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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공통)

중국고대 유언비어역사상의 "4대발명"

by 중은우시 2013. 7. 12.

글: 조염(趙炎) 

 

유언비어에도 역사가 있는가? 당연히 있다. 그리고 이천여년이나 된다. 연원이 길다고 말할 수 있다. 유언비어에는 유언비어 만들기와 퍼트리기가 있다. 중국고인들은 유언비어를 만드는 것을 "요(謠)"라고 불렀고, 유언비어를 전파하는 것을 "착(諑)"이라고 불렀다. 합하여 "요착"이라고 하였다. <초사.이소>를 보면, "중여질여지아미혜(衆女嫉余之蛾眉兮), 요착위여이선음(謠諑謂余以善淫)"(여러 여자들이 나의 아름다운 눈썹을 질투하여, 내가 음탕하다고 유언비어를 만들어 퍼트렸다).

 

중국고인들은 어떻게 유언비어를 만들고, 퍼트렸는가? 개괄적으로 말하자면, "4대발명"이 있다.

 

동요(童謠). 아이들의 입에서 화약이 터진다. "동요의 말은 장래의 징조이다.". 고인들은 길흉을 주재한다고 보았고, 모종 예시를 가진다고 보았다.

 

서한말기, 공손술이 황제를 칭한 후 오수전을 폐지한다. 백성들은 이로 인하여 가난뱅이로 전락한다. 촉의 아동이 사방에 동요를 불러 퍼트린다: "황우백복(黃牛白腹), 오수당복(五銖當復)". 황우는 왕망을 가리킨다. 백복은 공손술을 가리킨다. 오수는 한나라의 돈이다. 이 동요는 바로 공손술이 왕망과 같이 멸망하고, 한나라강산이 회복될 것이라는 것과 같다. 과연 기원후36년이 되자, 공손술은 유수에게 멸망하니, 그의 결말은 왕망과 같다 한나라정권이 '광복'된 것이다.

 

원래 동요는 어린아이들을 위하여 지은 단시(短詩)이고, 격률과 운각을 강조한다. 아이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며 부르는 일종의 문학형태의 예술이다. 그런데 왜 동가(童歌)나 아가(兒歌)라고 부르지 않고 동요라고 부르는 것일까? 명나라때 양신(楊愼)의 주석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단연총록>에서 이렇게 말한다: "동자가왈동요(童子歌曰童謠), 이기출자흉억(以其出自胸臆), 불유인교야(不由人敎也)"(어린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동요라 하는데, 그것이 가슴에서 나오고 사람들이 가르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말은 확실히 반대로 말한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만일 "가슴에서 나와서 부르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은 노래"를 부른다면, 아마도 대부분 부를 수 있는 것이, "양새끼, 토끼새끼, 우리 같이 놀자"는 수준밖에 부를 수 없었을 것이다. 어찌 세상의 운명과 인사를 예측하는 동요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이를 보면 동요를 동요라고 부르는 것은 아이들의 노래라는 형식이 누군가에게 이용되기 때문이다. 고의로 유언비어를 만드는 자가 아이노래같은 요언(謠言)을 만들고, 어린아이들에게 가르쳐서 널리 부르게 함으로써 인심을 현혹시키려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참위(讖緯). 양가죽을 뒤집어쓴 늑대가 지남철인척 한다. 참(讖)은 진,한나라때의 무사(巫師), 방사(方士)들이 만들어낸 길흉을 예시하는 은어(隱語)이다. 위(緯)는 한나라때 유가경전에 의탁하여 지어진 책의 한 유형이다. 한광무제 유수이후 사람들이 "내학(內學)"이라고 부른다. 원래의 경전은 오히려 "외학(外學)"이라고 불린다. 만일 "참"은 교활한 늑대의 말이라면, 그것은 유가경전의 겉옷을 입고 있다. 양가죽을 쓴 것과 같이.

 

몽만(蒙曼) 부교수는 최근 들어 백가강단에서 양광을 얘기하면서, 당시의 한 참위를 언급했다. 강호인사들이 양광에게 "이씨성을 가진 사람이 천하를 차지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원래의 말을 그런 것이 아니지만, 뜻은 개략 그렇다. 이것은 전형적인 요언이다. 다만 수양제는 깊이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친히 일막의 인간참극을 벌인다. 수십명이 연루되어 살해당하고, 적친 외조카딸도 포함되었다. 그렇게 하여 결국 이연으로 하여금 반란을 일으키게 몰아간다. 요언이 진짜가 된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진시황때, 방사 노생이 바다로 가서 신선을 만나러 가면서, <도록>이라는 책을 하나 가지고 같다. 거기에는 "망진자호야(亡秦者胡也)"라는 참어가 있었다. 이것은 전형적인 참위이다. 진시황은 잘못 이해했다. 큰아들을 보내어 오랑캐(胡)를 멸했다. 결국 어린 아들 호해(胡亥)의 손에 대진강산은 멸망한다.

 

참의 겉포자이 위(유가경전)이다. 원래 공혈래풍(空穴來風)의 요언이 듣기에는 미혹성을 지니는 것이다. 그리하여 듣는 사람들이 믿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그 효과는 아주 놀랄 정도이다.

