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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공통)

상방(商幇)은 어떻게 신뢰를 구축했는가?

by 중은우시 2013. 4. 2.

글: 양소민(梁小民)

 

신뢰는 상업성공의 기초이다. 명청(明淸)시기 중국은 상업이 발달했고, 성공한 상방이 나타난다. 그런데, 빈번한 상업거래에서 그들은 어떻게 신뢰를 구축했을까?

 

현재 많은 사람들은 개방전의 사회상황을 그리워하고있다고 말한다. 그때는 그렇게 많은 범죄도 없었고, '황도독(黃賭毒, 섹스, 도박, 마약)"도 없었다. 가짜제품도 없었다. 그러나,아마 그들은 생각지 못할 것이다. 그대 사람들 간에는 신뢰가 없었다. 자신의 정치적 각오가 높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자식은 부모를 팔고, 학생은 스승을 팔았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하여, 중학생 소핵생들은 가짜글을 쓰는 풍조가 있었다. 공유제이므로, 네 것이든 내 것이든 모두 국가의 것이었다. 기업이 은행의 돈을 빌려도 갚지 않아도 되었다. 불신의 기초도 이익이고, 마찬가지로 신뢰의 기초도 이익이다.

 

상방의 신뢰는 바로 이익의 기초 위에 건립되는 것이다. 매매를 하고, 상업활동에 종사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것이다. 네가 신뢰가 없어, 다른 사람을 한번 속였다면, 다른 사람은 영원이 너를 믿지 않을 것이고, 너와 교류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네가 다른 사람을 속이면, 다른 사람도 너를 속일 거이다. 신뢰가 없으면 거래도 없다. 이 이치는 누구에게나 분명하다. 모든 상방은, 심지어 상방이 없는 상인은 모두 신뢰를 입신의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바로 신뢰만이 그들이 돈을 버는 성공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에 기초하여, 각 상방은 중국전통문화의 신뢰를 자신의 기본적인 상업윤리도덕으로 삼았고, 모두 "신뢰지상(誠信至上)'을 자신의 상업경영의 격언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신뢰에 관한 기록과 전설은 수도 없이 많다.

 

가장 전형적인 신뢰의 모범은 진상(晋商)이다. 진상의 신뢰는 두 가지 분야의 내용을 포함한다: 대외적으로는 무역파트너('相與'라 함)와 고객에 대한 신뢰이다. "다른 사람이 내 돈을 떼먹어도 나는 절대 다른 사람의 돈을 떼먹지 않는다."  대내적으로는 장거(掌秬)와 동가(東家), 직원과 기업간의 신뢰이다. 동가는 장거에 대하여 '의심스러운 사람은 쓰지 않고, 쓴 사람은 의심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권한을 최대한 부여했고, 장거는 직원과 동가에 대하여,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았으므로 그 사람의 일에 충성을 다한다'는 원칙에 따라 일했다. 바로 이런 신뢰가 진상의 성공을 보장했다.

 

당시 은행표호(銀行票號)에 관한 법이 없었다. 표호는 고객의 은자를 교환해주고, 고객은 진짜 돈을 표호에 주면서 받는 것은 한 장의 은표이다. <대청률>에는은표를 돈과 바꿔주는 것을 보장하는 법률이 없다. 고객은 진짜돈을 표호에 주고 은표를 받는 것은 완전히 표호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표호는 "표를 보면 바로 돈을 지급한다"는 것을 보장함으로써 자신의 상업적명성을 얻었다. 1900년 팔국연합군이 북경으로 진입했고, 북경의 많은 고관대작들은 서태후를 따라 서족으로 도망친다. 산서에 도착하여 가져온 은표를 돈으로 바꾸었다. 미친듯이 현금을 바꾸는 상황하에서도 표호는 '경천동지할 일이 있어도 다 갚아준다"는 원칙을 견지했고, 이런 신뢰의 정신은 고객을 감동시킨다. 1900년이후 표호업은 전성기를 맞이한다. 진상은 양권분리를 시행했다.그러나 제도설계상으로 큰 흠결이 있었다. 즉 대장거(大掌秬)가 장악한 "권(權), 책(責), 리(利)"가 일치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장거는 경영관리의 대권을 가진다. 동가가 간섭할 수 없다. 심지어 물어볼 수도 없다. 그래서 대장거는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다. 대장거는 최고의 급여와 최고의 신고(身股, 지분)를 받았고 이익분배에 참여하여, '이익'도 거대하다. 그러나 대장거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경영상 결손은 동가가 '무한책임'을 부담한다. 현재 경영학의 각도에서 보자면, 이런 제도설계상의 '흠결'은 직업경영인의 도덕적 해이현상을 불러온다. 그러나 표호가 경영되는 백여년동안, 오늘날 자주 볼 수 이쓴 직업경영인의 도덕적 해이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의존한 것은 동가와 대장거간의 신뢰이다. 제도가 만능은 아니다. 도덕은 제도의 부족을 보완할 수 있다. 진상이 바로 그 사례이다.

