작은 것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려가 '가절'로 개부(開府)하고 군대를 주둔시키고 일방을 통치했다. 단기대리의 뜻은 아니었다. 반대로, 급암이 몰래 '지절'하여 하남창고의 곡식으로 빈민을 구제하라고 한 내용은 원래 '가절'일 것이다. 즉 임시로 절장을 쓰고 나중에 반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지절'이라고 하였다. 앞의 사사(四史)에도 절장의 구분을 기록해놓지 않았다. 심지어 한무제가 병력을 일으켜 태자를 체포할 때도 구분을 위하여(왜냐하면 태자도 절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절장의 색깔을 바꾼다. 이것은 절장에 원래는 고저의 구분이 없었다는 점을 증명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한무제는 직접 "사지절"을 임명하면 태자의 '지절'이나 '가절'보다 높지 않았겠는가. 굳이 색깔로 구분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나중에 진나라의 지절도독(持節都督)의 권한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가절: 평상시에는 사람을 처분할 권리가 없고, 전시에는 군령을 어긴 사람을 죽일 수 있다.

(2) 지절: 평상시에는 관직이 없는 사람을 처분할 권리가 있고, 전시에는 2천석이하의 관리를 죽일 권리가 있다.

(3) 사지절: 평상시 및 전시에 2천석이하의 관리를 죽일 수 있다.

(4) 가절월(假節鉞 혹은 假黃鉞): 절장(節將, 가절, 지절, 사지절을 포함한다)까지 죽일 수 있다.

 

'월(鉞)'은 '부월(斧鉞)'인데, 일종의 형구(刑具)이다. 즉, "대형(大刑)은 갑병(甲兵)을 쓰고, 다음으로는 부월을 쓴다". 반드시 군왕에 전속한 것이고 가끔 신하에게 빌려주는 것이므로 "가"절월이 될 수밖에 없고, "지"절월이 될 수는 없다. 공명이 "모월(旄鉞)을 수여받았다"는 말이 나오는데 '모월은 바로 '가절월'을 가리킨다.

 

진나라의 절장이 나타난 시기는 조위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촉은 반드시 그에 따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위,진은 주와 군이 많으므로 가절자사 혹은 지절도독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오, 촉은 주도 적고 군도 적어서, 나누어 통치할 필요가 없다. 모조리 중앙에서 관할하면 된다. 촉장 요화, 오일, 장익등은 비록 '지절'이지만, 진정한 군사용병은 대장군 강유의 뜻에 따라야 한다. 오나라는 장강의 각도독으로 하여금 각지를 수비하게 하지만 모두 '지절'은 아니었다. 그래서, 오,촉의 절장의 권력은 위진의 절장이 얻은 것만큼 크지 않았다. 오촉의 절장들은 중앙을 대표한다. 마치 파견사신같았다.

 

지절도독이 한 지방을 다스리는데, 이들은 나중에 자방에 할거하는 '절도사'의 전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