 

예를 들어, 송나라때 복건 민강(남대강)변에 장(章)씨성의 대갓집이 있었다. 아들은 장득상(章得象)인데, 공부를 좋아하고 부지런했다. 사람들은 그가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장씨집안의 어떤 사람이 참위를 만들어 퍼트린다. "남대강합출솔상(南臺江合出率相)" 그리고 일부러 신비스럽게 사람들에게 말한다. 금방 이 요언은 경성에까지 번진다. 장득상이 경성으로 과거시험을 치러갈 때가 되자, 예부의 주고관(主考官)은 모두 그를 합격시켜준다. 장득상은 순조롭게 과거에 급제한다. 이때부터 관운이 형통하여, 동지추밀원사, 호부시랑으로 승진하고, 최후에는 동중서문하평장사, 집현전대학사가 되어 재상의 자리에 오른다.

 

풍문(風聞). 합법적인 유언비어는 인쇄술이다. 중국고대에, 감찰어사등의 언관은 "풍문언사(風聞言事)"(풍문으로 들은 것을 가지고 아뢸 수 있다)의 특권이 있었다. 소위 "언자무죄문자족계(言者無罪聞者足戒)"(말하는 사람은 죄가 없고, 듣는 사람이 충분히 경계해야 한다)라는 것이다.이런 매커니즘의 특징은 언관이 말하는 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간에, 언관은 그 말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즉 유언비어를 만들고 퍼트리는 것은 무죄라는 것이다. 말을 듣는 자는 반드시 '충분한 경계를 해야 한다" 만일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반박할만한 유력한 증거를 가지고 와야 한다. 이런 매커니즘이 직접적인 결과는 바로 유언비어가 합법적으로 계속 만들어지고 퍼트려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송 경원2년, 감찰어사 심계조(沈繼祖)는 "풍문언사"하여 주희의 10가지 죄를 공격한다. 그러나 어느 하나도 진실한 증거는 없었다. 하나같이 모두 '풍문'에 속하는 것이었다. 주희는 이런 유언비어를 무시했고, 유언비어를 막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학(理學)은 한 때 위학(僞學)으로 취급되고, 주희 본인도 조정에서 쫓겨난다. 그후, 심계조의 친구인 홍매(洪邁)는 합법적으로 유언비어를 퍼트리기 시작한다. 그의 <이견지>에는 더 나아가 주희가 여승을 첩으로 삼았다고 폄훼하기까지 한다.

 

고대의 풍문은 결국 "무풍역가문(無風亦可聞, 바람이 없어도 들을 수 있다. 즉, 아무런 근거없이 혼자서 날조할 수 있다)"의 특징이 있다. 유언비어에 출처가 있건 없건 언관 자신의 말이든 아니든 관계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하에서, 유언비어를 만드는 자와 퍼트리는 자는 기실 한 사람이다. 만일 오늘날로 말하자면, 공연비방죄이다. 법에 의하여 그 죄를 문책당할 일인 것이다. 그러나 고대에 이것은 합법이었다.

 

피언(辟言). 어려운 종이제조개량. 유언비어를 만들고 퍼트리는 것은 쉽다. 그러나 유언비어를 막는 것은 하늘에 오르기보다 어렵다. <시.소아.우무지>에는 이런 말이 있다. "피언불신(辟言不信)". 무슨 뜻인가? "피언"은 법도의 말이다. 즉, 유언비어가 한창 퍼지고 있는 때, 엄숙한 법률을 가지고 유언비어를 막으려 하면 세상사람들은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를 보면 일단 유언비어가 퍼지면, 유언비어를 막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바로 이러하기 때문에, 중국유언비어의 역사는 그렇게 긴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유언비어를 막는 것을 종이를 만드는 것에 비유하고자 한다. 그 개량과정을 보면, 대나무편, 나무편에서 기원105년에 채륜이 식물섬유지를 개발해낼 때까지, 천년의 시간이 흘렀던 것이다.

 

고대에 피언(辟言)을 피사(辟邪)라고도 불렀다. 유언비어는 사설(邪說)과 같이 일종의 불량한 풍기이다. 우리는 홍루몽을 읽을 때 발견할 수 있다. 대다수의 인생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등미(燈謎), 싯구(詩句)등을 겁낸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겁내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다고 여긴다. 예를 들어, 가정은 한 등미 때문에 반나절을 우울하게 보낸다. 가보옥은 그 뜻을 알고는 오히려 좋아한다. 왜 그런가? 큰 환경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송옥은 <풍부(風賦)>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이 스승(굴원)에게 듣기로; 굽은 나무에는 새들이 둥지를 틀기에 좋고, 비어있는 동굴에서는 바람이 나온다. 이는 그것이 의탁하는 것이다. 즉 바람의 기운이 다른 것이다."

 

왜풍사기(歪風邪氣)는 바로 유언비어를 만들고 퍼트리는 자를 위한 '대환경'을 제공해준다. 사람들은 습관적인 사고의 지배를 받는다. 유언비어에 대하여 선입견을 가지고, 왕왕 깊이 믿어버리는 것이다.

 

만일 효과적으로 유언비어를 막으려면, 반드시 그것이 '의탁"하는 것을 제거해야 한다. 사회기풍을 정화시켜야 한다. 이것은 확실히 장기적이고 어려운 사회시스템공정이다. 유언비어는 지혜로운 자에게는 먹히지 않는다. 모든 국민이 지혜로운 자가 되었을 때, 유언비어를 막는 것이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