 

진상과 다른 상방의 신뢰건립은 원칙적으로 오늘날과 같다. 하나는 도덕에 의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도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에서는 오늘날과 큰 차이가 있다.

 

도덕의 층면에서 보자면, 각 상방은 모두 신뢰를 최대의 미덕으로 삼았다. 그리고 각종방법을 통하여 모두 받아들이게 하였다. 한가지 방법은 신뢰의 우상을 모범으로 수립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모두 배우게 하는 것이다. 진상은 관공(關公, 관우)을 신뢰의 모범으로 삼았고, '관공숭배'를 창도한다. 다른 상방에서도 관공을 숭해하는 사람이 있었다. 혹은 다른 사람을 숭배하기도 했다. 결국 목적은 같았다. 당시의 사람들은 '유신론'을 많이 믿었다. 정신의 역량을 믿었고, 신의 징벌을 두려워했다. 둘째는 전통문화로 사람을 교육한 것이다. 당시 유학은 중국의 주류이데올로기였다. 신뢰는 유가에서 사람이 처세하는 기본적인 도덕표준이었다. 그래서, 각 상방은 모두 유가경전을 중시했고 유가사상으로 후대의 사람들을 교육시켰다. 당시 사회의 가치관은 아직 다양화되지 않았고, 이단사상으로 보통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일은 적었다. 그러므로, 신뢰의 사상은 현실에서 역할이 아주 컸다. 각 상방은 신뢰를 건립하면서 신과 사상의 역할이 오늘날보다 비교할 수 없을만큼 컸다.

 

여하한 시대의 사상과 도덕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더욱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역시 제도이다. 제도의 작용은 도덕에서 요구하는 바에 따라 하면 개인이익의 최대화를 꾀할 수 있고, 도덕에 위반하면 징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제도의 작용에서, 당시의 상방과 오늘날의 상계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이것이 바로 당시에 전체사회에 작용하는 법률 혹은 기타 제도적 안배가 없었고, 단지 국부적인 것이었다는 것이다. 일정한 범위내에서 작용하는 제도인 것이다. 그래서, 미국사회학자 푸산은 <신뢰>라는 책에서, 보편적인 사회제도의 건립위에서 신뢰는 상층기초를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후자는 국부적인 제도 위에서 건립된 신뢰이므로 낮은단계의 신뢰라 할 수 있다 혹은 유한신뢰라고 할 수 있다. 단지 자신이 잘 아는 사람만 신뢰하고 범위가 상당히 유한한 사람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의 시장경제로 진입할 수 없다. 상방에서 신뢰가 건립되는 제도기초는 이 후자이다. 당시의 조건하에서, 각 상방은 그저 이런 유한신뢰를 건립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런 유한신뢰는 당시에 확실히 아주 중대한 작용을 했다.

 

하나의 기업과 다른 기업과의 사이에서의 신뢰는 주로 두 가지 제도에 의존한다. 하나는 무형이 제도이다. 즉 습속이다. 명청시대에, 상업거래의 범위는 아직 그다지 넓지 않았고 거래는 주로 '잘아는 사람의 세계'에서 이루어졌다. 잘아는 사람들간에는 서로 이해했고 즉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하여 '신뢰도'평가가 있었다. 이런 써클내에서, 무슨 제도는 필요가 없다. 상호신뢰는 이미 모두 인정하는 '습속'이 되어 있다. 이런 습속은 인류역사상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회학자들은 이를 '무형의 제도'라 칭한다. 즉 문자로 쓰여지지 않은 제도라는 것이다. 다만 모두 지켜야 한다. 둘째는 유형의 제도이다. 즉 문자로 쓰여진 제도이다. 이런 제도중에서 일종은 기업 혹은 개인간의 계약이나 합의서이다. 또 다른 것은 사회 혹은 회관의 공약(公約)이다. 업종협회와 회관을 방으로 결집하는 이유중 하나는 상호간의 신뢰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사람의 이런 바램이 쓰여지고 공인받아 일종의 제도가 된 것이ㅏ. 이 제도에 위배하는 것은 이 '잘아는 사람들 세계'에서 생존해나가기 힘들게 만든다. 이런 공민간의 계약 혹은 공약은 법률의 보장을 받는다.

 

기업내부에서도 유형과 무형의 제도로 신뢰를 보장한다. 먼저 주의할 것은 당시의 기업은 기본적으로 가족기업이라는 것이다. 하나의 가정 혹은 하나의 가족은 사회의 기본단위이다. 구성원간에는 공존공영하고 이익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상호간의 신뢰도가 가장 높다. 이것은 세계에서 거의 모든 기업이 가족기업에서 시작한 기본원인이다. 특히 중국의 가정 혹은 가족은 유가가정윤리관을 정신적 지주로 하여, 그 신뢰도가 더욱 높다. 가족의 확대는 종족이다. 동종중 각 가정경제는 독립적이다. 다만 동종간의 이익관계는 밀접하여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들보다는 가깝다. 그래서 상호간의 신뢰도가 비동종의 사람들보다는 높다. 휘상은 발전과정에서 이런 동종간의 신뢰를 충분히 활용했다. 더욱 중요한 점은, 각 가족과 종족은 모두 자신의 가규와 족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유형의 제도도 동일가족 혹은 동일종족간의 상호신뢰를 강화시킨다. 가정, 가족과 종족은 모두 사회조직이다. 동일한 가족, 가정 혹은 종족의 구성원을 규율하는 유형 무형의 제도는 명청시기 상방의 신뢰관계에서 기초를 이룬다.

 

기업이 커진 후에는 모조리 가족구성원일 수가 없다. 어떻게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들간에 신뢰관계를 형성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이다. 이 문제의 해결중 하나는 인센티브이다. 공동이익관계를 통하여 기업에 충성하게 한다. 진상은 신고(지분)제를 실시했고, 직원도 신고를 가지고 이익분배에 참여한다. 직원과 기업의 이익이 일치한다. 충성도의 기초가 생긴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유형의 제도로 제약하는 것이다. 진상에서 이런 유형의 제도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첫째, 용향불용친(用鄕不用親). '불용친'은 엄격하게 제도를 집행하기 위한 것이다. '용향'은 같은 고향사람에 대하여 이해가 깊기 때문이고, 동시에 동향으로 가족과 친족의 이익을 보살펴 그들의 행위를 구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외지분호의 업무인원은 가족을 데려갈 수 없었다. 현지에서 첩을 들일 수도 없었다. 심지어 청루와 같은 곳에 가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들 규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도덕적 요구같지만, 실제로는 직원이 가족을 데리고 도망치거나 첩을 들이거나 청루에 드나들며 횡령의 유혹에 빠져 기업을 배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셋째, 각종 '호규(號規)'혹은 '점규(店規)'를 두어 직원이 기업을 배반할 수 없도록 한다. 어떤 것은 비인간적이기까지 했다. 예를 들어, 직원이 고향으로 가서 친척을 만나러 갈 때는 몸수색을 하고, 직원이 비산서여자와 결혼할 수 없도록 하는 것등이다. 넷째, 엄격한 재무제도로 직원의 부정부패를 방지한다. 각 상방은 유사한 제도가 있었다. 이를 통하여 직원들이 기업에 충성하도록 하였고, 기업내부에서, 제도는 직원들이 기업에 충성하게 하는 보장이다.

 

도덕과 제도의 이중보장하에, 각 상방은 한 상방내에 하나의 기업이 신뢰를 실현할 수 있었다. 이런 신뢰는 저급한 것이었지만, 당시의 상업발전이 아주 유한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상업거래활동이 복잡하지 않은 상황하에서, 상업과 경제의 발전에 적극저인 작용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신뢰관계는 명청시대에 한한다. 전체사회가 무한신뢰의 제도체계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명청시대에 발달한 상업은 현대시장경제로 발전할 수가 없었다. 이는 심각하게 중국의 현대화진전에 영향을 준다. 동시에, 도덕과 제도의 작용은 단지 당시의 사회경제상황에 적용되므로, 이들 요소는 현대사회에 작용을 하기도 어렵고 채용하기도 어려웠다. 이것이 바로 ㅇ리가 현재 심지어 유한한 신뢰마저도 실현하기 어려운 원인이다. 고단계의 무한신뢰는 제도적 기초가 없고, 저단계의 유한신뢰는 현재 건립되기 어렵다. 이것이 바로 중국시장경제가 직면한 곤란의 하나이다.